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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295화 (295/341)

# 295

레벨이 갑이다

295화

“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 문제는 해결이 될 것 같으니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해커나 시스템 메시지와 관련된 문제는 확실히 처리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그 문제도 제가 반드시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경과를 말씀드리죠.”

“저처럼 모든 유저들에게 대기 시간이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네.”

“안 대표님이 직접 알아보신다고 하니 든든하네요. 아, 이거 고기가 엄청 연하군요. 입에서 살살 녹는데요?”

이서우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앞에 놓인 안심스테이크를 잘라 천천히 씹었다.

대기 시간 문제는 이서우가 100연승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인데, 오히려 그게 부메랑이 되어 안재훈을 괴롭혔다.

지금은 유저들이 고층을 클리어하지 못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고 반발할 것이다.

이서우는 이를 알고 그를 압박한 것인데, 안재훈은 그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었다.

“참, 안 대표님. 1주년 행사 끝나고 대규모 업데이트 소식을 공지한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만.”

“혹시 하늘의 도시와 관련된 게 아닌지요.”

“…….”

정곡을 찔리자 안대표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태연하게 행동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저절로 반응하니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역시 그와 관련된 소식이 맞군요. 지금까지 저와 나눈 대화를 보면 직접 언급이 아니라 뭔가 비밀에 쌓인 곳이라는 식이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겠고요.”

“어느 정도는 맞다고 인정을 해야겠군요.”

안재훈으로서는 하늘의 도시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대화를 회피하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어 최대한 여유롭게 대꾸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 보자, 하이 레벨과 관련된 비밀일까요? 역시, 맞네요. 하이 레벨의 비밀을 풀어도 갈 수 없는 곳인데 말이죠. 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이 레벨로 몇 년 우려먹다가 진짜는 초월 레벨이 되어야 갈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겠죠.”

“…….”

“아마 무한의 탑으로 최대한 시간을 벌고, 초월 레벨에 대해 하나씩 풀겠죠. 아, 어쩌면 층수에 따른 대기 시간이 대표님의 그런 바람을 이루어 줄지도 모르겠네요.”

“뉴 월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우 씨가 그런 걱정을 해 주셔서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재훈은 화를 애써 누르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서우는 안재훈을 위하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대기 시간 때문에 곤란해질 거라는 대화를 앞서 한 바가 있다.

한데, 그 문제가 도움이 될 거라고 하니 안재훈이 화가 날 수밖에.

하지만 여기서 감정을 드러내면 대기 시간을 고의로 늘인 것만 인정하게 되어 더 상황이 불리해진다. 지금은 무조건 참아야 했다.

이서우는 이미 오늘 나눌 대화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했고, 이곳에 오기 전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이 안재운과 대화를 나눌 때는 팩트를 바탕으로 한 것만 말하기로 했다. 그래야 절대로 반박할 수 없을 테니까.

만약 반박을 한다고 해도 팩트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허점을 잡을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은 약점을 보이지 않으면서 상대를 압박할 수 있었다.

“뉴 월드가 잘돼야 저도 좋은 일이니 당연히 염려를 할 수밖에요.”

“서우 씨의 걱정, 대표로서 감사드립니다.”

이서우는 안재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지만 흔들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제길. 어린놈이 뭐 이리 빈틈이 없어. 이렇게 되면 내가 살기 위해 뉴 월드 수명을 단축시킬 수밖에 없어.’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지만 안재훈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서우의 말을 무시한 채 무한의 탑의 대기 시간 문제를 자신의 의지대로 하자니 이서우에게만 가해진 페널티가 공개될까 두려웠다.

그렇다고 이서우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하자니 대기 시간으로 계정비 뽑아 내려는 거냐며 15억 명의 유저들의 반발할 게 두려웠다.

그런 불만을 잠재우려면 대기시간 동안 다른 걸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러면 결국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 소비하게 해야 한다.

콘텐츠 소비는 게임 수명 단축을 뜻하는 것이기에 그마저도 안재훈에게는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커 버렸어. 너무.’

이서우와 소송까지 불사할 생각을 잠깐은 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안재훈만 손해다.

돈으로 이길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고, 협박이 통하는 존재는 더더욱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서우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안재훈은 다 알고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적도 몇 번 있었음에도 이서우는 건제했다. 아니, 오히려 상대를 무너뜨렸다.

그러니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하책 중에 하책이었다.

지금은 유화책을 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

하지만 안재훈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전 후식으로 오랜만에 커피로 하죠. 설탕은 유기농으로 한 스푼만 넣어 주세요. 다른 분들은요?”

“오빠, 나도 커피. 블랙으로.”

“나도, 블랙.”

“그럼 나도 블랙으로 하지.”

“그렇다는군요.”

이서우의 눈빛을 받은 안재훈은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직원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주문한 대로 커피가 나왔다.

이서우는 향기를 잠시 맡더니 가볍게 한 잔 마셨다.

