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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303화 (303/341)

# 303

레벨이 갑이다

303화

“은밀히 숨어 있는 동안 난 세계 곳곳에 자동 시스템을 만들어 뒀어.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서 몇 군데 시스템을 갖춰 뒀지. 숨어 있는 상황이 아니면 골드라도 많이 팔아서 충당했겠지만 불가능해서 많이 힘들었지.”

“그렇게까지 해서 뭘 하시려고…….”

“돌연변이를 찾기 위해서 그런 거야. 요즘은 모든 게 온라인으로 다 이뤄지니까. 누군가가 돌연변이에 대해 언급을 한 걸 찾으면 레드 코드가 뜨지.”

“그럼 변이가 진행된 사람이 나타났다는 겁니까?”

“확신할 수는 없어. 의심이 가는 사람만 있어도 레드 코드를 발동하도록 했으니까.”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확인하죠?”

“그건 내가 확인할 테니 너희들은 평상시처럼 생활해.”

이서우와 정민후는 평상시처럼 행동해야 손규석이 안전하다.

이서우도 그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평상시대로 행동하겠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자금은 제가 대죠.”

“자금의 흐름이 드러날 텐데?”

“내 돈 내가 쓴다는 데 누가 뭐라고 할까요.”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냐. 이런저런 사업을 확장해 가는 건 알지만 회사 돈을 함부로 쓰는 건 좋지 않아.”

“법인화하지 않았으니 회사 돈은 아니죠.”

“뭐? 법인을 안 만들었다고?”

“네.”

“헐.”

“저에 대해 모든 걸 다 안다는 분이 그건 조사 안 했나 보네요?”

“조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 그렇게 사업을 확장해 가는데, 당연히 법인을 만들었을 줄 알았지. 누가 세금 폭탄을 맞으며 개인사업자를 유지하겠어.”

“저요.”

“그, 그러게. 특이한 성격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내 돈 내 맘대로 못 쓰는 것보다는 그냥 세금 내고 마음대로 쓰는 게 좋거든요. 법인이 되면 괜히 감시받는 것 같아서 싫었고.”

“뉴 월드로 얻는 수익이 많아서 세금은 그나마 덜 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업으로 꽤 많은 수익을 내니 세금 많이 나갈 텐데 역시 생각이 남달라.”

“내 돈인데도 꼼수 써 가면서 쓰기는 싫으니까요.”

“그러면 자금 문제는 해결되겠네.”

“세상에 공짜가 없는 건 아시죠?”

“나 빈털터리인데?”

“민후에게 세 가지 부탁 들어 달라는 요구를 하신 것 같은데, 저도 똑같은 조건을 걸죠. 뭘 원하든 세 가지를 들어 주셔야 해요.”

“난 뭘 원하든이라는 조건은 안 달았는데?”

“업그레이드판이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해 줄 수 없는 걸 시키면 나도 감당 못 해.”

“그건 걱정 마세요.”

이서우의 미소에 손규석은 흠칫 몸을 떨었다. 대체 뭘 시키려고 저렇게 음흉한 미소를 짓는 것일까.

하지만 고민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참, 설아에게는 이번 일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흠, 당분간은 말을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말을 해야 뉴 월드를 되도록 적게 하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죠.”

“그렇게 되면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말해야 할 텐데?”

“아니에요. 친구들을 어차피 회사에 소속이 되어 있으니 일을 시키면 돼요. 소연 누나도 그러면 되고요. 박 대표님이야 어차피 뉴 월드를 그리 많이 하지 않으니 상관없죠.”

“흠.”

손규석은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이번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고민하던 그에게 이서우가 쐐기를 박는 말을 했다.

“어차피 안재훈은 저를 적대시하고 있어요. 이번 만남을 통해 그건 확인되었죠. 설아는 저와 언제나 함께이니 그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할 거예요. 단지 연인과 함께 자신을 적대하는 줄로만 알겠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철저히 비밀을 지켜야 해.”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하긴, 죽음까지 서로 공유한 사이니 배신하는 일은 없겠지.”

이서우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며 끈끈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 돈이나 가족의 안전으로 협박을 당하는 경우라면 위험하겠지만 이설아는 돈으로 매수 당할 만큼 가난하지 않았다.

그녀의 오빠인 이민준이 살짝 걱정은 되지만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한 관계여서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았다.

