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311화 (311/341)

# 311

레벨이 갑이다

311화

“오랜만이군.”

“그러네. 오랜만이네.”

“무엄하다!”

“조용히 하지 못할까!”

“죄, 죄송합니다, 폐하.”

“분명 한마디도 하지 말라 일렀거늘! 다시 한 번 나선다면 돌려보내겠다.”

“네, 폐하.”

황궁기사단 단장이 얼른 허리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이거 미안하네. 자네에 대해 잘 모르는 자라 이해해 주게.”

“뭐, 누구나 한 번은 실수를 하는 거니까.”

“이해해 주니 고맙네.”

둘은 서로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저자세를 보이는데, 이제는 태도를 달리할 때가 된 건가.’

이서우는 그동안 반다이젠을 적으로 여겼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서 예의 따위도 차리지 않았다.

적에게 예의를 차리는 멍청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의자도 없는데, 황제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이거 갑자기 왜 이러나?”

“이젠 어차피 같이 부대끼고 살아야 하는데, 예의를 차릴 때도 됐죠.”

“허허허, 하긴, 그동안은 서로 적이었으니. 어쨌든 고맙네, 인정해 줘서.”

“이거 누가 들으면 제가 황제고, 황제께서 신하인 줄 알겠습니다.”

“하하하, 그런가?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이거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다. 그러다가 신하들 다 떠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일로 떠날 자들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겠지.”

“그도 그렇군요.”

천하를 호령하리라 여겼던 주군이 한 인간에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과연 어떤 신하가 보고 싶어 할까.

강자에게 머리를 숙일 수는 있지만 지금 반다이젠의 모습은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것을 좋아할 신하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다이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이서우가 제국의 병사를 동원해서 이길 수 있는 존재였다면 그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서우는 모든 제국의 병사들을 동원해서 이길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 존재는 드래곤이 유일하다.

드래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인간이 과연 있을까.

황제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드래곤이 나타나면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서우는 드래곤보다 강하다고 여겨지는 인간이니 드래곤을 대하듯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런 신하는 없는 게 나았다.

반다이젠 황제의 태도에 황궁기사단장과 부단장은 크게 놀랐다. 어찌 황제가 일개 모험가에게 이렇게도 저자세를 보인단 말인가.

‘신하들에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러셨군. 역시 생각이 깊단 말야.’

이서우는 반다이젠 황제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만약 이번 일로 황궁기사단장이 엉뚱한 생각을 품는다면 내치면 되고, 같은 마음이라면 어려운 일도 함께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면 된다.

엘사둔도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았고, 카이젠도 이제 막 정리가 되는 상황인데, 가장 측근인 황궁기사단장과 부단장이 의지를 확고히 하지 않는다면 황제가 피곤해진다.

‘이렇게 대우를 해 주니 나도 좀 거들어 볼까.’

기사단장과 부단장은 이서우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졌다. 황제의 호통에 화를 누르고 있지만 미약하게나마 살기를 담고 있었다.

이서우는 자신에게 살기를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지금까지 살기를 드러낸 자들을 응징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반다이젠 황제가 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이서우는 초월 가속을 이용해 단장과 부단장의 목을 움켜잡았다.

“컥!”

“큭!”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두 사람의 몸이 힘없이 붕 떴다.

“잘 들어. 내게 살기를 보이면 죽어. 그게 누구라도 말이야. 당신들의 주군이 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한 번이라도 심각하게 고민해 봤다면 감히 내게 살기를 드러내지는 않았을 거야. 딱 한 번만 기회를 준다. 다시 한 번 내게 살기를 드러내면…….”

“허억.”

“아아악!”

이서우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단장과 부단장은 극도의 공포를 경험했다.

이서우가 마나를 일으켜 그들의 몸을 헤집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털썩!

두 사람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공포가 어찌나 컸는지 한참 동안이나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잘했네. 그렇지 않아도 돌아가면 태형에 처할까 했는데, 자네가 수고를 덜어 주는구먼.”

“주군의 의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자들은 중책을 맡을 자격도 없죠.”

“맞는 말이네.”

반다이젠 황제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단장과 부단장을 바라보았다.

한심하다는 표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언뜻 보였다.

이서우는 인벤토리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꺼냈다.

“볼품없지만 이렇게라도 앉아서 대화를 하시죠.”

“고맙네.”

서로 마주 앉자 이제야 폼이 좀 났다.

“이제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보세. 카이젠 황제가 자네에게 한 약속부터 좀 들을 수 있을까?”

