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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291화 (291/341)

# 291

레벨이 갑이다

291화

쾅!

“10시간에 한 번 전투를 치를 수 있게 했는데도 안 나갔단 말이야?”

“네. 더 악착같이 대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승부도 10분 안에 끝나는데 대체 뭘 하는데 10시간씩 지루하게 버티고 있지? 잠깐이라도 나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나?”

“그게 저도 잘…….”

현실로 치면 이서우는 거의 이틀 가까이를 뉴 월드에 접속하고 있었다.

이설아는 걱정이 되어 뉴 월드에 접속하지 않고 곁에서 그를 지켰다.

다행히 이서우의 육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상이 있다면 자동으로 강제 종료가 되기 때문에 안심은 되었다.

하지만 먹고, 마시지도 않고 이틀 가까이 접속 베드에만 누워 있으니 답답했다.

특수 접속 베드여서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이틀이 지나면 자동으로 수분을 보충하게 된다. 그리고 3일이 지나면 몸에 이상이 없어도 가족이나 등록된 사람에게 연락이 간다.

그래도 접속을 종료하지 않고 4일이 지나면 119에 자동으로 신고가 들어가서 강제적으로 다운을 시킨다.

“먹고 마시지도 않는데 이틀이나 버티다니, 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있었다더니 체력이 운동선수보다 더 좋잖아. 강제 종료는 안 돼?”

“그게,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서우 군이 나와야 손이라도 댈 수 있는데…….”

무리하면서 시간을 연장한 이유는 바로 강제적으로라도 종료를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이서우가 저장을 해 두고 나가면 그때는 데이터 기록에 약간이지만 손을 댈 수 있었다.

물론 뉴 월드 인공지능은 관리자의 개입을 막기 위해 보안이 철저히 되어 있었지만 어디에나 편법은 존재한다. 직접적으로 데이터를 건드리는 게 아니라 우회를 하면 연승 기록에 흠집을 낼 수 있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서우가 100층에 도달해 클리어를 하게 되면 뉴 월드 수명이 1년은 단축되고 만다.

1년이 단축되면 손해가 엄청나다.

계정비만 해도 연간 매출이 150조 이상이고, 접속 방을 통해 들어오는 사용료까지 포함하면 연간 매출이 200조가 훨씬 넘는다.

어디 그뿐인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골드 거래가 활발할 텐데, 거기서 들어오는 수수료도 만만치 않았다.

주 수입원은 경매장과 거래중개소다. 극히 일부분의 수수료만 가져가지만 그것만으로도 수익이 엄청나다.

운영이 소모되는 비용을 제외하면 수익이 확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도 1년이면 매출이 50조 이상이다.

그러니 안재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데, 그것도 이제는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앞으로 현실에서 1시간 30분 후면 마지막 100층에 도전하게 되니 말이다.

“이설아나, 다른 동료들은 그에게 메시지도 안 보내?”

“네. 그게 누구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특수 접속 베드의 안전장치를 믿는 것 같습니다.”

“젠장. 그냥 접속 제한을 그대로 두는 건데.”

“…….“

김승조는 ‘제가 그냥 두자고 했잖습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렀다. 괜히 화가 난 안재훈에게 그 말을 꺼냈다가 핀잔만 들을 게 뻔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거야?”

“네. 지금으로서는 강제 종료를 하는 방법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접속 제한도 어차피 강제 종료에 해당하니까요.”

“그걸 누가 몰라?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는 거잖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대표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새끼가 이제는 말대꾸까지 하네.”

어찌나 답답했는지 김승조도 살짝 짜증이 섞인 말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런 답답함이 화가 난 안재훈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정강이뼈가 시큰거렸다.

‘제길. 그만두든지 해야지. 내가 무슨 동네북이냐고!’

정강이뼈를 어루만지면 인상을 잔뜩 썼지만 그렇다고 당장 사표를 내고 나갈 수도 없었다.

연봉만 10억 이상을 받는 그다. 어디 가서 이런 직업을 구한단 말인가.

“아, 그 방법이 있었지!”

“네?”

“전설의 해커.”

“전설의 해커라뇨?”

“지난번 이서우와 이설아를 곤란하게 했던 사건 기억 안 나?”

“저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신이 해커를 고용해서 두 사람의 뒤를 캔 적이 있었어. 그 때문에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연인이라는 사실을 발표했지.”

