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검학이라는 건 이런 것이었구나!(2)
화운은 다시 시작하였다.
번쩍!
빙글 돌아서는 검마의 몸에서 새파란 섬광이 폭발했다.
너무나 짧은 순간에 피어난 섬광.
쓰카앙!
낭인들의 전설인 낭왕이 검마가 발휘한 찰나의 일검을 받아내는 걸 시작으로 이전과 똑같은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화운은 주변의 눈치를 살펴가며 제천지존릉을 향해 슬금슬금 움직였다.
“어딜 가는 겐가?”
남궁검가주가 슬쩍 돌아보곤 물었다.
화운은 흠칫 멈췄다.
하지만 곧 보란 듯이 제천지존릉을 향해 움직였다.
“저러다 얼음기둥이 부서지면 천장이고 뭐고 다 무너질 거 아닙니까!”
화운의 말에 남궁검가주가 멀리 얼음기둥을 살펴보고는 위쪽을 쳐다보았다.
까마득하여 그의 육안으로 명확히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화운의 말을 허투루 넘길 순 없었던 모양인지 남궁검가의 무인들을 이동시켰다.
화운은 남궁검가의 무인들이 자신을 따라 움직이자 걸음을 더 빨리 하여 총총걸음으로 이동했다.
“썅! 다 죽는 거다!”
드디어 낭왕의 분기가 폭발했다.
쿠앙!
강기를 잔뜩 머금은 낭왕의 구환도가 얼음기둥을 후려쳤다.
쩌저저저저저저! 쩌저저저적!
얼음기둥 위쪽으로 금이 가는 소리가 날카롭게 뻗어나가더니 무언가가 일제히 터져나가는 소리가 위쪽에서 들렸다.
제천지존릉을 향해 걸음을 놀리던 남궁검가의 무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위쪽을 쳐다봤다.
수직동굴 한복판을 받치듯 천장까지 닿아 있던 거대한 얼음기둥이 기울어졌다.
끄그그그그그극!
얼음기둥이 쇠가 갈리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뭐해요! 어서 뛰어요!”
화운이 그세 저만치 달려가며 외쳤다.
“서둘러라!”
남궁검가주가 안색을 딱딱하게 굳히며 신형을 날렸다.
그에 남궁검가의 무인들이 화운의 뒤를 따라 냅다 달렸다.
천사련 소속의 무인들도 다급히 내달렸다.
콰-앙!
얼음기둥이 더는 버티지 못하겠는지 굉음을 터트리며 일부가 터졌다.
기울어지던 얼음기둥은 벽에 부딪쳐 거대한 크기로 조각조각 부서지며 아래로 쏟아졌고, 이어서 천장마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검마! 함께 죽자!”
낭왕이 검마를 향해 성큼 성큼 다가갔다.
“하! 저 미친 놈 하나 땜시 다 죽는구나!”
화운이 천하의 낭왕을 씹어댄 순간 그를 지나쳐 간 남궁검가의 무인이 황소만 한 얼음덩이에 깔려 사라졌다.
“히엑?”
화운은 기겁했다.
하지만 방향을 마구 틀었다가 제천지존릉에서 멀어져 버린 이전의 기억이 퍼뜩 떠올라 방향을 틀지 않고 얼음덩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온 사방팔방에 얼음덩이들이 떨어졌다.
다행히 화운은 제천지존릉 안으로 뛰어든 후였다.
남궁검가의 무인들이 속속 뛰어들어 몸을 피했다. 일부는 화운보다 앞서 도착한 이들도 있었다.
쿠웅!
이전처럼 뒤늦게 움직이던 천사련 소속의 무인들은 참변을 당하는 일이 속출했다.
그들이 떨어지는 얼음덩이들에 놀라 이쪽저쪽으로 정신없이 날뛰는 사이에 와르르 무너진 천장이 천지사방을 뒤덮어 버렸다.
콰콰콰콰콰콰쾅쾅!
석실이 무너질 듯 요동쳤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뿌연 흙구름이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들 고개를 돌리거나 잔뜩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곧 정적이 무겁게 찾아왔다.
잠시 후 자욱했던 흙구름이 가라앉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신형을 일으켰다.
화운은 안쪽 석실 입구에서 놀란 눈을 끔벅거리며 수직동굴로 나가는 입구를 살폈다.
“완전히 갇혀 버렸구나!”
무너진 천장이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의 말마따나 완전히 갇힌 것이다.
“야광석을 꺼내라.”
남궁검가주의 명령에 남궁검가의 무인들 중 일부가 야광석을 꺼냈다.
