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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60화 (260/325)

#260

뭔데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그래. 그럼 뭐 그건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

장 대표는 잠시 말끝을 흐려 놓고 알렌 강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래요? 제가 할까요, 아님 강 대표가 직접 이야기할래요?”

“제가 할게요.”

뭐지?

난 장 대표와 알렌 강을 차례대로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런 날 향해 알렌 강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무척이나 신중하게 입을 뗐다.

“공 부장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럼 그렇지….

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뭔지 아직 듣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장 대표가 너무 시원시원하게 폴앤크루 국내 시장을 포기한다 싶었다.

천하의 장 대표라면 의미 없는 고집을 부릴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나의 공격을 막아낼 무기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정상인데, 너무 쉽게 양보를 하더라니….

우선 난 최대한 긴장한 마음을 숨기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알렌 강에게 말했다.

“말씀하시죠.”

“아시다시피 한국만큼 로드샵이 전멸한 나라는 없습니다.”

“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엔 로드샵이 많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법 인지도가 높은 수입 명품 브랜드들이 자체 로드샵 매장을 운영하며 대형 유통 판(백화점) 쪽에게 높은 퍼센티지의 수수료를 따로 떼이지 않고 국내 시장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쉽게 말해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시장 진출을 할 때 백화점 입점은 선택의 영역이었지 필수의 영역은 아니었다.

물론 2000년대 초반으로 들어가면서 로드샵이라는 이미지가 많이 떨어져서 준명품 골프웨어를 제외하고는 지오다노나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와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로 한정되게 되었지만, 그래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딜 가든 로드샵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상징적인 매장을 제외하고는 국내에서 로드샵을 찾아보기가 무척 어려워진 실정.

알렌 강의 말처럼 로드샵 형태의 매장들이 완벽하게 사라진 나라는 전 세계 통틀어서 한국이 거의 유일무이하다.

그렇기 때문에 홍성과 같은 컨트롤 기업들의 파워가 한국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강할 수 있는 거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이 패션 관련 업계만큼은 상당히 독특한 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제아무리 초대형 브랜드라도 한국 시장을 만만하게 볼 수가 없는 거고.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자체 직영 자사 운영을 해보겠다고 컨트롤 기업의 손을 먼저 놓았지만, 결국 한국이라는 특수한 시장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다시 컨트롤 기업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특이한 구조.

큰 이유를 몇 가지 들자면 우선 건물주들의 횡포가 심하다.

꽤 쓸만한 대형 브랜드들이 유통 판을 거치지 않고 목이 좋은 위치에 매장을 열어 본들 아무리 장사가 잘되어도 건물주가 그걸 가만히 놔두지를 않으니까 결국엔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선 남는 게 없게 되어 버린다.

매장 계약 연장을 안 해 주거나, 아니면 월세를 올려버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대형 브랜드를 입점시켜서 건물의 가치를 올려 버려서 세입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해 주지 않고 건물을 팔아 버린다.

이게 한국의 로드샵이 씨가 말라버린 가장 큰 이유다.

거기다 유통 판 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의 공작도 있었을 것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이제 한국에선 로드샵이라는 단어가 없어졌다고 봐야 된다.

무조건 유통 판을 끼지 않으면 진출이 불가능한 시장.

그게 바로 한국 시장이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점점 쇼핑의 형태가 한 곳에서 모두 이뤄지는 원플렉스 형태로 변화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은 좀 심한 편이죠.”

“…네.”

무슨 부탁을 하겠다고 이렇게까지 서론이 긴 걸까?

“장 대표님하고도 이 부분에 대해 여러 차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제 계약 기간 동안 제가 아무리 미친 듯이 뛰어다녀도 현재 폴앤크루가 투자 가능한 자본금, 그리고 시간적 제약상 해외 채널 10개 이상 뚫는 건 불가능합니다.”

맞는 말이다.

10개까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울 만큼 현재 알렌 강은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물론 알렌 강이 처음 계획했던 대로 홍성과 같은 해외 컨트롤 기업들과 컨택을 한다면 더 많은 채널을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폴앤크루는 내가 던졌던 제안을 받아들여 가급적이면 컨트롤 기업을 통하지 않고 자체 직영 운영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다.

매장 확보부터 매장 직원 고용, 거기에 상품 센딩, 법적 절차들을 모두 밟아 가며 현재의 맨파워로 10개의 매장을 오픈시켜 보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알렌 강은 자신의 역량을 오버해 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런 알렌 강에게 난 넌지시 농담 비슷하게 그의 발목을 잡아봤다.

“그럼 계약 기간을 좀 더 늘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내 말에 장 대표도 웃었고, 알렌 강 역시 의미 모를 미소를 입가에 걸어놓은 채 잠시 피식하고 웃었다.

“아무튼, 그래서 우선은 제가 자신 있는 시장부터 개척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셔야죠.”

“그렇게 추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제가 오래 몸담아 왔던 유럽 시장이 가장 먼저 손에 꼽혔고, 그다음으로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쉽고 빠르게 컨트롤이 가능한 일본 시장부터 뚫어 놔야겠단 판단이 서더라고요.”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적당한 추임새를 넣어주며 다음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일본 같은 경우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로드샵 오픈이 위험하겠단 판단이 섰습니다. 우선 매장 월세가 너무 비싸고, 또 자체 소비력이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결국은 일본도 점점 유럽화되어 가는 중이라고 봐야 되는데, 시기상 구매력이 있는 한국, 중국인들의 일본 관광이 너무 많이 줄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급하게 할 이유가 있을까… 우선 한국처럼 유통 판 위주로 진출을 미리 시켜 놓고 올라오는 턴 오버를 봐 가면서 로드샵 오픈을 준비해도 나쁘지는 않겠더라고요.”

