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
레벨이 갑이다
324화
“기간 녀석들은 사용해서는 안 될 힘을 사용했다.”
“사용해서는 안 될 힘?”
“초대 바손들은 상징적인 의미로 유물을 남기고 가셨지. 혹시라도 전쟁이 벌어지면 그 유물들이 응징을 할 거라고 말이야.”
“이미 다시는 나오지 않을 거라는 암시를 주고 갔네.”
“그렇지. 기간 놈들도 그걸 알고 그 유물의 힘을 이용하려고 오랜 세월을 노력했다.”
“초대 바손들이 그 점을 몰랐을까?”
“초대 바손들은 기간 종족이 얼마나 강해질지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을 너무 낮게 본 거지.”
“하긴, 그 오랜 세월 동안 칼을 갈았을 테니 악착같이 힘을 키웠겠지.”
“맞다. 기간 놈들은 진짜 무서울 정도로 힘에 집착했고, 엄청 빠른 성과를 냈다.”
알테온은 기간 종족을 떠올리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기간 종족에게 당한 게 많은 것 같은데?”
“초대 바손들의 유물이니 아무래도 쉽지 않았지. 게다가 그놈들은 쪽수도 많았고.”
“유물이 정확히 어떤 거지?”
“마법의 힘을 극대화시켜 주는 지팡이와 자아를 가진 강력한 장검, 파괴 본능을 가진 대검, 목표를 놓치지 않는다는 궁극의 활, 맨손으로 신을 죽일 수 있다는 장갑, 드래곤 로드의 브레스도 거뜬히 막아 내는 방어구 세트가 바로 그것이지.”
“무구라는 거네?”
“그냥 무구가 아냐.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진화하는 무구야. 평범한 사람이 방어구 세트와 무기를 가지게 되면 우리와 비등하게 싸울 수도 있어.”
“엄청나네. 한데, 그런 걸 어떻게 기간 종족이 사용한 거지?”
“원래는 바손 종족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기간 놈들이 그걸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어 놓았지.”
“그게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쉽지는 않지. 100년 이상 걸린 것으로 알고 있어.”
“100년? 기간 종족들도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하네. 그걸 붙잡고 그 오랜 세월을 씨름한 걸 보면.”
“초대 바손들이 너무 안일했지. 자신들의 힘을 과신했거든.”
알테온은 자신들의 선조를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그런 태도가 이서우에게는 편했다.
선조들의 잘못을 감싸면 대화하기가 오히려 불편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어떻게 되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악착같이 힘을 키운 녀석들이 유물의 힘까지 쓰니 당해 낼 수가 없었지.”
“그래서 이곳으로 피해 온 건가?”
이서우의 질문에 알테온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맞아. 병 주고 약 준다고, 다행히 초대 바손들이 죽음의 대지를 만들어 두고 가서 살 수 있었지.”
“기간 놈들은 이곳으로 오지 못하는 건가?”
“놈들은 아마 1천 년은 더 지나야 올 수 있을걸?”
“너무 자신만만해하는 거 아냐?”
초대 바손도 자만하다가 유물을 빼앗기는 일이 생겼는데, 너무 무사태평한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이서우의 말속에 담긴 숨은 뜻을 알테온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너도 여기까지 와 봐서 알겠지만 이곳에 오려면 마나의 총량도 많은 것과 함께 섬세하게 다룰 줄도 알아야 해.”
“아, 힘 위주인 기간 종족들에게는 힘들겠구나.”
“그렇지. 물론 그놈들도 마나 양은 많아. 하지만 그건 극소수만 그래. 적은 숫자로 이곳에 들어와 봐야 아무것도 안 되거든.”
“이곳까지 오는데도 마나를 많이 소모하게 되니 쉽지는 않겠네.”
“그렇지. 우리 인원도 적지 않으니 마나까지 소모하면 아무리 유물이 있어도 살아 돌아갈 수 없어.”
“마나를 민감하게 다루는 건 훈련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니 안심이 될 수도 있겠네.”
“바로 그렇지. 이런, 괜히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빠졌군. 여기 온 정확한 목적이 뭐지?”
“그러고 보니 나도 옛날이야기에 빠져 목적을 잊고 있었군. 하늘 길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지금 하늘 길이라고 했나?”
