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
레벨이 갑이다
292화
“넌……?”
“오랜만이네요, 서우 씨.”
“당신이 어떻게…….”
“저도 뉴 월드 팬이랍니다. 모르셨어요?”
“네가 뉴 월드 팬이라고?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소리야?”
“어머, 너무 매정하셔라.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의 말을 믿지 않으시다뇨. 그러면 못 써요. 설아 씨가 설마 그렇게 가르치던가요?”
이서우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20대 중반의 여성 해커였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대에 이서우는 크게 당황했다.
지금은 거의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설마 날 노리고 온 거냐?”
“제가 왜 서우 씨를 노리겠어요? 아시잖아요. 전 서우 씨에게 원한이 없다는 거.”
“그럼 이번에도 전신인가?”
“이런. 안 본 사이에 서우 씨의 추리력이 많이 퇴보했네요. 뭐, 괜찮아요. 어차피 오늘은 저에게 죽어 주시면 되니까요.”
“웃기는군. 내가 너에게 패한다고?”
“당연하죠. 저를 이길 사람은 현재로서는 아무도 없답니다.”
“지금까지 들은 말 중에서 방금 한 말이 제일 웃겼어.”
“어머, 여자에게 그런 표정으로 말하면 못 써요. 그것도 아리따운 여성에게는 더더욱요!”
“됐고, 덤벼.”
“후회하실 텐데요?”
“후회는 네가 하게 될 거야.”
“뭐, 좋아요. 그럼 소원대로 한판해드리죠.”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격이 시작되었다. 한데, 이서우는 그녀가 움직였다는 사실도 느끼지 못했다.
퍽!
“큭!”
이서우가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생명력은 20퍼센트가 빠져나갔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머, 아주 살살 쳤는데 피통이 많이 빠졌나 보네요. 하지만 저도 의뢰를 받았으니 최선을 다해야 해서요. 이해해 주실 거죠?”
싱긋, 미소를 짓는 모습에 이서우는 더욱 화가 났다.
서둘러 물약을 복용하고 마나를 온 전신에 돌렸다. 이전처럼 단순히 마나를 장기와 근육 등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압축했다. 그러자 거대한 힘이 이서우의 몸을 휘감았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제가 서우씨를 상대하려고 꼼수를 좀 썼는데도 한 방에 보낼 수 없다니. 하지만 아직 시간은 있으니 천천히 즐기자고요.”
이번에는 이서우가 먼저 움직였다. 초월가속이나 가속화를 쓸 수는 없었지만 압축된 마나가 온 몸을 휘감은 것도 모자라 이서우가 일부러 충돌을 일으켰기에 막대한 힘이 발생했다.
그 힘으로 이서우는 가속화와 같은 속도를 만들어 냈다.
“어머, 여자의 가슴을 치려고 하다니 변태시군요. 변태에게는 주먹이 약이죠!”
퍽!
해커는 이서우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는 이서우의 가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젠장, 대체 어떻게 돼 먹은 거야? 분명 아이템도 허접하고, 레벨도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강하지?’
뒤로 쭉 밀려나면서도 이서우의 머릿속을 빠르게 회전했다.
마나 탄까지 꺼내서 써 봤지만 해커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방어도, 공격도 완벽했다.
생명력 물약의 재사용 시간이 따라가지 못해 생명력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10분만 지나도 이서우의 생명력을 바닥을 보이게 된다.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을.’
인상을 잔뜩 쓴 채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분명 답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서우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99연승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지루한 시간 싸움을 해가며 이룬 업적인데, 이대로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제가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건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날 아주 가지고 노는군. 반드시 후회하게 해 주지.”
“어머, 전 박력 있는 남자가 참 좋던데. 그러지 말고 저에게 오시는 게 어때요? 제가 잘해 드릴 수 있는데.”
“한 트럭을 갖다 줘도 그럴 일은 없어.”
“이거 실망이네요. 저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거절하시다니. 뭐, 저도 저 싫다는 남자는 싫어요. 하지만 제가 얻지 못하는 거면 남도 줄 수 없어요.”
“그게 무슨…….”
“서우 씨를 파괴하겠다는 거예요. 이곳에서, 정신을.”
