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이제 밖으로(1)
화운과 검마는 무영투가 왜 저러는지 눈치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무기의 비늘에는 관심조차 없어 그냥 내버려두었다.
“하나씩 나눠가졌으면 합니다.”
화운이 공청석유와 인형설삼이 든 옥병과 옥함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손에 쥔 자가 임자라고 했다.”
검마의 대답이었다.
“둘 다 지금 제 손에 있습니다.”
“손이야 잘라 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거래가 깨집니다.”
“지금의 난 한 적도 없는 거래다.”
“……!”
할 말이 없어진 화운은 검마를 노려보았다.
검마는 담담한 표정 그대로였다.
잠깐 고민하던 화운은 진지하게 물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이거 다 가져서 내력을 잔뜩 끌어 올리는 겁니까?”
“내력은 이미 충분하다.”
“그럼 뭘 바라시는 겁니까?”
“이무기가 저토록 오래 산 건 이 내단 때문이지 않을까?”
검마가 손에 들고 있던 이무기의 내단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서요?”
“내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그럼 그 내단 잡수시면 되잖습니까. 전 이걸 복용하고요.”
“그것까지 복용하면 더 많은 시간을 벌 수도 있겠지.”
“천하의 검마도 별수 없군요.”
화운이 두 손을 내밀었다.
그의 얼굴엔 조바심 따위는 없었다.
고민과 귀찮음만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며 검마가 말했다.
“이제 넌 죽으려고 하겠구나.”
“그래야지요.”
“다시 살아나면 다른 사람과 이곳으로 오겠구나?”
“아마도요.”
화운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다 곧 불길한 상상에 두 눈을 치뜨며 한 걸음 물러났다.
“설마?”
“널 죽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겠지?”
검마의 말에 안색을 굳힌 화운이 잽싸게 검을 뽑아 역으로 쥐며 심장을 찔렀다.
하지만 검마의 손이 더 빨라 촌음간에 검병을 잡아버렸다.
“아!”
화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마가 그런 화운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다 말했다.
“억겁의 시간이 널 가리키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그거야…….”
“아마도 넌 이곳에서 죽어도 다시 살아나게 되는 무언가를 얻게 되었을 거다.”
“……!”
화운의 눈이 커졌다.
검마는 화운의 그런 표정의 변화를 보며 담담한 어투 그대로 말했다.
“광장 바닥에 있는 구멍, 내 생각엔 넌 거기에 빠졌던 듯싶은데 그렇지 않느냐?”
화운은 입 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검마가 이토록 귀신같이 꿰뚫어 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가 그리 가면 어찌 될까?”
“……!”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기현상이 내게로 올까?”
화운은 목이 타들어가다 못해 딸꾹질이 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검마는 그런 화운을 바라보다 검의 손잡이를 놓았다.
“이제 알겠느냐?”
“……?”
“네가 얼마나 부주의했는지.”
“예?”
“무영투가 이 사실을 눈치챘다면 당장 그리 달려가고 말 게다.”
화운이 눈길을 돌려 무영투를 바라보았다.
무영투는 이무기의 사체에서 비늘들을 신나게 뽑아내느라 이쪽엔 관심도 없었다.
화운은 안도하며 다시 검마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주신 기회일 수도 있다. 그걸 활용하여 내게서 무공을 얻어내고 무영투에게서 공공무영비를 훔쳐낸 건 잘했다. 하지만 좀 더 너에 대한 비밀은 감추어야 할 게다.”
“탐나지 않으십니까?”
“전혀.”
“어째섭니까?”
“억겁의 시간은 고통이니까.”
검마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화운은 검마의 이 같은 표정을 본 적이 있다.
남궁현과 선우유성의 인사를 받을 때였다.
손자를 생각하는지 그때의 표정이 딱 지금과 같았다.
화운은 알 것 같았다.
원수를 찾아내 죽이지도 못하고 있으니, 오랜 시간을 사는 건 검마에겐 지옥인 것이다.
설사 복수를 한다고 하여도 남은 시간 역시 내내 고통일 수밖에 없을 터, 억겁의 시간은 검마에게 저주일 수밖에 없다.
“무영투는 지금 비늘에 정신이 팔려 너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비늘들을 처리하고 나면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른다. 그는 천생 도둑이라 가만히 있을까 싶다. 그러니 그가 알아내기 전에 대비를 해 두는 게 좋을 게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화운이 대답하자 검마가 내단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내단은 영기가 완성된 형태다. 이것 자체가 공력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마지막에 복용하는 게 좋겠다.”
“그 말씀은……?”
