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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287화 (287/341)

# 287

레벨이 갑이다

287화

“아아아아악!”

“에효.”

비슷한 대전 상대가 나타나기는 했는데, 문제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상대라는 것이다.

상대도 이서우를 알기에 비명을 질렀고, 이서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차라리 잘됐네. 보정도 됐겠다 한판 붙어 보자.”

“야, 이 형님 몸도 안 성한데 그러고 싶냐. 그냥 패배를 시인하고 가라.”

“나 지금 10연승 중인데?”

“뭐? 10연승?”

“그래.”

“근데, 넌 왜 사냥용으로 안 가고 여기 있어?”

“그러는 넌?”

“나? 나야 그냥 메시지가 들려서 호기심에 일루 왔지. 더럽게 궁금하게 하더라고. 설마 너도?”

“사냥용은 너무 심심할 것 같아서 여기부터 온 거지. 여튼, 내가 먼저 갈게.”

“야! 자, 잠깐!”

양손을 앞으로 번쩍 내미는 사람은 바로 정민후였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 알지?”

“안다, 알아. 그래도 이런 대결에서는 잠시 시간을 줘야지.”

“이미 여유 시간 주고 시작하는데 무슨 시간 타령이야?”

“깐깐하기는. 1분이면 된다.”

“그래. 뭐, 그 정도야.”

1분 정도 시간을 준다고 승부에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이서우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됐다. 시작하자.”

“1분 전이랑 달라진 것도 없네.”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마음의 준비를.”

“보정이 됐다니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지. 갑자기 힘이 세졌으니 몸을 잘 살펴봐야 할 거 아냐. 네가 갑자기 힘이 줄어든다고 생각해 봐라. 지금 쓰던 방식으로 싸움이 되나.”

“싸워보면서 확인해야지 가만히 서서 1분 만에 적응이 가능해?”

“그게 고수와 하수의 차이지.”

“그 차이가 어떤지 한번 경험해 볼까나.”

여기서 정민후가 말한 하수는 분명 이서우를 뜻하는 것일 터.

자존심이 상한 이서우는 대검을 뽑아 들고 곧바로 마나를 각 장기를 비롯해 온몸으로 보냈다.

마나 심장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공격은 정민후가 먼저였다.

갑자기 정민후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내 펑 하는 소리가 강렬하게 들렸다.

이서우의 대검과 정민후의 주먹이 맞닿으며 폭발음이 발생한 것이었다.

주먹과 신화 등급, 그것도 성장형으로 단 하나밖에 없는 대검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굉음이었다.

씨익.

정민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꽤 쓸 만한데? 너 생각보다 더 강했구나.”

“이제야 이서우 님의 위대함을 알겠어?”

“그래. 그동안 무시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네 힘에 네가 먹히는 날이 될 거다. 오늘은 말이야.”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정민후가 사라졌다.

이서우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대검을 사선으로 베었다.

펑!

다시 들리는 굉음.

정민후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힘에 내가 먹힌다고? 아니지. 내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똑똑히 알게 되는 날이 될 거야.”

‘초월 가속 최대로!’

이서우는 그동안 쓸 일이 별로 없었던 초월 가속을 20배까지 끌어올렸다.

하이 레벨 상태에서 20배와 초월 레벨 상태에서의 20배는 완전히 다르다.

똑같이 2배 강해진 것이지만 1톤을 들 수 있는 힘에서 2톤을 드는 것과 10톤을 들 수 있는 힘에서 20톤을 드는 건 완전히 다르다.

이서우가 그랬다.

하이 레벨 상태에서 초월 가속이 20배로 빨라진 것과 초월 레벨에서 초월 가속이 20배로 빨리진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서우의 몸이 갑자기 사라졌다.

정민후는 눈이 아니라 이서우의 기운을 느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극강의 빠름은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남긴다고 할지라도 0.01초 이하의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이 되어버리기에 감각이 따라가지 못했다.

그나마 정민후가 이서우를 쫓을 수 있던 이유는 보정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큭!”

“보정발이 역시 좋긴 좋네.”

“이게 무슨 그래픽 효과인줄 아냐. 좀 살살해라. 아무리 보정발이라도 버티기 힘들다.”

“그럴수록 몰아쳐라라는 격언이 있지.”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했는데?”

“내가.”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다시 초월 가속을 극한까지 사용했다.

확실히 보정이 되었다지만 초월 레벨과 하이 레벨의 차이는 컸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이미 정민후의 뼈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또다시 사라지고 잠시 후, 퍽 하는 소리가 났다.

“크윽!”