“황제께서도 기준점을 만드셔야 할 테니 참고 삼아 말씀드리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전 합당한 대가를 받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성격이라서요.”

“허허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속았다고 생각하면 나 또한 잠을 못 잔다네.”

“역시 대화가 통하는 분이시라나까요.”

이서우의 미소에 화답해 반다이젠 황제도 진한 미소를 지었다.

“하이레벨 지역을 제외하고 1년에 1억의 임대료를 제시하더군요.”

“허! 그런 말도 안 되는!”

반다이젠 후작은 기가 차는지 헛웃음만 지었다.

그의 반응에 이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그럼 황제께서는 어떤 답을 가져 오셨는지요.”

“임대료로 1년에 50억 골드를 주겠네. 하이레벨 지역도 자네가 다 가지게. 단, 입장료는 우리에게 주게. 또한 예전처럼 각 마을마나 병사를 배치하고, 주민들도 살도록 하겠네. 그래야 자네도 일꾼을 편하게 고용할 게 아닌가.”

“그 정도 챙겨주신다면 입장료는 드려야죠. 어차피 제가 관리하면 괜히 모험가들과 사이도 이상해지니 차라리 잘 됐네요.”

입장료 수익이 상당하지만 이서우가 그것을 관리하게 되면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가 있었다.

여론을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이서우로서는 어느 정도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NPC가 맡으면 유저들은 아무런 반발도 없이 입장료를 지불한다.

그러니 입장료는 넘겨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입장료 수입이 증가하면 그에 따른 이익분도 챙겨주겠네.”

“좋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알아서 챙겨주시니 저도 황제폐하의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아차, 병사 배치 문제는 조금 더 규모를 키우셔야 할 겁니다. 앞으로 마을이 더 커질 것이고, 공격도 많이 받게 될 테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구먼. 뭐, 우리야 좋은 일이지.”

“그리고 병사들을 배치하는 데 돈이 많이 들 테니 마을에서 나오는 수익의 1퍼센트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네.”

하이 레벨 지역에서 나오는 수익의 1퍼센트는 엄청나다. 전체 매출이 아니라 순수익에서 1퍼센트지만 그것만 해도 제국을 정비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이서우가 NPC를 동원하는 것은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다.

유저들에 비해 NPC들이 훨씬 깨끗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줄일 수 있어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이었다.

‘마을을 내 마음대로 꾸밀 수 있으니 조금 변형시키는 게 낫겠네.’

이서우의 머릿속에는 하이 레벨 지역의 변화도가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다.

“그럼 다른 요구 사항은 없나?”

“일단은 그 정도만 해도 되겠네요.”

“참, 하이 레벨 지역뿐 아니라 이쪽에도 자네의 땅이 있는 것으로 아네. 그곳도 그대로 돌려주겠네.”

“관리는 황제께서 해 주시는 거겠죠?”

“물론이네.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역시 화통하시다니까. 그럼 전 더 이상 요구 사항이 없습니다.”

“나도 만족하네. 혹시라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통신을 하게.”

“바쁘실 텐데 방해 안 해야죠. 그럼 멀리 안 나갑니다.”

“고맙네.”

황제는 이서우의 손을 덥석 잡고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엘사둔이 다 무너져 갈 때는 이서우를 크게 원망도 했었다. 하지만 전쟁이 그렇듯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카이젠을 삼켜 복수를 하겠다 다짐하며 정비에 힘썼다.

한데,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이서우가 기회를 주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고, 그리도 꿈꾸던 대륙의 통일을 이루어 냈다.

물론 아직 엘사둔의 정비도 필요하고, 아르곤 이남 지역도 남아 있지만 그것은 금세 해결될 문제였다.

반다이젠 황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 전 대륙에 선포되었다, 이서우가 하이 레벨 지역의 주인임을.

중국과 인도 연합에는 이 소식이 아직 전달되지 않았지만 기존의 유저들에는 빠르게 퍼져 나갔다.

소식을 전해 들은 유저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됐다는 반응도 많았다.

이서우가 버티고 있으면 안전이 보장되니 사냥을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틈에 이서우는 대대적인 정비 작업에 돌입했다.

이서우는 이번 일을 프랑드에게 맡겼다.

“그러니까 서우 님의 말씀은 작은 도시는 통합하거나 개척자 도시 이상으로 확장하자는 것이죠?”

