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9
레벨이 갑이다
339화
‘그나저나 노인네가 왜 이렇게 쉽게 정수를 준 거지? 오랜 세월 문지기를 했으니 머리가 나쁘지는 않을 텐데. NPC의 한계인가.’
이서우는 공짜라고 해서 무조건 덥석 받지 않는다. 항상 이유를 따져 본다.
한데, 지금으로서는 노인이 이렇게 쉽게 정수를 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럴 때 이서우는 흘러가는 대로 두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행동한다.
멀리 마을 입구가 보였다.
‘경비들이 예사롭지 않네. 5차 전직 NPC 같은데? 하긴, 하늘 길을 타고 올라올 정도면 다들 강할 테니 강한 NPC를 둬야겠지.’
경비병 둘이 입구에 있었는데, 무기와 방어구가 화려했다.
딱 봐도 레벨 1천 이상이었다.
“정지!”
“무슨 일이죠?”
“통행권은?”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말이 짧네.”
노인이 반말을 하는 것이야 그냥 넘길 수 있지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경비병들이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하자 이서우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경비병들은 이서우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상관하지 않고 통행증만을 요구했다.
“지상으로 통하는 입구지기 노인에게 통행증을 받았을 텐데?”
“그런 거 안 받았는데.”
“통행증을 못 받았다고?”
“그렇다니까 그러네.”
“아, 그래?”
경비병의 태도가 처음보다 더 거만해졌다.
창으로 바닥을 툭 치더니 창끝이 이서우를 향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무슨 뜻이긴, 입구지기 노인은 방문자들에게 무조건 통행증을 주게 되어 있어. 그런데 못 받았다는 건 네가 그 노인을 그냥 지나쳐 왔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이 새끼가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네가 그 노인을 피해 이곳까지 기어들어 왔으니 분명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왔겠지. 안 그래?”
“허, 참.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이놈이, 감히 우리 마을을 쳐들어오려고 한 주제에 큰소리네. 야, 잡아.”
“알았어!”
곁에 있던 경비병이 창을 움직였다.
소리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이서우는 화들짝 놀라 급히 대검을 뽑아 창을 막았다.
챙챙챙챙챙!
그 찰나지간에 무려 다섯 번이나 공격을 펼친 경비병은 쉬지 않고 공격을 이어 갔다.
다른 경비병도 이서우가 반항을 하자 창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것들 뭐야? 하나같이 다들 고수잖아.’
이서우는 자신을 압박하는 경비병들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마나를 일으켜 무한가속을 펼치자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사사삭, 사사사사삭!
경비병들의 창이 수십 번이나 이서우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지만 가볍게 피해 버렸다.
“날 원망하지 마라.”
멀리 거리를 둔 이서우는 짧은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무한 가속에 마나를 잔뜩 실어 속도를 높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경비병들이 이서우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자 당황했다.
퍽퍽! 퍽퍽!
대검을 집어넣고 주먹으로 경비병의 복부를 각각 두 번씩 공격했다.
이서우의 공격이 너무 빨리 경비병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큭.”
“읔, 이놈.”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서우는 손날로 경비병을 기절시키고 인벤토리에서 줄을 꺼내 묶었다.
괜히 NPC를 죽이면 더 곤란한 상황이 될지 몰라 그렇게 한 것이다.
줄을 묶은 뒤 숲속으로 끌고 가 나무에다 매단 다음에 다시 마을 입구로 갔다.
마을 입구 근처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이서우가 뭘 했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이서우는 천천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500미터쯤 들어가자 그때서야 사람이 보였다.
한데, 허름한 복장인데도 상당히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여긴 다들 5차 전직을 한 NPC들인가 보네. 유저들은 안 보이는 것 같고, 생각했던 것보다 마을도 크네.’
이서우는 멀리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성과 주변에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을 보았다.
지상의 마을과 유사하지만 입구를 단 두 명의 경비병이 지키는 것은 이상했다.
딱 봐도 인구가 수만 명은 되는데 왜 입구를 허술하게 관리하는 걸까.
그런데 그 때였다.
에에에에에에엥!