“…….”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데, 보면 볼수록 서우 씨는 탐나는 남자예요.”
“남자에 환장을 했나 보군.”
“어머, 어쩜 그렇게 상처되는 말씀을 하세요. 전 지금까지 남자의 손을 타지 않은 처녀랍니다.”
“그 말을 하러 온 건 아닐 텐데?”
“이런, 잠깐 제 본분을 잊었네요. 그럼 먼저 서우 씨부터 완벽하게 제압해야겠네요. 그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고요.”
전신 때문에 해커를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지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겉은 멀쩡해도 어딘지 모르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해커라는 것을.
이서우는 대체 어떻게 이토록 힘의 차이가 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검을 움켜쥐고 온 힘을 끌어 모아 공격을 하려는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일단 대화를 하려고 하니 왜 이리 강해진 건지나 좀 알아보자.’
이서우는 끌어올렸던 힘을 빼고는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지금처럼 강해질 수 있는 거지?”
“어머, 저와는 말도 섞지 않을 것처럼 하시더니 알아내고 싶은 정보가 생기니 말을 거시네요. 뭐, 좋아요. 그 정도는 알려줘도 상관없으니까요. 간단해요. 전 뉴 월드 유저가 닿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답니다.”
“뭐? 뉴 월드 유저가 닿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
“네. 이를테면 전신을 기억하시겠죠? 전신의 만렙 버전이랄까요?”
“전신의 만렙 버전이라. 그렇군. 그렇게 된 거군.”
“어머, 안 놀라시네요.”
“전신의 만렙 버전이라면 놀랄 필요가 없거든.”
“대단한 자신감이시네요. 하지만 보정 효과는 저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반면, 서우 씨는 전판에 냈던 힘이 최대죠. 서우 씨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넌 최대의 힘을 가지고 있고, 난 기존의 힘을 잃고 99연승째 낸 힘만 가지고 있다는 거군.”
“정확해요. 역시 이해가 빠르시네요.”
이서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전신의 만렙 버전이라면 일반 레벨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하이 레벨을 넘어 초월 레벨을 경험한 존재다.
싸우다 보면 분명히 빈틈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확실히 서우 씨는 참으로 특이하신 분이세요. 전신의 만렙 버전이면 5차 전직 이후라는 건데, 그런데도 전혀 위축됨이 없으시네요.”
“뭐, 그 정도면 해 볼만 하달까. 이제 궁금증도 풀렸으니 한 판 붙어보자고.”
“바라던 바예요. 제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 드리죠.”
이번에는 해커가 먼저 움직였다.
이서우는 바짝 긴장한 채로 곧장 대검을 움켜쥐고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어디서 다가오더라도 반격을 취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크, 큰일 날 뻔했네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분이라니까요. 하지만 원거리 공격도 과연 버틸 수 있을까요?”
“……?”
해커는 분명 주먹을 사용했다. 한데, 원거리 공격이라니.
그때 이서우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마나 탄과 같은 공격이구나.’
이서우는 즉시 마나 보호막을 시전했다.
펑펑펑펑펑펑펑펑!
엄청난 폭발음에 대전 룸이 부서질 듯 크게 요동쳤다.
강력한 마나탄의 힘에 이서우는 뒤로 쭉쭉 밀려났다.
보호막을 씌웠음에도 생명력이 30퍼센트나 빠져나갔다.
재빨리 즉시 회복 물약을 복용했다.
재사용 시간은 1분.
하지만 1분 안에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쉽게 막아 낼 수 없을 거예요!”
해커가 양손을 둥근 공 모양을 그리듯 움직이자 거대한 구체가 형성되었다.
커다란 수박 정도 크기의 마나로 이루어진 구체였는데, 엄청난 힘을 담고 있었다.
이서우는 그 힘을 느끼고 대비를 하려 했지만 피할 수가 없는 공격이어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마나 보호막을 씌웠다.
“이거 하나라고 생각지 마세요.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볼까요?”
드럼통만큼이나 큰 마나 구체가 이서우에게 쏘아졌다.
펑!
“큭!”
이서우의 생명력이 30퍼센트나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구체를 다시 만들어 냈는지 또 하나가 이서우를 덮쳤다.
퍼엉!
