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
레벨이 갑이다
297화
“야, 그냥 나가자.”
“이왕 들어왔는데, 나가긴 왜 나가? 물리 내성이 어떤 곳인지 확인이라도 해야지.”
“여기서는 허접한 놈들도 네임드가 된다고.”
“강한 몬스터면 보상이 좋잖아. 내가 솔플 안 오고 너랑 파티한 이유가 그건데 그냥은 못 가지.”
“허접한 놈들도 네임드인데, 보스는 어떻겠어. 솔플인데 물리 내성 걸려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결국은 보스까지 가 보지도 못하고 포기했다.”
“그건 너고.”
“그래. 너도 어차피 경험을 해 봐야지.”
이서우의 완강함에 정민후는 두 손을 들었다.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우니 어디 한 번 당해 봐라는 심정으로 앞장섰다.
멀리 몬스터가 보였다.
“어라. 너랑 와서 그런지 몬스터가 다르네.”
“지난번과 달라?”
“어. 저놈은 통치자 영역에 있는 녀석인데.”
“덩치가 꽤 크네.”
“통치자 영역에 있는 놈들은 보통이 5미터야. 저놈은 힘의 종족 같은데.”
“힘의 종족?”
“힘 빼고는 시체인 녀석이지. 저런 놈이 물리내성이라니. 진짜 좆됐다.”
“잠시 기다려 봐. 내가 한 번 상대해 보고 올게.”
“혼자서는 벅찰 텐데.”
“한번 잡아 보는 거지 뭐. 정 벅차면 뒤로 빠지면 되고.”
“그래. 한 번은 경험해 봐야 하니까.”
정민후는 가만히 팔짱을 낀 채 이서우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는 혼자 힘의 종족보다 약한 몬스터를 상대했는데도 한참이나 싸워야 했다.
힘의 종족은 5미터의 신장을 가지고 있는 인간형 몬스터다.
인간과 거의 유사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에 있는 작은 두 개의 뿔이다.
워낙 신장이 커서 작다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50센티미터가 넘는 길이었다.
힘의 종족은 이 뿔의 길이로 서열이 정해진다. 또한 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근육 덩어리였다.
혹자는 삼손처럼 긴 머리가 힘의 원천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서우는 천천히 힘의 종족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홀로 거대한 둔기를 든 채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몬스터였다.
이서우가 다가가자 힘의 종족 몬스터가 포효했다.
“크헝!”
쿵쿵쿵쿵쿵!
어찌나 힘차게 뛰는지 땅이 흔들릴 정도였다.
이서우는 별다른 동작은 하지 않고 다가오는 힘의 종족에 맞서 대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물리내성 몬스터입니다.
-1의 대미지가 발생했습니다.
“크헝?”
나름 강력하게 휘두른 대검이었는데, 대미지는 고작 1밖에 입히지 못했다.
‘마나를 사용 안 했다고 그런 건가?’
이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뒤에서 지켜보던 정민후가 소리쳤다.
“그것 봐! 내가 안 된다고 했지? 그냥 포기하고 나가자니까 그러네.”
정민후가 소리쳤지만 이서우는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는지 마나를 끌어올렸다. 마나 블레이드였다.
푸른빛을 머금은 대검으로 다시 한 번 힘의 종족을 공격했다.
다행히 힘의 종족은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이서우의 빠른 속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서걱!
-물리 내성 몬스터입니다.
-10의 대미지가 발생했습니다.
“크허엉?”
‘뭐야? 이번에는 10이야? 이 정도 마나인데, 10이라니. 뭐, 그래도 공격이 먹히긴 한다는 거네. 그럼 어디…….’
“크하하하. 아이고, 배야. 아무리 해도 안 된다니까 그러네. 시간 낭비하지 말고 포기…….”
-힘의 종족을 처치했습니다.
-0.1퍼센트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힘의 종족 힘줄을 획득하셨습니다.
-힘의 종족 뼈를 획득하셨습니다.
-힘의 종족 가죽을 획득하셨습니다.
-1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조금 까칠하긴 하네. 그래도 이 정도면 마나도 크게 부담 없겠는데?”
