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4화 (4/207)

#004. 가자! 가자! 가는 거다!(1)

화-웅!

바닥이 공허했다.

암로가 끝나면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튕겨져 날아간 것이다.

“으헥?”

화운이 다급성을 내뱉은 순간 바윗덩이에 쫓겨 허공으로 튀어나온 노인이 화운을 도약대 삼아 힘껏 밟고 신형을 날렸다.

“무슨 짓입니까!”

“아래를 봐! 한 사람은 살아야지!”

노인의 말에 신형을 뒤틀어 아래를 내려다본 화운은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떴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제엔-자앙!!!”

화운이 떨어지고 있는 곳은 거대한 수직동굴이었다.

천지대자연의 숨구멍일까.

아니면 대지의 그 무엇일까.

뭐라고 명명할 수조차 없는 광대한 크기의 수직동굴이 지하 깊숙이 뚫려 있었다.

어지간한 산 하나쯤은 넉넉히 삼켜 버릴 것 같은 크기였다.

놀라운 건 단지 크기만이 아니었다.

수직동굴은 그야말로 얼음구덩이였다.

온 사방 벽이 새하얀 빙벽이었고 머리 위쪽 천장엔 집채만 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큰 고드름이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커져서 바닥에 닿은 것인지, 아니면 까마득한 아래쪽의 바닥에서 시작된 것이 천장까지 닿은 것인지 모를 거대한 얼음기둥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새어 들어온 빛이 온 사방의 빙벽에 반사되어 이 경이로울 정도로 놀라운 광경을 환하게 비췄다.

그런 곳에서 화운은 대책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화-악!

위쪽에서 묵직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흠칫 고개만 돌려보니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허공으로 튕겨지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화운의 간절함이 닿은 것일까.

천만다행하게도 허공으로 튕겨진 바윗덩이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화운을 깔아뭉갤 위치는 아니었다.

화운은 다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휘-잉!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이 세찼다.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였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무려 차 한 잔을 빨리 마실 만큼의 시간 동안 떨어지고서야 바닥이 보였다.

바닥 역시 새하얀 빙판이었다.

그런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화운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그건 틀림없이 사람이었다.

“검마?”

분명 검마였다.

검마는 빙벽을 따라서 길이 있는지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검마가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쿵!

화운의 몸이 박살이 났다.

***

쿠르르르르!

암로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개새끼가 잘도 밟는구나!”

화운은 미친 듯이 뛰었다.

이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 말은 곧 바위가 금방 덮쳐올 거라는 뜻이다.

“니미라알-!”

“너 뭐냐? 정체가 대체 뭐야?”

쥐 상의 노인이 소리쳤다.

“아 쫌! 닥치쇼!”

화운이 소리치자 노인이 인상을 쓰며 화운의 뒤통수를 냅다 갈겼다.

하지만 화운이 상체를 숙여 잽싸게 피했다.

“또 맞을 줄 알아요?”

약이 오른 노인이 이격을 날리려는 순간 화운이 신형을 날려 벽을 밟고 달렸다.

일곱 걸음 정도 달린 화운은 벽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아-코!!”

화운은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엉덩이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이때 쥐 상의 노인이 천장을 밟고 빠르게 달려가며 화운의 뒤통수를 갈겼다. 하지만 화운이 상체를 숙여 잽싸게 피했다.

“헤! 안 맞았지롱!”

“놈! 저길 봐라!”

소리친 노인이 뒤쪽을 돌아봤다.

화운 역시 덩달아 돌아보고는 기겁하였다.

집채만 한 바위가 벌써 등 뒤에까지 굴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옘병할! 왜 이렇게 빨라! 으악! 으악!”

화운이 괴성을 지르며 두 손으로 바닥을 마구 때려가며 미끄러지는 속도를 올리려고 발광하는 시늉을 하자 노인이 화운의 뒷덜미를 붙잡아 앞쪽으로 냅다 던졌다.

“으-아악!”

화운은 짐 더미처럼 날아가 바닥을 몇 바퀴 구르다 빠르게 미끄러졌다.

“옳거니!”

화운이 쾌재를 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노인은 저 뒤에서 무릎을 살짝 굽히고 선 채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한참 뒤로 빠르게 굴러오는 바윗덩이가 보였다.

“사악한 노인네, 아주 좋았어! 크흘흘!”

화운이 이죽거릴 때였다.

뒤에서 미끄럼을 타던 노인이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정신없이 바닥을 긁어댔다.

이때 화운은 검을 바닥에 꽂아 미끄러지는 속도를 줄였다.

