# 284
레벨이 갑이다
284화
“도련님,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최 박사님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요.”
“아닙니다. 제가 비밀을 밝혀 냈어야 하는데…….”
“아니라니까요. 서우 외에는 누구도 그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제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분명 그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뉴 월드를 즐기는 유저가 벌써 10억 명을 훌쩍 넘고 있어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찾는다고 그러세요.”
“그래도…….”
“괜찮다니까요. 자꾸 그러시면 저 그냥 드러누워 버립니다?”
“아,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안 하겠습니다.”
최 박사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정민후의 마음을 돌려 놓았다.
정민후는 의식을 차린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 훈련에 참여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최 박사는 처음 이서우에게 일어난 현상을 기억해 내고 뉴 월드에 8시간 이상 접속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종료 후 그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데이터를 다시 확인하고 시도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문제로 이서우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 박사는 그 일로 큰 자책감에 시달렸다. 자신이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다면 분명 방법을 찾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자신을 믿고 재활 훈련에 최선을 다하는 정민후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은 더욱 커졌다.
한데, 정민후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했다.
6년 동안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깨어났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좋아지겠냐는 것이다.
그런 배려에 최 박사는 더욱 성심성의껏 재활을 도왔다.
“참, 박사님, 서우가 얼마 만에 정상인처럼 걸었다고 했죠?”
“재활 6개월로도 정상인처럼 지내지는 못했습니다. 뉴 월드를 하고 두세 달쯤 더 지나서였을 겁니다.”
“그렇군요. 뭐, 그에 비하면 전 회복이 빠른 편이니 그걸로 위안 삼아야겠어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면 확실히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박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적응이 안 되네요.”
“과학자라도 긍정의 힘은 믿고 있답니다.”
“의외네요. 전 최 박사님이 과학적 지식을 신봉하고 계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제 지식이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말이죠.”
최 박사는 씁쓸하게 웃으면서도 정민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서우에 이어 정민후의 회복까지 경험하면서 최 박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 얼마나 미천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동안은 뭐든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서우를 만나면서 금이 갔고, 정민후와 함께 재활 훈련을 하면서 깨지고 말았다.
재활 훈련이 그의 전문 분야는 아니어서 매일 함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민후의 노력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간절했다.
처음에는 이서우에게 일어났던 그 변화가 정민후에게도 똑같이 진행될 거라 여겼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과학적인 지식도 있고, 이서우를 통해 데이터도 얻었음에도 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최 박사는 긍정의 힘을 믿게 되었고, 정민후의 곁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격려했다.
“최 박사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뉴 월드 접속하시게요?”
“네. 거기서는 마음껏 뛸 수 있으니까요.”
“……네. 그럼 식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배는 안 고픈데 말입니다.”
“한 번 접속하면 10시간 이상씩 하시니 무조건 드셔야 합니다.”
“알았으니 그렇게 무서운 표정은 짓지 마세요.”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최 박사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재활 훈련을 마무리하고, 최 박사가 직접 정민후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정민후는 곧 있을 뉴 월드 1주년 행사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했지만 최 박사는 뉴 월드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대화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을 위해 나도 뉴 월드에 관심을 좀 가져야 하나.’
뉴 월드 이야기만 나오면 매번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니 그도 답답했다.
오늘은 유독 최 박사에게 뉴 월드라는 이름이 깊게 각인되었다.
* * *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안 대표님의 선택이 탁월했네.”
이설아는 영상을 보는 내내 탄성을 터트렸다.
글로벌사는 이번 1주년 이벤트 홍보를 위해 이서우와 이설아를 전격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한데, 이번 홍보는 두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다.
오프라인 홍보를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았고, 해외까지 발을 뻗었다.
모든 곳을 갈 수는 없어 시장의 규모별로 총 다섯 나라를 방문했다.
방문 때마다 국빈 대접을 받아 어리둥절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
처음 5일 2시간이라는 계약이 연장되어 이서우의 몸값으로 지불된 금액만 수천억 원에 달했다.
홍보로 가장 인기를 끈 것은 바로 이서우가 직접 뉴 월드 기술을 펼친 것이었다.
물론 대검을 들고 실제로 움직였다는 게 아니라 3D 홀로그램을 활용해서 진행된 것이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그 영상에 열광했을까.
바로 이서우의 신체를 직접 스캔해서 기술을 접목시켰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서우의 육체는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과 다름없었다.
조각 같은 육체가 주는 감동과 유연한 몸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록 홀로그램을 활용했지만 글로벌사에서 홍보를 위해 발표했다. 이번 영상은 이서우의 실제 움직임이 상당히 반영되었다고 말이다.