푸르스름한 빛 십여 개가 어둠의 일부를 밀어냈다.
고가의 야광석인지 십여 보 이내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할 정도로 밝았다.
투둑!
입구를 막고 있던 거대한 돌덩이들 틈에서 자잘한 돌멩이 하나가 갑자기 굴러 떨어졌다.
그에 남궁검가주가 야광석 하나를 건네받아 입구 쪽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도 궁금한 얼굴로 바라볼 때였다.
콰앙!
굉음이 터지며 입구를 막고 있던 돌덩이들의 일부가 안쪽으로 터졌다.
그리고 한 사람이 비척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장신의 흑의인.
바로 검마였다.
비칠거리며 걸어오는 검마의 행색은 처참했다.
옷자락이 온통 찢어져 나풀거렸고 얼굴엔 피칠갑을 한 상태였다.
‘거기서도 살아남았단 말이야?’
화운이 경악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퍽!
소름끼치는 파육음이 들린 순간 크고 날카로운 날붙이가 검마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다.
“큭큭큭! 함께 죽자고……!”
낭왕의 갈라진 음성이 들린 순간 검마가 빙글 돌았다.
쉬-악!
검마의 검이 허공을 완전히 갈랐다.
툭!
머리통 하나가 데굴데굴 굴렀다.
낭왕의 머리통이었다.
털썩!
낭왕의 몸이 쓰러진 순간 입구를 막고 있던 돌덩이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낭왕의 몸뚱이를 뒤덮었다.
“검마 선배!”
남궁검가주가 크게 소리쳤다.
검마가 천천히 돌아선 후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들고는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화운을 응시했다.
“오너라.”
화운이 얼떨결에 달려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자세를 낮췄다.
화운이 그렇게 눈을 마주치자 검마가 물끄러미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피칠갑을 한 얼굴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러길 한참 후 뭔가를 작심한 듯 한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사실이더냐?”
“예.”
“막아줄 수 있겠느냐?”
화운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빤히 바라봤다.
아마도 검마는 이대로 죽을 수 없는 모양이다.
복수 때문이리라.
그래서 눈에 차지도 않을 화운에게 부탁까지 하는 것이다.
“막을 겁니다.”
화운을 바라보는 검마의 눈빛이 복잡 미묘하게 변하더니 서서히 꺼져갔다.
화운은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침착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원하는 걸 얻은 다음에 막을 겁니다.”
***
“크하하하! 검마! 함께 죽자!”
낭왕이 날뛰었고 화운은 제천지존릉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다 막 자신을 앞서가려는 남궁무인의 팔을 붙잡아 와락 잡아챘다.
쿠웅!
황소만 한 얼음덩이가 남궁검가의 무인과 화운의 코앞으로 떨어졌다.
“뛰어넘어요!”
화운이 외치며 황소만 한 얼음덩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화운 덕분에 살아남은 남궁검가의 무인 역시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화운의 뒤를 따라 훌쩍 뛰어넘은 다음 제천지존릉으로 내달렸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크고 작은 무수한 얼음덩이들이 온 사방팔방으로 떨어져 천사련의 무인들을 깔아뭉개기 시작했고 급기야 와르르 무너진 천장이 천지사방을 뒤덮어버렸다.
콰콰콰콰콰콰쾅쾅!
석실이 무너질 듯 요동치는 가운데 차가운 바람과 함께 뿌연 흙구름이 쏟아져 들어왔다.
화운은 고개를 숙인 상태로 석실의 출입구 가까이로 이동하였다.
“야광석을 꺼내라.”
남궁검가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푸르스름한 빛 십여 개가 어둠의 일부를 밀어냈다.
투둑!
입구를 막고 있던 거대한 돌덩이들 틈에서 자잘한 돌멩이 하나가 갑자기 굴러 떨어졌다.
남궁검가주가 야광석 하나를 건네받아 입구 쪽으로 향한 순간.
콰앙!
굉음이 터지며 입구를 막고 있던 돌덩이들의 일부가 안쪽으로 터졌다.
그리고 한 사람이 비척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장신의 흑의인.
검마였다.
비칠거리며 걸어오는 검마의 행색은 처참했다.
옷자락이 온통 찢어져 나풀거렸고 얼굴엔 피칠갑을 한 상태였다.
‘역시 똑같군. 그렇다면……!’
이전과 달리 출입구 가까이에 있던 화운은 검마의 뒤쪽을 살폈다.
야광석이 미쳐 비춰주지 못하여 낭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 실력으로는 그의 기습을 막지 못할 거야.’
화운은 바닥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낭왕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을 향해 냅다 던졌다.