완만한 굽이에 가려져 있던 암로의 끝이 갑작스럽게 나타났지만 화운은 적절히 속도를 줄여놓아 떨어지는 것을 면했다.

쥐 상의 노인은 속도를 줄이지 못해 떨어질 뻔하였으나 완전히 멈춰선 화운을 붙잡아 간신히 멈추었다.

이때 바윗덩이가 코앞까지 굴러오고 있었다.

기겁한 두 사람은 바윗덩이를 피해 우측으로 신형을 날렸다.

아래로 향하도록 만들어진 계단이 있어 바윗덩이에 걸리지 않을 유일한 공간이었다.

콰-웅!

바윗덩이가 다급히 물러난 두 사람을 지나쳐 허공으로 튕겼다. 그리고 곧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져 사라졌다.

그제야 긴 숨을 토해낸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봤다.

“아하하하! 간신히 살았네!”

화운이 웃는 사이에 쥐 상의 노인이 손을 뻗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왜 때려요?”

“네놈은 정체가 수상해! 대체 뭐하는 놈이냐?”

“뭐가 수상한데요?”

“무공도 변변치 않은 놈이 어떻게 함정을 쏙쏙 피하누? 마치 알고 있던 것처럼?”

“알고 있긴 뭘 알고 있어요!”

“썩 털어놓지 못할까?”

뒤에서 쫓아오다 보니 암로로 뛰어든 화운이 기관들을 단박에 통과하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거기다 화운의 무공 실력은 딱 봐도 삼류.

“잘 알긴 개뿔! 간신히 살아남았구만!”

“죽고 싶은 것이냐!”

쥐 상의 노인이 서슬 퍼런 표정을 지었다.

화운은 찔끔하여 쳐다보다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우선 저기나 살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광대한 크기의 수직동굴.

쥐 상의 노인은 그 광경에 압도되어 입을 쩍 벌렸다.

“검마는 벌써 도착했을까요?”

“맞다. 검마!”

쥐 상의 노인은 계단을 살펴보았다.

벽면을 사람 키 높이로 파서 공간을 만든 다음 바닥에 계단을 만든 것이었는데 얼음이 뒤덮여 있어 무척 미끄러워 보였다.

쥐 상의 노인은 화운을 돌아보고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계단으로 발을 디뎠다.

두 발로 서서는 잘도 미끄럼을 타고 내려갔다.

“저 노인 정체가 뭐지? 여기까지 잘도 온단 말이야.”

화운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처럼 두 발로 서서는 얼음이 뒤덮인 계단 위로 미끄럼을 탔다.

계단의 경사가 상당히 커서 두 발을 디디자마자 쑥 미끄러졌다.

“어? 어어, 어어!”

화운이 괴성을 지르며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노인이 미끄럼을 타는 모습은 안정적으로 보였는데 막상 타보니 상상 이상으로 미끄러워 자꾸만 넘어지려고 했다.

잠깐 사이에 여러 차례 휘청거리던 화운은 그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넘어질 일이 없으니 훨씬 안정적으로 미끄럼을 탈 수 있었다.

“오, 오오오오홍!”

속도는 빨랐지만 점점 재미가 붙었다.

마주 때리는 바람에 얼굴 살이 푸들거릴 정도로 엄청난 빠르기였다.

원통형의 수직동굴 안쪽 벽면을 따라 만들어진 나선형의 계단이어서 계단 밖으로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물체가 원을 그리며 휘돌면 원심력 때문에 원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려는 힘이 있는데, 지금 나선형의 길은 원의 바깥쪽이 얼음벽이었다.

화운이 튕겨져 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나게 미끄럼을 탈 수 있었다.

“우홧하하하! 가자! 가는 거다! 인생 뭐 있냐! 가고 보자!”

화운이 신나서 소리쳤다.

하지만 원통형의 수직동굴이 완벽한 원통형이 아니었다.

나선형의 길이 완벽한 원이 아닌 것이다.

“어, 어?”

화운이 눈을 부릅떴다.

아래쪽 길이 갑자기 사라졌다.

급격하게 꺾어져 돌아간 모퉁이인 것이다.

“어, 어쩌라고!”

화운은 기겁을 하여 손으로 바닥을 마구 긁었다.

하지만 미끄러지는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그 속도 그대로 나선형의 계단 밖으로 튕겼다.

“우악! 우악! 우아아아악! 니미라알-!”

화운이 비명을 지르며 두 손, 두 발을 마구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속절없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였다.

쿵!

화운의 몸뚱이가 박살이 났다.

***

콰-웅!

바윗덩이가 다급히 물러난 두 사람을 지나쳐 허공으로 튕겼다.

