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
레벨이 갑이다
312화
하이 레벨 지역이 몰라보게 바뀌면서 이설아와 김소연, 그리고 이서우의 친구들은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모든 정보가 다 수도로 모이니 그들은 취합된 정보를 확인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도시 건설 계획을 세울 때는 몰랐는데, 이서우가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서우는 김소연의 보고서를 가져와 이설아와 휴게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쩝, 내가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네.”
“원래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법이잖아. 하지만 언니의 보고서에서도 봤다시피 오히려 오빠가 만든 도시 때문에 사람들의 연속 접속 시간이 줄었어.”
“할 게 많아지면 게임 시간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모든 걸 더 편하게 해 두면 할 것만 하고 종료하지 않을까?”
“흠.”
이서우가 생각지 못한 문제는 바로 유저들이 뉴 월드에서 접속 종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몸에 이상 신호가 올 동안 접속을 유지하다가 강제 종료를 했다.
이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서우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고 여겼는데, 이설아나 김소연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물론 김소연의 보고서 말미에는 오히려 접속 시간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담겨 있다.
“나도 설아나 누나 말에 동의해. 쉴 때 쉬고, 할 때는 제대로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니까. 하지만 중국과 인도가 발전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대립이 더 팽팽해진다는 게 문제야.”
“그건 그렇지만. 오빠의 존재가 있어서 아마 그렇게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 오빠가 길드에 올린 공지가 사람들의 환호를 많이 받았잖아.”
“그건 그렇지.”
이서우는 헤븐 길드원이 되는 조건으로 하루 15시간 이상 뉴 월드 접속 금지를 내걸었다.
처음에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이 다 있냐고 반발을 했지만 지금은 정착이 되어 다들 15시간 이상 접속하지 않았다.
헤븐 길드에서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이서우는 예외였다. 그가 길드마스터니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이런 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서로 헤븐 길드에 들어오려 했고, 그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그나저나 언니가 많이 바빠서 괜히 미안해.”
“그래서 조금 더 장비를 들이라고 했어. 요즘은 인공지능 성능이 워낙 뛰어나서 웬만한 건 다 되잖아.”
“응. 그건 그래.”
한 달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서우는 손규석과 논의를 해 김소연에게도 뉴월드 부작용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김소연은 상당히 놀랐지만 이서우를 보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였다.
그녀가 합류하니 손규석은 편하게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전 세계에 세운 정보센터를 김소연이 관리하면서 편하게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김소연의 합류를 반대하던 손규석은 다른 곳에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게 되자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이서우를 칭찬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김소연이 찾아왔다.
“언니, 바쁠 텐데 좀 쉬지.”
“아냐. 역사적인 날을 앞두고 있는데, 너희들을 안 찾아올 수가 없지.”
김소연은 미소를 지으며 이설아의 곁으로 갔다.
그녀의 곁에 앉으며 기대감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이제 드디어 내일이네.”
“그러게. 언니, 중국과 인도 연합이 초반부터 저돌적으로 나오겠지?”
“그렇겠지. 영웅 포인트가 생성된다고 하니 아마 미친 듯이 몰려들걸?”
이설아는 이서우가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는 환경으로 내 몰았다고 자책하자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녀의 마음에 이서우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괜한 고민을 할 필요는 없어.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돼.’
이서우가 고민하는 일은 한 개인이 해결할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그렇다고 그걸 세상에 알릴 수도 없었다. 아직 정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에 섣불리 나서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고민을 털어 내자는 다짐을 하는데, 김소연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우야?”
“응?”
“중국과 인도 연합을 어떻게 막았으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딴 데 정신 팔고 있어? 설마 설아가 아니고 내 말이라서 씹은 건 아니지?”
“헐, 들켰네. 난 우리 설아 목소리에만 반응하잖아.”
“에잇, 종명이를 데려오든가 해야지 닭살 돋아서, 원.”
이서우는 두 사람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밝은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마음속으로도 다 정리가 됐으니 괜히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중국과 인도 연합 이야기했지? 나도 동의해. 아마 미친 듯이 덤벼들 거야. 지금 평균 레벨에 어느 정도지?”
“벌써 430이 넘었어.”
“엄청나게 발전했네.”
“말했잖아. 사냥터까지 이동하는 데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되면서 다들 레벨을 빠르게 올렸어. 아마 중인연합은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조금 주춤거리고 있고. 그런 차이 때문에 인원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지, 그게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쯤 꽤 밀렸을 거야.”