“…….”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정민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된 게 물리 내성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한 방에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너 외계인이지?”
“갑자기 무슨 실없는 소리야. 안 갈 거야?”
“아니 어떻게 물리내성을 죽이냐고. 마나 얼마나 썼어?”
“10만?”
“헐? 그렇게나 많이 썼어?”
“이게 많은 건가?”
“당연히 많은 거지. 몬스터가 몇 마린데, 마나를 그리 펑펑 써 대면 어떻게 클리어하겠어. 아마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할걸?”
“뭐, 그건 너고. 나한테는 해당 안 돼.”
“잘났다. 잘났어.”
“그걸 인제 알았냐.”
“무식한 놈. 대체 마나가 얼마나 많은 거야.”
“들으면 놀라자빠질 테니 그냥 많은가보다 여기면 돼. 시간 아까우니 잡담 그만하고 들어가자.”
“어.”
이서우가 앞장서자 정민후가 얼른 그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힘의 종족은 그 이후로도 수십 마리가 나타났다.
이서우는 긴 복도식으로 된 동굴을 따라 하염없이 움직였다.
“이거 대체 어디가 끝인 거야?”
“그러게. 원래 이렇지는 않았는데?”
“너도 끽해 봐야 이제 세 번째잖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첫 코스가 이렇게 길지는 않았어. 너 때문에 난이도가 올라가서 그런가 봐.”
“경험치랑 골드 죽인다고 고맙다더니. 남자가 그렇게 변덕이 죽 끓듯 하면 인기 없다.”
“설아 씨랑 사귄다고 지금 자랑하는 거냐?”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도둑놈. 감히 우리 여신님을 빼앗아 가다니!”
“남의 여자 넘보지 말고 얼른 사냥이나 해. 거기 한 마리 가잖아!”
“이크. 큰일 날 뻔했네.”
“열심히 상대하고 있어. 난 앞으로 조금 더 가 볼 테니.”
“야! 이놈, 이거 뿔이 더 길잖아. 야, 같이 잡아 주고 가야지!”
힘의 종족은 뿔이 길면 더 강하다. 힘도 스피드도 모두 말이다.
지금까지는 무난하게 상대를 했지만 문제는 정민후에게 마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서우에게 즉시 회복시켜 주는 비약이 있다는 걸 알고 100개를 제값 다 주고 구입했는데 벌써 5개나 사용했다.
이번에도 이서우가 그냥 가는 바람에 마나를 하나 더 써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것인데, 이서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서열이 조금 더 높은 힘의 종족을 처치하며 앞으로 빠르게 이동한 이서우는 커다란 공터가 나타나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치 과거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흙이 깔려 있었는데, 분위기가 공동묘지처럼 을씨년스러웠다.
“헉, 헉. 야, 혼자 가면 어떡해!”
“잘 처리하고 왔으면 됐지 투덜거리긴. 근데 여긴 어디지?”
“딱 봐도 공동묘지 같은데?”
이서우가 안으로 성큼 들어가자 정민후도 그의 뒤를 따랐다.
한데, 그들이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쾅’하는 소리가 나며 문이 닫히고 말았다.
“뭐, 뭐야!”
“문이 닫혔네. 갇힌 건가?”
“뭐? 너랑 나랑 이런 공동묘지 같은데 갇혔다고?”
그 때였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동시에 메시지가 울렸다.
-이곳은 힘의 종족의 원한이 사무치도록 쌓인 곳입니다. 힘의 종족의 원한을 풀어주셔야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가지가지하네. 이젠 몬스터 원한까지 풀어 주라고?”
“너나 가지가지하지 말고 방법이나 찾아봐.”
“난 사냥에만 재주가 있지 이런 수수께끼 같은 거 몰라. 참, 너 잘하잖아. 수수께끼 던전도 클리어했던데, 네가 해 봐.”
“그건 또 봤나 보네.”
“하도 전장의 지배자, 전장의 지배자 떠들어 대서 좀 봤지.”
“좀? 사실은 다 본 거 아니고?”
“시, 시끄럽고. 얼른 방법이나 찾아봐.”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주변을 천천히 관찰했다.