“그렇게 보고도 안 지겨워?”
“그럼.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을 어떻게 매일 안 볼 수가 있어. 아마 전 세계 여성들이 오빠 영상을 보며 넋이 나갔을 걸?”
“에혀, 괜히 찍어 가지고.”
“그러게. 이런 건 나만 봐야 하는데 말야.”
“매일 보고 있잖아.”
“헤헤. 지금도 보고 싶네.”
이서우와 이설아의 눈빛이 마주치며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드라마라면 이 시점에서 뚜, 뚜루 뚜. 뚜, 뚜루 뚜라는 소리와 함께 묘한 음악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야릇한 분위기는 불청객으로 인해 깨어지고 말았다.
“어라, 너희 둘 분위기가 수상하다?”
“어, 언니! 소리 소문 없이 들어오는 게 어디 있어!”
“소리 소문이 없긴. 난 분명 노크했다.”
“그, 그래?”
“당연하지. 내가 그리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보여?”
“그, 그건 아니지만…….”
이설아는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이서우에게 집중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얼른 얼굴을 돌렸다.
“험, 험. 근데, 무슨 일인데 그리 다급해 보여?”
“사업 아이템 설명하려고 왔지.”
“사업 아이템?”
“응. 이번 행사를 진행하면서 박 대표님과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말이야.”
“굳이 사업을 진행할 생각은 없는데?”
“들어보면 좋아할 거야.”
이서우는 이제 더 이상 사업을 확장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여전히 접속 방을 늘리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전국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단 접속 방을 만드는 것 외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업은 할 생각이 없었다.
하이 레벨 지역에 1백 곳의 마을이 생기면서 100층 규모의 빌딩 200채 이상이 잘 운영되고 있었다.
이용자가 늘면서 이서우의 수익도 늘어났고, 아이템 판매로도 많은 수익을 냈다.
1주년을 맞아 골드 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1골드에 1만 5천 원까지 상승했다.
이서우는 이때 7천 원 이하로 사들인 골드와 그동안 벌어들인 골드의 일부를 판매했다.
이로써 이서우는 기존에 있던 돈과 금융자산까지 총 20조에 달하는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한민국 부자 순위 3위가 된 것이다. 최단기간, 최연소로 이룬 부富였다.
그러니 더 이상 사업을 하는 것은 이서우에게 의미가 없었다.
사실 접속 방도 확장을 그만둘까 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이기에 부담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생을 모토로 본점의 이익을 낮추면서 점주들의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보증금을 지원하고, 접속 베드를 아주 적은 금액에 대여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했다. 점주들은 인테리어에 대한 부담만 지면 되기에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주선용은 확실히 이서우와의 약속을 잘 지켰다. 벌써 50호 점이 들어섰는데도 어디 하나 문제가 되는 곳이 없었다.
노하우가 쌓이면서 매장은 빠른 속도로 확장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접속 방을 고려해 무리한 확장은 결코 하지 않았다.
점주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 각 점포마다 매출이 최소 매월 2억 원 이상씩 생기니 늘 웃는 얼굴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접속 방 사업만으로도 몇 대가 풍요롭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으니 김소연의 말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뭔데 그렇게 자신해?”
“이번에 너 엄청난 인기를 얻은 거 알지?”
“어머, 언니,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하고 있었어.”
“그래? 그럼 잘됐네. 그 부분을 이용할 생각이거든.”
“뭔데?”
이서우는 무덤덤한데, 이설아가 더 호기심을 보였다.
김소연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우선 캐릭터 사업이 있어. 온, 오프라인 모두 진행하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거야.”
“그렇지 않아도 나도 영상 보면서 그 생각했는데. 역시 박 대표님이나 언니도 똑같은 생각을 했구나.”
“당연하지. 여자들이 아주 난리가 났는데 그걸 생각 안 할 수 없지. 그리고 또 있어.”
“또?”
“캐릭터 사업은 시작에 불과해. 홀로그램 보안 인공지능에도 적용할 수 있고, 영화 캐릭터도 활용이 가능해. 어디 그뿐이겠어? 각종 명품 브랜드 모델도 돼. 벌써부터 제발 모델 좀 해 달라고 아우성이야.”
“글로벌사 측에서 엄청 후회하겠는 걸?”
