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307화 (307/341)

# 307

레벨이 갑이다

307화

“당신이 무슨 일이지?”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들어서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도울 일이 없을까 하고 연락한 거지.

“돕는다고, 날?”

-그래. 아무리 네가 강해도 혼자서는 힘든 법이잖아. 다른 뜻은 없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지낼 곳이 필요하면 거기서 얻은 땅보다 몇 배 더 많이 줄 수 있으니까.

“말은 고맙지만 혼자 해결할 수 있어.”

-설마 혼자서 카이젠 제국과 전쟁을 하려는 건 아니지?

“왜 아니겠어.”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것 같군.

“오랜만에 짜릿한 경험이 될 것 같아서 난 오히려 기대가 되는데?”

-하여튼 특이한 녀석이라니까. 여튼, 통신구는 열어 놓을 테니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마음만 고맙게 받도록 하지.”

-그래. 조심하고. 언제 한 번 술이나 한잔하자고.

“그러지.”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통신을 종료했다.

술을 마실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을 주겠다고 하니 이서우도 마음이 열렸다.

이서우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바로 엘사둔 제국의 새로운 황제 반다이젠이었다.

후작이었던 그는 황위를 계승할 존재가 사라지자 제국을 정비하며 그가 직접 황제에 올랐다.

귀족들의 반발은 없었다. 타이탄을 타고 있는 그를 누가 반대한단 말인가.

“응?”

반다이젠 후작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데, 통신구가 다시 신호를 알려 왔다.

“오랜만이네요.”

-그러네. 소식은 들었지?

“네. 아주 잘 들었죠.”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황제의 의지가 확고한가 보네요.”

-그래. 네이센 백작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더라고.

“가짜 증거 말이군요?”

-그래. 가짜 증거지. 하지만 나조차도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가짜라는 게 문제야. 그러니 황제께서도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거지.

“하늘의 도시에 대해 그다지도 골이 깊은 줄은 몰랐네요.”

-그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도 있나요?”

-있지. 두 번째는 네가 하이 레벨 지역의 땅을 얻어 나라를 세우려 한다는 거야.

“네에?”

이서우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목소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본인은 그런 의지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소문이 났단 말인가.

이서우는 길드를 관리하는 것도 귀찮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두고 사냥에 집중했다. 그러니 나라를 세운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네가 하이 레벨 지역에서도 꽤 안쪽 지역인 통치자 영역? 여튼 거기에 땅을 얻었다는 걸 네이센 백작이 알아냈어.

“허! 그놈이 그것까지 알아냈나 보네요.”

-정말 거기 땅을 차지한 거야?

“네. 내기에서 이겨서 얻은 땅이긴 하지만 제 땅이긴 하죠.”

-내기로 그 엄청난 크기의 땅을 얻었다고?

“내기로 얻은 것도 있고, 제 손으로 얻은 것도 있긴 해요.”

-대단하네. 거긴 나나 아리아가 힘을 합쳐도 못 들어가는 곳인데. 설마 통치자까지 죽인 거야?

“네. 전 절 방해하는 건 누구든 가만 안 두거든요.”

-섬뜩하네.

“그게 살아남는 길이잖아요.”

-그럼.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부딪치게 되겠다.

“어쩔 수 없죠. 되도록 제 앞에 나타나지 않으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그러고 싶은데, 그게 되겠어?

“힘들겠네요. 그럼 그냥 떠나 버리면 되잖아요.”

이서우는 정말로 몰디나나 아리아와 싸움을 하기 싫었다. 그들 덕분에 꽤 많은 이득도 얻었기에 적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많은 혜택을 누렸는데 위기의 순간에 우리만 도망갈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그렇죠. 쪽팔리는 일이죠.”

-그래. 진짜 개쪽팔리는 일이지.

이서우도 몰디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서 서로 피터지게 싸울 수도 있지만, 그들은 각자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기에 당당했다.

