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
레벨이 갑이다
330화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면 되죠.”
이서우는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걸로 신경을 쓰느냐는 얼굴로 말했고, 손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규석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내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있었다고 하시면…….”
“동생은 이 세상 사람이 아냐.”
“그렇군요.”
이서우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손규석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으니 동생은 더 젊었을 것이다.
그런 동생을 일찍 잃었다면 평생 가슴에 묻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주위에서 아무리 위로를 해도 손규석은 매일매일이 지옥과 같았으리라.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니 그리 슬픈 표정 지을 필요 없다. 여튼, 우리 서영이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놈이 있다.”
“설마 그자와 관련된 문제인가요?”
“그래. 과거 나와 함께 어나더 월드를 만들기 위해 밤새 같이 일을 하던 사이지.”
“네? 그럼 동료였다는 거예요?”
“그래. 어릴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지.”
“그럴 수가…….”
이서우에게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관계를 맺어 오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바로 박민수와 류종명이었다.
이서우는 두 친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해를 입힌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놈은 당장 성과를 보고 싶은 마음에 나 몰래 서영이를 실험 대상으로 이용했다. 결국 부작용 때문에……. 내가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내가 조금 더…….”
게임 개발이 너무 몰입한 나머지 동생을 소홀히 한 것이 문제였다.
손규석은 동료에 대한 원한과 함께 자책하는 마음도 컸다. 같이 있어줬어야 하는건데 하며 늘 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동생을 떠올리자 손규석의 충혈된 눈에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슬픔과 분노가 그의 눈빛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서우는 그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마음을 추스른 손규석이 다시 입을 뗐다.
“그 뒤 놈은 사라졌지. 놈을 찾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 봤는데도 찾지 못했어. 그런데 최근 놈의 흔적을 찾았다.”
“흔적이라면, 아직 그자를 찾지는 못했다는 거네요?”
“아니, 찾았다. 그리고 대화까지 했지.”
“설마…….”
“죽이고 싶었다. 죽이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서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손규석은 분한 마음이 큰지 꽉 움켜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자가 어디에 있나요?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죠.”
“놈은 뉴 월드 안에 있다.”
“네에?”
이서우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가 통치자를 쓸어 버릴 때 나도 하이 레벨 지역에 있었다. 네가 주변을 혼란스럽게 하는 틈을 타 깊숙한 곳으로 갔지. 혹시라도 네게 줄 정보가 있을까 해서 말이야.”
“하이 레벨 지역 깊숙한 곳에서 그자를 만나셨다는 거네요?”
“그래. 놀랍게도 놈은 하이 레벨 지역을 지배하는 절대자가 되어 있더구나.”
“그런!”
이제 더 놀랄 만한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절대자라니.
“문제는 놈의 삐뚤어진 생각이야.”
“대체 무슨 대화를 하셨기에…….”
“놈은 결국 스스로를 실험했다. 어나더 월드 베타 테스트 직전, 자신이 먼저 게임을 한 것이지.”
“정말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군요.”
“미친놈이지. 어떤 희생을 치르든 무조건 자기가 만든 걸 성공시키고자 하는 사이코야!”
분노의 목소리가 허공을 강하게 때리며 이서우의 귀에 파고들었다.
“여튼, 놈은 그때 게임에 갇히고 말았지만 그가 만든 인공지능은 계속 테스트를 진행했지. 그러다가 결국 희생자들이 생긴 거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저 또한 오랜 세월을 게임에 갇히게 만든 놈이군요.”
“그렇지. 나쁜 놈이지. 한데, 그놈이 아직도 식물인간이 된 상태로 하루 빨리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그게 무슨…….”
이서우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실수로 여러 사람들이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데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죽이려 하다니.
“놈이 그러더군. 자신을 위협하는 자들은 다 죽이겠다고.”
“그러니까 자기 살자고 다 죽이겠다는 뜻입니까?”
“그래. 혼자 살자고 그런 미친 짓을 하려는 거다.”
“이런 개자식!”
쾅!
이서우는 너무 화가 나서 탁자를 힘껏 후려쳤다.
그러자 이서우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탁자가 반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원목으로 만들어서 아주 튼튼한 것인데도, 힘없이 부러지고 만 것이다.