더욱더 거센 굉음이 터져나왔다.
또다시 30퍼센트의 생명력이 사라졌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잘 가세요!”
더욱 강렬하고, 커다란 구체가 이서우를 향해 날아왔다.
절체정명의 순간!
이서우는 모든 마나를 보호막에 씌웠다.
하지만 기존의 구체보다 2배나 강해 보이는 것이어서 보호막으로 막는다고 해도 생명력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서우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99연승에서 어이없게 패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 * *
“언니!”
“진정해. 그 뒤로는 어떤 해커가 와도 막을 수 있도록 설계가 됐잖아. 그러니 안심해도 돼.”
“그건 알지만…….”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하지만 그녀라도 이곳은 못 뚫어.”
“그렇겠지?”
“그럼. 당연하지. 그러니 당황하지 말고 서우 곁을 잘 지켜.”
“언니는 어쩌려고?”
“일단 흔적을 쫓아야지. 이번에야말로 잡아야 해.”
“과장님께 말하려고?”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아.”
“과장님이라면 든든하지. 고마워, 언니.”
“아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걸. 진즉 했어야 하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다시 나타날 줄은 몰랐어.”
김소연은 씁쓸한 얼굴을 하고서는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이런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시스템을 완벽하게 업그레이드했지만, 해커를 직접적으로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내가 시간을 너무 뺐었네. 일단 일부터 봐. 난 박 대표님과 잠시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그래. 마음 잘 추스르고.”
“응. 고마워, 언니.”
“별말을 다 한다. 여튼 너도 수고해.”
“응.”
이설아는 갑자기 외부 침입이 있다는 말에 당황해서 김소연에게 연락을 넣었다.
외부 침입이 있을 시 김소연에게도 연락이 닿도록 되어 있기에 그녀는 열일을 제치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김소연은 자신의 일처럼 신경 썼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설아는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김소연이 나가고 이설아는 박 대표에게 전화를 넣었다.
박 대표는 외부 일이 잦아 누군가 직접 침입을 하지 않으면 바로 연락이 가지 않는다.
김소연이 따로 연락을 했겠지만 이설아도 그에게 할 말이 있었다.
“네, 박 대표님. 연락은 받으셨죠?”
-연락 받았어. 너무 걱정 마. 괜찮을 거야.
“네. 알고 있어요. 신경 많이 써 주셨잖아요.”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데만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이었지만 박 대표는 두 사람을 위해 흔쾌히 투척했다. 그에 대한 고마움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해야 되는 거지. 한데,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다름이 아니라 안재훈 대표님을 한 번 만나고 싶어서요?”
-설마, 이번 일도 안 대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기 보다 그냥 한번 만나 보고 싶어서요.”
-뉴 월드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안 대표는 나에게 맡겨 둬.
“아니에요. 제가 꼭 만나고 싶어서 그래요. 오빠와 관련이 있는 일인데, 저 혼자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어요.”
이설아의 의지는 단호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강력하게 자신의 뜻을 주장한 적이 없어 박 대표는 조금 당황했다.
이서우와 이설아는 K사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부탁을 하니 박 대표로서도 난감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알았어. 자리를 마련해 볼게. 한데, 서우가 종료를 하면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이제 곧 나올 거잖아.
“그래야죠. 오빠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곁을 지켜야 하니까요.”
-잘 생각했어. 그러면 빠른 시일 내로 약속을 잡아서 알려줄게.
“네, 대표님. 무리한 부탁인데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냐. 아마 서우도 나오면 똑같은 말을 했을걸. 아마 지금쯤이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을 거야. 대전 한 판에 대기 시간이 너무 기니까.
“아마 그럴 거예요. 어쩌면 나오기만을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요. 이번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응징하려고 말이죠.”
-이거, 서우가 그런 면에서는 엄청 끈질긴데, 누군지 몰라도 임자 만났네.
“호호호, 그렇죠. 그럼 부탁드려요.”
-그래. 들어가서 보자고.
“네, 대표님.”
전화를 끊은 이설아는 이서우가 누워 있는 베드와 이서우의 상태를 나타내는 화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오빠, 힘내!’
이설아는 주먹을 꼭 쥐며 간절히 바랐다, 이서우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