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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301화 (301/341)

# 301

레벨이 갑이다

301화

어나더 월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서우도, 정민후도 크게 놀랐다.

사내는 그들의 반응에도 차분히 입을 열었다.

“나도 어나더 월드 테스터로 참여했지. 성공만 하면 전 세계의 가상현실 게임 분야를 선도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서 무조건 참여했어. 너희들은 어떤 마음으로 참여했는지 모르지만 난 정말 모든 걸 거기에 걸었거든.”

“…….”

아픈 기억은 묻어 두는 게 좋다고 판단해 애써 지웠는데, 사내의 말에 이서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그때 새로운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 기도까지 했지.’

이서우는 테스터에 당첨되도록 두 손을 모아 기도했던 일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올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간절했다.

정민후도 기대감을 가지고 뛰어들었지만 그는 이서우와 조금 달랐다.

기업을 물려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정민후는 흥청망청 즐기며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니 식상해져 다른 것을 찾다가 어나더 월드를 알게 된 것이다.

정민후는 지겨운 인생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는 수단을 찾기 위해 어나더 월드 테스트에 참여했다.

“한데, 어나더 월드 테스트를 하면서 아, 이건 아직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 무슨 말인지 너희도 알지?”

“뇌 관련 실험 말인가?”

“맞아. 개자식들!”

사내의 분노에 이서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어나더 월드를 적대시 한다는 건 최소한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아직까지 사내가 어떤 마음인지 판단하기에는 일렀다.

“난 그 사실을 알고 강력히 주장했어. 어나더 월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 한데, 개무시를 하더군. 뭐, 결국은 어나더 월드는 폐기되었지. 하지만 그 뒤는 너희도 알 거야.”

“안재훈이 뒤를 이어 뉴 월드를 탄생시켰고, 지금에 이르렀지. 한데, 그 이야기를 왜 하는 거지?”

“일단 첫 번째 문제는 너나 정민후처럼 식물인간이 된 사람이 나타났다는 거야. 두 번째는 이서우, 너처럼 특이한 존재가 나타났다는 거고.”

“그게 무슨 말이지?”

이서우의 목소리가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사막처럼 건조했다.

“아, 물론 너의 경우는 아주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어. 문제는 돌연변이지.”

“돌연변이?”

“돌연변이?”

사내와 대화를 하면서 이서우와 정민후는 동시에 같은 말을 많이 내뱉었다.

사내는 두 사람의 반응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돌연변이.”

“설마, 뉴 월드를 하면 돌연변이가 생긴다는 건가?”

“맞아. 아주 안 좋은 쪽으로 변해. 안재훈은 그 가능성을 알았지만 1억 명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확률이라는 사실에 그냥 묻어버렸지. 투자자들에게도 그 가능성을 숨겼고. 아마 지금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재훈과 나밖에 없을 거야.”

“안 좋은 쪽으로 변한다고? 그리고 지금쯤이라는 게 무슨 뜻이지?”

“안 좋은 쪽으로 변한다는 건, 흠. 이건 직접 보는 게 나을 거야.”

사내는 경호원들이 볼 수 없도록 테이블에 영상이 나타나도록 했다.

소리는 어차피 들을 수 없으니 이서우와 정민후가 잘 들을 수 있도록 충분히 높였다.

-벌써 몇 명이 죽어 나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실험체가 많아질수록 잠복기가 길어지고, 부작용이 나타날 확률도 낮아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 달 이상 살아남은 실험체가 없었는데, 이번 실험체는 무려 6개월을 살아남았다. 기존의 실험체와 이 실험체는 차이를 보인다. 여기…….

영상에 나오는 사내는 테이블에 놓인 두 시체를 보며 한껏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 시체로 초점을 맞추면서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잠시 얼굴이 나왔는데 마치 수천 억원짜리 로또에 당첨된 사람 같았다.