“그렇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만난 존재에게는 하늘 길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알테온에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알테온이 놀라는 것이었다.
“하늘 길은 왜 알려고 하는 거지?”
“당연히 하늘의 도시를 가기 위해서지.”
“하늘의 도시는 함부로 갈 수 없다.”
“바손의 후손인데도 안 된다는 건가?”
“그게 됐다면 벌써 내가 먼저 갔을 거다.”
“왜 안 된다는 거지?”
“하늘길과 가까워질수록 강력한 바손들이 지키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존재들이어서 더 위험하지.”
“흠.”
알테온의 말에 이서우는 머릿속으로 지배자와 절대자를 떠올렸다.
“왜 그러지?”
“혹시, 지배자와 절대자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지배자와 절대자? 그게 뭐지?”
“역시 모르는군.”
“우린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기에 바깥일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럴 거라 생각은 했어. 하지만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어쩌면 하늘 길을 지키는 존재가 바로 지배자와 절대자라는 생각이 들어.”
“그럴 수도 있겠지. 우리가 아는 존재랑 너희들이 아는 존재의 이름이 같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
이서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길에 대해 말을 해서 말인데,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까?”
“부탁?”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런 부탁을 하려니 염치가 없다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말이야.”
“난 좀 비싼 몸이야.”
“대가는 섭섭지 않게 해 주겠다.”
“일단 들어 보지.”
“하늘 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서 하는 부탁이야.”
“뜸들이지 말고 말해 봐.”
“하늘 길의 정확한 위치를 가르쳐 주면 돼.”
“하늘 길의 위치? 알고 있는 거 아니었나?”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정확한 위치는 나도 몰라.”
‘어라?’
이서우는 퀘스트가 뜰 거라 여겼는데, 아무런 메시지도 뜨지 않자 살짝 당황했다.
지금까지 부탁을 한다고 하면 퀘스트가 다 떴는데, 왜 잠잠한 것일까.
‘퀘스트가 안 뜨면 레벨 업이 안 되는데, 일단 보상이 뭔지 들어보고 판단하자.’
이서우는 사냥으로 레벨 업 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 퀘스트에 목이 말랐다.
한데, 알테온에게서 아무런 퀘스트도 뜨지 않아 약간 실망했다.
“보상은?”
“이걸 주겠다.”
“이게 뭐지?”
이서우는 알테온의 손바닥에서 반짝이는 은색의 작은 병을 쳐다보았다.
물약을 담은 병으로 보였는데, 대체 그게 무엇이기에 알테온이 조심스럽게 꺼낸 것일까.
이서우의 궁금증은 곧 풀렸다.
“복용하면 초대 바손이 남긴 유물의 온전한 힘을 끌어낼 수 있다. 아무런 제약 없이 말이다.”
“진화하는 무구 말인가?”
“그렇다.”
“난 이미 최상의 무구가 있다.”
“네가 차고 있는 게 뭔지 안다.”
“안다고?”
“그래.”
이서우는 설마 이들이 펠렌의 존재를 아는 건가 싶었다.
이곳에 갇혀 있으면서 어떻게 펠렌의 존재를 아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떻게 내가 착용한 무구에 대해 아는 거지?”
“그것 또한 바손의 자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렇다.”
“바손의 자손이 만들었다고.”
“그렇다. 하긴, 넌 최근에서야 바손의 힘을 깨달은 것 같으니 모를 수도 있겠지.”
“뭐, 어쨌든 그렇다 치고. 초대 바손의 유물과 얼마나 차이가 나지?”
“초대 바손의 유물이 지금 네가 착용하고 있는 것보다 최소 5~6배 이상 차이가 난다. 네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유물은 더 강력한 진화를 하겠지.”
“최소 5~6배라고?”
“그렇다.”
“믿을 수 없군.”
“아마 유물을 착용한 기간 종족을 만나면 알게 될 것이다.”
펠렌의 장비도 유저들 사이에서는 최강의 아이템 성능을 발휘한다.
한데, 그보다 최소 5~6배 이상의 힘을 발휘하다니.
이서우는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좋다. 네 말대로 무구를 다 찾아서 착용한 뒤 확인해 보면 되겠지. 장소는 그때 가르쳐 주겠다.”
