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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327화 (327/341)

# 327

레벨이 갑이다

327화

“박 대표님, 글로벌사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하는 의도가 뭔지 모르지만 글로벌사는 고마운 존재지. 물론 네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좋다는 뜻이네요?”

“좋지. 널 만나게 해 줬잖아. 네가 없었으면 오늘의 K사는 없었을 거야.”

박 대표의 말은 진심이었다.

2등 기업만 해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은 없다. 아니, 한국의 부자 순위 100위 안에도 충분히 들 수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통할지 몰라도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박 대표도 K사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발전하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는 언젠가는 K사가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그때 마침 이서우를 만났다.

이서우를 만난 이후 K사의 가치는 수직 상승했다.

박 대표는 꿈을 꾸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 모든 게 뉴 월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연히 좋을 수밖에.

“좋다고 하시니 다행이네요.”

“그 대답 들으려고 물은 거야?”

“아뇨.”

“그래?”

“네.”

“뭔데 그리 뜸을 들여?”

“박대표님. 제가 하는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실 거죠?”

“범죄만 아니라면 들어줘야지.”

“한 입으로 두 말하기 없깁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다 지키면서 살았어. 뭔지 이야기나 해 봐.”

박 대표의 대답에 이서우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서론이 길었던 것은 박 대표의 확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전문경영인을 놓고 고민하는데 제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지 뭡니까.”

“무슨 생각?”

“K사와 글로벌사가 합치고 그걸 박 대표님이 경영을 해 나가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죠.”

“뭐어?”

이서우의 말에 박 대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글로벌사를 누가 경영하게 될까 생각은 해 보았지만 K사와 합병을 한 뒤 자신이 하게 되는 상상은 해 보지 않았다.

“전 괜찮은 생각 같은데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능력도 충분하시니 그게 좋지 않을까요?”

“깊게 고민하고 말하는 거 맞지?”

“그럼요. 머릿속에서 번뜩 떠올랐지만 당연히 신중히 생각해보고 말씀드리는 거죠.”

이서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상대를 기만하거나 속이려고 하는 거짓말이 아니기에 생각이 난 뒤 바로 달려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이서우가 항상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고는 고민이 깊어졌다.

K사는 최근 한계에 부딪쳤다.

이서우 덕분에 많은 발전을 했지만 어느 시점에서 성장이 멈추었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국내에서 떵떵거릴 정도는 되었지만 회사를 더 성장시키기 싶은 욕구가 컸다.

게다가 이서우가 없다면 기업 가치가 많이 떨어질 테니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박 대표의 고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그때 마침 이서우가 글로벌사 경영에 대해 언급하니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괜찮겠어?”

“전 오히려 두 회사가 합치면 시너지가 날 것 같은데요.”

“그거야 그렇지. 다양한 홍보 수단을 동원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네가 많이 손해 볼 텐데.”

“손해는요. 저도 충분히 이득을 보죠.”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기는 하다만.”

서로 윈윈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박 대표가 더 큰 이득을 본다.

기업 가치가 몇 배나 차이난다.

손규석의 합류로 부작용도 완벽하게 해결이 되었으니 1년, 아니 6개월 안으로 다시 주가가 원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5분의 1 이하로 주가가 곤두박질친 지금도 K사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합병을 하면 이서우가 손해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선택이 손해인지 아닌지는 개인마다 다를 거예요.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다르고, 기준도 다르니까요.”

“그렇지. 사람마다 다른 거지.”

“서로 합치고, 박 대표님이 경영을 하시는 게 제겐 엄청난 이득이에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귀한 걸 맡기는 게 훨씬 마음이 편안하잖아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이서우를 보니 박 대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업이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정말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모른다.

기술력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지만 자신보다 더 덩치가 큰 기업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밟고 올라서야 하고, 냉정함과 냉철함을 지녀야 한다.

그런 환경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나도 생각을 좀 해 보마.”

“서버가 열리기 전에는 결정하셔야 해요. 그때부터 많이 바빠질 테니까요.”

“알았다.”

“생각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시게 전 그만 일어나야겠군요.”

“고맙다.”

“고맙긴요. 제가 편하자고 그러는 건데.”

“그런 거였냐?”

“하하하, 그럼요.”

이서우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박 대표는 돌아가는 이서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이서우는 김명국에게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나러 갔다.

10평이 채 되지 않는 김명국의 사무실은 소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표정이 좋아 보이네요.”

“네. 일이 잘 풀리니 좋네요. 한데, 중요한 일이 있으시다고요?”

“네. 많이 중요하죠.”

“무슨 일이신데 그러세요?”

“일단 앉죠.”

자리에 앉아 테이블을 톡톡 치자 차가 나왔다.

이서우를 배려했는지 커피가 아니라 허브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제가 좀 바빠서 본론만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로 바쁘니 저도 그게 편하네요. 뉴 월드의 경영권을 얻으셨더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혹시 안재훈에게서 부작용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전달 받으셨습니까?”

