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레벨이 갑이다
321화
뉴 월드에 접속하자마자 이서우는 반다이젠 황제를 만났다.
“오, 자네가 왔다고 해서 많이 놀랐네. 바쁠 텐데 어쩐 일로 왔나. 아차차, 내 정신 좀 보게. 일단 이쪽으로 앉게.”
이서우는 황제의 옆자리에 안내되었다.
황제의 곁에는 이미 이서우에게 호되게 당한 황궁경비대장이 있었기에 누구도 이서우를 제지하지 않았다.
“다들 물러나게.”
“네, 폐하.”
보통이라면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면서 버텨야 하는 황궁경비대장이지만 이서우가 곁에 있다면 안심이었다.
“자, 자리도 물렸으니 편하게 이야기해 보게.”
“다름이 아니라 최근 모험가들의 동향이 어떤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모험가들 이야기였구먼.”
“엘사둔이야 황제께서 잘 돌보고 있지 않습니까.”
“허허허, 이거 자네에게 칭찬을 듣고, 오래살고 볼 일이구먼.”
“엄살이 심하십니다.”
“허허허. 그런가?”
반다이젠은 기분이 좋은지 너털웃음을 보였다.
이서우는 반다이젠이 서운하지 않게 바로 본론을 말하지 않고 엘사둔 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기로 했다.
“제국은 이제 안정기에 접어 든 듯한데, 어떠신지요?”
“자네 덕분에 모든 절차가 잘 진행되고 있다네. 나보다는 자네가 더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지 않나.”
“하이 레벨 지역이 조금씩 확장 중에 있기는 합니다.”
“아마 빠른 확장은 아무리 자네라도 힘들 것이네.”
“제가 하루 종일 그곳을 지키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 그런 면에서 자네도 강력한 군대를 가져야 할 것이네.”
“아시잖습니까. 모험가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거.”
“그건 알고 있네만, 바손은 자네를 중심으로 뭉치지 않았나.”
“뭉치기는 했지만 저희들은 엘사둔 제국의 첼란 종족처럼 그런 수직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모험가들은 뭔가 복잡하구먼. 바손 종족이 되면서 더 강한 힘을 얻었을 텐데 뭉치지 않다니.”
“바손 종족에 대해 아십니까?”
“그럼. 잘 알고 있지.”
이서우는 뜻밖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의 호기심을 알았는지 반다이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손 종족은 아주 먼 옛날 신의 자손이라고 불렸다네.”
“신의 자손이라고요?”
업데이트 내용 중 바손이 신의 가호를 받았다는 내용은 들었지만 신의 자손이라니.
이서우는 바손 종족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다.
“그렇다네. 바손은 신의 자손으로 불렸고, 첼란은 영웅의 자손이라 불렸지. 과거 우리 두 종족은 힘을 합쳐서 기간종족과 맞섰다네.”
“그런 역사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난 자네가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줄 알았다네.”
아마 반다이젠과 친분이 아니었다면 이서우는 계속 몰랐을 것이다.
대륙에 그에 대한 기록은 이제 엘사둔 제국에만 남아 있으니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아주 오랜 옛날 거인 종족으로 알려진 기간 종족과 첼란 종족의 전쟁이 있었다네. 당시 첼란 종족은 지금보다 훨씬 진화된 인간이었다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었네.”
“하이 레벨처럼 보다 강한 힘을 내는 인간이었나 보네요.”
“그렇지. 최종 진화형 인간이라고 봐도 될 것이네. 어쨌든 강력한 기간 종족과의 전쟁으로 인해 대륙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네.”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나 봅니다?”
“무려 100년이 지속되었네. 기간 종족의 인구가 10억이 넘었고, 첼란 종족도 마찬가지였네. 한데, 오랜 전쟁으로 인구가 반 토막이 나 버렸지.”
“정말 엄청난 피해가 있었네요.”
두 종족 합산 희생자가 10억 명이 넘었기에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서로 자존심이 워낙 강해 어느 한쪽도 휴전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전쟁은 계속되었다네. 하지만 치열하게 벌이던 전쟁은 단 하루 만에 멈추었지.”
“하루 만에요?”
“그렇다네.”
“설마 바손 종족이……?”
“맞네. 하늘에서 수백 명이 내려왔는데, 그 힘이 너무 강해 기간 종족과 첼란 종족은 바손 종족의 뜻에 따라 전쟁을 그만두게 되었지.”