이서우가 이토록 화를 내는 이유는 바로 식물인간인 채로 게임 속에 갇혀 버린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누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지도 모른 채 깨어나기만을 바라는 그들을 떠올리니 미치도록 화가 났다.
“그래서 널 찾아온 거야. 난 더 이상 게임 내에서 힘을 쓸 수 없거든.”
“힘을 쓸 수 없다뇨.”
“부작용을 모두 씻어내면서 내 능력도 날아가고 말았거든. 게임을 할 수 있지만 막대한 힘을 사라지고 말았지.”
“그런…….”
이서우는 손규석이 게임 내 캐릭터의 능력을 모두 버리면서까지 부작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 줄은 몰랐다.
“뭐, 그건 내 선택이었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 하지만 그 자를 좀 막아다오.”
“많은 사람들을 죽인자고, 또 죽이려는 잡니다. 당연히 제가 막아야지요.”
“놈이 게임 내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을지 모른다.”
“…….”
너무 흥분해 잠시 잊고 있었다, 게임 내에 갇혀 식물인간이 된 사람이 게임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부담스러운 거 알아. 그래서 네가 강권하지 못하는 거고. 어떤 결정을 하든 난 널 믿는다.”
“형님…….”
이서우는 끝까지 자신을 생각하는 손규석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동생을 잃은 슬픔이 극에 달해 제발 죽여 달라고 부탁을 할 법한데, 그는 복수의 감정을 억누르고 이서우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형님은 진심으로 날 걱정하는구나.’
이서우는 손규석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하지만 이서우가 내릴 결정은 하나밖에 없었다.
“사실 너에게 말을 할지 말지 상당히 고민했다.”
“잘하신 거예요.”
“아니다. 네가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다.”
“만약 말을 하지 않았다면 더 섭섭했을지 몰라요.”
“……고맙다.”
손규석이 이서우의 손을 덥석 잡고는 눈물을 보였다.
사실, 손규석은 이서우를 이용해 복수를 할 생각도 했었다.
어차피 동생을 죽인 자가 절대자로 있다면 이서우와 만나게 될 것이고, 이서우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를 처치할 것이다.
하지만 손규석은 이서우가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람을 죽이고, 그리고 그걸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서우에게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이 결정이 어려웠던 건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되면 이서우가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살인을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순간, 동생의 복수는 물 건너간다.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복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 월드는 또 하나의 세상이기에 그것이 결코 복수가 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누리며 떵떵거리고 사는데 그게 무슨 복수가 되겠나.
말을 해도, 말을 하지 않아도 이서우에게는 죄를 짓는 것이기에 참으로 결정이 힘들었지만, 결국 그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 문제는 제게 맡기시고, 형님은 좀 쉬세요.”
“아냐. 쉬면 괜히 더 마음이 싱숭생숭하니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게 나아.”
“하지만 이미 뉴 월드는 손을 다 봤잖아요.”
“그래서 네가 부탁할 게 있다.”
“뭐든 말씀해 보세요.”
“사업 보고선데…….”
“이런 어려운 건 전 잘 몰라요. 그냥 말씀해 보세요.”
“안드로이드(인조인간)와 휴머노이드 개발 계획이야.”
“안드로이드와 휴머노이드요? 둘 다 비슷한 거 아닌가요?”
“쉽게 말하자면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너무 똑같아서 구분하기가 힘든 인조인간이야. 반면, 휴머노이드는 형태만 인간이어서 딱 봐도 로봇이구나 하고 알 수 있지. 연구비가 엄청나게 들 거야.”
“뭐, 많이 들어가 봐야 얼마나 들어가겠어요.”
이제 이서우가 가장 자신이 있는 건 돈이다.
주식의 가치와 현실과 뉴 월드 내에 있는 부동산의 가치를 합치면 수백조에 달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의 재산이 200조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서우는 이번 이벤트로만 100조를 넘게 벌었다. 그동안 벌어들인 돈에, 글로벌사의 가치까지 생각하면 이미 전 세계 1등 부자를 앞지른 것이 된다.
서울, 경기도의 노른자 땅을 가지고 있으니 부동산의 가치만도 수십조가 된다.