‘역시, 몸이 좋아진 상태여서 그런지 커피도 별로 거부감이 없네. 나쁜 게 들어오면 알아서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뉴월드가 참 나에게는 효자네. 근데, 그걸 만드는 데 주축이 된 사람은 전혀 도움이 안 되니 원.’

커피를 마시는데, 침묵하던 안재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입맛에 맞는지 모르겠네요.”

“썩 괜찮았습니다.”

“주방장이 아주 공을 들였는데, 괜찮았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오늘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주 변호사님께 말씀드릴 테니 약속하신 1퍼센트는 그분과 상의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죠. 저 또한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네.”

뭔가 더 많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이서우가 그냥 간다고 하자 안재훈은 안도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그를 배웅해 주었다. 여기서 뭔가를 더 하려 한다면 이서우에게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우려하는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되는데. 오늘 행동을 보니 작정을 하고 온 것 같단 말이야. 뭔가 대책이 필요해.’

태연한 모습의 안재훈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최악의 사태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할지 대충 예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

이서우는 안재훈의 배웅을 받으며 확신했다. 이번 일의 배후에는 안재훈이 있다고.

그것을 안 이상 이서우는 그를 처참히 무너뜨릴 계획이었다.

드론 자동차에 오른 이서우와 그의 일행은 K사로 돌아가 따로 자리를 만들었다.

모이자마자 김소연이 박장대소를 했다.

“푸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설아야, 안 대표 얼굴 봤어?”

“응. 완전 똥 씹은 표정이던걸? 자기는 나름 참는다고 하는데, 훤히 보이잖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는다고 혼났다니까.”

“나도 서우 덕분에 아주 좋은 구경했다. 안 대표가 그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봤어. 그가 이번 일의 배후라는 게 확실해졌잖아. 문제는 물증인데, 그것도 파다 보면 나올 거야.”

“해킹 건은 아주 교묘하게 수를 써서, 그 여자는 빠져나갔더라고. 김승조, 그 사람의 계정을 덮어 써서 활용할 걸로 봐서 그자가 이번 일에 뛰어든 건 확실해.”

“김 과장님이 그러셨어?”

“응. K사로 들어오는데 연락이 왔더라고. 김승조가 확실하다고. 곧 잡아들인데.”

“아마 그자는 입을 닫겠지?”

“그렇겠지. 조금 알아보니까 딸린 식구가 많더라고. 아마 안 대표가 미리 딜을 했을 거야.”

이서우는 안 대표를 떠올리며 조소를 머금었다.

“어차피 상관없어. 결심한 대로 행동하면 되니까.”

“하이 레벨에 대해 알리려고?”

“아니.”

“박살을 낸다면서? 정보 다 까발려서 그러려고 했던 거 아냐?”

“아냐. 그것보다 더 빅엿을 먹일 방법이 있어.”

“뭔데?”

“미리 나올 것들을 싹 다 내가 먼저 완료하는 거지.”

“뭐?”

김소연은 예상치 못한 이서우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정보를 은밀히 모두에게 풀어서 제대로 안재훈을 곤란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뭐 그리 놀라고 그래? 뉴 월드 수명이 줄어들면 어차피 나도 손해야.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내가 먼저 싹 클리어해 버리고 영상으로 제작해서 올리면 뉴 월드 수명도 안 줄어들고, 안재훈은 열 받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잖아.”

“그렇긴 한데, 그게 잘 될까?”

“그게 가능하기 때문에 안재훈은 그렇게 당황했던 거야. 내가 괜히 초월 레벨에 대해 언급한 게 아니거든. 초월 레벨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고 있으니 지금쯤 머리가 좀 아플걸?”

“근데, 새롭게 나올 콘텐츠들을 네가 먼저 싹 클리어 하면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이미 난 넘사벽이라는 인식이 강하잖아. 그리고 내가 다 클리어를 해야 안대표도 머리를 굴려서 다른 유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지.”

“서우, 너 의외로 잔인하다.”

“누나 표정을 보니 오히려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소연은 보름달처럼 밝은 얼굴이었다.

“호호호. 벌써부터 안 대표가 고민에 빠져 원형탈모 되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탈모되면 탈모제가 잘 나와 있으니 탈모제 바르겠지. 문제는 그게 무한 반복된다는 거지만.”

“호호호, 오빠, 그러면 재밌겠다. 안 대표가 탈모제 바르는 상상만 해도 웃겨.”

이서우의 계획을 들은 일행은 안재훈의 벗겨진 머리를 떠올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이서우 한 명 때문에 안재훈이 밤새 잠도 못 자고 고민할 걸 생각하니 재미가 있는 것이다.

“한데 서우야, 소송은 하지 않을 생각이냐?”

“네. 일단은요. 어차피 주식이 1퍼센트 들어오면 저에게는 이득이잖아요. 아마 안 대표는 모를 거예요. 휴식동안 제가 얼마나 많은 영약을 만들었는지.”

