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309화 (309/341)

# 309

레벨이 갑이다

309화

“와, 저게 대체 몇 번째야? 전장의 지배자가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제국을 상대로……. 진짜 전생에 우주를 구했나, 어떻게 저렇게 운이 좋지? 저 운 절반만 내가 가졌어도 뉴 월드에서 이름 좀 날리는 건데.”

“네가? 아서라. 넌 운이 와도 그게 운인지도 모르잖아. 기회가 와도 모르는데, 운이 너한테 찾아가겠어.”

“야, 그래도 내가 너보다 낫거든?”

“웃기시네. 나보다 레벨도 낮은 주제에.”

“그래도 너보다는 아이템이 좋잖아. 레벨도 높은 주제에 대결하면 맨날 지면서 큰소리만 친다니까.”

“그건 내가 봐준 거고.”

호프집에서 유치하게 투닥거리는 20대 초반의 두 사내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안쪽에 자리를 잡고 홀로 맥주를 마시는 사내였는데,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시계를 슬쩍 쳐다보았다.

500cc짜리 잔을 다 비우자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가더니 맞은편에 앉았다.

“약속 시간 한번 칼이군요.”

“제가 좀 많이 바빠서 말이죠. 아, 물론 진천 씨도 바쁘시겠지만요. 한데, 왜 이런 허름한 곳에서 보자고 하셨나요?”

“그래서 더 이야기하기 편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불편하신가 봐요?”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진천이라 불린 사내는 베스트 길드의 마스터로 길드를 2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베스트 길드를 1등 길드가 되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쓴지 모른다.

그의 앞에 앉은 여성은 랭킹 3위로 명품 길드의 마스터인 최소라였다.

원래는 부마스터의 자리에 있다가 길드 마스터가 하이 레벨 지역에 대한 이권을 가져오지 못하자 그녀가 밀어내 버렸다.

겉보기에는 지켜줘야할 것처럼 연약해보이지만 뉴월드에서는 찬바람이 쌩쌩부는 여자였다.

“바쁘신 것 같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같이 카이젠을 삼킵시다.”

“어머, 그렇게 갑자기 들이대면 제가 당황스럽잖아요.”

“이미 그쪽도 그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요?”

“물론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스페셜 길드가 있다는 걸 잊으셨나요?”

“걔들은 하이 레벨 지역에만 몰빵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기회라는 걸 알 텐데요?”

“그렇긴 하지만…….”

“무한의 탑 입장이 가능한 지역 위주로 삼키면 통행료만 받아도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어요.”

“무한의 탑 입장에 통행료를 받을 생각인가요?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뉴 월드는 힘의 논리가 통하는 곳입니다. 설마 그걸 모르지는 않으실 테지요.”

“당연히 잘 알고 있죠. 하지만 통행료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데요?”

“거기에 있는 땅은 다 우리 차지가 될 테니 골드를 쓸어 담는 건 아무 문제없습니다.”

“지금까지 하신 말씀은 모두 전장의 지배자를 넘어야만 이룰 수 있다는 사실, 잘 알고 계시겠죠?”

최소라는 진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얼핏 보면 연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 같지만 반대였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함참 서로를 바라보더니 최소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시네요. 누가 보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줄 알겠네요. 혹시 전장의 지배자에 대한 대책은 세우지 않으신 건가요?”

“솔직히 저도 전장의 지배자를 이길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소라 씨를 찾은 거고요.”

“저라고 무슨 힘이 있겠어요. 저도 전장의 지배자는 감당하기 힘들어요.”

“압니다. 그래서 최대한 신속히 먹자는 겁니다.”

“카이젠 제국과 전쟁 중인 이 상황을 틈타 무한의 탑 입구가 있는 도시를 삼키자는 뜻이군요.”

“바로 그겁니다. 그걸 시작으로 조금씩 카이젠 제국을 삼킨다면 제국을 나눠 먹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전장의 지배자가 가만히 있을까요? 분명 전쟁이 끝나고 나면 우리에게 화살이 돌아올 거예요.”

“여론전을 펼쳐야죠.”

“여론전이라면…….”

진천의 제안에 최소라는 호기심을 보였다. 전장의 지배자는 도저히 넘을 자신이 없었지만 카이젠 제국을 삼키는 일도 욕심이 났다.

“전장의 지배자가 하이레벨 지역을 먹고 유저들에게 이익이 돌아간 게 있나요?”

“빌딩을 세워서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했죠.”

“모양새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가 모두 이득을 취했어요. 카이젠 제국도 마찬가지고요. 유저들이 얻은 혜택은 그저 조금의 ‘편리함’이었죠.”