에에에에에에엥!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모든 건물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 큰 성도,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사람들도 감쪽같이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서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마치 평범한 숲처럼 나무와 풀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서우는 마나를 끌어올려 주변 기운에 집중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마나를 이용해 찾는 것이 가장 정확했다.
그때 멀리서 일단의 무리들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경비병들이? 한참은 지나야 깨어날 텐데. 줄을 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지?’
이서우는 전투를 준비했다.
하늘의 도시니 적들이 강할 것이라 여겨 강력한 전투 보조 아이템을 사용했다.
소모품 아이템들을 모두 복용하자 적들이 다가왔다.
“네놈이구나, 지상에서 온 미꾸라지가.”
“나 하나 잡자고 이렇게들 오셨나그래.”
“하하하하, 멍청한 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구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냐니. 네가 말하는 그 멍청한 놈에게 볼품없이 당하는 걸로 진행되고 있지.”
“자신감은 높이 사 줄 만하다만 이곳이 어딘 줄 알고나 떠드는 것이냐?”
“하늘의 도시잖아.”
“크하하하하. 하늘의 도시? 이곳이? 이곳은 그저 하늘의 도시로 가기 전에 잠깐 머무르는 곳일 뿐이다.”
“뭐? 이곳이 하늘의 도시가 아니라고?”
“그렇다. 지상을 지키고 있는 입구 지기는 미끼에 불과하다. 이곳 마을도 마찬가지지. 자기를 잡기 위한 미끼인 줄도 모르고 들어오다니, 멍청한 놈.”
“나 하나 때문에 아주 제대로 공을 들였구나. 대체 왜지?”
“너 따위 놈에게 하늘의 도시를 공개할 것 같으냐?”
“하늘의 도시가 그렇게 대단한 곳인가?”
“신들의 사는 세계다. 너 같은 인간이 올 곳이 아냐.”
“신들의 사는 세계라. 네놈이 그렇게 말하니 그 잘난 신들의 도시를 꼭 가 보고 싶네.”
“어림없다. 넌 이곳에서 죽을 테니까.”
완전 무장을 한 수십의 사내들의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원거리 무기를 가진 사람이 절반이었고, 나머지는 검과 창을 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무기가 심상치 않은 것이, 최하 신급 장비들로 보였다.
‘여긴 신급 장비가 아주 흔하네, 흔해.’
같은 신급이라도 능력치 차이가 크다. 지금 이서우의 앞을 가로막은 자들은 신급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는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도 아니고, 수십의 인원이 신급 장비를 가지고 있으니 이서우로서도 가볍게 상대할 수는 없었다.
하나, 이서우가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이후의 일이었다.
더 강한 자들이 나와 최상급 신급 아이템을 들이밀면 낭패였다.
‘일단 이놈들부터 처리하고 보자. 그러면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이서우는 대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한데, 가장 앞쪽에 서서 이서우에게 호통을 쳤던 사내가 말했다.
“네놈 때문에 지상은 곧 쑥대밭이 될 것이다. 넌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뭐? 지금 뭐라고 했지?”
“멍청한 놈, 이제는 가는귀도 먹은 것이냐? 너로 인해 지상이 쑥대밭이 될 것이다.”
“설마…….”
“그래. 신의 자손인 분들이 가셨다. 그분들이 내려가신 이상 지상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신의 자손이라면 수천 년 전 지상으로 내려왔다던 바로 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냐?”
“그래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구나. 그렇다.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늘 도시로 오셔서 신의 자리에 오르셨지. 오직 그 두 분만이 신이 되셨다. 우리의 자랑이신 분들이지.”
이서우는 사내가 말한 존재가 바로 과거 기간 종족과 첼란 종족의 전쟁을 종식시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데, 그들이 신이 되었다니.
“너희들의 자랑이라는 자들이 내가 이곳에 있는 틈을 타서 지상으로 내려간 것이냐. 치졸하구나.”
“뭣이! 감히 우리의 우상들에게 치졸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곱게 죽기를 포기하는구나.”
“그건 내가 할 말이다. 하늘의 도시는 신이 되기 위해 평생을 바쳐 수련하는 신의 자손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곳에서 당당히 신이 되었지만 우리를 지키기 위해 남아계신 분들을 감히 욕되게 하다니. 죽어라!”