“그럼 서로 피터지게 싸워도 어느 정도 균형은 맞출 수 있겠네.”
“그렇지. 물론 변수는 있지만.”
“변수? 아, 통치자?”
“응. 지금은 유저들도 관리자들을 어렵지 않게 잡잖아. 시간이 꽤 지나서 관리자들 숫자도 수천 명에 이르지만 벌써 10분의 1은 잡았을 걸. 이대로 간다면 아마 1년 안에 관리자들 숫자는 씨가 마를지도 모르고.”
“그건 그렇지. 전설 장비를 주니 다들 혈안이 돼서 난리긴 하지.”
이서우도 관리자들의 수난시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거의 잡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은 20인 파티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최고 레벨 그룹들은 관리자를 넘어 이제 통치자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서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통치자를 잡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최고 레벨이 700이고, 상위 그룹들은 대부분 600레벨을 넘었다.
관리자의 레벨이 500~600대까지 형성이 되어 있어 상위 그룹 중에서도 아직은 관리자를 사냥하기는 하지만 최상위 그룹은 더 이상 관리자에게서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없었다.
인원을 줄이면 간혹 득템도 하지만 확률이 워낙 낮아서 다들 통치자를 공략하자는 분위기였다.
그 밑으로 중위 그룹은 4차 전직을 마무리했고, 500~550레벨 수준이어서 활발히 관리자를 사냥하고 있었다.
도시는 서른 곳이 더 늘어나 총 아흔한 곳이 되었다. 게임시간으로 6개월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일어난 변화치고는 상당히 빨랐다.
하지만 600레벨 후반대가 되면서 레벨업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레벨 업 속도가 느려지다 보니 장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장비 능력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장비 경쟁은 더 과열되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신화 장비였다.
하지만 신화 장비는 지금까지 통치자에게서만 나왔고, 레이드 몬스터도 드롭하지만 테라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획득하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레이드가 진행되었는데도 신화 장비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나, 그것도 이번 패치로 달라질 거라는 예상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패치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영웅 포인트로 어떤 아이템을 살 수 있을지 아직은 추측만 난무했지만 기존의 아이템들보다 좋을 거라는 데에는 이견異見이 없었다.
전설 장비로 만족하지 못하고, 신화 장비는 얻을 수 없으니 영웅 포인트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그 때문에 지금 상위 랭커들은 전쟁 준비로 한창이었다.
“문제는 상위 랭커들이 영웅 포인트 장비를 얻고 났을 때야. 그때는 정말 두 세력 간에 엄청난 힘겨루기가 시작될 거야.”
“나도 그게 걱정돼. 영웅 포인트가 얼마나 많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6개월이면 상위 랭커들은 충분히 모으겠지. 레벨 업이 워낙 극악이니 750레벨 이상은 되지 않겠지만, 향상된 장비가 있으니 통치자를 잡을 수도 있어. 그러면 잡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들 사이에 정말 피가 터지는 거지.”
김소연의 추가 분석에 이서우와 이설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위 랭커들이 전쟁에 휘말리면 하위 랭커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중위 그룹의 레벨들도 덩달아 참여하게 되고, 전체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대규모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뜻이었다.
최상위 길드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최근 이서우에게 상위 5개 길드가 접근해 왔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들의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참, 상위 길드들에 대해 더 파 봤어?”
“아, 그렇지 않아도 그것도 말해 주려 했는데. 아주 욕심이 넘쳐나더라.”
“욕심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지. 판이 커지니까. 문제는 적정 수준이냐는 건데.”
“일단 모든 길드가 관리자 영역을 넘보고 있어. 본거지로 삼고 주변에 있는 몬스터를 잡아 빠르게 레벨을 올리겠다는 거지.”
“하긴 나라도 그럴 것 같아. 통치자와 그리 멀지도 않으니 공략하기도 좋고.”
이서우는 길드들의 움직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뒤처지면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니 상위 그룹들은 발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통치자를 공략하려면 소모품 아이템이 엄청나게 필요해서 통치자 근처에 마을이 있는 게 유리해. 휴식을 취하기도 좋고.”
“관리자를 몰아내고 마을을 세운 뒤 텔레포트 마법진부터 만들려고 하겠는데?”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이서우의 말에 김소연도, 이설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통치자 영역을 공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통치자는 기본적으로 하이 레벨이어야 공략이 가능한데, 하이 레벨 500이면 일반 레벨 1천에 가까운 것이어서 상대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후퇴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마을까지 갔다 오면 벌써 통치자는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가 좀비 모드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본거지가 가까우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하이 레벨 지역은 네 소유라고 이미 못을 박았는데, 어떻게 할 거야?”