“태양의 열기로 달궈진 대지의 영기가 수만 년의 시간 동안 응축된 것이 공청석유다. 그래서 공청석유는 극양의 약성을 지녔다. 인형설삼은 만년설의 빙기를 먹고 자랐으니 극음의 약성일 테고. 둘을 한꺼번에 복용한 다음 경과를 지켜본 후에 이상이 없으면 그때 내단을 복용해라.”
“잘못될 수도 있겠네요?”
“다시 시작하면 되잖느냐?”
“아!”
화운은 멋쩍게 웃었다.
“거래는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훗날 내가 죽었다는 말이 들리거든 내 뒤를 잇거라. 무학과 복수 둘 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됐다.”
고개를 끄덕인 검마는 화운에게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라고 하였다.
“공청석유와 인형설삼을 복용하거라.”
검마의 말에 화운은 옥병의 뚜껑을 열고 입으로 가져갔다.
놀라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식도를 태우고 넘어갔다.
“크윽!”
화운이 배를 감싸 쥐며 허리를 굽혔다.
뱃속이 다 타버린 것처럼 너무나 뜨거웠다.
“인형설삼을 복용해라.”
화운은 허겁지겁 옥함을 열고 인형설삼을 꺼냈다. 하지만 곧 너무나 차가워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인형설삼은 극음의 기운이 응축한 것이라 수천 년을 버틸 정도로 차가웠다.
보고 있던 검마가 인형설삼을 집어 들어 손에 힘을 줬다.
그러자 마치 얼음 알갱이처럼 부서졌다.
“입을 벌려라.”
화운이 입을 벌리자 검마는 인형설삼의 조각들을 쑤셔 넣어 주었다.
화운은 씹지도 못하고 꿀꺽꿀꺽 삼켜댔다.
차가우면서도 청아한 기운이 불로 지진 듯 뜨거웠던 식도를 식히며 넘어갔다.
차가운 약성을 지닌 인형설삼을 먹었으니 이제 곧 뱃속의 평화가 기대되었다.
그런데 웬 걸?
뱃속에 전쟁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극통이 화운의 뱃속을 초토화하였다.
극도로 뜨거운 열기가 창자들을 마구 태워 버리는 것 같더니 금세 극도로 차가운 얼음 칼로 내장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그 고통이 전신으로 퍼졌다.
화운은 너무나 끔찍한 고통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뜨겁고 차갑기를 반복하는 극악한 고통이 끊임없이 반복했다.
“뜨거워…… 크윽! 차갑다! 차가워! 너무…… 너무 뜨거워! 끄으으윽!”
화운은 정자 안을 마구 굴렀다.
그러다 참지 못할 가려움이 느껴져 얼굴이며 목이며 마구 긁어댔다.
피부가 갈라져 피가 흘렀다.
손톱이 긁어댈 때마다 시커멓게 죽은피가 누런 살가죽과 함께 덩어리째 떨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학질 걸린 사람처럼 전신을 마구 뒤틀며 떨어댔다.
우드드득! 우드득!
화운의 전신에서 뼈마디가 뒤틀리는 기음이 들렸다.
팔다리가 잡아당긴 듯 늘어났다가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그러길 반시진.
화운의 몸부림이 잠잠해졌다.
화운은 축 늘어져 의식을 잃었다.
우드드득! 우드득!
뼈마디가 뒤틀리는 기음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었다.
“죽지 않았군요.”
화운이 정신을 차린 건 한 시진이 지난 후였다.
화운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자신의 몸과 옷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정체 모를 이물질에 또 놀랐다.
“이게 다 뭡니까?”
“너의 허물쯤으로 보면 될 게다.”
“허물이라고요?”
“환골탈태를 하게 되면 너와 같다더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 보다 고약한 냄새가 나니 나가서 털고 오너라.”
“환골탈태라고요?”
화운은 깜짝 놀랐다.
전설이나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던 환골탈태를 자신이 하게 될 줄이야.
골격이 단단하게 강화될 뿐만 아니라 전신의 기혈들에 쌓여있던 노폐물을 태우고 몸 밖으로 배출하여 내력을 운행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신체로 만들어주는 게 바로 환골탈태였다.
화운은 너무나 기뻐 춤이라도 추고 싶어 벌떡 일어났다.
순간 지독한 악취가 그의 코를 찔렀다.
“어서 나가거라.”
검마가 손을 내젓자 경풍이 일어나 냄새와 바닥에 떨어진 화운의 허물들을 날려 버렸다.
화운 역시 검마의 경풍에 떠밀리다시피 하여 석조정자 밖으로 나갔다.
화운은 멀찍이 떨어져서 옷을 벗어 털었다.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씻듯이 쓸어내자 때 같기도 하고 허물 같기도 한 이물질이 잔뜩 떨어졌다.
