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
레벨이 갑이다
296화
뉴 월드에 접속한 이서우는 30분 만에 다시 접속을 종료해야 했다.
“설아야, 그게 정말이야?”
“응. 오빠. 일단 한번 봐.”
이서우는 이설아가 전달한 메시지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안재훈이 이렇게 빨리 행동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제 1주년 행사가 3일째인데, 벌써 공지를 띄우다니.
이서우는 재빨리 내용을 확인했다.
-뉴 월드 유저 여러분 1주년 행사는 재미있게 즐기고 계신지요. 원래는 한 달 뒤에 소식을 전하려 했으나 뉴 월드를 사랑해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이렇게 급히 대규모 업데이트 관련해서 몇 가지 알려 드리려 합니다.
‘한 방 먹더니 화가 많이 났나 보네. 어떤 대비책을 준비했는지 마저 볼까나.’
이서우는 안재훈이 무슨 행동을 하건 그에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랬기에 표정은 한없이 여유로웠다.
안재훈을 잠시 떠올리며 피식 웃고는 다시 내용을 확인했다.
-앞으로 뉴월드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 첫 번째로는 바로 서로의 영역이 확실해진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플레이 했던 유저들과 하이 레벨 지역에서 시작한 유저들은 이제 서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대화를 하건 못하건 상관없을 텐데.”
“그 밑에 내용이 더 중요해.”
이설아의 말에 이서우는 내용을 마저 읽었다.
-언어가 갈라지게 될 것이고, 영역 분쟁을 통해 서로의 영역을 삼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영웅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웅 포인트는 기존의 상점이나 몬스터에게서 드롭되지 않는 특수한 아이템을 구입하는 데 쓰입니다. 또한…….
“이건 완전히 전쟁터로 만들겠다는 소리네.”
“맞아. 대화도 안 되게 하고, 앞으로는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계정 확인을 통해 적대적인 종족들이 운영하는 곳은 아예 입장이 불가능해. 이상한 말을 하기 때문에 적대 종족의 영상도 못 보고.”
“영웅 포인트까지 줘서 미친 듯이 싸우게 만들 생각이네.”
“그러니까. 이제 점점 레벨 갭도 사라지고 있어서 엄청 피터지는 싸움이 될 거야.”
“적대 종족을 처치하면 영웅 포인트를 뺏어올 수 있는 구조라서 더 치열하겠어.”
“영웅 포인트로 괜찮은 장비를 구입할 수 있으면 아마 한 시도 조용할 날이 없을 걸?”
이서우는 글로벌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대규모 업데이트를 실행하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잡으려는 거네. 하늘의 도시는 아직 먼훗날의 거니까.”
“아무래도 저 멀리 있는 고기보다 눈앞에 있는 떡에 손이 가겠지. 배고픈 상황이면 더 그렇고. 안 대표가 유저들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아.”
“더 중요한 건 나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거야.”
“오빠에게? 어차피 동영상은 막혀도 볼 사람은 다 보잖아. 제휴가 걸린 곳에 풀어 버리면 되니까.”
“나에게 보여 주기 위한거지.”
“별로 이득도 없는데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남자들은 원래 싸움에서는 좀 자존심이 세지거든. 그래서 그런 거니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마.”
“응.”
이설아는 이서우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싸우나 보다 생각하며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영웅 포인트도 날 한 방 먹이기 위해 미리 도입하는 것 같네.”
“아, 아이템 목록 때문에?”
“그렇지. 물론 아직은 정식 업데이트가 아니니 일부만 공개한 거지만 딱 봐도 내게는 딱히 쓸모없는 것들뿐이잖아. 전체 목록도 분명 그럴 거야.”
“어차피 오빤 필요한 거 이미 다 갖추고 있는데, 그걸 모르나 봐.”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제작할 수 있는지 알면 아마 놀라 까무라칠걸.”
“호호호. 그 모습도 보고 싶네.”
“영상으로 제작이라도 하라고 할까?”
“아냐. 고급 인력들을 그런 데 쓸 수는 없지.”
패치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것은 이서우의 예상대로 그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작 이서우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패치 내용이 모두 공개되면 확실해지겠지만 되는 순간 뉴 월드는 전쟁터가 되겠네.”
“응. 진짜 패치되면 영웅 포인트 모으려고 난리가 날 것 같아. 포인트로 살 수 있는 아이템도 아주 매력적으로 할 테니 더 난리일 테고.”
“분열의 대륙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
“그런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분열을 조장할 줄은 몰랐는데. 오빠가 잠깐 들어가 있는 동안 다른 오빠들은 미리부터 고정 파티로 호흡을 맞춘다고 하더라고.”
“민수랑 종명이가?”
