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
레벨이 갑이다
285화
이벤트 1시간 전, 이서우와 이설아는 접속 베드 앞에서 가볍게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빤 파티 사냥 때문에 걱정이겠어.”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고민 좀 했어.”
단순히 레벨로 난이도가 측정이 된다면 이서우에게는 필드 사냥보다 못하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월레벨에 맞춰 난이도가 설정되는것도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이서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몬스터를 상대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파티 사냥이 가능한 무한의 탑을 포기할 수도 없어 고민이 되었다.
“혹시 방법을 찾은 거야?”
“풀파티로는 안 되고, 2인 파티로 가야지.”
“2인 파티? 오빠랑 파티할 사람이 있긴 해?”
“있지.”
“아!”
“맞아, 정민후.”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있었네. 하이 레벨이라고 했었지?”
“하이 레벨이고, 600레벨을 코앞에 두고 있더라고. 그 정도면 가능은 해.”
“하지만 오빤 초월 레벨인데 괜찮을까?”
“초월 레벨이어도 레벨에 따라 결정이 될 테니 괜찮을 거야. 일반 레벨로 치면 900이상은 되어야겠지만 하이 레벨이면 600으로도 가능할 거야.”
“그러면 다행이지만…….”
이설아는 파티 던전인데도 이서우 혼자 힘겹게 사냥을 진행해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엄연히 파티로도 진행할 수 있는 걸 그저 바라만 봐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힘들지만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여겼다.
“넌 누나랑 같이 할 거지?”
“응. 종명 오빠랑 민수 오빠도 애인이랑 같이 참여할 거야.”
“커플들 속에 끼었네.”
“괜찮아. 언니, 오빠들이 잘 챙겨 주니 난 편해.”
“10인이나 20인 파티도 준비됐어?”
“응. 대충.”
5인 파티는 어떻게 구성될지 이서우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한데, 10인 이상은 어떻게 구성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길드 자체가 그리 고레벨 위주가 아니다 보니 600레벨인 이설아와 함께 파티를 할 사람이 한정적이었다.
“초대박 님이랑 하려고?”
“응. 가장 고레벨이잖아. 초대박 님과 몇몇 분들이 있어서 20인 파티까지는 괜찮을 것 같아.”
“다행이네. 20인 파티가 어떤지도 궁금했거든.”
“영상 잘 찍어 올게. 오빠도 영상, 알지?”
“알지. 지난번에 타난카 영상도 엄청 인기 끌었잖아.”
“그때 정말 대단했어. 통치자도 분명 강한 존재인데, 오빠 앞에서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 말 하니 생각나네. 영상보고 멋도 모르고 통치자 잡으러 가서 다 털린 파티.”
“호호호, 그때 진짜 웃겼어. ‘전장의 지배자 님 나빠요.’라며 올라온 글이 여기저기로 번졌으니까.”
“하하하. 맞아. 그때 정말 배꼽 잡았지. 호기롭게 가서 한 방에 쓸려 버린 영상은 압권이었다니까.”
최근 방송은 이설아와 이서우가 따로 영상을 저장했다. 함께 파티를 할 수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한데,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설아가 담을 수 있는 게 있고, 이서우만이 담을 수 있는 것도 있어 긍정적인 목소리가 많았던 것이다.
그중 가장 압권은 바로 이서우가 찍은 타난카와 다크가 한 편이 되어 이서우에게 맞서는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통치자인 타난카가 너무 쉽게 도망을 가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그때 한 유저가 자신도 통치자를 잡겠다며 파티를 꾸렸는데, 통치자를 만나자마자 전멸하고 말았다.
호기롭게 통치자를 만나 큰소리치는 장면이 5분이나 됐는데, 싸움이 시작되고 전멸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 웃긴 영상은 아니었는데, 한 화면에 화면을 분할해 이서우의 영상과 전멸한 파티의 영상을 같이 올리니 나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에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럼 슬슬 들어가 볼까?”