“나한테 제안을 해도 들어주지 않으니 그런 결정을 한 것 같은데, 마을 단위로 만들게 되면 나서야지. 그게 아니고 쉼터 같은 수준이면 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
“하긴, 잠깐씩 쉬는 걸로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어쩌면 네가 거절해서 그런 식으로 접근할지도 모르겠는걸?”
“어떻게든 잔머리를 굴려서 이득을 취하려 하겠지. 맨날 그 연구만 하니까.”
그동안 길드들이 성장, 발전을 한 것만 봐도 얼마나 잔머리를 잘 굴리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교묘하게 허점을 파고드는 것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제재를 할 수도 없어 그냥 지켜보았는데, 이번 경우도 그리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살길을 찾으려는 것이니 막을 수는 없지만 이서우가 통치자 공략을 우려하는 것은 지배자급이 나타날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었다.
지배자는 일반 유저라면 5차 전직을 해도 결코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이서우도 아직은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지배자부터는 초월레벨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
이서우는 이미 하이 레벨과 초월 레벨을 경험했기에 그들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한데, 서우 네 우려처럼 지배자들이 모습을 드러낼까? 보니까 우리 일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것 같던데.”
“신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애쓰는 존재들이니 우리 일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주변이 시끄러워지면 수련에 방해가 될 테고, 그러면 나설 수밖에 없거든.”
“그러면 사태가 심각해질지도 모르겠네.”
“맞아. 내가 우려하는 것도 그거야. 다행히 통치자들도 수십에 달하니 웬만해서는 지배자까지 나타나지 않겠지만 만의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너랑 비교하면 어때?”
“초월 레벨부터 지배자에 들 수 있다고 보면, 적어도 나보다 100레벨 이상은 높을 거야.”
“뉴 월드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을 테니 여기 시간으로 6년이 넘잖아. 근데, 그 레벨밖에 안 된다고?”
“레벨 업이 진짜 극악이야. 나도 이제 겨우 570레벨인데, 100만 마리 이상을 잡아야 1레벨이 올라. 그나마 무한의 탑이라도 있으니 이 정도 올렸지, 그게 아니었으면 아직 550레벨도 못 넘겼을걸.”
“초월 레벨이 엄청나긴 엄청나구나.”
“장난 아냐. 그러니 지배자가 나타날까 봐 걱정하는 거고. 아마 나타나면 하이 레벨 지역이 초토화될걸?”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되려고.”
“벌써 잊었어? 카이젠 제국을 나 혼자 쓸어 버린 거.”
“아!”
시간이 꽤 지나서 잊고 있었는데, 초월 레벨의 존재로 한 제국이 망했다. 이서우가 그 일을 해내지 않았다면 아마 아무도 그런 일이 가능할 거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서우보다 초월 레벨에 먼저 오른 존재가 얼마나 강할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서우가 왜 그토록 우려하는지 알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조금 조용해지나 했는데, 또 태풍이 몰려오고 있네.”
“뭐, 난 좋아. 방송이 풍성해질 테니.”
요즘 이설아의 방송이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평온하면 전체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좋지만 게임이라는 게 치고받고 싸워야 흥미가 더 생기는 법이다.
“저 예쁜 얼굴로 무서운 이야기를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하다니.”
“피, 언니도 만만치 않잖아. 종명 오빠가 아마 꿈에서도 오한이 들어서 곤란을 겪을걸?”
“아, 아냐! 내가 얼마나 사랑으로 대하는데.”
“호호호. 종명 오빠한테 물어본다?”
“야, 됐어! 요즘 우리 종명이 바빠.”
“얼씨구. 그러셔요?”
앞으로 많은 혼란이 생길 것이 우려되지만 이설아와 김소연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서우라는 존재가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바로 그가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뉴 월드는 어차피 내일이면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지 정확히 알게 될 거고. 안재훈은 좀 어때?”
“지난번 카이젠 황제와 네 사이를 이간질한 사건 이후로는 뉴 월드에 접속은 안 하고 있어. 근데, 조금 이상해.”
“이상하다고?”
“응. 손 아저씨 덕분에 정보를 열심히 분석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뭔데?”
“그게…….”
귀를 쫑긋 세우고는 김소연의 말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