“뒤를 조심하십시오!”
쓰-컹!
화운의 외침과 동시에 어둠이 갈라지며 돌멩이가 쪼개졌다.
순간 비칠거리던 검마가 빙글 돌았다.
그리고 찬란히 피어난 푸른 섬광이 뒤쪽의 어둠을 찰나 간에 쪼개놓았다.
“쥐새끼 같은 놈 때문에…… 끄억!!”
낭왕이 쓰러졌다.
그리고 입구를 막고 있던 돌덩이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낭왕의 몸뚱이를 뒤덮었다.
이때 검마가 휘청이다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핏물을 게웠다.
“검마 선배!”
남궁검가주가 소리치며 다가오려 하자 검마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돌아서서는 걸음을 옮겼다.
야광석이 푸르스름하게 밝혀주는 가운데 장신의 검마가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했다.
이대로 사람들 앞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검마의 자존심을 읽은 남궁검가주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따라 오너라.”
검마가 화운을 지나치며 말했다.
화운은 검마의 뒤를 따랐고, 검마는 안쪽에 있는 석실로 곧장 향했다.
검마는 제천마존의 추모문이 새겨져 있는 벽 앞에서 한 번 더 핏물을 게워내고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이때 화운은 안쪽 석실의 출입문을 닫아버린 다음 천천히 다가왔다.
“운기를 하십시오.”
화운의 목소리가 어둠을 울렸다.
“처음이 아니더냐?”
검마의 물음은 뜻밖이었다.
화운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예.”
“이전엔 어찌 되었더냐?”
“죽으셨습니다.”
“낭왕은?”
“내버려두실 분이 아니잖습니까.”
검마가 침묵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인지 부상이 심해서인지는 화운이 알 수가 없었다.
“막아달라고 하셨습니다.”
“나약한 소리를 했군.”
“그대로 죽기는 싫으셨겠죠.”
“비웃는 것이냐!”
검마의 음성에 살기가 실렸다.
“그게 비웃을 일이나 됩니까?”
“놈!”
검마의 음성이 더욱 커졌다.
“제가 검마대협과 어깨를 나란히 할 위치라면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해주었을 겁니다.”
“건방지다!”
“여기에 갇힌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자존심 때문입니다. 오만하셔서입니다.”
“거기까지다. 더 이상…….”
“남의 말에 귀도 기울이고 그러십시오. 불치하문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습니까.”
“좋다. 들어주마. 허나 시답지도 않은 소리라면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제가 죽는 걸 두려워할 것 같습니까?”
“팔다리만 잘라놓으마. 죽을 때까지 거기서 꿈틀거려야 할 게다.”
“그건 좀 두렵습니다. 죽을 때까지 벌레처럼 꿈틀거려야 한다니 으으으,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군요.”
짐짓 너스레를 떤 화운은 마지막으로 피식 웃어 보인 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랑 거래 하나 하시지요.”
“…….”
검마는 계속 말하라는 듯 침묵했다.
“많은 걸 알지 못합니다만, 원수를 찾고 계신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래서?”
“지금처럼 대협께서 변을 당하셨을 때를 위한 대비로 저랑 거래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검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었다.
‘그래도 화를 내진 않는군.’
화운 역시 검마를 직시했다.
진심을 보이기 위해서다.
“전 알고 보면 적당히 정직하고, 적당히 야비하고, 적당히 냉정합니다.”
“…….”
“무공에 대한 자질이 대단히 뛰어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
“적당히 영악할 줄도 알고, 적당히 배포도 큽니다. 아시다시피 누구도 가지지 못한 능력도 가졌습니다. 그래서 대협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제지연을 맺자는 것이냐?”
“감히 그럴 욕심은 없습니다.”
“……!”
“제게 검을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대협께서 하시는 일을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하다못해 대협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복수를 제가 잇도록 하겠습니다.”
검마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러다 곧 퉁명한 투로 말했다.
“너의 말이 다 사실이라면 그 거래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어째서입니까?”
“네놈이 죽었다가 살아나면 난 아무것도 기억을 못할 테니까.”
“맞습니다. 지금 저랑 거래가 아니라 사제지연을 맺는다 하더라도 제가 죽었다가 살아나면 대협께선 다 잊을 겁니다.”
“네놈이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어차피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원하는 만큼 강해질 때까지는 지금의 이 대화를 계속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 동생이 이 비동에 와 있습니다. 그 녀석이 죽지 않게 하려면 대협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화운은 선우유성에 관한 이야기까지 해가면서 검마를 설득하는 데에 전심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