“응. 아무래도 전투는 호흡이 중요하잖아. 앞으로는 적대 종족에게 죽으면 영웅 포인트를 빼앗기니까 더 신중해지는 것 같아. 장비가 월등히 좋지 않으면 아무래도 컨트롤이 중요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이서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어 그다지 고민거리도 아니지만, 다른 유저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고민거리였다.
“이야기 나온 김에 오랜 만에 핵심 멤버들이랑 미팅부터 해야겠네.”
“응! 그렇지 않아도 공지 때문에 다들 접속 안 하고 있을 거야.”
이설아는 즉시 김소연과 류종명, 박민수와 하유진을 연결했다.
일행은 가상의 방에 모여 앉았다.
“다들 공지 봤지?”
“봤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이야기하던 중이었어.”
“어떻게 하기로 했어?”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난 기동성이 좋으니 혼자 움직이면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지원하는 게 낫지 싶어.”
“하긴, 한 파티에 매어 있는 것보다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박민수는 자신들보다 이서우가 더 걱정되었다. 같이 파티를 할 수도 없으니 혼자 외롭게 지내야 하는데, 친구로서 그게 늘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서우는 아무렇지 않게 홀로 움직이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오빠, 그러지 말고 민후 씨랑 같이 움직이는 게 어때?”
“정민후?”
“응. 그 사람도 하이 레벨이잖아.”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파티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이야기해 보지, 뭐.”
“응.”
“그럼 난 그렇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한 파티를 만들면 딱 되겠네. 평소 호흡을 맞춰 봤을 테니 어려움도 없을 거고.”
“파티 문제는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아. 아직 시간이 있으니 무한의 탑에서 열심히 레벨 업 하고, 포인트 모아서 무기라도 사면 유리할 것 같아.”
“두 곳 다 포인트가 공유 돼?”
“공유 돼. 아, 서우는 한 곳만 돌았겠네.”
“이제 막 가려는데 공지가 떠서 나온 거야.”
“여튼, 두 곳이 공유가 돼. 그러니 한 달 바짝 하면 무기 하나는 맞출 수 있을 거야.”
“사냥용도 파티로 하고 있어?”
“파티로 해야지. 한 번밖에 못 들어가는데.”
“점수는 좀 괜찮고?”
“호흡이 잘 맞아서 그런지 20층까지는 갔어. 그 이후가 힘들지만, 포인트는 잘 모이니 만족해.”
파티의 리더는 류종명이 했다. 분석에 능하고, 상황 판단도 좋아서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그럼 그 문제도 됐고. 소모품 아이템은 길드 창고에 있으니 알아서 빼 써. 남은 기간 동안 진짜 열심히 준비해야 할 거야. 그놈들 알지? 아마 미친 듯이 덤벼들 거야. 영웅 포인트까지 주니 아주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설치겠지.”
“분명히 그러겠지. 하지만 우리도 놀고만 있지 않으니 무난하게 대처할 수 있어.”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 해산하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려주고.”
“오케이!”
“그래. 다들 수고.”
“우리 자기 또 계획 짜려면 머리 아프겠네. 쉬어 가면서 해.”
“어우, 누나. 징그럽게 왜 그래? 오글거리게.”
“너도 유진이한테 해 달라고 해.”
“됐거든.”
박민수와 김소연이 투닥거리는 걸 본 일행은 크게 한 번 웃고는 헤어졌다.
이서우는 이설아와 몇 마디 나누고 다시 뉴 월드에 접속했다.
‘종족을 나누겠다라……. 무한의 탑에 집중된 관심을 이런 식으로 분리해서 게임 생명력을 더 길게 가져가겠다는 뜻이네. 하여튼 잔머리는 잘 굴린다니까.’
이서우는 뉴 월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눈에 훤히 보였다.
무한의 탑과 영웅 포인트 효과가 떨어질 때쯤, 분명 하늘의 도시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원래라면 이번에 가볍게 언급하고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심어 줘야 하지만 이서우와의 대화에서 안재훈은 전략을 바꾸었다.
어쩌면 안재훈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서우가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영웅 포인트를 빼앗을 수 있게 한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이서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발걸음은 무한의 탑으로 향했다.
이제는 주요 도시에서 입장을 할 수 있어서 사람들이 처음보다는 많지 않았다.
가는 길에 이서우는 정민후에게 귓말을 보냈다.
-뭐해?
-그냥 멍때리고 있다.
-공지는 봤지?
-봤지. 근데, 뭐 나랑은 크게 상관없는 거라서. 너도 마찬가지 아냐?
-재미는 있잖아.
-왜? 마을로 쳐들어가서 학살이라도 하게?
