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
레벨이 갑이다
302화
같은 말을 해도 경험자인지 비경험자인지에 따라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마치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말을 하더라도 진짜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놓치는 것들이 있는데, 잘 들어 보면 구분이 가능하다.
완벽하게 정보를 얻어서 진짜처럼 꾸민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잘 잡아 내지 못하지만 이서우는 그 속에 과장이 담겼는지, 아니면 거짓이 담겼는지를 구분할 수 있었다.
어떤 정교한 거짓말 탐지기보다 더 거짓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느껴진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목소리에서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서우의 생각은 정확했고, 사내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여겼는지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맞아. 난 실험을 관찰하는 사람인 동시에 참여한 사람이지.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어나더 월드의 완성을 자신할 수 없었기에 직접 참여하게 된 거고.”
“그럼 당신이…….”
“이야기가 모두 끝나면 알려 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밝히게 되네. 난 어나더 월드의 핵심 개발자 손규석. 잊힌 이름이지.”
“당신이 핵심 개발자라니, 하지만 내가 알던 얼굴과는 다른데…….”
“원래 얼굴은 당연히 숨겼지. 이 얼굴도 경호원들을 속이기 위해 잠시 바꾼 거고.”
“경호원들까지 믿지 못하는 건가?”
“못 믿지. 난 정 회장도 믿지 않아.”
“우리 할아버지를 왜 못 믿는다는 거지?”
“오랜 세월을 들여 이룬 기업이 큰 손해를 입으면 네 할아버지가 어떻게 할 것 같아?”
“그건…….”
손규석이 무슨 의도로 묻는지 잘 알기에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민후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1등 기업이 되기 위해 지금도 불철주야로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가 혹시라도 위기에 처한다면 분명 그의 할아버지가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회장의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글로벌사 지분을 무려 10퍼센트, 아니, 너에게 1퍼센트를 건넸으니 9퍼센트가 남았겠군. 지금 가치로만 봐도 10조가 넘어. 그게 반 토막 나는 걸 과연 정 회장이 보고 있을까? 잘만 관리하면 2배 이상도 뻥튀기 되는데 말이야.”
“…….”
이번에도 정민후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당신의 목적은 뉴 월드를 몰락시키는 건가? 그런 거라면 난 당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어.”
“내가 원하는 건 뉴 월드의 몰락이 아니라 안재훈의 몰락이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사에 여러 큰 손들이 관여를 하면서 그게 좀처럼 쉽지 않게 됐다는 게 문제고.”
“뉴 월드의 몰락이 아니라 안재훈의 몰락이라…….”
이서우는 이번 해킹 사건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안재훈이 이번 일과 연관이 있다고 확신했기에 그로서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도대로 움직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찾아온 거고.”
“당신도 안재훈이 해킹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는 거군.”
“당연하지. 그놈이 이번 일의 배후야. 뉴 월드를 지키기 위해 네 기록을 저지하려 했던 거지.”
“물증이 있나?”
“물증은 이번 일을 하다 보면 얻게 될 거야. 나 혼자 힘으로는 그렇게까지 많은 걸 해낼 수 없어. 만약 그랬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너희들을 찾지 않았겠지.”
“그것도 그러네.”
이서우는 홀로 남은 손규석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물증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굳이 물증을 얻지 않아도 돼. 네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안재훈이 주식을 모두 처분해야 할 상황만 만들어도 놈은 알아서 물러날 거야. 그때 네가 뉴 월드를 인수하면 게임 오버지.”
“그게 그리 쉽게 될 일인가?”
“놈은 글로벌사를 계속 운영해 갈 생각이 없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버린다는 뜻인가?”
“24시간 게임을 해야 할 때가 올 걸 놈도 알았을 거야. 한데, 24시간 게임을 진행하면 분명 부작용이 와. 그걸 알고서도 오픈을 했다는 것만 봐도 추측을 할 수 있지 않겠어?”
“그것도 그렇군.”
