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
레벨이 갑이다
290화
“언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지금 팀 전체가 달라붙어서 알아보는 중이야.”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집단적으로 오빠를 까는 건 더 의심스러워.”
“일단 테라칸이라는 자가 시발점이 된 건 확실해. 그리고 그자가 나타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사에서 유출 사고가 났단 말이야. 별로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찝찝해.”
“그렇지 않아도 나도 그것 때문에 언니를 찾은 거야.”
이설아와 김소연은 온라인 공간이 이서우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르자 그와 관련된 일들을 알아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서우에게 직접 전달하고 싶었는데, 대전 상황에서는 귓말이나 모든 채팅이 금지되어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대전에 집중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었는데, 혹시라도 채팅 기능을 끄지 않고 시작하는 유저가 피해를 볼 것을 염려해서 취한 조치였다.
한데, 이서우처럼 이렇게 오랜 시간을 대전에 머물러 있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김소연과 이설아가 왜 채팅 기능을 안 풀어 주냐고 문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채팅 기능만 돼도 덜 답답할 텐데. 하긴, 오빠가 우리보다 더 답답할지도 몰라.”
“아마 서우도 답답할 거야. 연승이 계속 되고 있으니 나오지도 못할 테고.”
“하긴, 연승이 많을수록 보상이 더 좋으니 쉽게 나올 수는 없을 거야. 1시간에 한 판이 아니라 승리 후 바로 대전이 진행되면 좋은데.”
“지금 서우 때문에 한 시간이 아니라 2시간이나 3시간에 한 판을 치를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
“글로벌사도 참 웃기네. 오빠의 능력이 이 정도라는 걸 몰랐던 건가?”
“몰랐겠지. 그들도 개인 정보는 볼 수 없으니까. 아마 서우의 능력치를 봤다면 제대로 대처를 했겠지만, 누구도 수치로 본 적은 없거든. 그냥 서우가 싸우는 것만 봤지.”
“싸우는 것만 봐도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혼자서 드래곤도 쌈 싸 먹는데, 그걸 예상 못 했다는 게 진짜 납득이 안 돼. 박 대표님은 뭐라고 하셔?”
이설아는 글로벌사의 대처가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숨겨진 보너스 보상이 누출되어 서우가 곤란을 겪는 것도 불만이었고, 보정 기능을 제대로 만들지 않은 건 더 큰 불만이었다.
더 화가 나는 건 이런 상황인데도 자신이 이서우를 도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는데, 마땅한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박 대표였다.
“접촉은 하고 있는데, 뾰족한 방법은 없나 보더라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정 회장님을 만나러 가셨어.”
“정 회장님을?”
“정 회장님이 글로벌사 대주주 중 한 분이시잖아. 글로벌사가 힘들 때 정 회장님이 5대 기업들을 설득해서 투자금을 유치했고. 정 회장님에게 대부분 은혜를 입은 분들이어서 8퍼센트 정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그러고 보니 서우도 꽤 사들였지?”
“응. 5퍼센트가 조금 넘을걸?”
“와, 많네. 근데, 그런 대주주를 곤란하게 하다니. 이번 1주년 행사 괜히 하자고 한 것 같아.”
“그러게. 그거 아니라도 돈 벌 구멍은 많은데, 괜히 하자고 했나 봐.”
이서우의 연승을 글로벌사가 막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니 이설아는 글로벌사가 더 싫어졌다.
“뭐, 앞으로 글로벌사와 관련된 행사는 모두 거절하면 돼. 안 그래?”
“그건 그래.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인식시켜줘야지. 오빠가 어떤 존재인지.”
이설아의 눈빛에서 독기가 언 듯 보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지금 이설아의 상태가 그랬다.
“그것도 걱정이지만 온라인상에서 서우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나도는 것도 조금 걱정이 돼.”
“그건 괜찮을 거야. 지난번에 한 번 그런 경험이 있어서 조만간 논란은 꺼질 거야.”
“넌 그 영상이 조작된 거라 보는 구나?”
“당연하지. 오빠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스타일이긴 해도 그 정도로 사람을 짓밟지는 않아.”
“완전히 빠졌네.”
“언니도, 참. 언니야말로 종명 오빠라면 껌뻑 죽던데?”
“임자 만난 거지. 보면 볼수록 진국이더라고.”