뉴 월드 내에서 얻는 수익은 또 어떤가.
최근 평균 레벨이 증가하면서 하이 레벨 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빌딩 하나로는 감당이 안 돼 거대 도시는 100층 이상의 건물이 7채까지 늘었다.
다른 곳도 최하 3채까지 늘어나 지금은 200채 이상이 모두 이서우의 건물이었다.
건축 관련 직업 유저들의 레벨이 많이 올라 하루 작업량이 몇 배나 증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건물은 15층까지 상가가 있고, 16층부터 70층까지는 단기계약으로 머물 수 있는 거주 공간이 있으며, 중간중간에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71층부터는 90층까지는 호텔이고, 91층부터 95층까지는 VVIP를 위한 공간이었다.
16층부터 70층까지는 거주가 가능한 공간이지만 소유할 수 없고, 월세로만 이용이 가능했다.
장기계약은 불가능하고, 1개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데, 최소 1천만 원에서 최대 2억원까지였다.
2억 원에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크기가 200평이 넘었고,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었다.
VVIP들이 머무는 공간은 최하 5억 원부터였는데, 가장 화려한 곳은 무려 10억 원이었다.
게임 시간이라면 엄청난 금액이지만 현실 시간으로 적용이 되기에 이용자들은 큰 불만이 없었다.
상가에서 나오는 수익까지 포함하면 순수익이 연간 10조 원이 넘는다.
수수료 수익도 짭짤했다. 임대료가 싼 대신 물건을 사고파는데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수익에 비하면 수수료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 어떤 상인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괜히 이의를 제기했다가 쫓겨나면 자신만 손해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수수료가 연간 5조원에 가까운 순수익을 안겨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장비 아이템은 워낙 고가고, 계속해서 사고팔기 때문에 수수료 수익이 엄청났다.
이렇게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어 안드로이드와 로봇을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손규석은 이서우가 얼마나 벌어들이는지 모르기에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저 돈 많아요.”
“전폭적인 지원이라면 연간 1조원 이상 들어갈 거야.”
“그 정도면 그리 많지 않네요.”
“…….”
최저임금이 대략 280만 원이다.
주 32시간을 일하면 그 정도 받고, 연장근무까지 하면 300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맞벌이를 해도 빡빡한 삶을 살아야 하는 금액이었다.
어쨌든 1조는 이런 근로자 3만 명을 1년 동안 먹여 살릴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한데, 그런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투자하겠다니.
“제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된 것도 하이 레벨이었기에 가능한 거였어요. 왜 하이 레벨이 됐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았잖아요. 그러니 그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맙다.”
손규석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서우가 하이 레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개입 때문이었다.
이서우가 통 크게 투자하겠다고 하자 손규석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손규석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휴머노이드는 지금 기술 수준으로도 꽤 발전했지만, 안드로이드는 아직 많이 부족해. 그래서 돈이 더 많이 들어갈지 몰라.”
“괜찮으니 하고 싶은 걸 해 보세요. 박 대표님에게 말씀드려 놓을 테니 법인 만드시고 형님이 대표를 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래야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죠.”
“고맙다. 정말 고마워.”
“그런 소리 하지 마시고 얼른 가 보세요. 전 조금 쉬었다 다시 접속할 거예요.”
“그래. 푹 쉬고, 부디 조심해라.”
“저야 뭐, 게임에서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걸요.”
손규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고 이서우는 박 대표에게 연락을 넣어 손규석은 당분간 안드로이드 개발 관련 사업을 추진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몇 가지 사안에 대해 대화를 나눈 이서우는 3시간의 운동을 마치고 잠을 청했다.
잠을 자지 않아도 컨디션에는 크게 문제는 없지만 혹시 모를 건강의 이상을 염려해 4시간 정도는 자고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어봤네. 뭐, 절대자는 하나밖에 없으니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긴 하다만.’
이서우는 손규석에게 전화해서 이름을 물어볼까 하다가 문자만 보내 놓고는 접속했다.
“네가 아무리 절대자라고 해도 날 부수지 않고는 네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을 거야!”
이서우는 주문처럼 힘주어 말하고는 통치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