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
레벨이 갑이다
336화
“누나, 알아서 잘하겠지만 저분들 신경 좀 많이 써 줘.”
“걱정 마. 모든 걸 다 우리 쪽에서 챙기기로 했으니까.”
“박 대표님은 괜찮다고 하셔?”
“응. 적극적으로 돌보라고 당부하셨어.”
“내가 해도 되는데. 괜히 바쁘신데 신경 쓰게 하는 건 아닌가 몰라.”
“아냐. 이젠 우리 일이라고 하시면서 신경 좀 많이 써 달라고 당부하시더라.”
환자들과 가족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자리를 비켜 준 세 사람은 휴게실로 와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동안 피해자를 찾기 위해 뉴 월드에서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이 바로 김소연이다.
정보를 모으면서 틈만 나면 그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썼다.
지금도 걱정스러운 표정인 것을 보니 앞으로 그들을 돌보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참, 오빠, 주 변호사님이 텐센 주식 계속 사야 되는지 물어보시던데.”
“아, 요즘 내가 뉴 월드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못 썼네. 나중에 내가 연락드릴게.”
“오빠 많이 바쁘니 내가 할게. 괜찮아.”
“그럼 그쪽이랑 미국 쪽 가상현실 게임 업체 쪽도 사들이라고 해 줘.”
“미국까지?”
“뉴 월드가 계속 1위를 달리겠지만 후발주자들도 괜찮은 성적을 낼 거야.”
“지금은 다들 힘들어하던데.”
“형님이 그랬어. 중국 쪽에 넘긴 자료가 완전히 잘못된 건 아니라고.”
“아, 그럼 중국도 곧 쫓아오겠구나.”
“그렇지. 그러니 텐센은 집중적으로 사들여도 될 거야.”
“응. 요즘 상황이 좀 어려우니 사는 건 문제 없어.”
“부탁해.”
“응.”
이서우는 그동안 뉴 월드에 매진한다고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이설아에게 부탁했다.
그때 진동이 울렸다.
“어라, 민수네. 잠시만.”
이서우는 두 사람이 대화할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비켰다.
-야, 뉴월드에 꿀 발라 놨냐?
“진행 중인 퀘스트가 있어서 좀 바빴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무슨 일이 있기는 있지.
“목소리를 들어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인데?”
-이 형님, 결혼하신다.
“결혼? 드디어 가는 거냐.”
-그래. 드디어 솔로 탈출하신다.
“축하한다. 뺀질거려서 제일 늦게 갈 줄 알았더니.”
-야, 뺀질이라니. 이 형님께서는 다 너희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하신 건데.
“하여튼, 말이나 못하면. 날짜는?”
-내년 4월로 잡았어.
“날짜는 좋네.”
-종명이도 내년이면 할 것 같던데, 너도 빨리 가야지. 설아 씨가 불쌍해 죽겠다. 뭐가 좋다고 맨날 너만 바라보고 있는 건지. 여자 기다리게 하는 남자는 천벌 받는다. 게임 좀 줄여.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같이 시간도 많이 보낼 생각이다.”
-진즉 그랬어야지. 최근 두 달간 밖에 나간 적도 없지?
“그러고 보니 그러네. 너무 뉴 월드에 빠져 있었네.”
이설아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 그를 기다리고 있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말이다.
‘절대자만 남았어. 하늘 길만 올라가 보고 당분간 좀 쉬자.’
이서우는 하루빨리 진행 중인 일을 마무리하고 이설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뉴 월드 절반이 남자들인 거 알지? 10억 명의 유저가 설아에게 빠져 있다. 있을 때 잘 챙겨.
“알았다. 명심하마. 그리고 축하한다.”
-축의금 빵빵하게 내라.
“왜? 집이라도 사 줘?”
-집으로 되겠냐. 빌딩 하나는 올려 줘야지.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마음에 드는 곳 있으면 얘기 해.”
-헐, 진짜 해 주려고?
“내가 언제 허튼소리 하는 거 봤냐?”
-너무 안 해서 탈이지. 됐고. 그냥 비행기나 빌려 주라. 신혼여행 멋진 곳 가게.
“그래. 최신형으로 준비해 놓으마.”