“유진 언니도 똑같은 소리 하던데. 민수 오빠가 진국이라고.”
“유유상종이라잖아.”
김소연의 칭찬에 이설아는 방긋 웃어 보였다.
자기 연인을 칭찬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그나저나 현실 시간은 그리 많이 안 지났는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정신이 다 없네. 그치 언니?”
“그러게 말이다. 글로벌사에서 유출된 정보의 경로라도 파악해서 빅엿을 먹여야 하는 데 말이야.”
“아마 어렵겠지?”
“쉽지는 않지. 글로벌사가 그만큼 대기업이 됐으니까. 최단 기간 국내 최대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저력을 지닌 곳이잖아.”
“거기에 오빠도 한몫했는데.”
“너도 한몫했지.”
“헤헤, 그런가.”
이설아는 이서우와 함께 게임하면서 방송을 진행하던 때가 떠올랐다.
김소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넌지시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서우 따라다니면서 망보고, 미끼 하고 그랬는데.”
“호호호. 언니, 미끼라니. 보조 역할이지, 보조 역할.”
“그게 미끼지, 뭐. 여튼, 그땐 말도 안 되는 일이 과연 될까 싶다가도 서우가 나서면 다 처리됐었지.”
“맞아.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오빠가 손을 대면 다 됐어. 홀로 전쟁도 막아 냈으니 말 다했지. 추억 돋네.”
“그러게. 언제 또 망 보고, 미끼 역할을 하는 날이 오겠지?”
“미끼 아니라니까 그러네.”
“알았다. 보조 역할. 됐지?”
“응!”
최근에는 이서우와 함께 파티할 여건이 되지 못해 각자 따로 활동했다.
좋은 동료들이 있어 불만은 없었지만, 이서우와 함께 다닐 때처럼 화려함은 없었다.
무난하게 게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가끔은 화끈하게 일을 저질러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두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 * *
-대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1,000 무한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최초로 70연승에 도달했습니다.
-연승으로 50만 무한 포인트가 추가 지급됩니다.
-최초 기록 보너스 1만 무한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최초 기록 보너스 혜택으로 스페셜 타이틀이 주어집니다. 자세한 내용은 ‘상세 설명’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휴우, 이제 30승 남았네. 진이 다 빠진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그동안 몰랐던 걸 제대로 알았어. 세포 단위로 마나를 충만하게 쌓는 일, 꼭 하늘의 도시로 갈 필요가 없을 지도 몰라.”
이서우는 온몸 곳곳에 마나를 열심히 주입하며 육체의 힘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기존에는 초월 레벨을 믿고 초월 가속과 새롭게 익힌 기술에만 의존했다.
기술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마나 심장을 100퍼센트 활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운 보정이 이뤄진 이후로는 어떻게든 마나 심장을 이용해 최대한 능력을 끄집어내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마나 심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수 있었다.
“단순히 마나를 장기들로 보내는 게 아니라 충만하게 채운 뒤에서 부지런히 명령을 내려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해. 과연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심장에 마나를 충만히 한 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마나를 움직이도록 했다. 처음에는 많이 놀랐지만 심장이 버텨내는 것을 보며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효과는 탁월했다. 마나를 단순히 심장으로 가득 보낼 때보다 2배 이상의 능력을 낼 수 있었다.
“주인님, 다음 대전자를 찾아볼까요?”
“그래. 서둘러 줘.”
“3시간에 한 번밖에 진행이 되지 않아 바로 시작은 되지 않습니다.”
“뭐? 3시간에 한 번?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까지 길지 않았잖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님.”
“네가 한 말이야, 들어 봐.”
이서우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녹음된 영상을 들려주었다.
“주인님. 그건 69연승까지 그런 것이고, 70연승 이후로는 3시간에 한 번씩 대전이 진행됩니다. 그만큼 강자가 되셨으니 조금 더 여유를 가지라는 뜻이죠. 지금까지는 주인님을 곤란하게 만들 대전 상대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젠 다릅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셔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 승리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알았으니 대전 상대부터 찾아 줘.”
“네, 주인님.”
이서우는 더 이상 이야기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도우미를 보냈다.
“이것들이 진짜 아주 더럽게 나오네. 안 대표 그렇게 안 봤는데 이렇게 지저분한 수를 쓰다니.”