그제야 긴 숨을 토해낸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아하-하! 간신히 살았네!”

화운이 웃는 사이에 쥐 상의 노인이 손을 뻗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하지만 화운이 잽싸게 고개를 숙여 피했다.

“제 정체가 수상해 보인다는 건 압니다만, 우선 저기나 살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광대한 크기의 수직동굴.

화운을 향해 다시 한번 손을 날리려던 쥐 상의 노인은 그 광경에 압도되어 입을 쩍 벌렸다.

“검마는 벌써 도착했을까요?”

“맞다. 검마!”

쥐 상의 노인이 화운을 한 번 돌아보고는 금세 계단을 따라 미끄럼을 탔다.

“이걸로 되려나?”

화운은 들고 있던 검으로 계단을 뒤덮고 있는 얼음을 쿡쿡 찍어보았다.

검을 얼음바닥에 박아 미끄러지는 속도를 조절해 볼 생각이었다.

단단하기는 하지만 어찌어찌 가능할 것 같았다.

화운은 얼음으로 뒤덮인 나선형의 계단 위로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처음부터 엉덩이를 깔고 앉았는데도 금세 쭉 미끄러졌다.

경사가 그만큼 컸다.

“가자! 가보자!”

화운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두 눈에는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한참을 미끄러지던 화운이 눈을 반짝 빛냈다.

“저기다!”

화운은 검을 힘껏 움켜잡았다.

그리고 급격히 꺾인 모퉁이가 바로 아래에 보이자 검을 들어 벽면 쪽으로 강하게 박았다.

가가가각!

미끄러지는 속도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화운의 신형이 모퉁이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모자랐다.

더 틀어야 했다.

화운은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가 곧이어 까마득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젠장! 젠장할-!”

***

“됐다!”

화운이 신이 나서 외쳤다.

급격하게 꺾인 모퉁이를 따라서 완벽하게 방향을 트는 데 성공했다.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대로 쭉 가는 거…… 또 뭐얏!”

희희낙락하던 화운이 놀라 소리쳤다.

급격한 경사로 미끄러지는 길이 갈지자로 이리저리 마구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쩌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듯 소리친 화운이 검을 이쪽저쪽으로 꽂아가며 미친 듯이 방향을 틀어 보지만 단 세 번 만에 허공으로 튕겼다.

화운은 날개도 없고 몸을 날리는 대단한 경신술도 익히지 않았다.

그래서 곧장 추락했다.

“계단 만든 새끼 나가 뒈져라! 씨앙!”

***

뱀이 앞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급격하게 꺾인 모퉁이를 돌고 나자 나선형의 계단이 딱 그런 모양으로 굽이치고 있었다.

급격히 경사가 진 데다 새하얀 얼음이 뒤덮여 있어 미끄럽기까지 한 그 길이 요동치듯 이쪽저쪽으로 굽이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화운은 고함과 함께 미친 듯한 속도로 그 구간을 빠르게 통과하고 있었다.

검을 이쪽저쪽에 박아가며 급격한 방향전환을 했다.

그리고 곧 완만한 원을 그리는 구간으로 접어들자 두 손을 높이 쳐들고 환호를 질렀다.

“끼야호! 이 화운님의 집념의 승리닷! 끼하핫하하!”

화운이 통쾌한 함성을 질렀다.

무수한 시도 끝에 기어이 미친 듯한 구간을 통과해 낸 것이다.

숫자를 셀 틈도 없이 빠른 박자로 검을 이리저리 찍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게 몇 번인지 모른다.

그때마다 이런 다시없을 기회조차 걷어차 버린다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악착같은 심정으로 다짐하곤 했다.

“니미랄! 난 이제 뭐든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구! 나보다 더 끈질기게 시도할 수 있는 인간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나와 보라고! 끼얏-호-!”

화운은 승리의 함성을 맘껏 질렀다.

구경꾼들이 있다면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하다는 게 화운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화운의 그런 기쁨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저건 또 뭐야!”

휘둥그레 뜨는 화운의 눈에 저 멀리 앞쪽 아래에 나선형의 계단이 뚝 끊겨 있는 광경이 보였다.

“뭐야! 이번엔 날아가라는 거야?”

눈에 힘을 주고 아래쪽을 살핀 화운은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미끄러지던 상황에서 엉덩이를 들고 일어섰다.

무릎을 굽히고 미끄러지던 화운은 계단이 끊긴 끝에서 두 발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빠르게 미끄러지던 속도가 있어 화운은 힘차게 날았다.

하지만 건너편에 닫기도 전에 아래로 떨어졌다.

“젠장! 이건 또 어떻게 건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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