손규석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안재훈의 행동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부작용이 모두 해소될 때까지 제한 시간을 두고 그걸 완벽하게 해결했을 때 24시간 접속이 가능하게 해도 될 텐데?”
“물론 그래도 되지. 하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으로 알아. 20시간 정도는 부작용이 거의 없지만 그 이상은 돌연변이의 가능성이 분명히 있어.”
“실험 내용을 봤으니 당신 말이 어느 정도 신뢰는 가지만 당장 완전히 믿기는 힘들 것 같군.”
“그건 나도 이해해. 하지만 안재훈이 네가 한 일은 변하지 않아. 그걸 도화선으로 놈을 압박하면 분명 허점을 보이게 될 거야.”
이서우도 안재훈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1차로 주식을 1퍼센트 가져와서 싸움에서 약간 앞서나가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손규석이 나타났다. 이서우로서는 전혀 해가 될 게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를 하면 당신이 핵심 개발자고, 어나더 월드가 문제 있다는 것을 알고 중단을 하자고 주장을 했다는 거지?”
“그렇지. 하지만 내 의견이 무시되고 계속 실험을 강행했고 결국 DNA의 변형이 발생했고, 식물인간이 되는 사태까지 간 거지. 그때서야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지만 영상에서 봤든 그놈이 계속 실험을 강행했고, 그때 마침 안재훈이 나타나 재정이 뒷받침되면서 뉴 월드가 탄생했지.”
“당신은 홀로 신분을 감춘 채 복수할 날만 기다린 거고.”
“이를 테면 그런 거지.”
“복수, 나도 그 감정이 어떤 건지 알아. 그러니 당신 말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고. 하지만 당신의 복수가 완벽하게 이뤄지려면 나나 민후가 깨어나야 돼.”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할까 했었는데 잘 지적했어. 내가 비록 핵심 개발자에서 물러났지만 그냥 그렇게 물러날 수는 없었지. 나만의 접속 코드를 만든 뒤 조용히 사라졌어. 그리고 어나더 월드에 몰래 잠입해 살펴보았지.”
손규석은 목이 마른지 차를 한 잔 마시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빠져나가지 못한 몇 명이 여전히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고 난 많은 갈등을 했어. 직접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해 볼까 했는데 포기했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을 누가 쉽게 수락하겠어.”
“아마 그때 그 이야기를 했다면 전혀 먹히지 않았을 거야.”
“맞아.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잊고 지냈는데, 네가 뱀파이어 로드를 잡으러 갔다는 걸 알게 되었지.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더군.”
“주변에 누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못 느꼈는데…….”
“당연히 느낄 수 없지. 난 일반 유저와는 전혀 다른 존재니까. 어쨌든 난 결정을 내려야만 했어. 너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던 바를 실행할지를 말이야.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솔직히 어느 세월에 네게 동의를 구하겠어. 안 그래?”
“그래서?”
“그래서 강제로 널 하이 레벨로 진화를 시켰지.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죽으면 진화한다는 조건을 걸어 버려서 다행히 시스템을 속일 수 있었던 거고.”
“하이 레벨이 된 게 당신 때문이라고?”
“그래. 물론 난 그저 확률만 높여 준 거야. 네가 깨어날 확률만.”
“하지만 어떻게 하이 레벨이 된 것만으로도 내가 깨어날 수 있었던 거지?”
“말했잖아. 부작용. 넌 좋은 쪽으로 그게 작용하고 있다고. 그때도 마찬가지였어. 단지 네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앞서도 말했지만 세상에 우연은 없어.”
이서우는 그제야 자신이 왜 뉴 월드에서 시작하자마자 하이 레벨이 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단지 우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손규석이 개입했을 줄이야.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손규석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저자의 말, 믿을 수 있는 건가.’
이서우의 눈빛에 갈등이 서렸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그가 한 모든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서우가 갈등하고 있던 그 순간, 정민후가 끼어들었다.
“서우는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내게는 왜 그렇게 늦게 찾아온 거지? 조금 더 일찍 와서 하이 레벨로 진화시킬 수 있었잖아.”
“그건 네 성격 때문이야.”