분명 대전은 1시간에 한 번씩 치러진다고 알고 있었다. 2시간도 짜증이 났는데, 갑자기 3시간 간격이라니.
이렇게 되면 총 90시간을 더 머물러야 한다. 현실로 따지면 하루가 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피곤이 누적되어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설마, 다시 접속 시간 제한을 하지는 않겠지?’
계속된 방해에 이서우는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다. 지금까지 이서우에게 가해진 불리함은 혼자만 감당하면 되는 것이지만 접속 시간 제한은 15억 명이 불편을 겪는 것이어서 글로벌사로서도 섣불리 되돌리지 못한다.
한 번 편리함을 맛본 사람은 다시 불편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스마트 워치,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 드론 자동차, 초음속 여객기, 하이퍼루프 이동수단 등 수많은 편리함이 인간의 삶에 녹아들었다.
다시 과거처럼 출퇴근 시간에 꽉 막힌 도로에 머무르는 일, 콩나물시루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지하철을 타야 하는 일을 감당할 사람은 없었다.
뉴 월드를 즐기는 사람들도 이제 풀 접속에 익숙해졌다. 그 때문에 특수 제작된 접속 베드가 불티나게 팔렸다.
수천만 원이나 하는 접속 베드를 사고, 골드까지 사서 장비를 마련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이서우 한 사람을 막고자 15억 명의 원성을 사는 건 하책 중의 하책이었다.
‘그래도 여기 와서 진짜 열심히 제작하네. 나가면 바로 팔아치워야겠어.’
이제는 제작 속도도 오르고, 정신력, 지력 등 모든 스텟을 다 영약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근력, 체력, 민첩력을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지만 정신력이나 지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마법사들은 지력과 정신력 모두를 신경 써야 했는데, 마땅히 올릴 방법이 없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만약 이서우가 스텟 증가 영약을 내놓는다면 엄청난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력과 정신력은 동시에 만들어진단 말이지. 속도도 거의 2배나 빨라졌으니 왕창 풀어서 글로벌사에게 빅 엿 좀 먹여야겠어.’
이서우는 이번 일로 글로벌사에게서 완전히 돌아섰다. 지금까지는 안대표를 좋게 봤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뉴 월드를 하면서 이서우가 자주 되뇌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 즐겨 하는 말이 있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아니, 이자까지 확실히 쳐서 준다. 기대하라고.”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며 이서우는 제조에 매진했다.
오랜만에 캐릭터 창을 보며 꼼꼼하게 살폈다.
초월레벨이 됐을 때는 대충 보고 흘린 부분도 면밀히 살폈다.
“아, 그러고 보니 영약 제조에 영혼 부여를 안 했네. 초월레벨이 된 게 너무 기뻐서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서우는 얼른 제조를 마무리 하고 영약 제조에 영혼 부여를 했다.
-스텟 증가 영약 제조에 영혼이 부여됩니다.
-영혼 부여된 스텟 증가 영약은 기존의 영약보다 더 뛰어난 효과를 발휘합니다.
-영혼 부여된 스텟 증가 영약을 복용하더라도 스텟은 1이 증가하지만 스텟 증가로 인한 능력치 상승 폭은 최대 2배까지 늘어납니다.
“헉! 대박. 이런 효과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동안 그냥 만들었으니.”
이서우는 완성된 영약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2배나 비싸게 팔 수 있었으니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이서우는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제조에 매진했다.
제조를 하면서 시간이 되면 대전을 치르고, 승리 이후에는 오직 제조에만 전념했다.
대전이 끝나면 초월 레벨 특성은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초월 가속을 이용해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의 영약을 제조할 수 있었다.
연승을 하면서 얻은 점수로 이서우는 드디어 대전용 전설 장비 풀셋을 맞출 수 있었다.
보정된 상태지만 세트 효과까지 받으니 압도적인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서우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80연승 이후가 되자 다음 대전까지는 5시간이 소요 되었고, 90연승 이후로는 10시간으로 늘어났다.
아무도 10연승을 한 사람이 없기에 이런 페널티를 받은 사람은 오직 이서우뿐이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승리를 거머쥐어 드디어 99연승에 도달했다.
이제 1승만 하면 100층까지 도달할 뿐 아니라 이곳에서 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