-기대하마. 수고하고, 건강관리 잘해.
“그래. 조만간 한번 보자.”
-알았다.
이서우는 박민수와 통화를 끝내고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짜식, 내가 먼저 가려고 했는데, 선수치네.”
이서우는 이설아, 김소연과 대화를 조금 더 나누고는 뉴 월드에 접속했다.
최대한 빨리 절대자를 처치하고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접속하자마자 대검을 꺼내들었다.
활처럼 대검도 평범했다.
‘이것도 궁극이라는 말이 붙네. 궁극 시리즈인가. 작명 센스하고는.’
궁극의 대검이라고 표기된 이름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서우는 마나를 일으켜 대검에 주입했다.
-궁극의 대검이 마나를 흡수합니다.
-궁극의 대검이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궁극의 대검이 절대 신의 대검으로 탈바꿈합니다.
“헉! 절대 신의 대검? 이게 무슨…….”
이서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화들짝 놀랐다.
조금 전만 해도 분명 궁극의 대검이었다. 한데, 마나를 머금더니 이름이 바뀌어 버렸다.
이서우는 대검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헉!”
신급 아이템이 된 활보다도 2배 이상이 강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이서우는 멍하니 절대 신의 대검 옵션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차차,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진화부터 시켜보자.”
이서우는 다시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메시지가 뜨면서 진화 과정이 진행되었다.
한데, 다른 무기와는 첫 시작이 달랐다.
-200만 마나를 소모합니다.
-1차 진화가 완료되었습니다.
-300만 마나를 소모합니다.
-2차 진화가…….
……중략……
-5,000만 마나를 소모합니다.
-10차 진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진화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 이럴 수가…….”
무려 1억 400만 마나가 소모되면서 10차 진화까지 진행되었다.
이서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려하게 빛나는 대검을 바라보았다.
마치 빛의 검이라도 된 듯 밝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서우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대검의 능력치를 살폈다.
“말도 안 돼…….”
신급 무기가 나타난 것도 놀라운데, 활이나 지팡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절대 신의 대검이라고 하더니 능력치만 보면 진짜 신이라도 죽일 수 있겠어. 왜 이렇게 강한 무기를 만든 거지?”
거의 모든 물건은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재미삼아 물건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다.
특히 뉴 월드에서는 목적 없이 만들어지는 게 없다.
한데, 절대 신의 대검은 너무 엄청나서 도대체 이게 쓸 곳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냥 고정 옵션이 아니라 사용자에 따라 능력이 상승하는 무기니 더욱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설마, 진짜 신이라도 죽이라고 만들어 둔 건가. 근데 왜? 절대 신이라면 충분히 자기의 손으로 처리해도 될 텐데 말이야.”
이서우가 생각하기에는 절대 신이 결코 이런 무기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절대자를 처치하자. 하늘 길을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들어 놔야 언제든 갈 수 있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어야 쉬어도 편하게 쉴 수 있다.
이서우는 절대 신의 대검을 잘 넣어두고는 빌딩을 나섰다.
이제는 하이 레벨 지역을 제집처럼 돌아다녔다.
지배자도 쓸어 버렸기에 누구도 그를 막을 존재가 없었다.
깊숙이 들어가자 절대자의 영역이 느껴졌다.
이서우는 대검을 뽑아 들고는 차분히 들어갔다.
‘5차 전직에 대검까지 얻어서인지 절대자가 뿌려 놓은 기운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약간 긴장을 했었다. 아무래도 절대적인 존재와 만나는 것이니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산책을 하는 것처럼 편안한 모습이었다.
‘힘을 가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서우는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세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현실에서는 돈을 이용해 힘을 행사할 생각을 전혀 해 보지 않아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물론 과거에는 돈이 없는 서러움을 뼛속 깊이 새길 정도로 경험했지만 제한된 공간에서만 주로 생활하다 보니 돈의 파워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뉴 월드는 달랐다.
계속해서 힘을 얻고, 강한 적을 상대하면서 더욱 강한 힘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절대 신의 대검이라는 최고의 아이템을 얻으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자신감과 확신이 들자 힘을 가진 게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래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놓고 싶어 하지 않고,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그 난리를 피우는 거구나.’