“내 성격?”
“네가 좀 많이 괴짜 노릇을 했잖아. 그 상태에서 빨리 하이 레벨에 올랐으면 아마 주변 일대가 시끄러워졌을걸? 그러면 분명 안재훈이 주목을 했겠지. 이서우가 초월 레벨에 도달하고, 하늘의 도시에 대해 알아야만 너에게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
“그랬군.”
과거 자신의 성격을 떠올리니 손규석의 말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 당시 하이 레벨이 되었다면 정민후는 단기간에 힘을 키워 통치자들을 싹 쓸어 버렸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이서우도 정민후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니 납득이 되었다.
‘정민후를 깨우면서 난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저 사람이 개입해서 그렇게 된 거란 말인가.’
정민후를 하이 레벨 전직으로 만든 것도 그렇고, 이서우만 아는 뱀파이어 로드와의 상황도 그렇고, 모든 것이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쓸데없는 자존심 내세우기밖에 되지 않는다.
손규석이라는 사람 자체를 믿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늦었지만 고맙습니다. 살려 주셔서.”
“이거 갑자기 왜 이래. 닭살스럽게.”
“인간이 금수와 다른 건 은혜를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하던 대로 해. 어차피 나를 위해 한 일이니.”
“당신을 위해 한 일이든 나를 위해 한 일이든 어쨌든 결과는 당신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정서상 연장자에게 말을 막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니 그냥 이렇게 하겠습니다.”
손규석이 적일 수도 있다고 여겨 까칠하게 대했지만 어찌되었든 생명의 은인은 틀림없는 사실이기에 예의를 지켰다.
정민후도 살짝 이서우의 눈치를 보더니 동참했다.
“둘 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나로서도 환영할 일이긴 한데. 눈에 불을 켜고 죽일 듯 노려보다가 갑자기 이러니 적응이 안 돼서 말이야.”
“우리를 적대시 한다면 언제든 그 눈빛을 보게 될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희들과는 아무 원한도 없으니까. 오히려 책임감을 느끼지.”
“이제는 그런 책임감은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좋겠다. 영상을 봐서 알겠지만 쉽게 떨쳐지지가 않아. 그나마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은 깨울 수라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손규석은 후회가 가득 담긴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몇 명이 희생을 당했는지 손규석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희생되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고 보니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했는데, 모두가 다 저희들처럼 깨어날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민후도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될 거라는 뉘앙스를 보였는데, 그건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
“둘 다 회복 속도가 비슷해. 변화 진행도가 비슷하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서우의 경우처럼 민후도 그리될 거라 추측한 거고.”
“그러면 아직 모른다는 뜻이네요?”
“그렇지. 하지만 지금처럼만 재활 훈련에 힘쓰면 6개월 이후부터 확실히 알 수 있을 거야. 뉴 월드를 꾸준히 해야 되는 건 당연하고.”
“뉴 월드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변화의 진행을 유지시켜 주니까. 100일을 꾸준히 먹어야 효과를 보는 약이 있는데, 30일만 먹고 중단하면 소용이 없잖아. 그런 맥락이야. 서우는 알 텐데?”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굳이 뉴 월드를 접속하지 않아도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어서 의아하게 여겼는데, 그런 비밀이 있었군요.”
“그런 거야. 궤도에 오르면 상관없지만 그 전까지는 꾸준히 뉴 월드에 접속해야 해. 하지만 좋지 않은 쪽으로 변화가 진행되는 사람은 오히려 뉴 월드를 피해야 해.”
“그것도 우리의 경우와 같은 맥락이겠군요.”
“그렇지. 뉴 월드에 접속하면 좋지 않은 쪽으로 변화가 계속 진행되어서 어느 순간 변화가 일어나 버려.”
“그러면 경고를 해야 하지 않나요?”
“증거가 없어. 이 영상을 들이민다고 해서 믿어 줄 사람도 없고.”
“하긴 모함을 하려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겠군요.”