-보다시피 심장의 크기가 일반인보다 훨씬 크며, 더 탄탄한 근육으로 덮여 있어서 쉽게 상처도 나지 않는다. 다른 장기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일반인보다 3배 정도 강한 힘을 낸다는 것이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사내는 기분이 고조되었다가 다시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잠시 말을 멈춘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대가는 크다. 곧 최대 수명이 200살 이상이 될 거라는데, 이 돌연변이는 고작 6개월밖에 살지 못했다. 아주 건장한 청년이었는데도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실험체가 필요하다. 문제는…….

영상이 조금 더 흘러나왔는데, 끝날 동안 이서우와 정민후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심각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영상이 끝나고 잠깐 동안이지만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침묵을 깬 것은 사내였다.

“너흰 식물인간이 되어서 잘 모르겠지만 테스터 중 몇몇은 방금 본 영상처럼 괴물이 되었다. 급히 테스트는 중단되었지만 영상에 나온 놈은 은밀히 실험을 이어 갔지. 어나더 월드를 완성하기 위해서.”

“안재훈도 그걸 알고 있었나?”

“처음에는 몰랐지만 뒤늦게 알게 되었지. 하지만 더 이상 부작용이 안 생긴다는 것을 알고는 묻어 버렸어. 그리고 뉴 월드가 세상에 나온 거고.”

“그럼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은 왜 숨기지 않았던 거지?”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걸 완전히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거든.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당신 같은 사람들?”

“그래.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걸 언론에 터트릴 생각이었으니까. 안재훈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모든 걸 밝힐 수 없었지. 그게 지금도 너무 아쉬워.”

“안재훈이 깊이 관여했다는 건가?”

“당연하지. 자신과 뜻이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매장해 버렸어. 겨우 나 혼자 살아남았으니 아주 깊이 관여했지.”

“……그렇군.”

이서우는 사내의 말과 표정에서 외롭고 쓸쓸함, 그리고 분노를 느꼈다. 그것은 확실히 안재훈을 향한 것이었다.

“법의 심판은 피했는지 모르지만 난 놈을 절대로 그냥 둘 수 없어.”

“다른 생각이 있군. 설마…….”

“난 그놈처럼 그리 잔인하지 못해.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은 생각도 없고. 하지만 안재훈의 몰락을 바라고는 있지.”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그를 몰락시킬 방법이라…….”

“돈을 가진 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게 뭘까?”

“모든 돈이 사라지는 거겠지. 하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겠지.”

“맞아. 나 혼자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너희들을 찾아온 거고.”

“우리 보고 범죄자가 되라는 건가?”

“범죄자가 되라는 건 아냐.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열심히 뉴 월드를 즐기라는 거야.”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즐기고 있어. 그 말을 하려고 우리를 찾았다는 건 아닐 텐데.”

“물론 그 말만 하려고 위험을 감수하고 너희들과 접촉한 건 아냐.”

“안재훈도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건가?”

“아직은 몰라.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으니까.”

이서우는 사내가 확실히 이번 일에 많은 것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나더 월드가 폐기되고, 뉴 월드를 개발한지 꽤 시간이 흘렀을 텐데 아무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있었어. 하지만 뭔가 더 깊은 원한이 있는 것 같은데.’

이서우는 사내의 가슴속 깊은 곳에 숨기고 있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원한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확실히 이서우, 넌 많이 변했어. 정민후도 어느 정도는 변할 것 같고.”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지?”

“나와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는데도 넌 그다지 흔들리지 않잖아. 정민후도 약간 걱정만 하고 있을 뿐 공포를 느끼고 있지 않고.”

“나에 대해 안다면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알 텐데?”

“알지. 그래서 더 변했다고 하는 거야. 일반인이 그런 일을 겪고 지금 내말을 들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

“흠.”

이서우도 사내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정민후는 이서우만큼 납득하지 못했다.

“난 왜 변할 거라고 하는 거지?”

“이서우에게 일어난 변화가 네게도 나타날 거야.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은 좋은 쪽으로 변할 확률이 높은 것 같아. 아마 뉴 월드를 지속하면서 뭔가 보완이 된 것 같다고나 할까. 물론 실험을 해보지 않아 추측만 하는 거지만.”