“응. 고고씽!”
이설아는 즐겁게 소리쳤고, 두 사람은 나란히 접속 베드에 누웠다.
곧 화면이 바뀌고 두 사람은 뉴 월드 세상에 들어왔다.
이서우의 저택이었는데, 밖을 보니 한산했다.
“벌써 다들 몰려갔나 보네. 우리도 갈까?”
“응.”
이서우는 저택 한 쪽에 있는 텔레포트 이동 마법진으로 갔다.
이벤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1주년 행사 며칠 전에 마법진이 생겼다.
보통 마을에 이동 마법진은 여러 곳에 있지만 사유지에는 두지 않았다. 한데, 조세프 백작의 특별 지시로 이서우의 저택에는 마법진이 설치되었다. 물론 이용 요금은 똑같이 지불해야 했다.
요금을 지불하고 무한의 탑이 생성될 도시로 향했다.
무한의 탑이 생성되는 곳은 황궁이 있는 수도였다. 수천만, 아니, 수억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수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이벤트 기간에만 그렇지 향후 주요 도시에 입구가 배치될 계획이었다.
한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하이 레벨 지역에는 당분간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이 레벨 지역으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면서 기존의 지역이 썰렁해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리라.
“와, 바글바글하네.”
이동 마법진 밖으로 나오자마자 온통 사람들로 붐볐다.
“오빠, 내일부터 바로 주요도시에 입구가 생성되겠는 걸?”
“그러게.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서야 입장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내말이. 아마 이벤트 성으로 수도로 설정한 거겠지?”
“그렇겠지. 매번 이렇게 박 터지게 몰려 있어야 한다면 불만만 커질 걸?”
“일단 언니에게 가 보자.”
이벤트 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 놔서 얼른 약속 장소로 갔다.
이곳에도 이서우의 땅이 있어 그의 개인 사유지로 향했다.
오직 이서우만을 위한 카페가 있었는데, 김소연과 초대박 등 길드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총 20인으로 개인용 무한의 탑이 아니라 파티용부터 갈 생각이었다.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포인트를 얻어 상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수가 입장하면 아무래도 실수로 전멸하지 않겠지만, 솔로 플레이는 그렇지 않았다. 작은 실수로도 도전이 끝나 버릴 수 있어 필요한 모든 아이템을 동원해야 했다.
장비 아이템은 기본이고, 소모품 아이템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순식간에 회복되는 물약이 얼마나 있냐에 따라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왔어?”
“응, 언니, 근데 사람 진짜 많더라.”
“엄청나지. 덕분에 내일은 주요 도시에서 입장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들 오히려 다행이라는 반응이야.”
“나도 오빠랑 오면서 그 말 했어. 이런 식이라면 불만만 많아진다고.”
“맞아. 유저들의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데, 텔레포트는 만들면서 이런 식으로 불편하게 하면 안 되지. 하지만 처음이니 다들 이해하는 분위기야.”
“응. 상징성이 있는 거니까.”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고, 어느 정도 이해는 하기에 큰 불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해는 한 번이면 족하다. 만약 내일도 이런 식이라면 사람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근데, 서우는 혼자서 해야 되지?”
“혼자서 주로 하겠지만 파티도 해 보려고.”
“파티를? 누구 죽일 일 있어?”
“민후와 하면 괜찮을 거야.”
“아,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있었네. 조율은 끝났고?”
“대충은. 일단 들어가 봐야 자세한 건 알 수 있으니까.”
“하긴, 초월 레벨과 하이 레벨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너희도 파티 먼저 하기로 했어?”
“아니. 우린 오히려 반대로 해야 돼. 어떤 수준인지 서로 비교를 해 봐야 파티로 하면 어느 정도 난이도가 될지 예상할 수 있으니까.”
“이래서 너무 강한 것도 안 좋다니까.”
