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내가 화운이다! 걸리적거리지 마라!(1)
“내가 화운이다! 걸리적거리지 마라!”
화운이 암로 앞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양떼 속으로 뛰어든 이리!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화운의 모습이 딱 그랬다.
단검을 쓰는 자, 직도를 쓰는 자, 권장박투, 암기술…….
오십이 넘어가는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병기에 무공들이었으나 화운의 살검을 제대로 감당해내는 자가 없었다.
백나찰, 도살자를 시작으로 모조리 목이 떨어졌다.
딱 한 사람 쥐 상의 노인만이 인상을 쓰고 서 있었다.
“왜 죽이고 죽여도 검이 무거워지지 않는 걸까요?”
화운이 갑자기 물었다.
“미친놈!”
노인이 화를 내며 철곤을 뽑아 휘둘렀다.
단박에 머리통을 부숴 버리겠다는 살의가 가득했다.
그러나 화운은 노인이 펼치는 곤술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수십 합이 지났지만 노인은 단 한 대도 때리지 못했고 결국 강기를 일으켰다.
“정확히 이백에서 한 번 모자라군! 딴 거 없나요? 검강이라고 대단한 줄 알았더니 부딪치지만 않으면 별거 아니던데요.”
“미친 주둥일 어디서 나불대는 것이냐!”
노인이 와락 달려들었다.
화운 역시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너무 많이 상대하여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정도라 노인과의 싸움도 지겨웠다.
하여 강기를 상대로 정면으로 부딪쳐 보았다.
꽝!
굉음이 터지고, 머릿속에 불이 번쩍이는 것 같더니 이내 지독한 암흑 속으로 처박혔다.
“내가 검마다! 걸리적거리지 마라!”
황의인을 베어버린 화운은 백나찰과 도살자 역시 차례로 베었다.
그리고는 광장 한복판에 서서 기다렸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쥐 상의 노인을 선두로 하여 암로 속으로 사라졌다.
화운은 검을 늘어트린 채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일단의 무리가 광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선두엔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장대한 체구의 낭왕이 보였다.
낭혈, 도탑, 잔월교, 혈악 그리고 흑마갱.
바로 천하사파연합이 광장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러다 검마가 독차지하는 거 아니오?”
혈악주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염려 마시오. 보물이라는 건 결국 마지막에 쥔 자가 임자인 법이오. 련주께서 바깥에 천라지망을 펼쳐 놓았으니 다른 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검마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보물을 독차지할 순 없소.”
자신 있게 말한 낭왕이 뒤늦게 화운을 발견했다.
“웬 쥐새끼냐!”
화운의 주위엔 시체 세 구가 목이 잘린 채 뒹굴고 있었지만 낭왕은 힐끔 시선 한 번 던질 뿐 가소롭다는 듯 다가왔다.
이때 화운은 입 꼬리가 휘어지도록 웃었다.
‘오십, 백, 백오십…… 이백! 이백이 넘는다! 으헷헷! 저 정도면 살검을 익히고도 남겠다!’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화운은 검을 들었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었다.
“모조리 목을 내밀어라!”
“뭐 이런 같잖은……!”
낭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구환도를 휘둘렀다.
그런데 일직선으로 달려들던 화운이 갑자기 신형을 틀어 눈 밖에서 사라졌다.
공공무영비를 펼친 것이다.
낭왕이 화운을 쫓아 부리나케 구환도의 궤적을 트는 순간.
“크-악!”
“끄아악!”
비명이 터졌다.
화운이 낭왕의 수하들을 급습한 것이다.
“막아라!”
“죽엿! 놈을 죽여 버렷!”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자들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며 화운의 움직임을 봉쇄하려고 했다.
그러나 화운의 두 발은 공공무영보를 펼치고 있었고, 그가 휘두르는 검은 사혼구검의 절초들을 쏟아냈다.
낭인들의 무위로는 결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비켜라!”
“물러나라!”
도탑, 잔월교, 혈악 그리고 흑마갱의 수장들이 사방에서 압박하고서야 화운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확 줄어들었다.
“쥐새끼! 찢어죽이고야 말겠다!”
낭왕이 살벌한 기세를 터트리며 다가왔다.
그는 머리 뚜껑이 열릴 정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겨우 이십이야? 공공무영비부터 더 수련해야겠군!”
중얼거린 화운이 낭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왁!