“와, 오빠, 거기서도 영약을 만들었어?”

“당연하지. 시간은 금이잖아.”

“대체 얼마나 만든 거야?”

“예전보다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졌으니 많이 만들었겠지?”

“헐. 대박.”

“놀라기는 아직 일러. 스텟은 1개가 오르지만 스텟 하나로 오르는 공격력이나, 방어력, 생명력 등은 2배로 상승 해. 그러니 이전보다 4배나 이득인 거지.”

“오, 오빠. 그럼 개당 대체 얼만 거야.”

“아마 예전보다 2배 정도는 비싸게 팔리겠지.”

“대, 대박. 소모품 하나로 전설 장비 풀셋 값을 벌다니.”

초월 강화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기본 강화만 하면 영약 하나를 판 금액으로 풀세트를 맞출 수 있었다. 상급 옵션으로 말이다.

“서우야, 개수는?”

“들으면 놀라 자빠질 테니 그냥 참을게.”

“헐. 세 자리 숫자구나.”

“아니.”

“허얼! 그럼 네 자리 숫자?”

김소연의 재촉에 이서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김소연과 이설아, 박대표는 말문을 닫아버렸다.

4자리 숫자면 최소 1천 개라는 소리다.

레벨이 오를수록 스텟의 가치가 더 상승하고 있고, 능력치 증가가 2배라면 과거보다 최소 2배 이상의 가격에 거래가 될 것이다.

개당 100억에 판매를 했으니 아무리 낮게 책정해도 200억인데, 그러면 영약만 팔아서 생기는 이득이…….

“미, 미쳤네. 영약만 팔아도 우리나라에서 돈으로 너 따라올 사람은 없겠다.”

“누나, 우리나라에서 비교하기는 이제 무대가 좁아.”

“헐, 설마 수천 개 단위냐?”

“그건 비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어차피 제값 받으려면 왕창 내놓지도 못하니 한참 지나야 알게 되잖아. 그러지 말고 몇 갠지 살짝 말해 주라. 응?”

김소연의 간청에도 이서우는 미소만 지었다.

“쳇. 나쁜 놈. 내가 조사해서 밝혀낸다.”

“누나가 어떻게?”

“거기서 머문 시간이랑 예전보다 2배 이상 제작 시간이 빨라졌다니 계산하면 나와.”

“난 2배 이상이랬지 몇 배 빨라졌는지는 말 안 했다.”

“아오, 얄미운 녀석. 호기심 강한 내 성격을 이용하다니.”

김소연은 이서우를 흘기듯 바라보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나저나 오빠, 이번에 만든 스텟 영약은 어떻게 처분할 거야?”

“글세. 이번에는 지력과 정신력 스텟 영약까지 만들었거든. 요즘 다들 정신력 부족으로 난리라면서?”

“오빠, 말도 마. 그거 아마 매물로 나오면 다른 어떤 스텟 증가 영약보다 비쌀 거야.”

“그 정도야?”

“응. 다른 건 장비발로 커버가 되는데, 정신력은 그게 힘들거든. 마나를 주 스텟으로 쓰는 직업이 아닌 유저들이 더 많아서 일부러 정신력 올려주는 장비를 쓸 수도 없으니까.”

“그런 거라면 이번에 만든 스텟 증가 영약이 딱이네. 복용효과가 2배 이상이니까.”

“이번에 다시 장비 외 아이템 부문에서 최고가를 찍겠네.”

“그래서 이번엔 오프라인으로 판매를 해 볼까 생각중이야.”

“오프라인으로?”

이서우의 말에 다들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오프라인으로 물건을 판매하면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시간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재훈에게 시간당 1천억을 제시하고 왔으니 더 의아한 것이다.

“부자들 돈 좀 쓰면 두루두루 좋잖아.”

“헐. 그 이유가 다야?”

“수익의 1퍼센트를 기부하고, 다른 이벤트로 좀 열어서 이슈몰이 한번 해 보려고.”

“하긴, 네가 나설 일은 없으니 안 될 건 없겠지. 그럼 추진해?”

“부탁해 누나.”

“오케이!”

김소연은 의욕이 샘솟는지 눈빛이 반짝였다.

대충 대화가 마무리되자 박 대표는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럼 난 이만 가 볼 테니 다들 수고하라고.”

“네, 대표님, 들어가세요.”

“대표님, 오늘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언제든 필요하면 말해.”

“네.”

박 대표가 나가자 이서우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커플 데이트 할까?”

“커플 데이트?”

“그래. 같이 할 시간이 통 없었으니 시간 날 때 보면 좋지.”

“잠시만 연락해 보고.”

김소연이 얼른 전화를 걸었다. 마침 다들 접속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세 커플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서우는 오랜만에 데이트를 즐기고 뉴 월드에 접속했다. 이제 남은 무한의 탑을 공략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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