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9화 (9/207)

#009. 검마 신위를 보이다!(2)

화운이 남궁검가주에게 넌지시 물었다.

“방금 그거 뭡니까? 저 석실에서 검강을 발휘하는 걸 본 적은 있는데…… 번개보다 더 빠르겠네요.”

“검강을 본 적이 있다고?”

“예. 저 석실을 살필 때 너무 어두우니까 검에 시퍼런 강기를 일으키더군요. 반경 오 장 이내가 환해지던데, 제가 알기로는 검기를 발휘해 봐야 그렇게까지 밝지 못하는데, 검강 맞지요?”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던가?”

“일다경은 되었을 걸요.”

화운의 대답에 남궁검가주가 더욱 놀란 눈으로 검마를 바라봤다.

검기와 검강.

단전에 적공한 내력을 검이나 칼 같은 병기에 실어 병기 본연의 관통력과 절삭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검기라면 검강은 병기가 아닌 내력의 힘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대부분의 공력은 파괴력을 지니고 있고, 그 파괴력을 극대화시킨 검강은 닿는 모든 걸 부숴버린다.

그래서 그 무시무시한 파괴력만큼 검강 즉 강기의 무공은 내력의 소모가 심하다.

검마가 강기를 일다경 동안이나 일으키고 있었다는 건 그만큼 공력이 심후하다는 것.

강기가 싸움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정면격돌에서만큼은 강력한 강기가 상대를 압도하는 법이다.

어쩌면 검마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고수일 공산이 커졌다.

남궁검가주는 등골이 다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아직 멀었구나!”

남궁검가주가 탄식했다.

검마에 비해 스스로가 작다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남궁검가주가 모자란 것이 아니다.

검마의 무력이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일 뿐.

“확실히 대단하구나! 하지만 우리 다섯이 질 이유가 없다!”

낭왕이 소리쳤다.

그를 포함한 천사련 소속의 다섯 수장들이 공력을 끌어 올렸다.

한 사람씩 상대한다면 필패다.

하지만 다섯이 하나로 힘을 합친다면 필승이다.

그게 낭왕의 판단이다.

나머지 수장들도 같은 생각인 것인지 자신감 가득한 모습으로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검마는 계속 다가갔다.

싸늘한 기도에 무심한 걸음.

눈앞에 천사련 소속의 스물네 개 방파의 수장들이 전부 모여 있다 하여도 지금의 기세 그대로일 것 같았다.

자신의 검에 대한 자신감이었고, 극강에 올라선 고수의 여유였다.

‘멋있다!’

화운은 검마의 독보적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막연히 동경하던 진짜 고수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꽈앙!

검마가 일검을 휘둘렀다.

낭왕을 비롯한 세 사람이 주르륵 밀렸다.

바닥이 미끄러운 빙판이라 하더라도 만반의 준비를 하였음에도 세 걸음이라면 수치다.

세 사람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일그러진 순간 두 명의 고수가 검마의 양쪽에서 달려들었다.

아름드리 거목도 일격에 부숴 버릴 것 같은 큼지막한 도끼와 불그스름한 강기를 머금고 있는 권격이었다.

쾅!

회전하는 검마의 일검에 도끼를 휘둘렀던 흑마갱주가 날아가고 빙글 돌아 쭉 뻗은 검끝에 혈악주의 권격이 걸렸다.

이때 검마의 시선은 전방을 향했다.

낭왕을 비롯한 세 사람이 그 짧은 사이에 쇄도해 오고 있었다.

“검이 나한테 붙들렸으니 이제 무엇으로 싸울 테냐!”

혈악주가 소리쳤다.

그는 검마가 낭왕을 비롯한 세 사람에게 검끝을 돌릴 수 없도록 강기를 쏟아붓고 있었다.

하지만 검마는 그에게 대꾸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쾅!

폭음과 함께 혈악주가 날아갔다.

검마가 강기를 일순간에 발출해 버린 것이다.

성큼 내딛는 검마의 검에서 다시 새파란 강기가 발현되었다.

번-쩍!

새파란 강기가 공간을 수평으로 쩍 갈랐다.

굉음과 함께 빠르게 쇄도해 오던 세 사람이 맥없이 튕겼다.

이때 검마가 이제까지 보여주지 않던 빠른 속도로 튀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머리위로 치켜든 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번쩍!

공간을 좌우로 가르는 새파란 섬광.

그 끝에는 낭왕이 있었다.