고통에 찬 표정을 보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정민후는 참았다. 아니, 오히려 눈빛을 반짝였다.

승기를 잡은 이서우는 정민후의 그 눈빛을 보지 못했다.

초월 가속의 힘에 취해 마나를 잔뜩 실어 계속 시전했다.

원래 가진 힘도 강한데, 속도까지 더해지니 정민후는 죽을 맛이었다. 그렇다가 깔끔하게 피할 수도 없어서 차라리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방어를 선택했다.

권투에서도 가드를 뚫고 들어오는 공격이 무섭듯 방어를 뚫고 들어오는 이서우의 공격에 정민후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승패가 결정이 나려고 할 때다. 이제 한두 번만 공격이 들어가면 정민후의 패배가 확실시 되었다.

그러나 그때, 정민후의 눈빛이 다시 반짝였다.

“마나여, 적을 속박하라!”

“……?”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펴며 주먹을 번쩍 들어 올리자 이서우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서우는 초월 가속을 펼쳤다.

“컥!”

초월 가속을 펼치자마자 이서우는 온몸이 끊어질 듯 한 통증을 느끼고 곧바로 시전을 멈추었다.

“크크크, 걸려들었구나!”

“이건…….”

이서우는 그제야 보았다. 공간에 들어찬 빼곡한 마나 실을.

“지금까지 사용하던 그 기술, 이제는 사용하지 못할 거야. 내가 말했잖아. 네 힘에 네가 먹히는 날이 될 거라고. 속도가 빠를수록 대미지는 클 거야.”

“그런 의미였냐?”

“그래. 원래 내가 가진 힘이었다면 이 기술을 이렇게 강력하게 펼칠 수 없었는데, 보정발이 역시 좋긴 좋네. 아마 대전에서는 앞으로 너랑 만나기를 학수고대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겠는걸?”

“상대가 없어서 심심했는데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한데 한 가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

“천하의 전장의 지배자가 허세라…….”

“허세인지 아닌지는 곧 알게 되겠지.”

“참고로 마나 실은 안 끊어져. 끊어져도 다시 생성되고. 네가 무슨 공격을 하든 마나 실이 막아 낼 거야. 얘들이 뭉치면 충격을 다 흡수해 버리거든.”

“그래?”

이서우는 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대검에서 익숙한 기운이 맺혔다.

“하이 레벨 때도 꽤 강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 한 번 받아봐. 마나작렬탄!”

엄청난 고열을 동반한 마나작렬탄이 정민후를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마나실이 마나작렬탄이 날아오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가는 실들이 뭉치니 마나작렬탄과 만나 타닥타닥 하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마나작렬탄의 힘은 강했다. 하이 레벨 때도 엄청났지만 초월레벨이 되니 마치 모든 것을 삼킬 듯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보정이 이뤄졌다는 게 문제였다. 이서우의 마나작렬탄은 정민후의 1미터 앞에서 소멸되고 말았다.

“크크크. 봤지? 넌 어떤 공격도……?”

정민후는 갑자기 이서우의 모습이 사라지자 당황했다. 마나 실이 있어 움직일 수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답은 금세 나왔다.

서걱!

“컥! 어, 어떻게…….”

“내 기술이 하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마나작렬탄이 길을 내줘서 쉽게 이동할 수 있었어.”

“하지만 곧장 마나 실이 타들어 간 곳을 메웠을 텐데?”

“순간 이동 기술이 이럴 때 참 좋더라고. 빈틈을 노리고 수십 번에 걸쳐 순간 이동을 펼쳤거든.”

“…….”

그게 가능하냐는 눈빛으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서우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럼 이만 끝내자고.”

푹!

이서우의 대검이 정민후의 심장에 박혔다.

-대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1,000 무한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최초로 11연승에 도달했습니다.

-연승으로 3만 무한 포인트가 추가 지급됩니다.

-최초 기록 보너스 1만 무한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최초 기록 보너스 혜택으로 스페셜 타이틀이 주어집니다. 자세한 내용은 ‘상세 설명’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최초 기록 보너스만 벌써 10만이네. 연승 보너스는 엄청나고. 이대로 쭉 100연승까지 하면 못 살 게 없겠는데?”

이서우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열두 번째 대상과의 대결에서는 이서우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 * *

“헐! 괴물인 건 알았지만 11연승이라니. 이런, 미친.”

“대표님, 어떻게 할까요?”

“공들여서 만들어 놨는데 한 사람 때문에 엉망이 되는 꼴은 못 보지.”

“하지만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실력자가 없어?”

