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
레벨이 갑이다
337화
“잘 꾸며 놨네.”
깊숙이 들어갈수록 음침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분위기가 점점 밝아졌다.
특이한 것은 주변에 몬스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나.”
산들바람이 부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릴 뿐, 피 냄새가 난다거나 싸우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곳이 뉴 월드가 아니었다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의 어느 산속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 절대자군. 확실히 분신과는 느낌이 다르네.’
분신을 만났을 때는 하수라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상당히 실망했었는데, 지금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고 절대자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한 번 싸워 볼 만한 상대라고 평가였다.
“어서 와, 이곳은 처음이지?”
“좋은 곳에 살고 있군.”
“칭찬 고마워. 여기를 꾸민다고 조금 고생했거든.”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취향인가 봐?”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절대자는 이서우를 쳐다보며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보통 자신을 보면 주눅이 들어 제대로 눈빛을 맞추지 못한다.
한데, 이서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
절대자가 만난 사람들 중 누구도 이서우와 같은 반응을 보인 사람이 없기에 기분이 묘했다.
“설마 이 넓은 공간에 혼자 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부하들이 있지만 다 보냈다. 너와의 싸움을 위해.”
“부하들과 지금까지 살았던 건가, 그 긴 세월을?”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방구석 폐인이었군.”
“방구석 폐인? 무슨 의민지는 모르지만 좋지 않은 뜻 같군.”
“모르는 게 좋아.”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대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절대자가 입을 열었다.
“날 보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평온한 모습이라 솔직히 조금 놀라긴 했는데, 상당한 힘을 숨기고 있었군. 의외야.”
“이길 수 있는 상대니 마음이 편안해서 말이야.”
“이길 수 있는 상대라. 과연 그럴까?”
이서우는 자신감에 가득 찬 절대자를 보며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힘의 차이는 분명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극명한 차이는 아니지만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미세한 차이도 승패를 좌우한다.
한데, 그걸 뻔히 알면서 승리를 자신한다?
이서우는 잠시 대화를 해 보기로 했다.
“자신감이 대단한데. 절대자로 지낸 지 얼마나 됐지?”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됐지.”
“하긴, 이걸 보고 바로 알아보는 걸 보면 상당히 오래 됐겠지.”
이서우가 대검을 앞으로 내밀자 절대자의 눈빛이 반짝였다.
“절대자도 욕심이 나나 보군.”
“욕심이 난다기보다 그냥 신기해서 말이야.”
“신기하다고?”
“분신이 너에게 잡다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솔직히 난 네가 그걸 어떻게 깨웠는지 궁금해.”
“분신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보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여튼, 어떻게 깨운 거지?”
“좋은 무기는 주인을 알아보는 법이지.”
“좋은 주인이 좋은 무기를 알아보는 법인 것 같은데?”
“난 좋은 주인은 못되거든.”
“겸손하군. 뭐, 여튼 절대 신의 대검이 널 주인으로 선택했다는 거군.”
“이 무기에 맞설 만한 장비가 있나 보지?”
“있지. 절대 신과 아주 팽팽히 맞서던 존재가 남긴 물건이.”
절대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서우는 그가 대체 무슨 장비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곧 싸움이 벌어질 텐데도 그는 어떤 무기도 꺼내지 않았다.
방어구인가, 했는데 방어구도 아니었다.
‘기운이 새어나오는 걸 막은 건가. 뭐, 처치하고 나면 알게 되겠지.’
이서우는 그가 무엇 때문에 그리 자신감을 가지는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상대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는 것이 중요했다. 비밀 병기가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기에 상대가 무엇을 준비했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대화를 조금 더 해 보려던 이서우는 생각을 바꾸고는 대검을 세웠다.
“내가 누군지 들어보고 싶지 않나?”
“당신이 절대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
“그게 다일까?”
“신의 자손과 연관이 있는 존재겠지.”
이서우는 뭘 그리 당연한 걸 물어보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절대자의 다음 말에 곧게 세웠던 대검이 힘을 잃고 늘어졌다.
“신의 자손과 연관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바로 신의 자손 중 하나다.”
“뭐?”
이서우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수천 년 전에 내려왔다가 사라졌던 신의 자손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대화를 더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 이서우는 기운을 거둬들였다.
“세상에서 내 존재가 지워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군.”
“황궁 기록물 보관소나 바손의 자손 중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다. 어쩌면 기간 놈들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
“기간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좋지 못하군. 욕심 많은 놈들이었지.”
“욕심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궁극의 장비를 남기고 간 건가?”
“처음에는 기간과 첼란이 다시 싸우게 될 걸 염려해서 남긴 것이다. 칼은 죄가 없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은 것 같더군.”
이서우도 칼에 대한 부분은 절대자의 말에 동의한다.
칼이 문제가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니까 말이다.
하지만 유물의 힘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네 같은 존재에게 유물이 들어가지 않았나.”
“파괴 본능에 빠진 놈들에게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 존재가 필요했던 거지. 절대자라는 존재가.”
“…….”
이서우는 절대자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절대자가 없었다면 유물은 더 큰 재앙을 몰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턱대고 자신의 주장만 우기는 인간은 아니었군. 그러기 쉽지 않은 데 말이야.”
“논리적이고,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주장이라면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
“기간이나 첼란이 너처럼 그렇게만 생각했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당시 너같은 존재가 나타나지 않은 게 아쉽군.”
“이미 지난 일이야. 그리고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좋은 놈도 아니고. 나 또한 이익에 의해 움직여.”
“누구나 다 그렇다. 신의 자손이라는 나마저도. 그리고 우리를 만든 신마저도.”