김소연도 무던히 노력해 550레벨을 넘겼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1주년 이벤트 소식이 전해지고 사람들은 더 많은 경험치를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경험치 1퍼센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높아졌다. 각자의 레벨에 맞는 난이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턱대고 레벨을 높이지 않았다. 괜히 레벨만 높고 아이템을 맞추지 못하면 무한의 탑에 입장해서도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그럴 바에는 장비를 맞추기 위해 경험치를 팔고 영웅 이상의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이 더 낫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설 등급까지 착용하면 더 좋겠지만 부자가 아니라면 쉽지 않아 영웅 풀셋이 유행이었다.
신규 유저들도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게임을 진행했다. 각자의 레벨에 맞는 난이도가 설정되니 오히려 장비를 맞추면서 성장할 수 있어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민후 씨, 오셨네요.”
“네. 오랜만이네요.”
“어서 오세요.”
김소연과 이설아가 인사를 했고, 다른 길드원과도 가볍게 목례로 눈인사를 했다.
“장비가 좀 바뀐 것 같다?”
“오늘을 위해 창고를 좀 털었지.”
“거기 있는 거 내 거잖아.”
“땅만 준다고 했지 그 위에 세워진 걸 준다는 소린 안 했다.”
“빨리 철거하라고 시위라도 해야겠네.”
“퍽이나.”
이서우에게 그런 한가한 시간이 없다는 걸 알기에 정민후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정민후가 다스리던 땅은 이미 이서우에게 양도되었다. 약속을 한 것이기에 통치권을 고스란히 넘긴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남은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뉴 월드에서 다시 땅을 확보하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이서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1주년 이벤트에 참여하신 모든 뉴 월드 이용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부터 한 달간 이벤트가 진행되오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벤트가 끝나면 무한의 탑은 일시 폐쇄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재오픈은 대규모 업데이트와 함께 진행될 것입니다.
-10분 후 무한의 탑이 오픈됩니다.
-첫날이기에 수도에 계신 모든 분들이 그 자리에서 무료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용자가 많은 관계로 내일부터는 각 주요 도시에도 무한의 탑 입구가 생성되니 해당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시면 됩니다.
-뉴 월드와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 오늘은 무료네.”
“돈도 많으면서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
“돈은 네가 더 많잖아. 난 할아버지 돈이거든?”
“아, 너 레벨은 유지됐지만 인벤토리는 깔끔해졌지.”
“아픈 곳은 찌르지 마라. 그나마 창고에 이것저것 넣어 놔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거지 될 뻔했다. 근데, 너도 그랬어?”
“뭐가?”
“인벤토리.”
“난 클로즈 베타였으니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줄 알았지.”
이설아와 김소연 외에는 주변에 유저들이 없어 태연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기겁을 했을 내용이었다. 인벤토리에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지다니.
“아이템은 그렇다 치고, 골드가 문제다. 도둑놈이 워낙 많아 다 보관하고 있었는데, 쩝.”
정민후는 사라진 골드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아이템 팔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그렇긴 한데, 돈 되는 건 내가 다 입어 버려서.”
“그래도 개당 수천 골드 이상 하는 거 많잖아. 그거도 없는 사람들 천지다.”
“잔소리는. 여튼, 갔다 와서 보자.”
“난 100층까지 한 번에 클리어할 생각인데?”
“퍽이나. 그 정도로 허술하게 만들 것 같았으면 꺼내 놓기나 했을까.”
“그건 두고보면 알겠지.”
“자신 있었으면 내기를 하자고 했겠지.”
“내기는 한 번 다녀온 뒤에 하자고.”
“됐거든.”
정민후는 이서우와 내기를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이서우가 질 내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느새 10분이 훌쩍 지나갔다.
-지금부터 무한의 탑이 오픈됩니다. 각자의 레벨에 맞게 설정이 되는 곳인 만큼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지니 행운을 꼭 잡아 보세요.
친절한 멘트와 함께 사람들은 무한의 탑으로 입장했다.
이서우는 하나둘씩 사라지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이설아와 몇 마디를 나누고는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