‘이럴 때는 신의 눈을 가지게 된 게 유용하다니까. 저곳에 음침한 기운이 몰려 있네. 저기를 공략하면 되겠지.’
이서우가 한 발짝 내디뎠다. 한데, 갑자기 바닥이 크게 흔들리는 게 아닌가.
설마, 하고 뒤로 물러났는데 땅에서 5미터 가량의 언데드 몬스터가 나타났다.
마치 좀비처럼 회색빛이 도는 피부를 가진 존재는 바로 힘의 종족이었다.
“얘들 여기서 언데드화가 된 것 같은데?”
“그러네. 원한이 사무쳐서 이렇게라도 생명을 유지하나 보네. 저기 보이지?”
“어디?”
“저기 왜 툭 튀어 나오는 비석 있잖아.”
“아 그거. 어, 보여.”
“거기에 원한이 집중 되어 있어. 그곳에 해답이 있을 거야. 몬스터를 상대할 동안 가서 확인해 봐.”
“내, 내가?”
“그럼 네가 싸우던가.”
“아, 아냐. 내가 가 볼게.”
언데드화가 진행된 좀비 몬스터의 숫자가 무려 다섯이었다. 정민후로서는 하나도 상대하가 벅차기에 이 모두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서우는 마나 탄을 날리며 언데드 몬스터의 시선을 잡았다.
이서우의 강력한 공격을 받은 언데드들은 화가 났는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이서우에게 덤벼들었다.
언데드화가 진행된 몬스터여서 그런지 더 많은 마나를 소모해야 치명타를 줄 수 있었다.
결국 이서우는 100만의 마나를 사용하고서야 다섯 마리를 다 잡을 수 있었다.
“야, 정민……. 헐. 너 거기서 뭐 해?”
“…….”
이서우는 정민후가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비석만 바라보고 있다 초월 가속을 사용해 다가갔다.
툭툭.
“야, 정민후!”
툭툭!
“나, 나 좀 살려 줘…….”
갑자기 이서우를 바라보며 슬픈 얼굴로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서, 서우야, 나, 나 좀 살려 줘…….”
느릿느릿 말하는 것이 마치 좀비를 연상시켰다.
“설마…….”
이서우는 불길한 예감에 원한이 가득 담긴 비석을 바라보았다.
“네놈이 원흉이로구나. 그러면 원흉부터 처리해야지.”
이서우는 정민후를 기절시키기 위해 뒷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아악! 사, 살려 달라고, 했더니, 날 주, 죽이려는 거냐?”
느릿느릿 말하는 게 영 짜증이 났지만 언데드화가 진행되면서 맷집이 좋아졌는지 강하게 내리쳤는데도 멀쩡했다.
이서우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일단 그를 피해 비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큭. 엄청난 기운이야. 이러니 민후가 못 버텼지.’
비석과 가까워지자 한기가 이서우의 몸을 휘감았다.
이렇게 지독한 한기는 처음 경험했다.
만약 이서우가 먼저 별다른 준비 없이 이곳에 왔다면 언데드화가 됐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정민후가 먼저 걸려서 마나로 온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대충 마나를 두르고 왔으면 진짜 낭패를 볼 뻔했어. 이럴 때는 파티원이 있다는 게 도움이 되네.’
장기나 근육뿐 아니라 세포에까지 골고루 마나를 보냈다. 아직까지는 충만하게 보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경지로도 충분히 강했다.
저벅! 저벅!
더욱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디며 비석으로 다가갔다.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왔는데, 원한이 더욱 강해지며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다.
‘어쭈, 반항을 한다 이거지? 어디 이래도 반항할래?’
이서우는 온몸을 마나로 겹겹이 두르며 점점 영역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러자 수십, 수백 겹의 마나가 생성되면 원혼이 있는 곳을 덮어버렸다.
끼에에에에에엑!
갑자기 귀를 찢을 듯한 고음의 비명이 들렸다.
이서우는 마나로 귀를 보호했지만 정민후는 그러지 못했다.
고스란히 대미지를 입은 정민후는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서우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 판단하고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 비석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비석이 크게 요동치는 게 아닌가!
-나의 잠을 깨운 자여, 그대는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