“지금 실험이라고 했어?”

“이런 실수를 했군.”

이서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당장이라도 사내를 잡아 죽일 듯 무서운 눈을 하고서는 벌떡 일어났다.

정민후는 이서우가 왜 화를 내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사내는 이서우가 왜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안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 * *

“과장님. 여기 자료 가져 왔어요.”

“생각보다 많네?”

“네. 정리된 자료도 파일로 보내 놨으니 급하시면 먼저 확인해 보시면 돼요.”

“고마워, 수고했어.”

“따로 시키실 일은요?”

“필요하면 부를게.”

“네, 과장님.”

팀원 중 자료를 담당하고 있는 기술요원이 파일을 내려놓고는 사라졌다.

특수수사대는 경찰청 소속이었지만 같은 경찰들은 그들을 ‘요원’이라고 불렀다. 독립적인 존재에, 권한도 막강해서 경찰청장 외에는 그들을 건드릴 수조차 없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따로 조직을 만드는 게 낫지 않냐면서 경찰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었지만, 워낙 실적이 좋아서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김명국은 두툼한 종이뭉치를 보며 파일부터 확인했다.

“무슨 놈의 자료가 이리 많아.”

지금은 거의 종이를 쓰지 않는데, 김명국은 가끔 자료를 프린트해 오라고 한다.

종이에 기록된 자료를 보면 내용이 머릿속에 더 잘 들어온다는 게 이유였다.

가끔 도무지 풀리지 않는 것이 있으면 나오는 버릇이었는데, 김승조의 반응을 보면서 이번 일도 쉽지 않겠다 싶어 지시를 내렸었다.

한데, 분량을 보니 시간 낭비가 클 것 같아 간추려진 파일부터 확인했다.

“어린 시절이 아주 화려했구먼.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사고를 쳐도 그냥 돈으로 해결하고. 쯧쯧쯧, 지금 모습은 완전 가식이군.”

안재훈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고 있었다. 홀연히 나타나 뉴 월드를 완성하고,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인 중 한 사람으로 뽑히면서 10대들의 우성이 됐을 정도다.

한데, 그의 과거는 결코 보이는 모습과는 달랐다.

해외로 나가서 신분을 완벽하게 세탁을 하고 들어와 그의 과거 행적은 모두 묻히고 말았지만, 특수수사대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K사와도 인연을 맺고 있다는데, 이거 조심하라고 일러 줘야겠는데?”

그의 하나뿐인 동생이 K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최근 중요한 일들을 진행하면서 글로벌사와도 교류가 있어 염려가 되었다.

한데, 안재훈이 이번 일과 연관이 됐다고 여겨질 만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이것 참. 심증만으로 더 깊이 파 볼 수도 없고.”

아무리 특수수사대라고 해도 물증이 없으니 안재훈을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뒷조사야 그다지 불법도 아니어서 가능하지만 구체적인 사항까지 알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촉이 온단 말야. 촉이 와.”

깊이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김명국은 곧바로 김소연에게 전화를 넣었다.

“어, 나다. 왜긴 동생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부탁 있구나?

“역시 우리 동생이라니까. 지금 시간 돼?”

-시간은 되지. 왜?

“잠시 얼굴 보자고.”

-바쁘신 오빠가 웬일이야?

“바빠도 동생은 챙겨야지.”

-퍽이나!

“하하하. 내가 그리로 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시간 많이 못 빼.

“어련하실까.”

-시간 가는데 안 움직여?

“벌써 움직이고 있습니다요. 그럼 잠시 후에 봐.”

-알았어.

김소연은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워낙 서로 바빠 교류가 없다보니 남매 사이가 아무래도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런 것이지 속으로는 서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애인 생기더니 그래도 많이 부드러워졌네.”

누가 보면 싸운 줄 알만큼 김소연의 목소리가 차가웠는데, 그게 좋아진 거라니.

대체 지금까지는 얼마나 냉랭했단 말인가.

김명국은 동생의 변화가 기분 좋은지 즐거운 미소를 짓고는 K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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