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313화 (313/341)

# 313

레벨이 갑이다

313화

“그게…… 너무 조용해.”

“언니, 그게 뭐야?”

잔뜩 몸을 움츠리고 김소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쌩뚱맞은 말에 이설아는 긴장이 풀려 버렸다.

조용한 게 그리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소연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생각할 게 아냐. 분명 안재훈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어. 한데, 너무 조용하단 말이야.”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이서우가 차분히 물었다. 그가 생각해도 그렇게 조용히 있을 인물이 아니니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그다지 특이한 건 없는데, 최근 중국엘 두 번인가 다녀왔더라고.”

“중국? 그거야 사업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중국이 이용자 숫자가 가장 많으니 관리차 간 것 같은데.”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두 번 다 중국의 가상현실 게임을 만드는 기업 대표와 만났거든. 텐센이라는 기업인데, 다음 가상현실 게임은 그 기업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유력한가 봐. 그래서인지 주가도 많이 올라가더라고.”

“거기 알아. 주식을 좀 사 뒀거든. 한데,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경쟁 기업의 대표를 단기간에 두 번이나 만나러 갈 이유가 있을까?”

“기술력이 떨어지니 뭐 좀 얻어 볼까 하고 만나자고 한 거겠지. 텐센으로서도 다급하니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려고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렇다면 텐센의 대표가 한국으로 와야 하잖아.”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살펴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

“알았어. 그럼 그 부분에 대해서 규석 형님께 신경 좀 쓰라고 해 둘게.”

“응!”

그냥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고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이서우는 김소연의 노력을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이서우는 손규석을 형님으로 불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손규석의 의도가 신뢰할 만해서 관계가 많이 발전한 것이다.

손규석을 온전히 믿어서 그런 것이냐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서우는 가족이나 죽음의 위기를 경험한 이설아 외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럼 그것 외에는 특이점이 없는 거네?”

“지금으로서는.”

“부작용에 대한 보고는?”

“아직까지는 전 세계 어디에도 부작용에 관한 보고는 없어. 진짜 없는 건지, 아니면 미리 차단을 한 건지는 모르겠어. 아, 그리고 중국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방금 말한 텐센 기업의 대표 동생이 살인죄로 구속되었대.”

“살인죄?”

“응. 너도 알 걸. 그 사람, 테라칸이잖아.”

“뭐? 테라칸?”

“응. 텐센 기업의 오너 동생이야. 오너가 좀 일찍 기업을 물려받았거든. 건강상의 문제로 30대 초반에 물려받아서 지금은 30대 중반인데, 꽤 똑똑한가 보더라.”

“테라칸이 대표 동생이라는 사실은 몰랐네. 한데, 누굴 죽인 건데?”

“비서를 살해했나 봐. 워낙 성격이 지랄 같아서 폭력도 많이 쓰고 그런다더라고.”

“게임에서도 하는 짓도 쓰레기더니, 현실에서도 쓰레기네. 그런 놈이 있는 회사면 싹수가 노래. 이참에 주식 확 팔아 버려야겠네.”

이서우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기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기업에 대해서는 까다로웠는데, 국민들 덕분에 기업이 성장했으면 그에 합당하게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업의 가장 큰 목표는 이윤 추구지만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소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이서우도 3조가 넘는 기부를 했고, 직원들을 넉넉하게 뽑아 구성원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했다.

모든 직원이 정직원인 것은 당연하고, 한 사람만 일을 해도 가족 전체가 부족하지 않게 지낼 수 있도록 복지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하진우가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는데, 바로 과학 분야다.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지는 데 필요한 연구라면 아낌없이 지원했다.

처음에는 이서우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서우의 존재가 드러난 것은 심장병이나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치료비가 전달되면서다.

돈만 있으면 완치가 되는 병이어서 이서우는 아끼지 않고 돈을 썼다.

그 외에도 저소득층에 희망이 되어 주면서 더 이상 이서우의 이름을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 한마디라도, 편지라도 쓰게 해 달라고 해서 우&설 재단의 장長이 누군지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1년에 1조를 기부하기로 했지만 이서우에게 갑자기 많은 이익이 생기면서 2조를 더 기부할 수 있었다.

대기업의 오너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지만 1년 사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 3조원이나 기부를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물론 부자들이 아니라 서민들에게만 말이다.

이서우가 번 돈에 비하면 3조는 그리 큰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벌들은 자기 돈 3천만 원도 잘 내놓지 않는다.