“자존심 강한 두 종족이 그냥 순순히 그들의 말을 들었다는 건가요? 그것도 고작 수백 명에게?”
“그렇다네.”
황제는 확신하듯 대답했지만 이서우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바손 종족이 초월 레벨에 도달한 사람들 같은데, 그 당시는 기간 종족 중 통치자나 지배자, 절대자들과 같은 강자가 없었나 보네.’
현재 하이 레벨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존재가 다 기간 종족에 속한다.
중국과 인도의 유저, 통치자와 지배자, 그리고 절대자까지 다 포함이 되는 것이다.
통치자 중에서도 초월 레벨이 있으니 지배자 이상은 무조건 초월 레벨이라고 봐야 한다.
이서우는 만약 바손 종족이 지금 내려온다면 결코 쉽게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초월 레벨을 몰랐다면 그들의 존재가 불안요소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충분히 겨뤄 볼 상대라고 여겼다.
“그 뒤론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쟁이 종식되고 바손 종족은 조용한 곳으로 들어갔네. 가면서 다시 전쟁을 하게 되면 대가를 치를 거라는 말을 남겼지.”
“하지만 그 뒤에도 전쟁이 있지 않았나요?”
“물론 있었지. 하지만 천 년이 지난 이후에 전쟁이 일어났다네. 바손 종족도, 기간종족도, 첼란 종족도 서로를 다 잊었을 때쯤 말일세.”
“진짜 엄청 오래된 일이네요.”
“그렇지. 그 뒤 또 아주 오랜 시간 부지런히도 싸웠다네. 10년 이상을 넘긴 전쟁은 없지만 몇십 년에 한 번씩은 꼭 전쟁이 벌어졌지. 리치 킹과 블랙드래곤이 나타난 건 그마나 최근이지.”
“몇백 년이 지난 게 최근이라니, 그 전에 참으로 많은 전쟁들이 있었군요.”
“하이 레벨 지역이 발견되는 시점에 과거에 대한 자료가 드러나면서 과거 우리가 최종 진화형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한데,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다시 최종 진화형 인간이 되었다는 걸 알았지.”
“그건 기간 종족과 바손 종족도 마찬가지죠.”
“그러게 말일세. 순식간에 아주 오랜 과거로 돌아간 것 같네.”
반다이젠은 엘사둔 제국의 백성들이 비약적으로 강해진 것이 반가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서우와 맞설 생각은 없지만 국력이 강해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여튼 바손 종족을 신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게 단순히 하늘에서 왔기 때문이군요?”
“그것도 있지만 드래곤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라서 그런 것일세.”
“그거야 저도 드래곤보다 더 강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네를 보고 신의 자손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뭔가 어색하네요.”
“자네는 충분히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네.”
이서우는 신의 자손이라는 말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반다이젠의 말을 들으니 하늘의 도시에 더 가 보고 싶네. 바손 종족도 분명 거기서 내려왔을 텐데, 대체 어떤 곳일까.’
이서우는 강한 호기심에 당장이라도 하이 레벨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지배자를 상대할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가?”
“아, 바손 종족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디긴 어디겠나. 공중 도시에서 왔겠지.”
“그들의 살고 있는 곳을 알고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이서우는 깜짝 놀랐다.
단지 아주 먼 과거의 일을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반다이젠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당연히 알고 있지. 마법으로 기록이 보존되기에, 수천 년 동안의 역사가 잘 보관되어 있다네. 거기에 신의 자손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단서가 기록되어 있네.”
“그랬군요. 혹시 저에게도 알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알려 줄 수는 있네. 하지만 내 체면도 있으니 자네가 날 좀 도와주게.”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지요.”
“자네가 우리 엘사둔의 수호기사가 되어 주면 되네.”
“네?”
“카이젠의 수호기사와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되네. 자네의 자유는 절대 뺐지 않을 것이네.”
“자유를 보장해 주신다면 받아들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엘사둔이 위기에 처하면 꼭 좀 도와주게.”
“그거야 저희는 동맹관계니 응당 해야지요.”
“그렇게 말해 주니 정말 고맙네.”