“그래서요?”

“우리가 도시를 먹고 그 중 일부의 땅을 유저들에게 제공하는 거죠. 저렴하게 말이죠.”

“그러니까 유저들에게 혜택이 적극적으로 돌아간다는 걸 어필해서 명분을 만들겠다는 뜻이군요?”

“바로 그겁니다. 전장의 지배자가 관리를 하면 자신의 이익만 취하기 바쁘다는 걸 부각시키고, 우리는 모두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 충분히 먹힐 겁니다.”

“호호호,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씀이네요. 하지만 말이죠. 진천 씨는 전장의 지배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자존심이 상했는지 진천의 목소리가 곱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소라는 냉랭한 어투를 이어 갔다.

“벌써 혼자서 하이 레벨 입구로 가는 지역을 일곱 차례나 방어하고 있어요. 한 번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최소 20만이 넘는 인원이 투입되었고요. 그러면 단순 계산으로도 혼자서 150만 명 정도를 상대했다고 봐야겠죠. 한데, 그런 존재를 욕심 많은 인간으로 소문을 내자고요?”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모를 텐데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지금 헤븐 길드원들 대부분이 잠수인데 그가 어떻게 알까요.”

“정말 전장의 지배자를 너무 우습게 알고 계시네요. 욕심은 나지만 솔직히 전장의 지배자와 엮일 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그게 명품 길드의 최종 결정인가요?”

“네. 그래요. 아, 걱정은 마세요. 어디 가서 떠벌릴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러는 게 좋을 겁니다.”

“협박처럼 들리는군요?”

“협박이 아니라 충고죠.”

“뭐, 그럼 충고 잘 받도록 하죠. 아, 그리고 저도 충고 하나 할게요. 전장의 지배자와 적이 되는 순간, 베스트 길드는 무너질 거예요.”

“훗, 한 인간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모습이 참으로 우습군요. 뭐, 두고 봅시다. 나중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과연 명품 길드가 어떤 행동을 할지.”

“그러죠. 저도 궁금하네요.”

진천은 최소라가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결국 스페셜 길드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건가.”

진천은 헤라클레스가 무너진 틈을 타서 1위를 쟁취한 스페셜 길드를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와 마찬가지로, 욕심이 너무 많아서 함께 손을 잡고 일하기에는 꺼려지는 상대였다.

그나마 명품 길드가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서 그녀와 손을 잡으려 한 것인데, 매몰차게 거절을 했으니 그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뭐, 처음이니 조금 양보하는 척하는 수밖에. 힘만 얻으면 다시 빼앗아 올 수 있으니 지금은 양보하는 척 하자.”

진천은 맥주 500cc를 시켜 단숨에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쩝. 이거 처음 생각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네. 다들 기대를 하고 있으니 그냥 벗어날 수도 없고.”

이서우는 하이 레벨 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우뚝 서서 카이젠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벌써 일곱 번째 카이젠 제국의 병사들과 전투를 벌였다.

처음에는 10만 명 정도 몰려오더니 어느새 30만을 넘기고 있었다.

지금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병사들이 몰려와 무기를 든 채 이서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서우는 다시 10레벨을 올려 550레벨이 되었다.

레벨 업은 극악이었지만 1레벨당 장비의 능력치 증가폭이 하이 레벨보다 2배나 높았다.

그때 익숙한 얼굴이 이서우에게로 다가왔다.

“이만 끝내는 게 어때?”

“설마 또 저보고 항복하라는 겁니까?”

“아니. 그냥 이쯤에서 멈추자고.”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만. 솔직히 당장이라도 황제의 목을 따러 가고 싶은데, 사람들이 여기서 제가 얼마나 버티는지 그게 궁금하다고 해서 말뚝 박은 것처럼 머물러 있는 것뿐입니다.”

“정말 둘 중 하나가 끝장이 나야겠어?”

“몰디나 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

몰디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만약 그녀였다면 이서우처럼 이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적의 우두머리를 직접 찾아가 끝장을 냈을 것이다.

그녀가 침묵하자 곁에 있던 아리아가 나섰다.

“당신의 분노는 잘 알아요. 하지만 이래서는 둘 다 아무런 이득이 없어요.”

“이 길을 선택한 건 제가 아니라 황제입니다.”

“알아요. 그가 어리석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게 네이센이라는 자의 혀에서 나온 것이에요. 당신도 잘 아실 텐데요?”

황제가 어리석었다는 말을 할 때 몰디나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아무도 없는 줄은 알지만 아리아가 한 말은 반역죄에 해당해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아는 서슴없이 황제가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황제가 멍청했다는 걸 인정한 건 의외네요. 하지만 전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대로 전투가 계속되면 가장 즐거워할 사람이 누굴까요?”