이서우가 경찰이라도 영상을 보면서 콧방귀를 뀔 것 같았다. 뉴 월드를 한다고 괴물이 된다니. 괜히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 정신병원에 끌려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안재훈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면서 유저들을 폭발적으로 늘이려 할 거야. 무한의 탑도 그렇고, 이번 대규모 패치도 그렇고. 경쟁 구도를 더 극대화해서 세력이 나눠지게 부추기겠지. 그것도 모르고 유저들은 상대를 꺾기 위해 뉴 월드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호소할 거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중국과 인도에 뒤늦게 오픈한 게 탁월한 선택이었네요.”
“그걸 노리고 두 나라에서 늦게 시작한 거야. 랜덤도 아니고 하이 레벨 지역에서만 할 수 있도록. 아마 이번 패치가 진행되고 올해 안에 이용자 숫자가 20억에 육박하게 될 거야.”
“그렇게나 빨리 이용자가 는다고요?”
“중국과 인도의 인구만 합쳐도 30억이 넘어. 네가 없다면 여유를 부리겠지만 너 하나 때문이라도 중국과 인도는 계속해서 인원을 늘여 가려고 할걸? 특히 대형 길드가 적극적으로 나설 테니 그에 대한 대비도 확실히 하는 게 좋아.”
“인원이 늘어나는 걸 걱정하는 이유는 단지 부작용 때문인가요?”
“그게 가장 크지. 안재훈은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영상에 나온 놈이 숨기는 게 있거든. 아마 그리 오래지 않은 미래에 조금씩 문제가 터질 거야. 언제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흠.”
이서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멀쩡한 사람이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과정을 직접 확인했으니 당장이라도 뉴 월드를 중단하라고 방송에 떠들고 싶었는데, 그래 봐야 이서우만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뿐이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전부였다.
“내 추측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이야. 그자가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게 뭔지는 나도 정확하게 모르니 다른 것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 하지만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해.”
“최악의 상황이라는 건…….”
“다수의 사람들이 괴물로 변이가 되는 상황이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있어.”
“그것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있다고요?”
“그래. 안재훈이 그걸 은폐하려는 시도야. 녀석이 뉴 월드를 키우려는 것도 다 지저분한 흔적을 효과적으로 지우기 위해서니까.”
“돈을 거머쥐고, 영향력을 행사해서 더러운 과거를 지운다?”
“그래.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지?”
“많이 봤죠. 이놈의 나라에서.”
“전 할아버지를 설득해볼게요.”
“아냐. 괜히 섣불리 나서지 마. 네가 그런 행동을 하면 안재훈이 분명 알아차릴 거야. 그러니 그냥 평소대로 해.”
“……네.”
정민후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네. 이거 받아. 너희들이 착용한 거랑 똑같은 거지만 보안이 완벽하게 돼 있는 거야. 내게 연락을 하고 싶으면 ‘아저씨’라는 명령어를 쓰면 돼.”
“아저씨라. 꾀죄죄한 모습이 어디 다리 밑에서 노숙하는 아저씨 같은데요? 그냥 형이라고 할게요.”
“하하하, 꾀죄죄라. 한때는 그랬지. 뭐, 형이라고 불러 준다면야 나야 좋지만.”
“네. 그럼 또 연락드리죠.”
“그래. 당분간 만나는 건 힘들 거야. 왜 그런지는 알 테니 이해해 달라고.”
“다음에, 상황이 괜찮아지면 꼭 한 번 제대로 된 곳에서 식사를 했으면 좋겠네요.”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에서 그러는 거라면 굳이 안 그래도 돼. 내가 바라는 건 오직 안재훈의 몰락뿐이야.”
“아무튼 몸조심하세요. 그럼 저희는 이만.”
손규석의 말처럼 하염없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이서우와 정민후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였다.
-주인님, 레드 코듭니다.
“뭐? 레드 코드?”
-네. 주인님.
“이런 빌어먹을!”
“대체 레드 코드가 뭔데 그렇게 놀라시는 거죠?”
“그건…….”
손규석의 말이 이어졌고, 이서우와 정민후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