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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16화 (216/325)

# 216

메시에겐 호날두가 필요 없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대화를 시작할 타이밍을.

창고를 나와서 상무님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상무님은 직접 내 차 조수석 문을 열더니 뒷자리가 아닌 조수석에 오르셨고, 뒷자리 문을 열려고 문고리에 손을 갖다 대고 있던 난 머쓱하게 운전석에 올라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때라도 내가 먼저 말을 꺼냈어야 했다.

어이없는 안전사고가 난 부분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의미 없는 말이라도 먼저 꺼냈어야 했는데… 그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자연스럽게 병원으로 가는 동안 차 안 공기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아닌 상무님께서 먼저 다가와 주셨다.

한 번씩 상무님한테 참 죄송스럽다.

이럴 때라도 내가 먼저 다가가고 싶은데, 항상 마음만 있지 그걸 실행으로 옮기지를 못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모양이다.

“태산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잠시 신호를 받아 차를 세웠을 때였다.

상무님은 스마트폰을 재킷 안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입을 여셨다.

“민규가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장님께 보고를 드렸더니, 사장님 첫 말씀이 그거였습니다. 사람은 태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사람을 넘어뜨리는 건 저 거대한 태산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라는 걸 잊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좀 쉽게 말씀을 해주시면 참 좋을 거 같은데, 항상 그렇게 숙제를 내주시듯 말씀을 하시죠. 그 말씀을 하시면서 저더러 알아서 잘 처리를 하라고 하시네요.”

“…네.”

“그런데 잘 처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 않나요?”

“….”

“직원들이 이렇게 업무 도중에 부상을 입으면 회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 해봤자, 산재 처리 그 외에 약간의 위로금 전달 정도밖에 없는 거 아닌가?”

마치 내게 묻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는 중인 거 같았다.

상무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마도 사장님은 홍성 직원들 모두를 산 정상까지 데려가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무님이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셨다.

“그래서 걸음이 조금 느린 직원들, 체력이 약한 직원들까지도 산 정상을 밟아 볼 수 있도록… 산 정상까지 가는 길 군데군데에 솟아 있는 돌부리들을 상무님께 치우라고 하셨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앞으로 저는 이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장 본부장님과 공 부장님께 화를 낼 생각입니다.”

“…!”

살짝 소름이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말투에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은 화를 낼 타이밍이 아닌 거 같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애매하죠. 홍성 직원이 부상을 당했는데, 그 부상당한 직원이 제 동생이고 또 사장님 아들입니다.”

“…네.”

“그래서 자칫 오해를 하실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까 합니다.”

“….”

“그런데 앞으로 홍성 직원이, 그것도 영업부에서 이런 어이없는 안전사고가 터지면… 전 그땐 공 부장님께 무척 화를 내게 될 겁니다.”

“신경 쓰겠습니다.”

“신경만 써서는 안 될 겁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입니다. 그 먹고살자고 하는 짓에 사람이 상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사고에 그 정도 부상이라는 게 참 다행이고, 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민규가 다쳐서 그런 부상 앞에 다행이라는 표현을 남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다는 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그 몇 년 사이에 상무님이 폭풍성장을 했다는 게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높낮이 없는 음성.

그리고 단호한 말투.

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을 찾는 일보다는 홍성 직원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돌부리를 제거하는 일에 더 집중을 해볼 생각입니다.”

“…네.”

“제거는 제가 할 테니까 공 부장님은 돌부리 위치만 찾아내세요.”

“…!”

“저는 산 정상에 우리 홍성이 딱 올라섰을 때… 그때까지도 제 양옆에 본부장님과 공 부장님이 계셨음 좋겠습니다.”

산 정상에 서는 홍성의 모습을 상상해 보지는 않았다.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 회사가 아니다 보니까 크게 가슴에 와닿지가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산 정상에 서는 홍성의 모습보다, 그 정상에 옹기종이 모여서 야호를 외치는 홍성 직원들의 모습, 그 틈에서 상무님 바로 옆에 서 있는 내 모습보다, 강혜선과 함께 아들, 딸 하나씩 낳아서 경제적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가정을 꾸리며 그 아들, 딸 착하고 바르게 다 키워놓고 강혜선과 함께 건강하고 여유 있는 노후를 즐기는 모습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하지만 살짝 궁금하긴 했다.

과연 상무님이 정말 홍성을 산 정상까지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때까지도 나와 장 본부장이 상무님 옆에 계속 붙어 있을 것인지….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도 나중에 들었는데, 상무님께서 폴앤크루를 홍성 본사에서 따로 분리시키는 작업을 잠시 뒤로 미루셨다고 한다.

임원 회의 자리에서 폴앤크루의 분리경영을 뒤로 미루고 거기에 들어갈 투자 비용으로 만토바 제품만 따로 보관할 수 있는 창고 부지를 매입하겠다고 자신의 입장을 밟혔다고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길 일이다.

자체 브랜드 생산에 들어가는 투자는 리스크도 클뿐더러 회수가 불확실하다.

반면에 창고 부지 매입은 리스크가 전혀 없는 투자 종목이다.

어디 대한민국 제조 대기업들이 자기네 생산 제품을 팔아서 돈을 벌었겠나.

그 생산 제품을 제조해 내는 공장 부지, 창고 부지, 본사 건물 등과 같은 부동산 시세 차액으로 더 많은 은행 대출을 받아 다른 사업에 투자를 해나가는 방식으로 회사 규모를 키우고 또 돈을 번 거지.