“반역죄는 엄히 다스리니 전쟁이 불가피하겠네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지금까지 나온 증거들은 널 반역죄로 지목하고 있어. 황제께서도 그렇게 결정을 내리시겠지. 너도 몸조심해.

“네, 아리아 님에게도 안부 전해 주세요.”

-그래. 아리아가 들으면 이 판국에 안부나 전한다고 난리를 치겠지만.

“하하하, 아리아 님의 아름다운 얼굴에 주름이 생길 걸 상상하니 재밌네요.”

-호호호, 나도 벌써 기대가 되네. 그럼 가 볼게.

“네.”

두 사람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전혀 전쟁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태평한 대화였다.

반역죄는 무섭게 다뤄진다. 가족들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이서우로서도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서우의 입가에는 점점 진한 미소가 번졌다.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몰라.’

이서우는 급히 접속을 종료했다.

종료하자마자 이설아를 찾았다.

한데, 휴게실에 박민수, 류종명, 김소연, 박대표가 다 모여 있었다.

“어라, 다들 함께 있었네.”

“오빠!”

심각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서우가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카이젠 제국 상황 때문에 모인 거지?”

“응. 그렇지 않아도 오빠가 나올 거라 생각해서 다들 모인 거야.”

“야, 근데 진짜 황제가 너 반역죄로 잡아들이려는 거 맞냐?”

“그렇게 될 것 같아.”

“대체 왜!”

박민수가 살짝 언성을 높였다. 그동안 카이젠 제국의 발전을 위해서 이서우만큼 애쓴 사람은 없었다.

한데, 왜 갑자기 반역죄로 잡아들인단 말인가.

“황제의 측근들에게 전해 듣기로는 네이센 백작 때문이라고 하네.”

“네이센 백작? 황제파 중에서도 꽤 영향력이 있다는 그 백작?”

“맞아.”

김소연은 모인 정보를 취합해서 정리하는 일을 하기에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네이센 백작은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인물이어서 이름 정도만 알 뿐 더 자세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

“네이센 백작의 밑에 안스트라다무스라는 자작이 있어. 내가 조사한 바로는 그가 바로 안재훈이야.”

“그 인간이!”

“안재훈 그 새끼가!”

“안 대표가?”

“진짜 안 대표가 그랬다고?”

“안 대표가 확실해?”

격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이설아와 김소연이었다.

하지만 박민수와 류종명은 안재훈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아 놀라는 분위기였고, 박 대표는 사업가답게 확실히 그가 맞는지부터 물었다.

“한 번 더 제대로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자작 중 모험가는 그가 유일하다는군요. 아마 개발자 버프나 대표 버프 제대로 받고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죠.”

이서우는 박 대표를 먼저 바라보고 말하고는 다른 친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서우의 말에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보통 개발자나 운영자, 임원진들에게는 특별히 부여되는 캐릭터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글로벌사 측에서는 그런 건 없다고 발표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번 일 때문에 그런 건가.”

“아마 그럴 거야. 아무튼 당분간은 다들 뉴 월드 접속을 자제했으면 해. 같은 길드라는 이유로 분명 가차 없이 칼을 휘두를 거야.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정상 궤도에 올릴 테니 협조 좀 해 줘.”

“뭐, 그럼 당분간 휴가라 생각하고 놀러 다녀야 하나?”

“넌 이 심각한 상황에 혼자 놀러갈 생각이 드냐?”

“혼자 아닌데, 유진이랑 같이 갈 거야.”

“얼씨구. 잘나셨습니다.”

박민수의 천하태평한 소리에 류종명이 핀잔을 주었다.

“아냐. 민수 말처럼 편하게 여행이라도 다녀와. 요즘 바빠서 제대로 휴식도 못 취했잖아. 이번 기회에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데이트도 좀 해. 누나도.”

“나까지?”

“어차피 배후가 누군지 밝혀졌으니 당분간은 싸울 일만 남았어. 제국을 상대로 하는 거라서 나 혼자가 편해.”