“그렇죠. 앞으로 늘어날 유저들을 생각하면 미리 덩치를 키우는 게 낫죠.”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항상 쫓기는 듯 확장을 해서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개척자 도시 두 배 수준으로 하면 좋을 것 같네요. 어차피 텔레포트로 이동이 가능하니, 마을간 거리가 멀어도 괜찮을 겁니다.”

“아니면 중간에 텔레포트 이동이 가능하다도록 마법진만 따로 설치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네요.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규모는 100명 이상으로 해 주시면 될 것 같군요.”

이서우의 말에 프랑드는 의욕이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상만 해도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프랑드는 상인 왕이 되어 부자가 되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뉴월드를 시작했다.

한데, 지금은 상인 왕이 아니라 상인의 신을 넘보는 경지였다.

앞으로 걷게 될 꽃길을 생각하니 프랑드는 절로 신이 났다.

“하이 레벨 지역이 엄청난 곳이 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네요. 진즉 서우 씨가 소유했다면, 하는 아쉬움마저 드는데요?”

“하하하, 너무 띄워 주시면 우주 밖으로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런가요? 한데, 어쩌죠. 뉴 월드는 우주가 없는데 말이죠.”

프랑드의 아재 개그에도 이서우는 그저 즐거워 한동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각 도시별 계획을 수립하는 데는 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기존의 하이 레벨 중심도시인 개척자 도시를 수도로 정하고, 기존보다 3배 크기로 확장했다.

NPC들이 무려 10만 명이나 동원되어 마을 확장에 열을 올렸다.

수도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5곳의 대형 도시를 거기서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열다섯 곳, 그곳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서른 곳의 도시를 건설했다.

수도까지 포함해 총 예순한 곳이었는데, 규모가 엄청나서 수도는 무려 1천만 명을 넉넉히 수용할 수 있었고, 다른 곳들도 700만 명 이상 수용이 가능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짓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이서우가 너무 지나치게 확장하는 게 아닌가 염려를 했다.

하지만 도시가 커지고 시설이 좋아지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수도에만 10만 명의 일꾼이, 나머지 도시에도 각각 5만 명의 일꾼들이 몰리면서 도시를 활기를 띄었다.

이서우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중국과 인도 연합도 공격을 중단하고 각자 레벨을 올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뉴 월드에서 5개월이 지나자 하이 레벨 지역에 거대도시들이 하나씩 완성이 되었다.

현실이라면 10만 명 정도 살 곳을 만들기 위해서는 3년이 필요하다. 15년 전만 해도 족히 10년은 걸렸으니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뉴 월드에서는 그런 물리적인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5개월, 그러니까 현실 시간으로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1천만 명 수용 가능한 도시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엄청난 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

이제는 사냥을 하면서 힘들게 마을까지 뛰어갈 필요가 없었다. 10킬로미터 간격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되어 있어 이동이 편했다.

사냥터나 대도시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5킬로미터 간격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해 최대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용료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골드보다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유저들이 대부분이어서 텔레포트 마법진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도시도 엄청나게 바뀌어 있었다.

과거에는 다 단독주택이나 낮은 건물만 존재했지만 지금은 어느 도시를 가나 초고층 빌딩이 즐비했다.

가장 높은 빌딩은 300층으로 높이가 무려 1,000미터가 넘었다.

수도에는 그런 빌딩이 총 일곱 곳이나 있었는데, 가장 높은 곳은 1,200미터로 이서우가 사는 빌딩이었다.

헤븐 길드가 상주하는 곳이었는데, 컨트롤 타워 같은 곳이어서 각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관찰했고, 분쟁이 생기면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마법사를 대거 영입해 도시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도 만들었다.

주로 날아다는 것들이었는데, 자동차 모양도 있었고, 배, 각종 동물 모양도 있어 놀이동산에 온 듯한 기분도 낼 수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은 가격이 너무 비싸 급할 때가 아니라면 다들 날아다니는 이동수단을 이용했다.

이동 수단의 발달 덕분에 1천만 명이나 수용 가능한 도시에서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시간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편의 시설도 엄청났다. 초대형 장비 백화점, 초대형 소모품 아이템 백화점, 초대형 직업관련 백화점 등 한 곳에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그 규모가 초대형이라는 수식어답게 각각 100만 평이 넘었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직업 관련 백화점이었다.

워낙 직업이 많다 보니 직업 관련 백화점 안에는 매장만 수천 개가 되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초대형 복합 쇼핑몰이 수도에만 다섯 곳, 그 외 지역은 세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이 레벨 지역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도시로 변모했다.

그리고 드디어 사람들이 기다리던 날이 왔다. 바로 대규모 패치가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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