“물 대신 바람으로 씻거라.”
멀리서 검마의 말이 들렸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의아해하던 화운은 이내 검마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공공무영비를 펼쳐 냅다 뛰었다.
바람이 마주 부는 듯 대기가 빠르게 스쳐갔다.
화운의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던 이물질들마저 깨끗이 떨어졌다.
화운은 쥐고 있던 옷들을 마구 흔들어댔다.
바람으로 하는 세탁이었다.
잠시 후 화운은 옷을 다시 입고는 석조정자로 돌아왔다.
천장의 유리를 뚫고 들어온 빛이 화운을 비춰주었다.
화운의 모습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키가 한 뼘은 더 커졌다.
얼굴형이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콧대가 더욱 반듯해졌고, 피부는 말끔하게 잡티가 사라져 무척이나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두 눈은 흑백이 뚜렷했고, 섭혼술의 대가라 할지라도 속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검마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화운은 자신의 달라진 점을 알지 못했다.
“공청석유와 인형설삼이 너의 몸을 완벽하게 탈바꿈시켜 놓았으나 그것들이 공력을 높여주진 않았다. 복용하거라.”
검마가 이무기의 내단을 내밀었다.
그는 화운이 기뻐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화운 역시 별말이 없었다.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다음 내단을 받아 곧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놀랍게도 크고 딱딱한 내단이 입안으로 들어갔다.
입김이 닿은 순간 홍시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해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다.
화운은 공청석유와 인형설삼을 복용했을 때 경험했던 극악한 고통을 떠올리며 마음의 대비를 하였다.
그러나 천만다행하게도 고통은 없었다.
‘넋 놓고 있다간 때를 놓치는 법이다. 어서 운기하거라. 태극 이전에 혼원이 있으니 유(有)와 무(無)가 혼재하였다. 그 혼란을 하나로 일으키고 다스리니 혼원여의공(混元如意功)이라 한다.’
검마의 전음성이 들려오자 화운은 거기에 집중하여 하단전의 공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내단의 기운이 혼원여의공을 쫓아왔다.
내단의 기운은 검마의 말대로 완성된 기운이어서인지 다른 기운에 배타적이지 않았다.
혼원여의공은 혼돈 그 자체라 포용력이 강했다.
그래서 두 기운은 순식간에 하나가 되었다.
화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기운을 혼원여의공의 운행법에 따라 정신없이 이끌었다.
사지백해를 질주하는 기운에 화운은 벅찬 희열을 느꼈다.
천하를 질주하는 힘이 느껴졌다.
만흉만마가 눈앞에 나타나도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운은 자신만만한 기운에 흠뻑 취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더 이상의 행공이 무의미해지자 화운이 눈을 떴다.
순간 너무나 눈부신 광채가 두 눈에서 번뜩이다 자취를 감추었다.
“감사합니다.”
화운이 고마움을 표했다.
단전에 가득한 공력은 모두 검마의 덕분이었다.
“아직 만족하지 마라. 이제 몸이 준비된 것에 불과하니까.”
지금 화운의 공력은 검마보다 약간 모자란 정도였다.
이 정도가 준비된 것일 뿐이라면 천하가 놀라 나자빠질 일이다.
검마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와 같이 말한 건 화운이 자만할까 싶어서였다.
“예.”
공손히 대답한 화운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장에서 쏟아지고 있는 빛의 기둥 그리고 거무튀튀한 사방의 암벽.
운기행공을 시작하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리저리 둘러봐도 무영투가 보이지 않았다.
이무기의 사체는 있는데 비늘 역시 남김없이 사라졌다.
화운은 다시 검마를 돌아봤다.
“출구는 저 위쪽뿐이다. 이무기가 나왔던 곳엔 그놈의 보금자리만 있었다.”
“그래서 그 영감님 혼자 가버렸답니까? 인간적인 의리도 없이 챙길 것만 쏙 챙겨서요?”
“내가 가도 좋다고 했다.”
“아니 왜요?”
“잡아두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런 데에 함께 갇혔으면 함께 나가는 것이 인간적인 거니까요.”
“자기 살 자리를 우선 찾고, 자기 실속을 먼저 챙기는 게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
화운은 의외라는 얼굴로 쳐다봤다.
검마가 한 말이 의외라서가 아니다.
무공 외에는 거의 말이 없다시피 하던 검마가 이런 대화를 받아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그 말씀이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화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 후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이틀 정도 지났을 게다.”
“많이 지났군요.”
고개를 끄덕인 화운이 빛의 기둥이 쏟아지고 있는 위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밖으로 나가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