낭왕의 구환도가 광풍을 몰고 들이쳤다.
***
“이백하고 열세 번이야. 내가 당했던 거에 비하면 반도 안 돼.”
목이 달아난 백나찰에게 냉랭히 말한 화운은 도살자를 향해 돌아섰다.
사실 도살자에게 당한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화운은 검을 뻗어 도살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곧 암로 입구에 있는 사람들 쪽을 향해 까딱까딱 움직였다.
“꺼져.”
도살자는 화운이 가리키는 쪽으로 달아났다.
백나찰을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수라는 걸 단박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이윽고 사람들이 암로 속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게 된 화운은 경신술을 펼쳤다.
낭왕을 비롯한 고수들의 공세를 벗어나 그들의 수하들만 우선적으로 베어버리려면 공공무영비가 좀 더 빨라야 한다.
-공공(空空)은 곧 무영(無影)이다.
그렇게 시작하는 공공무영비는 모두 십단공으로 나누어졌다.
화운은 검마에게 검을 배우면서 무학의 일반적인 원리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쳤다.
그 덕분에 공공무영비에 대한 이해가 단박에 오 단공까지 올라선 상태였다.
하지만 혼원여의공의 공력을 쌓는 게 너무 더뎠다.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있어 몸으로 익히기만 하면 되는 데도 공공무영비를 삼 단공까지 밖에 펼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일 단공이었던 수준을 삼 단공까지 끌어올렸으니 나름 만족할 만했다.
“웬 쥐새끼냐!”
낭왕이 화운을 발견했다.
“백 명! 딱 백 명만 베자!”
화운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었다.
“모조리 목을 내밀어라!”
“뭐 이런 같잖은……!”
낭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구환도를 휘둘렀다.
낭왕을 향해 곧장 달려들던 화운이 갑자기 신형을 틀었다.
낭왕이 화운을 쫓아 부리나케 구환도의 궤적을 트는 순간.
“크-악!”
“끄아악!”
비명이 터졌다.
화운이 낭왕의 수하들을 급습하고 있었다.
일검이 그어질 때마다 목이 달아나고 가슴이 갈라져 피분수가 뿜어졌다.
화운은 피를 피하지 않았다.
흠뻑 뒤집어쓴 채 걸리는 족족 미친 듯이 베었다.
그러면서도 낭왕을 비롯한 고수들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갇히는 순간 끝이야.’
“비켜라!”
“물러나라!”
도탑, 잔월교, 혈악 그리고 흑마갱의 수장들이 사방으로 자릴 잡으며 화운의 움직임을 봉쇄하려고 시도했다.
“쥐새끼! 찢어죽이고야 말겠다!”
낭왕 역시 이전처럼 살벌한 기세를 터트리며 다가왔다.
화운은 재빨리 움직였다.
고수들 사이에 갇히기 전에 일반 무인들이 대거 몰려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검에 묵직한 느낌이 들 때마다 어김없이 피가 튀었다.
쓰러진 숫자가 삼십이 넘어갔다.
“으아아악! 죽여 버리겠다!”
낭왕이 고함을 지르며 돌진해 왔다.
화운은 더 많은 숫자가 있는 곳으로 재빨리 움직였다.
부-왁!
낭왕의 구환도가 거침없이 휘둘러졌다.
“어, 억?”
화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놀랍게도 낭왕은 자신의 수하들이 있는 걸 아랑곳 않고 구환도를 휘둘렀다.
화운은 다급히 검을 세웠다.
카-앙!
화운은 옆구리가 부서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으며 낭왕의 수하들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크윽!”
잇새를 비집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무지 아팠다.
그래도 벌떡 일어났다.
함께 나동그라졌던 낭왕의 수하들이 보이자 냅다 검을 휘둘러 베어버렸다.
“이 찢어죽일 쥐새끼가!”
낭왕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화운은 주위를 둘러봤다.
“젠장!”
어느새 도탑, 잔월교, 혈악 그리고 흑마갱의 수장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빠져나갈 틈이 없다.
‘공공무영비의 성취가 오 단공 정도만 되었어도…….’
아쉬웠다.
목표로 했던 백 명의 절반밖에 베지 못한 게 아쉬웠고, 공공무영비의 성취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이렇게 쉽게 갇히지 않았을 것이라 더 아쉬웠다.
‘공력을 키우는 게 시급하군!’