“아, 그 사건 말이군요! 한데, 왜 그 일을…….”

“그 해커를 이용하자는 거야.”

“네? 해커를 어떻게 이용한다는 말씀이신지…….”

“멍청한 놈. 접속 베드를 해킹해서 강제 종료를 하면 되잖아!”

“아!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는데요?”

“설마 그 여자가 이곳에 와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네? 다, 당연히 아니죠.”

사실 김승조는 이곳에 와야 하는데 1시간 30분 만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안재훈에게 말할 수는 없는 일. 괜히 말했다가 멍청하다는 말만 재차 들을 게 뻔했다.

“국내 해커에게 연락을 해서 그녀와 접촉해 봐. 1시간이면 충분할 거야. 그 정도 능력자라면 30분이면 강제 접속까지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게 발각되면 우린 끝장입니다.”

“그런 흔적을 남길 것 같았으면 전설의 해커라는 이름이 붙었겠어?”

“그건 그렇지만…….”

해킹은 범죄다. 아무리 회사에 매인 몸이지만 범죄에 가담하는 것은 꺼려졌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가 일을 하지 않으면 그의 가족의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

김승조는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대가족의 일원이었는데, 생활비를 그가 모두 책임지고 있어 반드시 일을 해야만 했다.

“빨리 안 하고 뭐 해?”

“네? 아, 알겠습니다.”

내친걸음이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없기에 김승조는 그의 지시를 따랐다.

“하여튼 일일이 말을 해 줘야 안 다니까.”

안재훈은 헐레벌떡 뛰어나가는 김승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김승조가 사라지고 나자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는 독백처럼 말했다.

“서우 군, 날 너무 원망하지 마. 지금 100층이 무너지면 그곳이 열리고 말아. 물론 문을 확실히 열기 위해서는 하나의 관문이 더 남아 있지만 위험부담을 안고 갈 수는 없어서 말이야.”

안재훈은 불안요소를 안고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기업의 대표가 그것을 좋아할까.

“2주년 때나 사람들에게 밝혀져야 하는 거니 어쩔 수가 없어. 이해하라고.”

이미 이서우의 행동을 저지하기라도 한 듯 안재훈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 * *

“이제 한 판이면 되니 좀 참자.”

이서우는 침대까지 구매해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하지만 10시간을 기다리려니 너무 지루했다.

“제작이라도 있었으니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 뛰쳐나갔을 거야.”

갈수록 쉬는 시간이 늘어나니 짜증이 났지만 그나마 제작을 할 수 있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안재훈의 비겁한 행동에 지고 싶지 않아 더욱 오기로 대전에 임했다.

이서우는 누가 자신을 구속하려 들면 더욱 반항심이 생겨 절대로 자신을 굽히지 않았다.

전형적으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마지막이었다. 무려 260시간에 걸친 사투가 곧 종착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덕분에 영약은 진짜 엄청나게 쌓였네. 저번처럼 오프라인 경매를 할까? 일단 세금 문제도 있으니 주 변호사님과 상의나 해 봐야겠네.”

정당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편법이나 불법이 아니라면 아낄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 이서우의 판단이었다.

과거에는 골드를 현금으로 전환하는 데 꽤 많은 세금이 부과되었지만 중개업체가 생기면서 수수료만 조금 납부하면 되니 어떤 방법으로 현금화시켜도 세금 문제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서우가 거래하는 골드 규모가 워낙 커서 1퍼센트만 절약해도 금액이 엄청났다.

이서우도 그것을 잘 알기에 웬만하면 주선용과 의견을 나누고 결정하는 편이었다.

“그나저나 설아가 걱정하겠는데?”

가족들은 이서우의 삶을 존중하기에 최근 들어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편은 아니다.

이서우도 부모님이 각자의 삶을 살기를 바라기에 여행을 자주 가시라고 전용기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 이서우가 뉴 월드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잘 알지 못했다.

하나, 이설아는 달랐다. 무한의 탑에서는 대화를 할 수 없지만 이서우는 그녀가 접속을 하지 않고 곁에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잠시 후면 마지막 대전을 치를 테니. 나가면 오빠가 맛있는 거 사 줄게.”

벌써부터 맛있는 걸 먹으며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이 상상되는지 기분이 좋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분.

조금 있으면 이서우는 100층에 도전하게 되는데, 마지막 도전도 성공적일 것이라 확신했다.