“그렇지 않아도 안 대표가 네 영상물 저작권과 캐릭터 저작권을 얻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
홀로그램 보안 인공지능은 기존의 음성만 지원하던 걸 홀로그램으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해서 직접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마치 진짜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더 안정감을 가질 수 있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서우의 육체라면 더 든든한 기분이 들 것이기에 여성들의 문의가 벌써부터 쇄도했다.
영화캐릭터나, 명품 브랜드 모델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스스로 캐릭터 인형이나 그림들을 만들어 소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업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오빠, 난 괜찮은 것 같은데?”
“내가 귀찮게 움직일 일은 없는 것 같으니 나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어차피 이번 홍보로 얼굴이 심하게 노출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활용할 수 있으면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탁월한 선택이 될 수 있었다.
“다른 건 네가 나설 필요가 없는데, 가끔 뉴 월드 기술을 영상화시키는 작업은 할 필요가 있어. 아무래도 실제로 움직였다고 하면 더 효과가 크니까.”
“운동 삼아 하는 거니 상관없기는 해. 앞으로는 이곳에서 하면 되니까 귀찮은 일도 없을 거고.”
뉴 월드 홍보여서 최근에는 글로벌사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사람들로 둘러싸여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K사에서 한다면 이서우에게도 부담이 없어 편했다.
“이번에 또 새삼 느끼는 거지만 진짜 뉴 월드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야. 지금 내가 말한 사업만으로도 연간 수십조의 매출이 발생해. 그 중 너의 몫은 수조원이나 될 테고.”
전 세계가 시장이니 그 이상의 수익을 낼 수도 있었다.
현재 이서우의 동영상 중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100억이 넘었다.
계정당 조회 수는 30억이 넘으니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본 셈이었다.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사업을 시작하면 무조건 대박이 터질 수밖에 없다.
“우와, 그럼 오빤 유료 영상 수입과 앞으로 진행될 사업 수익, 접속 방 수익만으로도 엄청 벌어들이겠네. 주식에, 거기가 뉴 월드 수익까지 생각하면…….”
“내가 대충 계산해 봤는데 서우가 벌어들이는 총금액은 세금을 제하고도 매년 15~20조는 벌어들이겠더라.”
이서우가 뉴 월드를 시작한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이룬 엄청난 일이었다.
향후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면 수년 내로 전 세계 제일 부자가 되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부를 많이 축적한 사람은 150조원이 넘는다.
지금으로서는 거기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사업이 계속 확장된다면 이서우의 부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뉴 월드를 매일같이 하는 사람들은 이서우가 얼마나 빨리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지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뉴 월드의 인기가 식지만 않는다면 장담하는데 서우는 10년 안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될 수 있어.”
“전 세계에서 1위라…….”
이서우는 과거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에서 평생 상위 10퍼센트 안에도 들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이제는 전 세계 1위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찌 놀랍지 않을까.
“과거 자수성가 한 사람 중에 33세에 80조에 육박하는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 기록이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거든. 아마 너로 인해 깨질 거야.”
“자수성가로 33세에 80조를 벌었다고?”
“그래. 만 33세였으니 우리나라 나이로는 35세겠네.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130조 이상이지만 네가 그 나이가 되면 150조 이상은 벌 수 있을 거야. 엄청난 세금을 내고도 말이지.”
17년 전, 30대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부를 이룬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향후 자수성가로 그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서우의 기세를 보면서 사람들은 기대했다. 과거의 기록을 뛰어넘기를 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금을 기초로 계산한 거야. 뉴 월드에서 네 빌딩이 더 많아지면 수익은 수직상승하겠지. 어쩌면 그 기간이 더 단축될지도 몰라. 게다가 앞으로 펼칠 사업도 무궁무진하고.”
“내 생각엔 이번 이벤트 패치랑 조만간 진행될 대규모 패치 때 또 오빤 또 엄청난 일을 해낼 것 같아.”
“나도 기대감을 갖고 있는 중이야. 서우가 초월 레벨이니 1층부터 아마 신화급 아이템 드롭 가능성이 있을 걸.”
“와, 100층까지 간다면 하나쯤은 확보할 수 있겠네.”
“그렇지. 거기다 포인트도 엄청나게 벌어들일 테니 장난 아니겠지. 하루에 한 번 도전 가능하다는 게 아쉽지만, 그것만으로도 서우에게 아주 유리하니까.”
“뭐, 그건 일단 패치가 돼 봐야지.”
“이제 몇 시간 안 남았잖아. 곧 알 수 있겠지.”
김소연은 확신했다, 이번 패치로 이서우의 입지가 더 굳건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이설아도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드디어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1주년 이벤트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