-영웅 포인트도 뺏을 수 있으니 그것도 괜찮겠네.
-아서라. 네가 들어가면 마을 절단 난다.
-그러면 더 해야 하잖아. 영웅 포인트 거래도 되는데.
-얼씨구. 돈이라면 죽을 때까지 써도 못 쓸 만큼 많은 놈이 욕심은.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고. 사냥용으로 갈 거야?
-가긴 가야지.
-그럼 파티로 한번 가 볼까?
-오케이. 어딘데?
-조세프 백작이 있는 곳.
-다빙턴이군. 거기도 입구가 있으니 그리로 갈게.
-알았어. 입구로 와.
대화를 마친 이서우는 입구로 터덕터덕 걸어갔다.
사냥용 무한의 탑을 파티로 먼저 시작하는 것은 보상이 좋아서다. 이왕 하는 것이면 보상이 좋은 것부터 하는 게 나았다.
게다가 나중에 정민후에게 부탁하면 업데이트 된 내용을 즐긴다고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요즘은 조세프 백작이 통 안 찾네. 제국이 한가하니 그런 건가.’
다빙턴에 오니 문득 조세프 백작이 떠올랐다.
작은 인연이 끈이 되어 조세프 백작에게로 이어졌고, 이후 이서우에게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뭐, 잘하고 계시겠지.’
제국이 조용하다는 뜻이니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왠지 허전한 느낌이었다.
‘참. 조세프 백작은 하늘의 도시에 대해 알고 있을까? 혹시 모르니 무합의 탑에서 나오면 한 번 찾아봬야겠네.’
정보는 곧 힘이다. 이서우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한 것은 바로 NPC들과의 친분이었다.
황제와도 돈독한 사이여서 대륙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을 다 알 수가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금세 입구에 도착했다.
“야, 넌 어째 나보다 먼저 움직여 놓고 이제 도착하냐.”
“아,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근데, 너 파티로 가 본 적 있어?”
“아니.”
“여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알고?”
“아니.”
“설아 씨나 네 친구들이 이야기 안 해 줘?”
“파티원 중 강한 사람에게 맞춰서 난이도가 결정되는 것 정도?”
“100퍼센트 그런 건 아냐. 너처럼 강한 존재는 예외가 있지. 뭐, 그렇다고 난이도가 크게 쉬워진다는 건 아니지만. 여튼, 네가 너무 강하니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나 보네.”
“알아야 할 게 있어?”
“있지. 물리 공격 내성이나, 마법 내성 등의 몬스터가 있어서 다양한 조합이 필요하다는 거. 너나 나나 물리 계열 내성을 만다면 아마 고생 좀 할 거다.”
“에이, 설마 그러려고.”
“뭐, 그거에 경험해 보면 알겠지. 일단 들어가자.”
“그래.”
이서우는 내성에 대해서 그다지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의 엄청난 힘을 받고 영향을 받지 않은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파티 상태입니다. 5인 파티에 입장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5인 파티 사냥용 무한의 탑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그래.’
-무한의 탑에 입장합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흰빛에 휩싸여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기까진 나도 와 봤어.”
“사람들은 이곳을 로비라 불러. 여신상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입장이라고 하면 밖으로 가게 되고, 바로 시작이야. 아무쪼록 물리내성만 안 걸리도록 빌어라.”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지 뭐.”
“힘 같은 소리하네. 그럴 거면 왜 물리내성이라고 하겠냐. 우리 같은 근접 계열은 때려봐야 피도 얼마 안 닳아. 그러니 물리 내성이 아니기만을 빌어.”
“만약 물리 내성이면?”
“그냥 포기하고 나가야지.”
“하루에 한 번 입장되는데, 포기하다니. 그건 안 될 말이지.”
“뭐, 물리 내성은 근접 계열끼리 들어오면 잘 안 걸리니까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긴 해.”
“그런데 그렇게 겁을 주냐?”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정비는 다 했지?”
“난 언제나 준비 완료야.”
“그럼 출발하자고.”
“득템, 열렙하자.”
“아, 그러고 보니 분배 설정을 안 했네.”
득템하자는 이서우의 말에 정민후가 아이템 분배에 관해 언급했다.
“기여도로 하면 되잖아.”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알았어. 그럼 기여도로 할게.”
분배까지 마치고 두 사람은 나란히 여신상으로 갔다.
‘입장’이라고 말하자 주변 풍경이 바뀌며 메시지가 들렸다.
-사냥용 무한의 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0초간 절대방어 상태가 됩니다. 절대 방어가 풀리면 곧바로 공략이 진행됩니다.
-던전 타입과 난이도가 설정됩니다. 난이도는 최상, 타입은 물리 내성으로 진행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정민후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젠장.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