“착용해서 쓰는 건 상관없지만 최후의 힘은 이걸 복용해야만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뭐, 어쨌든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장소를 알아서 오겠다.”
“아마 몇 년을 걸릴 것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몇 년? 난 그리 오래 끌 생각이 없는데?”
“자만하지 마라. 유물을 착용한 기간 종족은 엄청나게 강하다.”
“그건 네 생각이고.”
“뭐, 그건 나중이 되면 알게 되겠지.”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다고 여긴 알테온은 그쯤에서 그 이야기를 끝냈다.
“좋다. 그럼 유물과 위치를 알아내서 다시 오도록 하지.”
“기다리고 있겠다. 참, 이걸 받아라.”
“통신구군.”
“우린 나갈 수 없으니 연락하고 싶으면 그걸 이용해라.”
“그러지.”
이서우는 통신구를 인벤토리에 넣고는 알테온과 헤어졌다.
죽음의 대지를 벗어나 하이 레벨 지역에 도착했다.
-폐하.
-오,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올 줄은 몰랐네.
“운이 좋았습니다.”
-그래, 어떻게 됐나.
“기간 종족은 죽음의 대지를 절대로 건널 수 없을 겁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허허허, 그거 반가운 소식이구먼. 한데, 이렇게 빨리 그걸 알아내다니 대단하군.
“운이 좋았습니다.”
이서우는 난이도 S급 퀘스트를 쉽게 해결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운이 따라 줬다.
바손의 후손들과 싸우기라도 했다면 아마 이렇게 쉽게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을 다 상대해야 했다면 S급이 아니라 SSS급 퀘스트는 됐을 거야. 정말 운이 좋았어.’
바손은 자신감과 배짱이 두둑한 종족이다. 이서우가 만약 저자세로 나갔다면 오히려 알테온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 많은 바손들과 싸워야 했을 테고,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생 많았네. 자네가 우리 제국의 수호기사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고생했네. 조심하게.
“네. 폐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만 골드를 획득했습니다.
-20만 영웅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 소식에 기분이 좋았던 이서우는 웃으면서 마나 길을 찾았다.
이서우는 엘사둔 제국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하이 레벨 지역으로 들어갔다.
하이 레벨 지역에 도착하자 주변 생명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통치자급이 있는 곳으로 나오네. 이왕 온 김에 경험치 먹으면서 천천히 들어가자.’
이서우는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1시간 후 서버 점검이 있습니다.
-안전한 곳으로 가서 접속을 종료해 주십시오.
“뭐야!”
이서우는 갑자기 서버 점검을 한다기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지금까지 서버를 점검한 경우는 대규모 업데이트 외에는 없었다.
“업데이트 소식이 없었는데도 왜 서버를 닫는다는 거지?”
짜증이 났지만 이서우는 접속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지 나가 보면 알겠지.’
이서우는 적당한 곳에서 접속을 종료했다.
* * *
“오빠, 뉴 월드 서버가 닫힌다는데 무슨 일 있는 거야?”
-아, 그렇지 않아도 알려 주려 했는데, 안재훈이 부작용이 있는 거 알면서도 접속 제한을 풀었잖아.
“시간제한만 걸면 되는 거 아녔어?”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 보더라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왜?”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테스트를 해 봐야고 한다더라.
“그렇다고 바로 서버를 닫을 수 있는 거야?”
-큰 위기가 예상되는 일이라면 정부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어.
“그건 알지만…….”
김소연은 이미 손규석에게 적당히 접속하면 안전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걸 김명국에게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아마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릴 거야.
“그렇게나 오래 걸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안전과 연관된 거면 시간이 좀 걸려.
“안재훈은 안 잡혔지?”
-아마 잡기 쉽지 않을 거야.
“대주주들은 안재훈과 연락을 주고받았을 텐데. 정 회장님은 알고 있지 않을까?”
-이미 조사해 봤는데, 모르는 것 같더라.
“그렇구나. 다른 문제는 없는 거지?”
-다른 문제는 무슨.
“수상한데?”
-수상한 거 없어.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알았어.”
김명국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수상한데……. 뭔가 숨기는 것 같단 말이야. 따로 한 번 알아봐야겠어.”
김소연은 의심이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이설아가 있는 곳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