이서우는 신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슬픈 표정을 짓는 절대를 똑똑히 보았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저자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있어. 거대한 뭔가가.’
촉이 왔다. 절대자가 이곳에서 살아온 이유가 가볍지 않을 거라는 촉이.
이서우는 그것이 궁금했다.
“넌 분명 절대 신의 대검과 대항할 뭔가가 있다고 했어. 절대 신과 팽팽히 맞서던 존재가 남긴 물건이. 절대 신과 팽팽히 맞선 자가 누구지?”
“누군지는 말해 줄 수 없지만 그를 만나면 너도 알 거라는 건 말해 줄 수 있다.”
“그를 만날 일이 있을까.”
“날 꺾으면 만나게 될 거다.”
“의욕이 생기는데?”
“날 꺾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운이 좋아 네가 이긴다고 해도 넌 지옥을 맛보게 될 테니 말이야.”
“이기든 지든 지옥을 맛보게 된다면 차라리 널 쓰러뜨리고 유물을 차지하는 게 낫겠군.”
이서우의 단호한 말에 절대자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주먹을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주먹이 무기인가.”
“두 주먹이면 세상에 파괴하지 못할 것이 없다.”
“좋아, 최선을 다해 상대해 주지.”
이서우는 대검에 마나를 잔뜩 불어넣었다.
그의 마나에 응답해 대검이 빛무리를 뿜어냈다.
그냥 그저 그런 빛무리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다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태산처럼 서 있을 것만 같았던 절대자도 그 공격을 감당할 수는 없어 재빨리 몸을 피했다.
이서우는 무한 가속을 펼쳐 절대자에게 따라붙었다.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연 속에 고요함을 맞이한 것처럼 잔잔했다.
사라라락.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잎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새가 소리 내어 울었고,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정말 누가 봐도 그냥 자연 속의 평온함일 뿐이었다.
한데, 그 속에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으니 누가 유리하고, 누가 불리한지 몰랐지만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만약 한쪽이 더 유리했다면 신음소리든 뭐든 터져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가속을 극한까지 펼치자 그제야 조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팽팽함이 깨지니 금세 폭풍이 몰아쳤다.
훅훅훅!
사사삭, 사삭!
이서우는 마나를 이용해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했지만 절대자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공격에 매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절대자가 펼치는 공격 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서걱!
“큭.”
드디어 이서우의 공격이 성공했다. 절대자의 가슴에 길게 상처를 냈다.
절대자는 크게 당황해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겨우 잡은 승기를 놓칠 이서우가 아니었다.
공간이동으로 접근해 곧장 공간장악을 시전했다.
마나가 이서우의 반경 100미터를 모두 장악해 버렸다.
공기마저도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절대자는 당황해 순간 움찔했다.
서걱! 서걱!
“크악!”
찰나지간이지만 이서우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서우의 대검이 절대자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비명이 온 사방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절대자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이서우가 다시 공격을 펼치려는데 절대자가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이서우가 그의 기운을 쫓으려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절대자는 멀쩡한 상태로 이서우의 앞에 나타났다.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강한 힘을 낼 수가 있지?”
“너야말로 대단하네.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나타나니 멀쩡해지고.”
“그건 내가 신의 자손이라서 그런 것이다. 너처럼 인간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이서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너 같은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뉘앙스가 풍겼다.
1차 접전은 그렇게 끝났지만 다시 2차 접전이 이어졌다.
이서우는 더 강력한 힘을 끌어올려 절대자를 상대했다.
지상에서는 부족했는데 공중으로 날아올라 미친 듯이 대검을 휘둘렀다.
챙챙챙챙챙!
대검과 주먹이 부딪쳤는데, 쇳소리가 났다.
‘설마 궁극의 장갑? 저게 저자가 말한 그건가. 아냐. 저걸로는 뭔가 부족해. 그렇다면 설마 액세서리?’
가장 합리적인 생각이 바로 액세서리였다.
그렇다면 방어구에서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다.
만약 액세서리라면 이서우가 유리하다.
하지만 상처를 금세 치료하는 기술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 사람의 전투는 길어졌다.
한바탕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하고 싶어서 쉰 게 아니라 절대자가 사라졌다가 회복을 한 뒤 나타나니 어쩔 수 없이 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쉬고, 싸우는 일이 반복되자 하이 레벨 전 지역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유저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사냥도 중단한 채 원인을 밝히기 위해 애썼다.
사실 유저들이 사냥을 중단할 이유는 없었는데,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서우는 마르지 않는 마나를 무기로 계속해서 절대자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스무 번의 접전을 펼치고 스물한 번째가 됐을 때다.
‘찾았다, 놈의 약점을.’
이서우는 절대자가 사라졌다 치료할 때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치료를 하는 것인지만 알면 충분히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스물한 번째 전투.
또다시 같은 상황이 왔다.
부상을 입은 절대자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 순간, 이서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 * *
“허허, 이런 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고야 말았구먼.”
“어떻게 할까요?”
“그 아이의 종이 전한 말이 정말 사실이겠지?”
“그렇습니다. 저도 의심스러워 잠시 확인을 해 봤는데,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준비해야지.”
“직접 내려가실 생각이십니까?”
“너와 나, 둘만 가면 되지 않겠느냐.”
“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준비되는 대로 다시 찾아오너라.”
“네.”
20대의 청년이 목례를 하고는 사라졌다.
그러자 70대 노인으로 보이는 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최대한 늦게 오기를 바랐건만 결국은 파괴의 날이 오고야 말았군.”
노인은 길게 늘어진 순백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공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