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323화 (323/341)

# 323

레벨이 갑이다

323화

이서우는 시야가 막힌 곳이 아니라면 수킬로미터 밖에 있는 사물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발달했다.

마나를 사용하면 빠르게 이동 중이라도 주변을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의 접근도 아주 민감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낯선 공간이어서 최대한 경계를 하며 이동하는데, 망망대해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섬 하나가 떡 하니 나타났다.

이서우는 갑작스러운 섬의 등장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인도인가?”

생명체가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섬의 둘레는 20킬로미터 정도로 보였고, 넓은 해변과 나무들이 무성한 숲으로 이뤄져 있었다.

해발 500미터가 넘는 산도 몇 개가 있었는데, 특별히 생명체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서우는 마나를 이용해 허공을 유영하며 섬의 100미터 앞까지 다가갔다.

촘촘하게 마나를 그물처럼 짜서 섬을 면밀히 살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누가 노크도 없이 귀찮게 하는 거지?”

“당신이 섬의 주인인가?”

“왜 귀찮게 하는지 물었을 텐데?”

“바손의 후손이냐?”

상대가 적대적인 기운을 풍기기에 이서우도 날카롭게 반응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서우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한데, 바손의 후손이냐는 이서우의 말에 사내는 놀라는 눈빛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4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는 뒷짐을 쥔 채 이서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서우는 사내가 살기를 확실히 내비치기 전까지는 대화를 통해 상대를 파악하려 했다.

“네가 어떻게 바손 종족을 아는 거지?”

“아직 모르나 보군.”

“몰라? 뭘 모른다는 거냐?”

“난 바손의 족장이다.”

“뭐? 네가?”

사내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이런 곳에 처박혀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거겠지.”

“하하하, 어린놈이 참 싸가지가 없구나. 우린 막중한 임무를 안고 이곳에 있는 것이다.”

“우리라면 바손의 후손이 더 있다는 뜻이겠군.”

“난 바손의 후손이라고 한 적이 없다.”

“조금 전 대화에서 넌 이미 바손의 후손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서우는 사내의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바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담은 그 표정을 말이다.

이서우 정도의 실력이 되면 표정 변화만으로도 사람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다.

아무리 평정심을 유지해도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뭐, 네 말이 맞다고 하자.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하늘 길을 찾고 있다.”

“하하하하하하, 평생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웃긴 말이었다. 네가 하늘 길을 찾는다고?”

“이것 참, 사람 무안하게 대놓고 웃네. 바손의 족장으로서 아무래도 교육을 좀 시켜야겠다.”

“네가? 날? 할 수 있다면 해 봐라.”

이서우는 족장 메뉴를 열어 전투에 필요한 버프를 모두 사용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능력 상승 물약에, 영약까지 전부 털어 넣었다.

약초꾼답게 약물로 도배를 하자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서우는 향상된 초월가속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 바람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지켜보던 사내는 갑자기 이서우가 사라지자 크게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향상된 초월 가속을 펼쳤다.

이서우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어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향상된 초월 가속에도 급이 있지.’

사내의 움직임을 훤히 보고 있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처음에는 사내도 이서우의 공격을 잘 피했지만 갈수록 회피가 버거워졌다.

퍽!

결국 이서우의 공격이 사내의 복부에 꽂혔다.

이서우의 힘이 워낙 강해 사내는 마치 미사일이 떨어지듯 해변가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서우는 승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재빨리 사내가 떨어진 곳으로 갔다.

한데, 그 때 섬에서 십여 명의 바손인이 나타났다.

“멈춰라!”

멈추라는 말에도 이서우는 멈추지 않고 사내를 공격했다.

마나를 잔뜩 담아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사내를 두 발로 밟아 버렸다.

“커억!”

순수한 힘만으로 상대했다면 이서우도 쉽지 않은 싸움을 했겠지만, 물약부터 아이템까지 힘을 키워줄만한 것들은 차고 넘쳤다.

사내가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게 패배의 원인이었다.

이서우는 기절하다시피 한 사내의 목을 움켜쥐고는 가까이 다가온 10여 명의 바손인들 앞으로 갔다.

“무, 무슨 짓이냐?”

“난 바손의 족장이다. 버릇없이 구는 바손인에게 교육을 시켜 준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돼? 당신들은 바손의 후손이 아니라는 거냐?”

“그건…….”

이서우의 호통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난 분명 대화를 이어 가려 했다. 하지만 날 적대시 하고, 자존심을 뭉개 놨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바손의 후손이라면 어떻게 했겠느냐.”

“…….”

이번에도 역시나 대답이 없었다.

신의 자손이라고 불리는 바손이다. 그러니 자존심은 누구보다 강할 거라는 게 이서우의 추측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바손인은 자존심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다.

남에게 무시를 당한다면 결코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만약 그 사실이 동족들에게 알려진다면 추방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때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바손인이 앞으로 나섰다.

“당신이 족장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

“네가 대표라도 되는 것이냐?”

“그렇다. 내가 이 무리의 대표다.”

“그렇군. 그러면 나와 이야기할 자격이 된다.”

이서우는 젊은 사내의 면면을 자세히 살폈다.

‘마치 무협소설에서 나오던 반로환동인가 뭐, 그런 건가. 하긴, 능력이 강해질수록 기운이 더 샘솟으니 젊어질 수도 있겠지.’

이서우는 어려보인다고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실력은 나이에서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족장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나?”

“바손의 후손이라면 누구에게도지지 않을 강한 자신감이 있겠지.”

“그렇군. 족장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바손의 후손이라는 건 알겠군.”

“말이 통하니 다행이야.”

