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
레벨이 갑이다
331화
쾅!
“감히 모험가 따위에게 벌벌 떨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주, 주인님, 그것이 아니오라, 두 달 만에 두 명의 통치자가 그자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기세를 탄 상황에서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에…….”
“시끄럽다! 모험가 따위에게 도망가지 않는다.”
“그럼 그걸 사용하시지요.”
“아직 충전이 되지 않았을 텐데?”
“아닙니다. 충전이 된 것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래?”
“네. 주인님.”
“좋다. 가자.”
“네. 주인님.”
관리자는 그제야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불안에 떨던 관리자가 안심을 하는 것일까.
안내를 하는 관리자의 발걸음에 자신감이 잔뜩 들어갔다.
* * *
“여기부터가 놈의 영역인 것 같은데.”
이서우는 통치자를 두 차례 처치하면서 그들의 영역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약간 마나의 흐름이 이상하다 여겼는데, 통치자를 상대하면서 통치자마다 마나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이점은 느껴지는 마나로 통치자의 강함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힘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놈들이어서 어느 정도 강한지 미리 알 수 있으니 좋단 말이야.”
이서우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마나에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통치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걸 좋아한다.
힘이 강해지면 주변에 터를 잡은 통치자들에게 도전을 하고, 승리하게 되면 일부의 땅을 얻게 된다.
서로 승부는 겨루지만 죽이지 않는 것은 하이 레벨 지역의 질서 때문이다.
통치자가 만들어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수년이다.
그것도 상급 관리자에서 그런 것이니 종속자들은 수백 년이 필요했다.
그만큼 성장하기 힘들기에 영토를 빼앗고, 전리품을 가져가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런 룰은 절대자로부터 내려온 것이기에 누구도 어길 수 없었다.
통치자들도 영토를 확장하면서 상대에게 과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을 해서 지금까지는 큰 잡음은 없었다.
통치자 이상은 그렇고, 종속자와 관리자들은 서로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종속자는 모래알처럼 많고, 관리자도 흔하기에 통치자들도 전쟁에 딱히 관여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서우는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서 좋은 기분으로 통치자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응?”
몇 발짝 들어갔을까.
이서우는 전방에서 강력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오, 직접 나오네. 통치자 둘을 처치했다고 날 감시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느끼지 못한 걸 보면 특수한 감시 장치 같고…….”
이서우는 항상 마나를 넓게 퍼트려 적의 접근을 항상 주시했다.
하지만 소문을 들었는지 이서우를 먼저 공격한 통치자는 하나도 없었다.
물론 이제 겨우 하급 통치자 둘을 상대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지금 다가오고 있는 통치자도 하급에서 중급 사이로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상하네. 지금 오고 있는 놈도 분명 죽은 통치자의 실력을 알았을 텐데. 근데, 죽은 녀석보다 더 약한 놈이 당당하게 접근한다라…….’
알아서 와 주니 시간도 절약하고, 귀찮음도 덜 수 있어 좋지만 의구심은 들었다.
통치자 정도 되면 자신의 실력과 상대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한데, 무턱대고 온다?
‘뭔가 준비한 게 있나 보네. 뭘 준비했을까?’
이서우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통치자가 있는 곳으로 질주했다.
향상된 초월가속까지 쓰면서 이동했기에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알아서 무덤이 될 곳으로 기어들어 오는구나.”
“동료 둘이 내게 죽은 걸 알 텐데도 자신감은 절대자급이군.”
“동료? 웃기는구나.”
“아, 맞다. 서로 힘겨루기만 하는 바보들이라서 동료의 개념 따위는 없었지?”
“이놈. 감히 누구 앞이라고 무례를 범하는 것이냐!”
“쫄따구들을 잔뜩 데려왔네.”
이서우의 행동에 통치자의 곁에 있던 관리자가 호통을 쳤다.
하지만 이서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끄럽다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이, 이놈이!”
“내가 말하는 중이다.”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꼭 약한 놈들이 부하들을 닦달한단 말이야. 그나저나 참 많이도 데려왔다. 끝이 안 보이네, 끝이.”
이서우는 통치자의 뒤쪽으로 빼곡히 들어찬 적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주 넓은 평야였는데 너무 사람들이 많아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기감을 넓혀 인원을 파악한 결과 20만 명이 넘는 것 같았다.
50명씩 50센티미터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도 4킬로미터나 되는 엄청난 줄이 생긴다. 20만 명은 그만큼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이서우는 전혀 두려운 얼굴이 아니었다.
“시끄럽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뭘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소용없을 거야.”
“멍청한 놈. 넌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놈을 쳐라!”
“네, 주인님!”
통치자의 명령에 관리자들과 종속자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었다.
이서우는 몸을 맹렬히 회전시키며 대검을 휘둘렀다.
마나를 그리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단 한 수로 수십 명이 죽어나갔다.
이서우는 전투에 필요한 모든 소모품을 사용했다.
갑자기 이서우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자 통치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놈, 설마 실력을 숨긴 것이냐? 어찌 모험가가 저리도 강하단 말인가.’
통치자는 슬며시 무기를 들었다.
‘너만 믿는다.’
그의 손에 들린 무기는 바로 활이었다. 그를 주인으로 섬기는 관리자가 안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활 때문이었다.
활은 평범해 보이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관리자와 종속자를 상대하던 이서우도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강자들과 싸우고 있었다면 한눈을 팔 정신이 없었겠지만 그리 강한 상대들이 아니어서 싸우면서도 통치자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뭐지? 엄청나게 강한 기운이 저 활에 내제되어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유물인가.’