콰앙!

낭왕이 강기를 실어 구환도를 마주 휘둘렀으나 소용없었다.

그는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가 수직동굴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얼음기둥에 부딪쳤다.

“크윽! 이런 개 같은……!”

구환도로 빙판 바닥을 짚고 벌떡 일어선 낭왕.

그의 두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파인들! 그것도 남궁검가주 앞에서 수치를 당한 것 때문에 분기를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발하고 말았다.

이젠 승부 따위는 중요치 않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아니면 모조리 죽던가.

“썅! 다 죽는 거다!”

핏물이 흐르는 입술을 비틀며 소리친 낭왕이 발작적으로 구환도를 휘둘렀다.

쿠앙!

강기를 잔뜩 머금은 구환도가 얼음기둥을 후려쳤다.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쩌저저저저저저! 쩌저저저적!

얼음기둥 위쪽으로 금이 가는 소리가 날카롭게 뻗어나갔다.

그리고 곧이어.

팍팍팍팍!

무언가가 일제히 터져나가는 소리가 위쪽에서 들렸다.

사람들이 위쪽을 쳐다봤다.

수직동굴 한복판을 받치듯 천장까지 닿아 있던 거대한 얼음기둥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끄그그그그그극!

쇠가 갈리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던 얼음기둥이 더는 버티지 못하겠는지 굉음을 터트리며 곳곳이 터졌다.

기울어지던 얼음기둥은 벽에 부딪쳐 거대한 크기로 조각조각 부서지며 아래로 쏟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얼음기둥이 부서지자 천장마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피해!”

남궁검가주가 크게 외치며 제천지존릉을 가리켰다.

남궁검가의 무인들이 그쪽으로 뛰었다.

천사련 소속의 무인들도 앞다퉈 뛰어갔다.

“크하하하! 검마! 함께 죽자!”

낭왕이 검마를 향해 성큼 성큼 다가갔다.

“하! 저 미친 놈 하나 땜시 다 죽는구나!”

화운이 천하의 낭왕을 씹어대며 제천지존릉을 향해 냅다 뛰었다.

하지만 그가 달리는 속도가 가장 처졌다.

무공이 뒤떨어지니 도리가 없었다.

경신술이 뛰어난 몇몇의 고수들이 제천지존릉 안으로 속속 뛰어들어 몸을 피하고 있을 때.

쿠웅!

화운을 지나쳐 막 앞서가던 자가 황소만 한 얼음덩이에 깔려 사라졌다.

기겁한 화운은 자신도 모르게 달리던 방향을 홱 틀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온 사방팔방으로 얼음덩이들이 먼저 떨어졌다.

남궁검가와 천사련 소속의 일반 무인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참변을 당하는 일이 속출했다.

“으악? 이쪽이 아닌데……!”

떨어지는 얼음덩이들에 놀란 화운이 이쪽저쪽으로 날뛰는 사이에 제천지존릉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젠-장!”

화운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바로 이때, 와르르 무너진 천장이 화운은 물론이고 천지사방을 뒤덮었다.

콰콰콰콰콰콰쾅쾅!

***

화운은 자신의 상황을 다시 고민했다.

빌어먹게도 제천마존의 무학 같은 건 없다.

아무것도 없다.

무학이고 보물이고 간에 남아 있는 게 전무하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반복되는 죽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있다. 있어!”

진지하게 고민하던 화운이 버럭 소리쳤다.

지금 이곳엔 제천마존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화운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될 고수들이 있다.

그들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 먹는다면 언젠간 자신도 그들 못지않은 무공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남궁검가주도 왔었고, 낭왕도 있어. 그리고 검마도 있잖아! 어떻게든 방법만 찾으면 돼!’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특히 무학은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올라서야 한다. 한 번에 오르려고 욕심을 부리다간 몸에 무리가 가고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그러니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한 자들부터 차근차근 단계별로 벗겨 먹어야 한다.

‘조금 더 강한……! 그래, 너! 너다! 날 죽인 대가로 너부터 벗겨 먹어야겠다!’

화운의 머릿속에 사납게 검을 휘둘러대던 백나찰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추정한검!”

“……!”

“하아! 백가의 가문이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스승님께서 아신다면 정말…… 정말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대체……!”

“이름이 어찌 됩니까? 아, 난 화운입니다.”

화운은 진중한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우후후! 이제부터 널 벗겨 먹을 이름이시지.’