“사냥용이면 절대자라도 내보내서 어떻게 막아 보겠는데, 저긴 대전용입니다.”

“대부분 사냥용을 먼저 가는데, 왜 쟤는 하필 대전용부터 먼저 가서 이렇게 사람 머리 아프게 만드냐고. 무한의 탑 오픈한 지 얼마나 지났지?”

“이제 겨우 12시간 지났습니다. 그것도 뉴 월드 시간으로요.”

“…….”

대전은 1시간에 한 번씩 치러지니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현실로 보면 이제 겨우 2시간이 지난 것이다.

한데, 이서우는 벌써 11연승을 기록했다.

“다른 유저들은 좀 어때?”

“가장 많은 연승을 한 유저가 고작 3연승입니다. 앞으로도 3연승 이상은 힘들 거고요.”

“도전 실패한 곳부터 도전하는 방식이랑 처음부터 다시 도전하는 방식이 있지?”

“네.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도전을 하면 승리 포인트를 더 챙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에 완료한 층에서 도전하면 아무래도 난이도가 높아 1천 점의 승리 포인트를 취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더 높은 층을 공략하면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10분도 걸리지 않는 층에서 50분 동안 무료하게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포인트를 쌓기 위해서였다.

무한 포인트 상점에서 어떤 아이템이 판매되는지 눈으로 본 유저라면 더더욱 처음부터 공략하는 것을 고집했다.

대전용 무한 포인트 상점은 주로 유저 간 대결에 유리한 아이템이 판매되었다.

유저 간 대결에서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하는 소모품들이 널려 있었다.

또한 스킬을 일시적으로 강화시켜 주는 것도 있었고, 다양한 직업의 기술들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과 기술을 약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도 존재했다.

그야말로 대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판매하는 상점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저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단연 장비 아이템이었다.

지금은 전설 등급의 장비밖에 없지만 업데이트를 통해 신화 등급까지 나온다는 것을 알기에 부지런히 포인트를 모으려고 난리였다.

무기의 가격만 100만 포인트에 육박하지만 대전이 익숙해지면 2개월이면 살 수 있기에 유저들이 더 매달리는 것이었다.

“하루 도전할 수 있는 제한은?”

“그게 설마 이런 일이 발생할 줄 몰라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쾅!

“그런 안전장치는 미리 마련했었어야지. 지금 할 수는 없나?”

“지금 당장은 힘듭니다.”

“그럼 언제 돼?”

“그게 지금 진행 중인 대전이 끝나야…….”

“휴우, 결국 20승 이상은 줘야 한다는 거잖아.”

“하지만 하루에 횟수 제한을 걸면 반발을 사지 않을까요?”

“한 번 입장으로 10층까지 도전할 수 있게 하면 돼. 고작 3층 정도 올라가는 게 전부니 크게 반발하지는 않을 거야.”

“그건 그렇지만…….”

10회밖에 도전할 수 없는 것과 10회도 도전 못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10회 이상 도전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내가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그 기회가 막히게 되면 반발하게 된다. 비록 자신이 10회 이상은 도전을 못하더라도 말이다.

김승조는 그걸 말하고 싶었지만 안재훈이 워낙 흥분한 상태여서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 방법 말고는 없고?”

“있기는 합니다. 지금 서우군의 상태라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는데…….”

“뭐가 문제야?”

“서우 군이 찾아와서 따질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규칙을 바꾸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규칙이 있다는 건 이미 언급을 했지만 확정적으로 못 박은 건 아니니까요.”

“그럼 별문제 없잖아.”

“원론적으로 하면 그렇긴 하죠.”

“와서 따져도 괜찮으니 일단 시행해.”

“업데이트 홍보로 서우 군과 계약을 못할지도 모릅니다.”

“납득하게 설명하면 되지. 그런 조치도 없이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하려 했어?”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그럼 일단 시행부터 하고, 대책 방안을 만들어 봐.”

“네, 대표님.”

더러워도 까라면 까야 하는 게 김승조의 위치다.

완전히 불가능한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기에 고개를 숙이고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잘 활용하면 참 좋은 인재인데, 이럴 때는 참 대책이 없다니까.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초월 레벨에 도달했을까. 하이 레벨만 해도 이전 개발자가 꼭꼭 숨겨 둔 거라던데. 하여튼 특이한 인간이라니까.”

안재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온라인에 접속해 1주년 행사 반응을 살폈다.

커뮤니티, 각종 뉴스 매체, 게임 방송, 개인 방송 할 것 없이 반응이 뜨겁자 언제 이서우의 문제로 고민했냐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서우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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