“…네.”

“유통 판으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초기 투자 비용도 적게 들뿐더러, 다른 리스크도 함께 줄일 수가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유럽은 말이 조금 달라집니다.”

난 커피 한 모금으로 입안을 적시며 듣기만 했다.

“유럽은 로드샵 오픈이 필수입니다. 특히 외국 관광객들의 소비가 절대적인 서유럽 쪽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드샵을 하나 열어 놔야 됩니다. 이건 매출과는 별개로 전 세계 관광객들을 상대로 브랜드를 직관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이고, 실제 아직도 유럽에선 준명품 이상급 되는 브랜드들의 실질적인 매출은 유통 판에 입점시킨 매장이 아니라 로드샵에서 올라오고 있거든요.”

“네,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선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매장 확보라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죠. 아무 곳에나 자리 나오는 로케이션에 오픈을 시킬 거면 뭐 하러 해외 시장 채널을 뚫겠습니까. 어차피 할 거 유동 인구가 많은 메인 스트리트에, 그것도 주요 포인트에다 입점을 시킬 게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또 그걸 하겠다고 제가 온 거고요.”

“….”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몇 차례 시장 조사도 할 겸 유럽 출장을 다녀왔는데 마음에 드는 자리가 없더라고요. 일단 무조건 여기다가 열어야 된다…. 하는 위치엔 빈 점포가 안 나옵니다. 애초에 폴앤크루가 해외 진출을 자체 직영 매장 운영 시스템으로 갈 줄 알았더라면 폴앤크루로 넘어오기 전에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괜찮은 자리가 나오면 연락을 달라는 밑밥이라도 좀 깔아 놨을 건데, 부랴부랴 하려니까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또 시간적 제약이 있다 보니 마음만 급해지고. 그런데….”

“…?”

“정말 운 좋게 폴앤크루의 브랜드 노출을 완벽하게 시킬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턴 오버도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로케이션에 자리가 나왔습니다.”

“오… 다행이네요. 어딥니까? 샹젤리제 쪽입니까?”

“아니요. 파리는 아닙니다. 일단 파리 쪽은 지인 통해서 어느 정도 커미션 약속하고 자리를 좀 알아봐 달라고 요청만 넣어 둔 상태입니다.”

“파리가 아니라면….”

“스위스입니다.”

“아… 스위스…. 거기도 나쁘지 않죠.”

“로케이션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닙니다. 턴 오버가 하나도 안 일어난다고 해도 무조건 열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이건 매출이 제로를 찍더라도 매장에 들어가는 월세, 직원들 셀러리는 그냥 브랜드 노출을 시킨다는 생각으로 자체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완벽한 자리입니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이 건물 오너가 조건을 하나 내거는데… 이 조건이….”

알렌 강은 난처하다는 식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장 대표를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날 쳐다보며 웃었다.

“공 부장님이 아니면 못 들어주는 조건입니다.”

“…?”

아, 그냥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는데!

뭔데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저도 파리 출장 중에 일정을 변경해서 아는 사람 통해 소개를 받고 만났습니다. 급하게 스위스 일정을 넣었죠. 건물 주인이 한국인입니다.”

“오….”

“스위스 인터라켄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융프라우 있는 동네 아닙니까?”

“네. 유명한 동네죠. 특히 그 동네 메인 스트리트인 호에벡 스트리트는 워치 스트리트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건물이 딱 그 스트리트 끝에 있습니다.”

“좋은 건가요? 제가 거기 이야기는 많이 들어 봤는데, 아직 직접 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무척 좋죠. 스트리트 자체가 안 깁니다. 짧아요. 500미터 정도? 메인 스트리트이면서도 쇼핑으로는 유일한 스트리트죠. 무조건 그 앞을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더 대박인 건 스트리트 끝에 걸려 있다 보니 웨스트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그 호에벡 스트리트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무조건 그 건물 앞은 지나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노출을 이중, 삼중으로 시킬 수가 있다는 결론입니다.”

“우와… 누군지는 몰라도 그 건물 주인은 진짜 성공했네요. 거기다 같은 한국인이라니까 모르는 사람인데도 괜히 제가 다 뿌듯하네요. 그래서요? 그래서 그 사람이 내건 조건이 뭔데 제가 아니면 못 들어준다는 겁니까?”

“그 사람 역시 그 건물 1층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류 브랜드요. 그런데 그 의류 브랜드가….”

알렌 강은 자기가 생각을 해 봐도 민망한지 혀끝으로 입술을 한 번 스윽 하고 훑어놓고 말을 이었다.

“그분이 직접 론칭을 시킨 브랜드입니다.”

“아… 저희 쪽 일을 하시는 분이었군요.”

“아뇨.”

알렌 강은 다시 한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체 브랜드라고 하나 론칭시켜서 매장을 운영하고는 있는데… 딱 봐도 힘든 브랜드였습니다. 사실 브랜드라고 말을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패션 관련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이 만든 브랜드라는 게 티가 나서, 보는 제가 다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

“매장 1층을 쉐어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면적이 제법 큽니다. 절반 쉐어를 한다고 해도 절대 작은 공간이 아니에요. 거기다 건물도 딱 호에벡 거리 끝에 걸려 있어서 커브 도는 위치에 있죠. 윈도를 기역 자로 두 번 노출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 브랜드를 한국, 중국 쪽으로 유통을 시켜 볼 수 있겠냐는 거죠. 제가 지인을 통해서 제 소개를 할 때 그냥 폴앤크루 소속이라는 말만 하지 않고 홍성 산하의 자체 단독 브랜드인 폴앤크루 대표라고 소개를 했거든요. 아마도 그래서 미팅이 성사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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