백나찰은 화운의 속셈도 모르고 잠깐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백아연.”

“백아연…… 예쁜 이름입니다.”

“천추정한검을 어떻게 알고 있지?”

백나찰의 얼굴이 서리가 앉은 듯 차갑게 변했다.

화운은 태연하게 굴었다.

“백 소저, 스승님께선 완전한 천추정한검을 전해주지 못한 걸 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

“역시 모르셨군요. 백 소저, 그대가 익힌 천추정한검은 완벽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럴 리가 없다!”

백나찰이 사납게 소리쳤다.

화운은 그런 백나찰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 한숨까지 내쉬었다.

그리고 잠깐 여유를 둔 후 말했다.

“내가 스승님께 들은 천추정한검의 구결과 백 소저께서 배운 구결, 둘 중 어느 쪽이 더 완벽한 것인지 비교해 보면 알게 되겠지요?”

구결이란 무공 초식이나 내력의 운행법을 말로써 설명해 놓은 것인데, 흔히 외부인이 알지 못하도록 추상적으로 설명하곤 한다.

백나찰의 얼굴에 경계심이 떠올랐다.

당연한 반응이다.

익힌 무공을 까놓자는데 어느 누가 의심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화운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백 소저의 검공을 힘들지 않고 막을 수 있었던 건 대단한 고수이어서가 아닙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몸은 공력이 형편없습니다. 워낙 무재가 부족하여 스승님의 명성에 먹칠만 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소저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낸 이유가 뭐겠습니까.”

화운의 능청스러운 말에 백나찰의 경계심이 상당히 사그라졌다.

화운은 이때다 싶어 불쑥 말했다.

“천추정한검의 구결을 일절씩 말해보지요. 백 소저가 시작하면 거기에 맞는 나머지 부분을 내가 이어보겠습니다.”

이 정도라면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백나찰은 잠깐의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정(情)은 뜨겁게 타버리고…….”

말을 멈춘 백나찰은 화운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화운은 당연하게도 뒤에 이어지는 구결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능글능글 웃었다.

“말하란다고 낼름 말 하냐? 너 바보냐?”

쉬-악!

화운이 바라보는 백나찰의 성난 얼굴이 빙글 돌았다.

***

“천추정한검의 구결을 일절씩 말해봅시다. 내가 먼저 시작할 테니 백 소저께서 나머지 부분을 이어보십시오.”

먼저 시작하겠다는데 더 이상 무슨 의심이 필요할까.

“정(情)은 뜨겁게 타버리고…….”

화운은 당당히 말한 후 백나찰을 빤히 바라봤다.

“한(恨)은 차갑게 남는다.”

“시작이 같군요. 좋습니다. 다음은 백 소저가 먼저 하십시오.”

화운의 거리낌 없는 태도에 백나찰은 아무 의심 없이 다음을 말했다.

“정(情)은 운문(雲門)을 벗어나 무심하게 심중을 가르고…….”

당연히 화운은 다음을 알지 못했다.

씨익!

화운은 만족스레 웃었고.

잠시 후 백나찰의 검이 사납게 휘둘러졌다.

“정(情)은 뜨겁게 타버리고, 한(恨)은 차갑게 남는다. 자, 소저께서 다음을 말해보십시오.”

“정(情)은 운문(雲門)을 벗어나 무심하게 심중을 가르고, 한(恨)은 대각을 건너 옛정을 멸한다.”

“정(情)은 뜨겁게 타버리고, 한(恨)은 차갑게 남는다. 정(情)은 운문(雲門)을 벗어나 무심하게 심중을 가르고, 한(恨)은 대각을 건너 옛정을 멸한다. 자, 소저께서 다음을 말해보십시오.”

화운은 십여 차례의 죽음을 내준 후 천추정한검의 구결을 전부 알아냈다.

하지만 무공이라는 게 구결만 알아냈다고 하여 바로 익힐 수 있는 건 아니다.

추상적으로 된 구결을 정확히 풀어야만 한다.

그나마 천추정한검의 구결은 아주 난해한 정도는 아니었다.

정(情)이 의미하는 바는 내력일 것이고, 한(恨)이 의미하는 검초인 것 같았다.

백나찰과 수도 없이 싸워본 화운은 그녀의 검초에 대해 대부분을 알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어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만 겪는다면 혼자서도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화운은 그 정도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니년이 내 목을 자른 게 골백번이야. 그러니 내공심법도 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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