“여기 1천억이 담긴 카드예요. 일단 급한 대로 쓰세요.”

“화끈하네.”

“화끈하게 대가를 받아 챙길 테니 너무 좋아하지는 마세요.”

이서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손해를 본 적이 없었다.

거저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서우가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손규석도 그 점을 아는지 이서우의 말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차, 그리고…….”

손규석은 몇 가지 당부를 했는데, 금세 끝난다던 말은 10분이나 이어졌다.

서서 듣고 있는데도 워낙 중요한 이야기여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손규석의 말이 끝나고서야 두 사람은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대화가 끝나고 손규석이 손짓을 하자 투명막이 천장으로 올라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괜찮아요.”

“괜찮으니 어서 돌아가죠.”

“네.”

이서우의 경호원과 정민후의 경호원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얼른 다가와 안위부터 살폈다.

다행히 두 사람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자 경호원은 손규석을 힐끗 째려보고는 그들을 데리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나간 뒤 손규석은 홀로 남았다. 한데, 마치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곳도 폐쇄할 때가 됐네. 서영아, 이곳을 폐쇄해 줘. 흔적을 깔끔하게 지워야 돼.”

“네, 주인님.”

“둘만 있을 때는 오빠라고 하라니까 그러네.”

“네, 오빠.”

손규석은 쓸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건물을 빠져나갔다.

손서영. 손규석의 하나뿐인 동생으로 그녀 역시 어나더 월드 테스터였고,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손규석은 동생을 막지 못한 것을 늘 후회했지만, 그녀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이후 손규석은 자신의 동생을 잊지 못 하고 목소리를 본떠 시스템을 만들었다.

‘서영아, 이제 네 복수를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어. 든든한 조력자를 구했거든.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건물을 빠져나간 손규석은 홀연히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별 탈 없이 정민후를 데려다 준 이서우는 곧장 K사로 돌아왔다.

이서우는 이설아를 불러 은밀히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설아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서우는 그녀가 차분히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오, 오빠. 오빠에게는 별 문제가 없는 거지?”

“난 괜찮아.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 거여서 문제는 없어. 하지만 악성종양처럼 부작용이 안좋은 쪽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이 문제야. 크게 문제는 없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당분간은 방송용으로만 접속하고, 시간을 좀 줄이도록 해.”

“알았어, 오빠!”

“누나한테는 일단 말하지 말고, 패치도 되고 세력도 나눠지니 정보 많이 부탁해.”

“응. 그럴게. 종명이 오빠나 민수 오빠한테도 부탁하면 접속 시간은 많이 줄일 수 있을 거야.”

“그래. 부탁할게.”

“근데, 오빠. 그 사람 진짜 믿을 수 있는 거야?”

“앞뒤가 너무 딱딱 잘 맞아떨어져. 민후를 깨우는 시도를 해 보지 않았다면 아마 믿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직접 경험까지 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을 것 같아.”

“그건 그렇지만.”

“영상까지 본 마당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어. 부작용이 심각하지 않을 거라 믿어야지.”

“생각할수록 열받아. 24시간 풀 접속을 가능하게 한 것도 그럼 엄청 위험한 거잖아.”

“안재훈은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인간이야. 겉으로는 양의 탈을 쓰고 있지만 늑대나 다름없어. 더욱 조심해야 돼.”

“응, 오빠!”

아예 뉴 월드에 접속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안재훈이 이상하게 여길 수가 있어 하는 수 없이 접속 시간을 조금씩 줄여 가라고 부탁했다.

갑자기 확 줄이면 의심할 테니 방송을 핑계로 천천히 줄인다면 안재훈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서우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이설아여서 그의 부탁대로 수긍했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머릿속으로 착착 그려가고 있었다.

“오빤 뉴 월드 접속할 거지?”

“응. 접속해야지. 넌?”

“난 정리를 좀 할 게 있어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마.”

“응. 난 오빠가 있는데 뭘. 혼자 복잡하게 생각 안 해.”

“그래. 잘 안 풀리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응!”

이서우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강해져서 손규석의 말을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이설아는 그렇지 않았다.

이서우를 전적으로 믿지만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뉴 월드에 접속한 이서우는 곧장 가장 외딴 도시의 저택으로 갔다.