“너 혼자 제국을 상대하겠다고?”

“서우야,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박민수도, 박 대표도 불안한 기색이었지만 류종명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서우랑 같아. 오히려 혼자가 치고 빠지기도 좋고, 위기 상황에서 대응하기도 편할 거야.”

“나도 그게 낫다고 생각해. 어느 정도 실력 차가 나야 우리가 도움이 될 텐데, 지금은 서우 혼자가 확실히 편할 거야.”

류종명과 김소연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서 말했고, 이서우도 거기에 동조했다.

“일단 다들 그렇게 알고 돌아가서 길드원들을 다독여 줘.”

“알았어.”

“그건 우리에게 맡기고 전쟁 준비 잘해.”

“서우야, 홧팅!”

“나도 안재훈 대표에 대해 나름대로 좀 알아봐야겠네.”

이서우와 이설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휴게실을 나갔다.

사람들이 나가고 나자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오빠, 정말 혼자 괜찮겠어?”

“난 괜찮아. 이번 기회에 너도 좀 쉬어. 영상은 내가 보내줄 테니까.”

“알았어. 부작용에 대해 아직 드러난 게 없으니 긴 시간 같이 접속하자는 소리도 못하겠다니까.”

“차라리 잘됐지, 뭐. 방송 준비하면서 쉴 때 좀 쉬어. 요즘 너무 무리했어.”

“나도 그냥 아예 휴가를 가 버릴까?”

“혼자? 나 없이 심심할 텐데?”

“피. 그냥 해 본 소리야. 내가 오빠를 두고 어딜 가.”

이서우는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 이설아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참, 오빠. 김명국 과장님이 안 대표에 대해 알아낸 게 있어.”

“김 과장님이?”

“응. 꽤 흥미진진할 거야.”

이설아는 즉시 자료를 띄웠다.

영상이 흘러나왔고 오른쪽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쭉 적혀 있었다.

영상이 계속 될수록 이서우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거 완전 쓰레기네. 어떻게든 큰 거 한 방 터트려 보려고 글로벌 사를 삼킨 거나 다름없잖아.”

“지금 판단으로는 그래.”

“딱 봐도 그림이 나오네.”

자료에는 안재훈이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직접적인 이유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를 대충 끼워 맞춰도 그의 의도는 너무 선명히 보였다.

“근데 안 대표도 바보는 아니어서 이런 영상을 들이밀어 봐야 소용은 없을 거야.”

“그런 그렇지. 그냥 심증만 가지게 하는 거니까.”

심증만으로는 안재훈에게 절대 큰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도덕적으로 문제를 삼더라도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큰 영향을 발휘하기는 힘들었다. 안재훈도 그것을 알기에 여유를 부리는 것이리라.

“그럼 일단은 카이젠부터 처리할 거야?”

“그래야지. 설아는 대대적으로 광고부터 해. 제국과 전쟁을 벌일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야.”

“아직 전쟁이 벌어질 거라는 이야기는 없잖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일단 영상부터 미리 제작을 해 둬. 그래야 남들보다 먼저 쏘지.”

“응!”

광고 영상을 제작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미리 만들어 두면 이서우의 말처럼 남들보다 먼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이설아의 방송을 찾겠지만 인기가 있다고 지나치게 여유를 갖다가는 지금까지 이룬 것도 유지하지 못한 채 사람들의 관심을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이서우와 이설아는 항상 그것을 경계하고 초심을 유지하자며 다짐하곤 했다.

“참, 근데 오빠. 카이젠 제국과 싸울 방법은 있는 거지?”

“당연히 있지. 아주 간편한 방법이 있어. 그것도 두 가지나.”

“와, 두 가지나?”

“그래. 영상 기대하라고.”

“응!”

두 사람은 30분 정도를 더 대화하고는 헤어졌다.

이서우는 뉴 월드로, 이설아는 방송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뉴 월드에 접속하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이서우뿐만 아니라 모든 유저에게.

한데, 그 내용이 이서우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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