누구보다 서민들이 그것을 잘 알기에 이서우에게 많은 박수가 돌아갔다.

같이 일을 하는 직원들도 이서우의 그런 선행에 보람을 느끼고 더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갔다.

“아, 그거 말고 또 알려 줄 게 있어.”

“그동안 내가 너무 게임에만 전념하다 보니 오늘 할 말이 많나 보네.”

“많지.”

“이번엔 뭐야?”

“너처럼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에 관한 거야.”

“찾았어?”

기다렸던 소식이었기 때문에 이서우는 반색을 하며 물었다.

한데, 김소연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찾기는 했는데, 아쉽게도 한 사람밖에 못 찾았어. 아무래도 은밀히 찾아야 해서 쉽지 않아.”

“웬만하면 하이 레벨 지역에 있을 텐데, 희한하네. 대체 어디에 꽁꽁 숨어 있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나도 백방으로 살펴보는데 좀처럼 안 보이더라고.”

“한 사람이라도 찾은 게 어디야. 한데, 누구야?”

“윤슬아라고, 너랑 동갑이야.”

“젊은 사람들이 많네.”

“아무래도 가상현실 게임이 젊은 사람들에게 훨씬 인기가 많아서 그럴 거야. 게임사 측도 젊은 사람들을 더 선호했고.”

“하긴 이용자의 거의 60퍼센트 이상이 30대 이하일 테니 그럴 수도 있겠네.”

“그중 스물아홉 살 이하가 무려 40퍼센트가 넘어. 그러니 많을 수밖에.”

지금은 60대 이상도 뉴 월드를 꽤 많이 즐기고 있지만 초창기만 해도 20~30대 젊은이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니 글로벌사 측도 그에 발맞추어 테스터를 젊은 사람들 위주로 뽑게 된 것이다.

“친추는 했지?”

“응. 너에 대해서도 다 말해 놨으니 접속해서 친구추가하면 받아 줄 거야.”

“알았어. 접속해서 바로 확인해 볼게.”

“패치 끝나면 접속한다면서?”

“시도하는 건 패치 이후에 하기로 하고, 일단 이야기는 먼저 해 봐야지. 근데, 어디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

“너랑 같은 병원. 글로벌사 측에서 병원비를 대주고 있었더라고. 그 외의 저소득층 사람들은 다 네가 있던 병원에 있어.”

“그랬구나. 이럴 게 아니라 이참에 우리 재단에서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것도 괜찮지. 안재훈이 변심하면 생명이 위험해지니 그편이 나을지도 몰라.”

“본색을 드러낼수록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을 테니 미리 준비하는 게 나아.”

“알았어. 진행해 볼게.”

사고는 미연에 방지를 하는 게 최선이다. 사고가 터진 뒤 아무리 애써 봐야 후회만 남을 뿐이었다.

“그럼 난 잠시 접속하고 올게. 두 사람은 그만 쉬어.”

“응, 오빠. 조심해서 다녀와.”

“난 괜찮으니 푹 자.”

“알았어.”

“누나도 고생했어.”

“나야 뭐, 이게 일인 걸. 내일 일찍 접속할 테니 다들 그 때 봐.”

“응, 언니. 조심해서 들어가.”

“바로 옆 건물인데, 뭘.”

그렇게 세 사람을 내일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이서우는 윤슬아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담고는 뉴 월드에 접속했다.

* * *

김소연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 안재훈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드론까지 이용해 원격으로 감시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는 일이어서 처음에는 망설여졌지만 그를 감시하지 않으면 이서우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하게 된 것이었다.

최고급 사양의 카메라까지 동원했기에 발각되지 않을 거리에서 안재훈의 동태를 파악했다.

중국으로 가면서 드론을 이용하는 데에 제약이 따랐지만 인적 자원도 많이 동원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1천억을 내밀었던 이서우는 다시 2천억을 흔쾌히 투자했다.

김소연이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했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안재훈이 중국에서 누굴 만났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김소연이 모르는 만남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풍진양입니다.”

“반갑습니다. 안재훈입니다.”

“뉴스에서 연일 안 대표님에 대해 나오니 친근한 느낌마저 듭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하하하. 저야말로 중국을 이끌 가상현실 게임계의 대부가 되실 분을 직접 뵐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서로에 대한 칭찬이 오가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잠잠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을 연 사람은 안재훈이었다.

“최근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아닙니다. 동생 놈이 잘못한 것이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요. 그것보다 사업 이야기나 좀 할까요?”