사내는 살기를 풀풀 풍기며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원거리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서우는 멀리 피하지 않고 바짝 접근했다.
하지만 이미 이서우의 행동을 알았다는 듯 검과 창이 날아들었다.
챙챙챙챙챙챙챙!
적들이 공격을 막아 내자 이서우는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아 허공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대검에 마나를 잔뜩 실어 있는 힘껏 사선으로 베었다.
“조, 조심해라! 어서 피해!”
이서우의 대검에서 하늘을 쪼개 버릴 듯한 기운이 느껴지자 이서우를 죽이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내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이서우의 공격이 반경 수백 미터를 장악해 그들을 덮쳤다.
“크아아악!”
“아아악! 살려 줘!”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이서우의 눈앞에 처치 메시지와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들렸다.
‘이놈들이 신의 정수를 주는구나. 신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수련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인가 보네.’
이서우는 남은 자들을 모조리 처치했다.
“어차피 나와 적대적인 관계고, 지상으로 보내서 사람들을 쓸어 버리려고 하니 나도 가만히 못 있지. 이렇게 되면 전쟁이야!”
이서우는 모두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몸을 돌렸다.
가면서 경비병을 묶어 놓은 곳에 들러 숨통을 끊어 버렸다. 혹시라도 이곳의 일을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으니 말이다.
마을에서 오래 지낼 것이라 생각해서 죽이지 않았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노인네,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 날 함정으로 들이밀었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야.’
어차피 NPC다. 이서우는 무한 가속을 펼치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헛! 이, 이보게. 자네 왜 그러나”
“날 죽이려 해 놓고 이제 와서 아닌 척할 필요 없다.”
이서우가 휘두른 대검에 노인은 황급히 몸을 피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무한 가속으로 다가가 대검으로 목을 잘라버렸다.
노인이 죽었다는 메시지가 뜨자 이서우는 급히 몸을 날렸다.
‘신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라고 하니 지상에 피해가 클 거야.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해.’
이서우는 슈퍼맨처럼 날아 지상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 * *
“폐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을 떠는 것이냐.”
“하늘에서 내려온 두 사람이 엘사둔 백성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지, 지금 하늘에서 사람이 내려왔다고 했느냐?”
“네, 폐하!”
“어찌 그런. 어서 빨리 모험가들에게 임무를 주도록 해라. 국고를 탈탈 털어도 좋으니 보상을 많이 걸도록 해라. 반드시 막아야 한다. 반드시!”
“네, 폐하!”
신하가 황급히 나가자 반다이젠 황제는 얼른 이서우에게 통신을 넣었다.
-이보게, 듣고 있는가?
통신구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답이 없었다.
-이보게, 큰일 났네!
한 번 더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수호기사가 나서야 되는데, 갑자기 왜 통신이 안 되는 거지? 설마 당한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무리 신의 자손들이 내려왔다고 해도 그를 어쩌지는 못해.”
반다이젠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이서우가 안전할 거라 여겼다.
“이럴 게 아니라 모든 모험가들을 동원해야겠어.”
보고를 한 신하에게 모험가에게 임무를 주라고 했지만 그가 줄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황제는 첼란 종족뿐 아니라 동맹관계에 있는 바손 종족에게도 임무를 줄 수 있었다.
반다이젠 황제는 신의 자손을 막기 위해 대규모 퀘스트를 주었다.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은 뜬금없는 대규모 퀘스트 메시지에 흥분했다.
두 사람만 죽이면 신화급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무기를 준다고 하자 유저들이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수천만 명이 죽는데 걸린 시간은 단 3시간이었다.
미친 듯이 덤벼들던 사람들은 이제 그들을 피하기 바빴다.
신화급 아이템을 착용한 사람들도 몇 수 상대하지 못하고 죽어 버리자 뉴 월드는 난리가 났다.
하지만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유저들은 전장의 지배자를 찾기 시작했다.
한쪽에서 비명이 들릴 때, 다른 한쪽에서는 전장의 지배자가 빨리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다시 수천만의 유저가 죽었을 때, 그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전장의 지배자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