“당연히 반다이젠이겠죠.”

“맞아요. 약해진 카이젠 제국을 침략하려 할 거예요. 그러면 서우 씨에게도 좋지 않을 텐데요?”

아리아는 이서우를 과거에 알던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이제 그는 한 사람의 독립된 존재로서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존재로 인정을 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음성에는 어떤 강압적인 느낌도,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도 전혀 없었다.

때로는 간절히 호소하는 목소리를 담기도 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이서우에게 매달리기도 했다.

멈췄던 엘사둔과의 전쟁까지 꺼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서우의 의지는 확고했다.

“저에게 안 좋을 게 뭐가 있나요. 이제 카이젠 제국은 더 이상 제 관심이 아닌데요.”

“하지만 하이 레벨 지역이 지금 전쟁터로 변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실 텐데요. 서우 씨가 속한 집단이 밀리고 있다는 것도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다시 얻으면 되는 땅이니까요.”

“설마 하이 레벨 전 지역과 카이젠 전 지역까지 탐을 내시는 건가요?”

“왜요? 저는 영토를 가지면 안 되나요?”

“그건…….”

아리아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평소 욕심을 잘 부리지 않아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그녀가 실수를 했다.

“너, 설마 대륙을 집어삼킬 생각인 거야?”

“못할 것도 없죠.”

“하지만 너 혼자 어떻게 감당하려고?”

“모험가들 사이에 그런 말이 있죠.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게 무슨 말이지?”

“땅을 제가 다 먹고 임대로 돌린다는 뜻이에요.”

“뭐? 이, 임대?”

몰디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 넓은 땅을 임대로 돌릴 생각을 하다니.

“아, 생각해 보니 카이젠 제국이 계속 머무는 조건으로 임대료를 지불하면 되겠네요. 제가 싸게 드릴 테니 한 번 상의를 해 보세요.”

“…….”

협상을 하려고 왔는데, 이서우는 마치 카이젠의 모든 땅을 다 삼킨 것 같이 행동했다.

처음 이서우를 반역자로 낙인 찍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흘러갈지 몰랐다.

한데, 이서우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이렇게까지 카이젠 제국을 몰아붙이지 못하는데, 한 명의 인간을 어쩌지 못해 제국이 곤란을 겪다니.

“전 더 이상 할 말 없습니다. 1분 뒤에 이곳에서 물러가지 않으면 바로 공격할 테니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그리고 황제와 잘 상의해 보시고요. 그럼 전 이만…….”

이서우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뒤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적을 앞에 두고도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몰디나와 아리아는 서로를 쳐다보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공격을 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몇 차례 부딪치면서 한 번도 공격을 제대로 성공시킨 적이 없어 망설여졌다.

이서우의 행동이 미끼라 생각한 두 사람은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새롭게 이곳의 지휘를 맡은 3번째 인물인 자크 후작에게 몇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이서우에 의해 공작 2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고민 끝에 황제는 이서우와 친분이 있는 자크 후작을 보냈다.

하지만 친분이고 뭐고 이서우는 적이라고 간주한 사람에게 예의를 지킬 맘이 없는지 더욱 잔인하게 병사들을 쓰러뜨렸다.

결국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판단해서 모든 전투를 멈추고 몰디나와 아리아에게 협상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자 이서우는 7차 전투와 마지막 대화를 이설아에게 보냈다.

편집을 거쳐 40분짜리 영상이 탄생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마지막 대화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이서우가 카이젠 황제에게 임대료를 받으려는 장면에서 탄성을 터트렸고, 일부는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이설아였다.

“호호호호, 역시 우리 오빠라니까. 어쩜 이런 생각을 다 했대.”

“너네 오빠라 좋겠다.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언니도 실컷 웃었으면서 뭘 그래.”

“그랬지. 봐도 봐도 웃겨서 혼났다. 근데, 서우 괜찮을까.”

“왜?”

“지금 엘사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하더라고.”

“카이젠의 병사가 많이 줄어든 틈에 쳐들어온다고?”

“그렇지. 그들로서도 기회잖아. 전쟁에 지고 돈까지 탈탈 털렸으니 노려 볼 만하잖아.”

“그건 그렇지. 뭐, 오빠가 알아서 잘하겠지.”

“하긴, 서우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하지만 항상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잖아.”

“에이, 괜찮을 거야.”

이설아는 별다른 염려를 하지 않았지만 김소연은 일이 너무 잘 풀려서 오히려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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