때마침 제조를 걸어놨던 것도 완성이 되었다.

“우미야, 매칭해줘.”

“네. 주인님. 대전 상대를 검색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100층 도전만 끝내면 당분간은 조금 쉬어야겠다. 도전은 나중에 받아도 되니까.’

이서우는 대전으로 재미를 톡톡히 봤기에 앞으로 자주 이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대전과 멀리할 생각이었다. 맛있는 것도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먹으면 질리는 법이다.

“뭐, 대전용이 아니라도 사냥용에서 놀면 되니까.”

100승의 고지가 보이지 않을 때는 대전에 집중한다고 사냥용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는 게 먼저여서 생각할 틈도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전투를 앞두고 있으니 사냥용이 어떤 곳인지 궁금증이 커졌다.

“사냥용 무한의 탑은 어떤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거 은근 기대되네.”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대전 상대가 매칭 되길 기다렸다.

“대전 상대를 찾았습니다. 1분 뒤 대전 상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전투에 필요한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좋았어! 이제 마지막이다. 한 방에 끝내자, 한 방에!”

이서우는 호기롭게 소리치며 대검을 꺼내들었다.

도우미와 침대가 사라지고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기다리던 마지막 대전 상대가 나타났다.

그 상대는 이서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 * *

홀로그램 공간에서 20대 중반의 여자와 40대 초반의 사내가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표정이 심각한 반면, 여자는 여유가 넘쳤다.

“이번 일만 해 주시면 막대한 돈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전 몸값이 조금 비싼데 말이죠.”

“얼마면 되겠습니까.”

“큰 거 한 장.”

“백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거 왜 이러시나. 글로벌사의 2인자께서.”

“이, 이인자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물론 빙다리 핫바지 같은 2인자시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2인자가 맞잖아요. 안 그래요?”

“뭐, 뭐요? 빙다리 핫바지라고요!”

40대 초반의 사내는 바로 김승조였고, 20대 중반의 여성은 안재훈이 찾으라고 한 전설의 해커였다.

김승조는 안재훈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이름도 모르는 20대 중반의 여자가 자신을 무시하자 언성이 절로 높아졌다.

“이 봐요. 나 필요하지 않아요? 내가 거절하면 당신은 안대표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닌가요? 그리고, 딸린 식구들을 생각하셔야죠. 3대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데, 일자리는 보존해야 되지 않겠어요?”

“…….”

김승조는 해커가 자신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있자 입을 꾹 닫았다.

냉정하게 보면 그녀의 말이 맞다. 어떻게든 지금은 그녀를 설득해 일을 성사시켜야 한다.

“1천억.”

“1처, 1천억이라고요?”

“그건 착수 비용이고, 일이 끝나면 다시 1천억을 보낸다면 생각해 볼 만도 하네요.”

“지금 2, 2천억을 달라는 말입니까?”

“안대표라면 아마 수락할 텐데 말이죠. 뭐, 전 상관없어요. 이대로 돌아가도.”

“아, 아닙니다. 좋습니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성공하셔야 합니다.”

“이것 참. 글로벌사의 2인자가 자신의 회사가 만든 뉴 월드를 해킹하라니.”

“뉴 월드를 해킹하라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서우의 접속 베드만 해킹해서 강제 종료를 시키면 됩니다.”

“강제 종료를 시키면 흔적이 남는다는 걸 알 텐데?”

“당신이라면 그 흔적조차도 지울 수 있지 않습니까.”

“뭐,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서 말이죠. 저에게 방법이 있으니 그쪽은 아바타로 내세울 유저나 한 명 물색하세요. 아니다. 당장 시간이 부족하구나. 이럴 게 아니라 김승조 씨가 접속해서 이서우와 대전을 펼치세요.”

“네에?”

“왜요? 싫으세요?”

“그건 아니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저에게 맡기면 돼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어쨌든 이서우가 패배하게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만…….”

“시간도 없는데 빨리 1천억부터 입금하세요. 입금이 안 되면 전 움직이지 않는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입금하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입금하고 바로 접속하세요.”

“……그러죠.”

김승조는 그녀의 말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안재훈에게 보고를 하니 바로 1천억을 쏘았다.

너무 쉽게 결정해서 천억을 날리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었지만, 어차피 자신의 돈이 아니니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리고 김승조는 접속 베드에 누워 뉴 월드의 세계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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