예순여덟 곳에 쌍둥이 빌딩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거기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이서우의 저택이 있었다.

처음에는 빌딩 근처에 저택을 지을까도 했지만 유동인구가 급격히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한적한 곳에 지었다.

“늦었군.”

“일찍 오셨군요.”

“딱히 할 일이 없거든. 연인에게는 잘 설명했나?”

“네. 아무래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더군요.”

“그렇겠지. 너와는 다르니까.”

“어차피 같은 인간인데요 뭘.”

“그건 그래. 단지 넌 조금 더 앞선 인간이라고 해야겠지. 최종 진화형의 인간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말하면 제가 무슨 최종 병기같은 느낌이잖습니까.”

“아마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알았으면 최종 병기로 썼을 걸?”

“모르는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하나요?”

“지금은 그렇지.”

이서우의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바로 손규석이었다.

그는 이서우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 뉴 월드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이서우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어 수락했고, 약속장소는 직접 정하겠다고 해서 여기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한데, 따로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요?”

“정민후는 당분간 재활 훈련을 해야 되니 바쁠 거야. 중요한 일은 네가 대부분 맡아야 해.”

“부담 백배인데요?”

“뭐, 딱히 부담 가질 것도 없어. 네가 해 온 대로만 하면 되니까. 솔직히 지금까지 생각 이상으로 잘해 줘서 따로 부탁할 것도 없어.”

“그런데 제 중요한 시간을 뺏은 겁니까?”

“따로 부탁할 건 없지만 한 가지 말해 줘야 할 게 있어서 말이야.”

“또 뭔가 있나요?”

“있지. 네가 꼭 알아야 하는 일.”

“뭐죠?”

“네가 펠렌의 후예가 된 것도 사실은 그냥 된 게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싶었어. 펠렌을 찾는 여정을 계속해야 할 테니 왜 그래야 하는지 알아야지 않겠어?”

“설마 그것마저도 아저씨와 연관이 있다는 건가요?”

“그래. 내가 바로 펠렌이거든.”

“헉! 뭐, 뭐라고요!”

이서우는 너무 놀라서 그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들을 사람은 없지만, 이서우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평정심을 유지하지는 못하나 보네. 수련을 더 해야겠어.”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마시고요. 진짜 펠렌이신 거예요?”

“그래. 내가 펠렌이야. 물론 너에게 힘을 남긴 펠렌은 내가 아냐.”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말하자면 난 초대 펠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내가 딱히 직접적으로 손을 쓴 건 없었어. 네가 하이 레벨이 되는 순간 넌 펠렌의 후예가 될 운명이었으니까.”

“운명이라. 참, 묘하네요.”

“묘하지. 어나더 월드 테스트부터 지금까지 이 모든 게 다 마치 잘 짜인 것처럼 진행되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모든 게 네 의지로 이뤄진 일이야. 솔직히 변수가 너무 많아서 난 네가 지금의 위치까지 오지 못할 줄 알았거든.”

“그래서 제게 접근하는 시기가 길어진 건가 보죠?”

“아니라고는 못하겠네. 그렇다고 널 무시해서 그런 건 아냐. 내가 원하는 경지까지 오지 못했다면 널 만나 봐야 소용이 없었을 거야. 실패 확률이 높은데 괜히 나타나서 너에게 고민만 안겨 주는 건 잔인하잖아. 안 그래?”

이서우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처럼 걸을 능력도 되지 않는데 같이 뛰자고 제안하는 건 상대에게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다.

“여튼 변수가 정말 너무 많았어. 나라면 아마 해내지 못했을 거야. 네가 강한 의지가 있었으니 모든 난관을 뚫고 지금에 이른 거고.”

“원래 힘든 일을 잘 이겨내고 나서 뒤돌아보면 내가 저걸 어떻게 했나 몰라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거죠 뭐.”

“너의 그런 긍정적인 면이 아마 이곳까지 오는 큰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해.”

칭찬을 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겉으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근데, 그 말을 해 주려고 절 보자고 한 거예요?”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펠렌이라는 사실이 덤이고, 지금 꺼내놓을 말이 진짜 본래의 목적 같은데요?”

“하여튼 눈치는 빠르다니까.”

“이제는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놀랍지가 않으니 속 시원하게 말씀해 보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규석의 말이 이어지자 이서우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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