화운이 그렇게 스스로의 상태를 진단할 때였다.
“역시나 천사련답군. 이런 곳에서조차 싸움이라니…….”
비웃는 투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화운의 귀에 익었다.
돌아보니 역시나 눈에 익은 얼굴이 보였다.
남궁검가!
바로 그들이었다.
“어?”
화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궁검가주 옆에 아는 얼굴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은……!”
그 역시 화운을 알아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때였다.
“형?”
남궁검가주의 뒤에서 제법 큰 덩치의 청년이 화운을 향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운 역시 그를 보았다.
“유성아!”
“뭐여? 선우세가 쪽 새끼였어?”
낭왕이 두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남궁검가주가 낭왕을 향해 물었다.
“얼씨구! 다짜고짜 공격해 놓고는 여의치 않으니 발뺌을 하겠다고? 이 씨앙! 누굴 병신으로 알아! 전쟁이다! 전쟁! 다 죽었어!”
낭왕이 화가 극에 받쳐 소리치고 있을 때 화운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지? 왜? 함께 왔잖아!’
화운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남궁검가와 선우세가를 번갈아보았다.
그러다 자신을 향해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유성을 보고는 몹시 불길한 기분이 들어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확인해야겠어!’
화운은 꿈틀거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옆구리를 부여잡고 낭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병신 맞으니까 목이나 내밀어라!”
쓰-앙!
화운의 칼이 허공을 단박에 갈랐다.
순간 빙글 돌아서는 낭왕의 구환도가 불그스름한 광채를 폭발시키며 화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도, 도강?’
***
따당! 따다다당!
화운이 똑바로 선 채 검을 대충 휘둘러 막아내자 백나찰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다 각자의 이유가 있는 법이야. 그냥 가.”
화운은 당황하는 백나찰을 두고 검끝을 돌려 도살자를 가리켰다.
“꺼져.”
화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상만 썼다.
백나찰은 한참을 고민하다 암로 쪽으로 돌아섰고, 그녀가 돌아서자 도살자 역시 암로 쪽으로 움직였다.
잠시 후 쥐 상의 노인을 선두로 하여 사람들이 암로 속으로 사라졌다.
백나찰과 도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운은 그제야 광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광장 곳곳을 살핀 끝에 한쪽 벽 위쪽에 비좁은 공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넉넉한 공간이 아니어서 눈썰미 좋은 이에겐 쉽게 발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천만다행하게도 광장 안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화운은 그리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잠시 후 일단의 무리가 광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선두엔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장대한 체구의 낭왕이 보였다.
낭혈, 도탑, 잔월교, 혈악 그리고 흑마갱.
바로 천하사파연합이 광장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러다 검마가 독차지하는 거 아니오?”
혈악주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염려 마시오. 보물이라는 건 결국 마지막에 쥔 자가 임자인 법이오. 련주께서 바깥에 천라지망을 펼쳐 놓았으니 다른 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검마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보물을 독차지할 순 없소.”
낭왕이 자신 있게 말하며 광장 반대편의 암로로 향했다.
그러면서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곳간의 보물은 쥐새끼 한 마리가 훔치는 법이다. 정말 시체가 맞는지 일일이 확인해 봐라.”
낭왕의 명령에 그의 수하들이 시체들을 일일이 칼로 쑤셔댔다.
‘잔인한 늙은이. 피하길 잘했어…….’
화운은 낭왕과 천사련이 암로 속으로 완전히 멀어진 후에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정갈한 기도에 형형한 안광을 발하고 있는 무인들.
바로 남궁검가와 선우세가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주위를 살펴보며 낭왕과 천사련이 들어간 반대편의 암로로 향했다.
그렇게 남궁검가와 선우세가마저 암로 속으로 사라지고 나자 화운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화운은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암로를 바라봤다.
“왜지? 왜 선우세가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던 거지?”
남궁세가는 수직동굴의 바닥에서 만났다.
하지만 선우세가는 그곳까지 오지 않았다.
화운은 그 이유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 표정, 뭔가 이상했어!’
화운이 자신의 외가가 선우세가라고 했을 때 남궁검가주의 표정이 이상했다.
화운은 두 눈을 힘주어 떴다.
자꾸만 불길한 느낌이 들어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별일 없을 거야. 괜한 걱정일 뿐이야!”
화운은 암로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