상무님의 결정에 난 속으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창고 부지 매입이 가져다줄 수익 효과에 대한 기대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직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시키려는 그의 노력에 박수를 쳤던 거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폴앤크루를 독립시키는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상무님의 사무실.

장 본부장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 같았다.

난 아이패드에 폴앤크루 플랜을 요약해 나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컬렉션을 좀 더 채워놓고 분리시키는 것도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닐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양 차장이 물어보더라고요.”

“뭘요?”

“폴앤크루가 독립을 하게 되면 폴앤크루 역시 자체 영업부가 생기는 거 아니냐면서, 그 전까지 어느 정도 컨트롤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상무님은 양 차장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폴앤크루가 독립을 하게 되면 그쪽 영업부로 양 차장 본인이 이동을 해야하는 건지 그게 궁금했던 거겠죠?”

“뭐 그렇다고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만, 언제 지나가는 말로 한번 물어는 보세요. 생각이 있는지.”

난 웃음을 참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벌렁거리는 콧구멍을 장 본부장에게 들켜버렸다.

“상무님도 참… 공 부장이 그걸 물어보겠습니까?”

장 본부장의 말에 상무님이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자기 사람 빼앗기는 건데 그런 걸 공 부장이 물어볼 이유가 없죠. 거기다 양 차장은 공 부장 오른팔입니다.”

“양 차장이요? 안 차장이 아니라?”

나는 상무님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살짝 의아했다.

하지만 난 입을 열지 않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상무님께 장 본부장이 대신 설명을 해줬다.

“안 차장이 일을 참 잘하죠. 겉으로 보이기엔.”

“겉으로 보이기엔?”

“아니 실제로도 잘합니다. 제 말은 내실에 비해 일을 회사 전체가 떠들썩하고 화려하게 하는 스타일이라는 거죠. 확실히 양 차장에 비해 스타성이 있습니다, 안 차장이. 하지만 아무리 스타성이 있어도 공 부장 입장에서 안 차장은 절대 원픽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왜….”

“공 부장이 가진 스타성이 훨씬 더 크니까요.”

“…!”

민망했다.

하지만 장 본부장은 마치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간 사람처럼 내 속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스타일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공 부장과 안 차장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많이 겹칩니다. 대외 영업력이 뛰어나다는 거, 마진 협상 능력이 좋다는 거… 하지만 양 차장은 공 부장이나 안 차장이 가지고 있지 못한 절대적인 장점이 있죠.”

“…?”

“디테일. 그리고 그 디테일에서 오는 차가움으로 타 부서를 불편하게 만들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시에게는 호날두가 크게 필요 없습니다. 골은 답답하면 자기가 직접 넣으면 되니까요. 물론 둘 다 데리고 있으면 팀 입장에선 금상첨화죠. 하지만 메시 입장에선 호날두보다는 자기가 마음 놓고 뛸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플레이어가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양 차장이다?”

“절대적이죠. 공 부장 앞에서 내가 이런 말 해도 되나?”

“괜찮습니다. 편하게 하십시오.”

“만약 그때 박 이사님이 공 부장이 아닌 양 차장을 먼저 팀장 자리에 올렸더라면… 지금의 영업부는 아마도 공 부장과 안 차장이 투톱을 보고 있는 양 차장의 영업부가 되었을 겁니다.

상무님은 미간을 좁히며 장 본부장과 날 차례대로 쳐다봤다.

나 역시 100퍼센트 인정하는 부분이었기에 미소를 보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본부장님 말을 공 부장이 이렇게까지 당연하다는 듯 인정한다는 게 더 흥미롭네요. 아… 양 차장이 실력이 좋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저에게 주는 안정감이라는 게 있습니다. 양 차장이 영업부 사무실을 지켜주고 있어서 제가 받는 심리적 안정감은 대단합니다. 양 차장이 출장 일정이 잡히면 출장 일주일 전부터 신경성 위염이 도집니다.”

“하하하…”

“제가 휴가 갔을 때 말입니다. 그때 안 차장은 베이징에 있었죠, 모리엘츠 건으로.”

“그랬죠.”

“만약 양 차장이 없었으면 절대 그 스케줄 못 뺐습니다. 안 차장을 남기고 양 차장은 출장을 보내면서 그사이에 제가 휴가를 간다? 불가능이죠. 하지만 양 차장은 가능합니다. 부서 전체를 보는 시야는 어쩌면 저보다 더 넓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보통 싸움닭이 아니거든요.”

“공 부장님보다요?”

“저는 싸우기 전에 마음의 준비라는 게 필요한데, 양 차장은 상대가 조금이라도 먼저 삐딱하게 나온다 싶으면 그런 거 없이 바로 공격이죠. 다릅니다, 저랑은 조금.”

양 차장.

내 그늘에 가려져서, 그리고 작은 프로젝트도 회사가 떠들썩하게끔 화려하게 일을 쳐내는 안 차장의 스타성에 가려져서 아직 위로부터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디 안 차장과 비교를 할까.

내 입장에 양 차장은 김 차장, 안 차장 둘과도 안 바꿀 가장 중요한 맨파워다.

상무님과의 미팅을 끝내고 양 차장을 따로 불렀다.

폴앤크루의 분리경영 부분이 뒤로 무기한 미뤄졌다는 말을 전달했다.

그러자 양 차장은 잠시 뭔가를 고민하다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럼… 그냥 바로 진행하시죠?”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해야죠. 어쨌든 지금은 제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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