“그러죠. 서로 바쁠 테니 본론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안재훈은 풍진양의 반응에 살짝 의구심을 가졌다.

그가 만난 재벌들은 가족이라면 껌뻑 죽는다. 간혹 치를 떠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서로 경영권을 놓고 다투거나 다른 이유가 있다.

한데, 풍진양은 그런 갈등이 전혀 없었다.

이런 상황이면 사이가 안 좋은 경우는 극히 드문데, 풍진양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피했다.

‘하긴, 살인까지 저지르고 들어갔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것보다 지금은 사업이 이야기에 집중할 때야.’

만약 안재훈의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면 그는 풍진양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감시하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정말 핵심 기술을 이전할 마음이 있으신 겁니까?”

“돈이 문제지, 기술은 문제가 안 됩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텐센의 1년 개발비가 천문학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대외비라서…….”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는 거래를 더 진행할 수 없습니다.”

“짐작하고 계신 바와 비슷할 겁니다.”

풍진양은 거래를 중단하려는 안재훈의 행동에 얼른 그를 붙잡았다.

그의 다급함에 안재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개발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갈수록 주가가 떨어진다는 거 아닐까요? 지금은 곧 출시할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주가가 지나치게 뻥튀기 되어 있지만 올해 안으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1년 만에 주가는 반 토막이 날 겁니다.”

“그건…….”

“반토막도 괜찮은 수준이겠죠.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다른 나라에서도 속속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시작할 테니 아마 쓰레기 수준이 되겠죠.”

“핵심 기술 이전을 받지 않아도 내년 초면 나올 수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굳이 제 도움이 필요 없으시겠군요. 그렇지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저희야 하루빨리 출시를 하면 좋지요.”

“그다지 다급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죠.”

안재훈의 여유에 풍진양은 입이 바짝 말랐다.

이번 거래는 무조건 안재훈이 이기게 되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지느냐가 풍진양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현재 텐센의 시가 총액이 300조가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반 토막이 나면 150조 이하로 떨어지겠지요. 그 점을 고려해서 70조 정도면 대화가 될 것 같은데요?”

“네에? 70조라고 하셨습니까?”

“왜요? 너무 적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풍 대표님. 뉴 월드가 1년 사이에 얼마나 성장했는지 굳이 제가 말씀드려야 할까요?”

“아, 아닙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다 무너져 가는 걸 넘겨받아 1년 만에 이 정도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텐센은 그런 쓰레기 같은 기업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70조를 벌 수 있다면 자기 회사 정도는 쓰레기로 취급받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너무 빨리 팔아치우는 게 아쉬웠다.

‘하긴, 어차피 2년이면 이놈들도 충분히 완성할 수 있을 테니 지금 이자에게 70조 받고, 그놈에게는 글로벌사 주식을 비싸게 팔아치워 이득을 보면 돼, 크흐흐흐.’

안재훈은 70조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텐센이 뉴 월드 같은 가상현실게임을 출시하면 단번에 글로벌사와 비슷한 위치에 오를 수 있다.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어 중국과 인도가 뉴 월드를 즐기지만 자국에서 게임이 나오면 한순간에 뉴 월드 유저가 빠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글로벌사의 주가가 내려갈 테고, 반대로 텐센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하게 될 것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안재훈이기에 대가를 현금과 주식으로 나눠서 받을 생각이었다.

“50퍼센트가 넘는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게임이 출시되면 주가가 급등할 테니 10퍼센트는 주식으로, 나머지는 현금으로 주시면 됩니다.”

“현금은 얼마를 원하십니까?”

“10조면 되겠군요.”

“크흠.”

10조가 뉘집 강아지 이름도 아닌데, 안재훈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말했다.

사실 게임만 출시되면 텐센의 기업 가치는 단번에 두 배 이상으로 뛴다.

주가가 수직 상승하는 것이다.

그러니 10퍼센트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10조의 현금까지 더하면 어디서든 왕 노릇 하면서 살 수 있었다.

“조, 좋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확인해야만 드릴 수 있습니다.”

“이거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십니까? 핵심 개발자만 와도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걸 아시면서.”

“그, 그건 그렇지만…….”

“싫으시면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싫다니요. 하지만 현금 10조를 당장 마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한 달, 아니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뭐, 좋습니다. 그 정도 시간은 드려야지요. 그럼 모든 걸 준비한 뒤 연락 주십시오. 하지만 딱 한 번입니다. 아니면 이 기술은 다른 나라로 갈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안재훈은 짙은 미소를 짓고는 풍진양과의 만남을 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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