바손은 기간 종족이나 첼란 종족에게 결코 패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런데 이서우에게 패하고 말았으니 그가 적어도 바손의 후손이라는 것은 증명이 된 셈이다.

적어도 이서우의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는 말이다.

누가 보면 그게 무슨 증명이냐고 하겠지만, 사내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적대감을 내려놓았다.

이서우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는 바손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데려가라.”

“그러지.”

상대가 적대감을 지우자 이서우도 붙잡고 있던 사내를 넘겨주었다.

“들어가서 대화를 하는 게 어떻겠나.”

“초대를 한다면 응해야지.”

이서우는 전력을 다하면 이들을 모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그의 초대에 응했다.

하지만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방어를 할 수 있게 대비를 했다.

사내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높이 솟은 나무가 이서우를 반겼다.

10분 정도 걸어가자 드디어 목적지가 나타났다.

‘특이하게 나무 위에 다 집을 지어놓았네.’

굵고 오래된 나무들 중간중간에 꽤 커다란 집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집의 숫자가 많았는데, 바손의 후손들이 더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안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조금 더 들어가자 장정 몇 사람이 손을 맞잡고 둘러싸도 다 감싸지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나무가 나타났다.

높이는 30미터 정도였고, 가지가 많고 넓게 뻗어 있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거대한 나무 중간에 기이한 형태로 생긴 집이 있었다.

마치 나무에다가 원형의 거대한 튜브를 끼워 놓은 듯했다.

이서우는 시력을 집중해 집을 자세히 살폈다.

‘뭐야, 저거. 나무가 원래 저렇게 자라는 건가.’

그냥 생각 없이 지나쳐 올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인위적으로 집을 만든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뭐, 게임이니 가능한 거겠지.’

나무가 자라면서 집의 형태로 될 거라는 상상은 웬만해서는 하지 못한다. 고정관념이 있어서다.

이서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리 뜯어 보아도 나무 자체가 자라면서 집의 형태를 갖춘 것이었다.

“들어가지.”

“그러지.”

사내의 몸이 둥실 떠올랐고, 이서우도 마나를 이용해 몸을 허공에 띄웠다.

사내가 다가가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은은한 조명이 켜졌다.

가운데는 커다란 원목 탁자가 있었다.

사내는 원형으로 된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편한 대로 앉으면 돼.”

이서우는 사내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알테온이라고 한다.”

“이서우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좋아하는 차가 있나?”

“아무거나 괜찮아.”

알테온은 옆에 서 있던 사내에게 눈짓을 했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해놓은 듯 차가 바로 나왔다.

“한국 사람이 좋아하겠어.”

“무슨 말이지?”

“아, 아니야. 빨리 나와서 좋다고.”

“차는 많으니 언제든 말해.”

“그러지.”

이서우는 눈앞에 놓인 나무 찻잔을 들고는 향을 맡아 보았다.

차향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좋은 차군.”

“차를 볼 줄 아는 걸 보니 확실히 바손이 맞군.”

“그런 걸로도 바손임을 알 수 있나 보지?”

“기간이나 첼란은 차에 대해 쥐뿔도 모르거든. 그나마 첼란 종족이 차를 즐기고는 있지만 향만으로 진가를 아는 건 바손 종족뿐이지.”

“그렇군.”

바손의 후손들은 차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랐다.

이서우는 그걸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한데, 무슨 일로 이곳을 찾아온 거지?”

“이곳이 죽음의 대지라고 불린다더군.”

“그렇다. 초대 바손의 수장이신 바하문 님께서 만들어 둔 곳이지.”

“수천 년은 됐겠군.”

“이제는 다 잊혔을 텐데 오랜 옛날의 일을 알고 있나 보군.”

“첼란들의 기록에 남아 있다. 어쩌면 기간 종족에도 기록이 남아 있을지도.”

“흥. 기간 놈들에겐 아마 없을 것이다!”

“기간 종족을 싫어할 이유가 없을 텐데?”

“첼란의 기록을 본 것 같은데, 바손과 기간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이서우는 반다이젠에게서 들은 것 외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호기심이 동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달라.”

“못할 말은 아니니 듣고 싶다면 해 주지.”

알테온은 차를 한 잔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기록을 봤다면 알겠지. 신의 자손이라는 초대 바손이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신의 자손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그들만의 터전을 만들었다는 것을.”

“맞아. 초대 바손들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신의 대지 깊숙한 곳으로 갔지. 그 이후 일절 외부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신의 대지라……. 하이 레벨 지역을 말하는가 보군.”

“지금은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그분들이 그곳에 지내게 되면서 신의 대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들이 그곳에 지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기간 녀석들은 욕심이 많고, 야만적인 녀석들이다. 파괴와 살육을 일삼는 놈들이지.”

“하지만 초대 바손들이 전쟁을 금지했을 텐데.”

“그 때문에 처음에는 기간 녀석들도 조용히 지냈다. 하지만 근본은 바뀌지 않는 법. 놈들은 파괴 본능을 애써 참으며 힘을 키웠다. 그렇게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고 그들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지.”

“초대 바손들은 나타나지 않았나?”

“그분들은 세상 일에 관여하기 싫다고 했다. 그래서 그분들의 후손들이 나섰다.”

“그렇다면 쉽게 해결 됐을 텐데?”

“처음에는 쉽게 해결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기간 녀석들이…….”

이서우는 갑자기 말을 멈추는 알테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거기서 딱 끊네. 대체 기간이 무슨 짓을 한 거지?’

이서우는 알테온의 입에서 나오게 될 이야기가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결코 재촉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으려면 감정 조절을 잘해야 했다.

호로록.

이서우는 가볍게 차를 한 잔 마셨다.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자 알테온도 차를 한 잔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