반다이젠 황제는 이서우의 확답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서우로서는 전혀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잠시 후, 엘사둔과 하이 레벨 남쪽 지역에 이서우가 엘사둔 제국의 수호기사가 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허허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잔치라도 벌여야겠네.”
“잔치를 벌이시기 전에 하늘의 도시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아차차, 내 정신 좀 보게. 당연히 알려 줘야지.”
이서우는 기대감을 안고는 반다이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의 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하늘 길을 찾아야 하네.”
“하늘 길이라고요?”
“그렇다네.”
“그 길이 어디에 있죠?”
“기록된 바에 의하면 기간 종족의 땅에 있다네.”
“기간 종족의 땅이요? 그렇다면 하이레벨 지역 북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하이 레벨 지역 남쪽에도 하늘 길이 열린다는 이야기는 있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말일세.”
“그 말씀은 하이 레벨 북쪽 지역의 하늘길은 실제로 본 사람이 있다는 뜻인가요?”
“맞네. 첼란 종족의 선조들은 보았다네.”
“위치는요?”
“하이 레벨 북쪽 지역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을 것일세. 그렇게만 기록이 되어 있다네.”
“그렇군요.”
이서우는 얼굴에 한껏 미소를 머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들의 동향에 대해 혹시나 아는 게 있나 싶어 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얻었다.
“참, 모험가들의 동향이 어떤지 물었었지. 옛날이야기에 취해 깜빡했구먼.”
“아닙니다. 이젠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닐세. 그렇지 않아도 모험가들의 동향이 조금 이상해서 자네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네.”
“모험가들의 동향이 이상한가요?”
“그렇다네. 자네가 없는 사이 모험가들의 숫자가 꽤 많이 줄었어. 자네의 배려로 우리 병사들이 하이 레벨 지역에 넓게 포진해 있지 않나.”
“그렇죠. 넓은 지역에 있으면서 저를 많이 도와주고 계시죠.”
“내가 받는 도움이 더 크다네.”
“서로 윈윈하는 거죠.”
“여튼, 갑자기 모험가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더군.”
“많이 사라졌다고요? 혹시 이유는 알아내셨나요?”
“아닐세. 그냥 많이 사라졌다는 것만 알지 왜 그런지는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네.”
“흠, 그렇군요.”
유저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정보는 김소연이나 길드원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가 반다이젠을 찾은 것은 서로 보는 시각이 달라서다.
어떤 일이든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좋지 않다.
“정말 이러다가 기간 종족이 몰려오는 것 아닌가?”
“엘사둔에서 기간 종족 지역으로 스파이를 많이 보내지 않았습니까?”
“보내기는 했지. 거기도 인원이 꽤 줄었다더군. 하나, 이곳의 모험가들보다 2배나 숫자가 많으니 그게 걱정이 되는 것이네.”
“병사들도 최종 진화형 인간이 되어 많이 강해졌고, 이쪽에는 제가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히 자네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네. 하지만 기간 종족들이 죽음의 대지로 가로질러 올까 봐 염려가 된다네.”
“죽음의 대지라고요?”
“그렇다네. 이전까지는 큰 걱정이 없었지만 우리가 최종 진화형 인간이 된 것처럼 기간종족도 과거의 힘을 찾았을 것일세. 그렇다면 죽음의 대지로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네.”
“죽음의 대지가 어떤 곳인가요?”
“지도를 보게.”
반다이젠은 협탁 서랍에서 잘 접힌 지도를 꺼내 협탁에 올려놓았다.
“하이 레벨 지역이 발견되기 전만 해도 대륙은 하나인 줄 알았네. 한데, 자네가 하이 레벨 지역을 발견한 뒤 그곳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황궁 서고에 있는 방대한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네.”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나야 고생할 게 뭐가 있나. 서고 관리자가 고생했지.”
“아, 그렇겠네요.”
하도 편하게 대화를 하다 보니 때로는 반다이젠이 황제라는 것을 깜빡한다.
“여튼, 기록들을 보다가 죽음의 대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네. 자네는 동, 서 대륙 사이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나?”
“동, 서 대륙 사이에 바다가 있지 않나요?”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네. 아주 넓은 바다가 있는 것으로 알지. 하지만 그 사이에는 마법으로 감춰진 죽음의 대지가 있다네.”
“마법으로요?”
“그렇다네.”
확신에 찬 황제의 말에 이서우는 죽음의 대지에 뭔가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