“네?”

이서우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김명국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안재훈이 곧 재판을 받는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네. 뉴스는 저도 챙겨 보니까요.”

“집행유예를 받는 게 확실 시 되기에 형식적이지만 형량거래를 했습니다.”

“형량거래요? 그래도 되나요?”

“서앤장이 발 벗고 나선 이상 지금 가진 증거로는 집행유예가 나올 겁니다.”

“그럴 수가.”

“아쉽게도 살인을 직접 한 것도 아니고, 뉴 월드로 인해 누군가 죽은 것도 아니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안재훈이 집행유예를 받고 마음껏 거리를 활보할 걸 생각하니 김명국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이서우도 김명국의 성격을 잘 알기에 지금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안재훈에게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전달받기로 하신 겁니까?”

“네.”

“그럴 거라면 왜 그자는 직접 부작용을 고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완벽하게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연속 접속 제한은 걸어 둬야 한다더군요.”

“아아, 그렇군요.”

이서우는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안재훈이 손규석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안재훈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뭔가 깔끔하지 못한 해결책이라고 여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이서우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김 과장님, 저와 나눈 대화는 비밀이라는 거 아시죠?”

“물론입니다.”

“사실 이미 완벽하게 부작용을 없애는 기술을 완성했습니다.”

“네에?”

이번에는 김명국이 놀랐다.

가상현실 게임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부작용을 없애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쯤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어떤 것도 부작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에 완벽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서우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저런 얼굴이라면 기껏 부작용이라고 해 봐야 약간의 어지러움증 정도일 것이다.

“제가 글로벌사를 괜히 인수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게임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봤습니다. 사실…….”

김명국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헛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부끄럽게도 전 서우 씨가 뉴 월드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지키기 위해 주식을 사들인 게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현실이죠.”

“뉴 월드에서 소유하신 건물에서만 엄청난 이득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몇 년이면 이번 주식을 매수한 돈은 복구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해서 오해를 하고 말았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해하실 건 없습니다. 누구나가 욕심은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말해 주시니 마음이 한결 편하네요.”

누구나 김명국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일 테니 말이다.

“그 말씀을 하시려고 절 부르신 겁니까?”

“네. 혹시라도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이 없으시면 도움이 될까 해서 오시라고 한 겁니다.”

“안재훈의 도움을 받을 만큼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다행입니다. 계속 그놈에게 질질 끌려가지나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차라리 잘됐습니다. 지금 뉴 월드 오픈을 놓고 한창 조사가 진행 중이죠?”

“그렇습니다. 전문가 집단이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있죠.”

“그러면 저희가 준비한 데이터를 그들에게 가져다주십시오.”

“정직한 자료라면 못 전해 드릴 이유가 없지요.”

“증명도 할 수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제가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명국은 함부로 부탁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기 경찰청장에 오를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청탁에도 그는 단호하게 거절한 사람이었다.

경찰도 기소권을 가지게 되면서 파워는 막강해졌다.

그런 조직에서 김명국은 엘리트 중에 엘리트라 불린다.

자부심도 강하고, 자존심은 더 강하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에게도 청탁의 성격이 단 1퍼센트라도 있는 부탁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서우가 요구한 것은 그런 성격의 부탁이 아니었다.

어차피 새로운 자료가 있다면 그가 직접 살펴봐야 하는 것이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럼 제가 자료를 가지고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명국은 한 기업의 대표가 된 이서우에게 예의를 다했다.

이서우는 김명국과 헤어지자마자 손규석에게로 갔다.

상황을 이야기 하고 함께 김명국을 찾았다.

손규석은 자신의 자료를 자신 없이 타인이 보는 것이 싫다면서 김명국을 따라가겠다고 했다.

김명국도 전문적인 건 개발자가 직접 설명하는 게 낫겠다 싶어 허락했다.

이서우도 그와 함께 동행했다.

혼자 보내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세 사람은 한창 조사가 진행 중인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야기가 잘되었다.

조사를 진행 중인 팀장이 이미 가상현실 분야에서 꽤 실력이 있는 사람이어서 손규석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김명국의 제의로 세 사람은 조용한 곳으로 가서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손 팀장님, 꽤 비밀스러운 정보 같던데 그걸 막 공개해도 되나요?”

“공개를 해도 따라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요?”

“네. 제 인생의 절반은 거기에 녹아 있어서 아무리 빨라도 몇 년 걸릴 걸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조사 팀이 공정하리라 믿지만 석연치 않은 게 있었거든요.”

“과장님도 느끼셨어요?”

“전 여러 정보들과 정황들을 보고 판단한 겁니다. 혹시 서우 씨는 뭔가 느끼신 게 있나요?”

김명국은 이서우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아마 이서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김명국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김명국은 이서우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처음에는 운이 좋다고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보통 사람과 다른 뭔가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뭐가 그리 특별한 것일까.

이서우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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