이서우는 죽음의 대지에서 바손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설명을 들을 때는 엄청나게 화려할 것 같았는데, 지금보다평범해도 너무 평범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통치자가 활시위에 손을 가져갔다.
마나가 활에 주입되자, 활이 신화급과는 차원이 다른 화려함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활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또 어떤가.
아무리 이서우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저건 테라칸 녀석이 사용하던 활보다 훨씬 화려하고 강하잖아. 설마 준신급인가? 아니면 신급? 하긴, 신의 자손이라 불리는 자들이 남긴 거니 최소 준신급이어야 말이 되겠네.’
이서우는 바손이 남긴 유물이기에 최소 준신급은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직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니기에 속단하기는 일렀다.
‘그래. 차라리 신급이라고 생각하고 상대하자. 그래야 방심하지 않아.’
각각의 아이템이 신급이라면 세트 아이템은 무조건 신급이다.
아니, 그보다 더 강력한 등급의 아이템일지 모른다.
이서우는 아이템을 향한 강렬한 열망이 피어올랐다.
펠렌이 남긴 아이템도 분명 상당히 강력하다.
하지만 그가 가진 대검은 통치자의 활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서우는 공격목표를 관리자에서 통치자로 바꾸었다.
하나, 통치자의 동작이 더 빨랐다.
‘젠장. 저것도 마나를 화살로 사용하는 거네.’
활시위를 놓는 순간 이서우는 향상된 초월 가속을 펼쳤다.
하지만 멀리 움직일 새도 없이 화살의 기운이 느껴졌다.
“헉!”
이서우는 다급히 몸을 옆으로 틀었다.
심장을 향해 다가오는 엄청난 기운에 급히 회피기를 발동시킨 것이다.
“큭!”
하지만 온전히 피할 수 없어 스치고 말았다.
단지 스쳤을 뿐인데, 이서우는 팔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크하하하하. 꼴좋구나. 죽어라!”
이서우가 공격을 피하지 못하자 통치자는 미친 듯이 웃어젖히며 다시 화살을 날렸다.
이서우는 이미 향상된 초월 가속을 극한으로 펼치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피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한데, 이서우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한 발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무려 세 발이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날아왔다.
이서우가 피할 것을 예상하고 날린 것이었다.
이서우는 화들짝 놀라며 이를 악물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보통은 비슷한 힘을 가진 상대와 싸울 때 허공으로 몸을 띄우지 않기에 통치자도 화살을 허공으로 날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통치자의 대처는 빨랐다.
다시 활시위를 당기며 재빨리 놓았다.
소리도 없었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무려 다섯 발이나 이서우의 급소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이서우는 몸에 마나를 잔뜩 실으며 무겁게 만들었다.
쿵!
어찌나 몸을 무겁게 했는지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화살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향상된 초월가속을 최대치로 사용했음에도 이서우는 겨우 화살 공격을 피할 뿐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화살 공격이 너무 강해 관리자들이나 종속자들이 멀리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방해가 없었으니 화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필이면 활이라니. 대검이었으면 놈을 죽이고 착용하는 건데.’
회피도 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통치자가 가진 활이 대검이 아닌 것에 아쉬워했다.
“멍청한 놈. 넌 여기서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통치자는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로 이서우에게 경고를 했다.
정말 자신이 없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어서 이서우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서우는 방법을 모색했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유물이 또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설마, 진화 같은 걸 하는 건 아니…….’
이서우가 생각을 이어 갈 새도 없이 갑자기 통치자가 가진 활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제엔장!”
말이 씨가 된다고, 이서우는 정말로 활이 진화하는 것을 보며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온 사방에서 무서운 기운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분명 통치자는 앞쪽에 있는데, 뒤에서도 화살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이서우는 사방팔방에서 화살의 기운이 느껴지자 어찌할 바를 몰라 주춤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청난 위력의 공격이어서 화살의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서우에게 빠르지 않다는 것이지 평범한 유저에게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였다.
‘피할, 방법이 없어.’
모든 방향에서 다 화살이 날아오고 있으니 마땅히 피할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공간 이동을 펼치는 것도 무리였다.
이 정도 강력한 힘이라면 공간 이동을 펼치는 중에 죽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이서우는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렸다.
‘아이템 하나로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그래서 기간 종족에서 밀린 거구나. 그래, 이렇게 된 거 레벨을 더 올리고 와야겠다.’
이서우는 마지막을 떠올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 * *
“응?”
“주, 주인님?”
“넌 그만 가 봐라.”
“네, 주인님.”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사내가 물러나자 화려하게 차려입은 30대 초반의 사내가 나타났다.
“너도 느꼈구나.”
“네가 느꼈는데, 당연히 나도 느꼈지.”
“대체 어떤 놈이 유물을 사용한 거지?”
“어떤 멍청한 놈이 사용했겠지. 그동안 숨기고 있어서 찾기 힘들었는데, 차라리 잘됐잖아.”
“하지만 원거리 무기면 곤란해. 너도 알잖아.”
“근거리 무기라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야. 하지만 너랑 나랑 힘을 합치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해.”
“그거야 당연하지. 우리도 유물을 사용하면 되니까. 하지만…….”
“일단 유물을 차지하는 게 먼저야. 충전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빨리 세트를 모아야 그자를 이길 수 있어.”
“젠장. 절대자도 아니고 지배자 하나를 상대하려고 이런 짓까지 해야 하다니.”
“일대일 대결이 아니어서 자존심 상하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유물은 그런 존재니까.”
“나도 알아.”
“일단 가 보자.”
“그래.”
대화가 끝나자마자 두 사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