이서우는 그들의 속성이 어떤지 지금에서야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해는 하지만 한번 힘에 지배당하게 되면 결국 그런 추한 꼴까지 보이게 되는 거야. 난 절대로 힘에 지배당하지 않겠어. 힘을 지배하는 자가 되겠어!’
이서우의 의지를 일으키자 마나가 움직였다.
대검으로 들어간 마나는 마치 이서우의 의지를 받아들인다는 듯 밝게 빛을 냈다.
그러자 멀리서 기운 하나가 느껴졌다.
“절대자구나. 대검의 힘을 느낀 것이군.”
절대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서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보통 때였으면 새롭게 깨달은 무한가속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는 어떠한 조급함도, 서두름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유유자적이었다.
잠시 후, 이서우의 앞에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타났다.
“당신이군, 이곳의 절대자가.”
“너군, 궁극의 힘을 끄집어낸 자가.”
노란색 긴 머리에 하얀 얼굴을 가진 사내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궁극의 힘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니 이자는 절대 신에 대해 모르는 것 같은데?’
이서우는 절대자라면 절대 신의 대검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 역시도 잘 모르는 듯한 반응이었다.
“내가 그 무기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아 의아한 표정이군.”
“알고 있었나.”
“알고 있지. 그걸 왜 만들었는지도 알고 말이야.”
“그랬군. 알고 있었군.”
“그 무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 넌 그걸 쓸 자격이 없어.”
“내게 패할 사람에게 자격 운운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은 데 말이야.”
“내가 네게 패한다고? 하하하하. 내가 들어 본 가장 웃긴 말이군.”
“결과는 곧 알게 되겠지.”
이서우는 대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한 번도 휘둘러 보지 않은 대검이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써 왔던 것처럼 익숙했다.
이서우는 검끝이 사내를 향하도록 하고 사내를 공격하는 상상을 했다.
특별히 의미를 두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저절로 떠오른 것이었다.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끝이 갑자기 늘어나더니 진짜로 사내를 공격하는 게 아닌가.
‘헐. 그냥 이 상태로 놈을 찔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공격이 되다니.’
검 자체가 늘어난 것이 아니고 이서우의 마나가 뻗어 나간 것이지만 생각만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생각만으로 적을 죽일 수 있는 단계까지 갔을 줄은 몰랐군. 그렇다면 분신으로는 상대가 안 되겠어.”
“뭐? 분신?”
“설마 내가 너 같은 모험가 따위를 만나기 위해 본모습으로 나타났을 거라 생각한 거냐?”
“…….”
이서우는 사내의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네가 분신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분신이든, 본체이든 내손에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이서우가 무한가속을 사용하며 대검을 휘둘렀다.
무한가속을 사용하자마자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전혀 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대검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아 사내는 이서우의 공격을 온전히 피하지 못했다.
“큭.”
스쳐지나간 공격에서 사내는 고통을 호소했다.
승기를 잡은 이서우는 사내를 몰아치더니 단숨에 목을 잘라 버렸다.
-절대자의 분신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0만 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반신의 정수를 획득했습니다.
“진짜 분신이었군. 분신인데도 3레벨이 오르다니. 본체를 처치하면 엄청나겠어. 그나저나 반신의 정수가 뭐지?”
이서우는 반신의 정수를 꺼내 자세히 확인했다.
“이걸로 분신을 만든 거군. 강력한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가. 뭐, 어찌 됐든 본체를 잡으러 가자.”
이서우는 반신의 정수를 인벤토리에 잘 넣어 두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주인님, 놈이 오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인간인 주제에 절대 신의 무기를 얻다니.”
“어떻게 할까요?”
“네가 나서도 어차피 분신과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이놈은 내가 상대하겠다. 너는 하늘 길로 가라. 가서 절대 신의 무기를 얻은 자가 나타났다고 전해라.”
“주인님…….”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라.”
“네, 주인님!”
2미터가 넘는 커다란 덩치의 사내는 큰절을 하고는 사라졌다.
금장으로 장식된 화려한 의자에 앉은 젊은 사내는 턱을 어루만지며 전방을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