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45화 (45/207)

#045. 대환단

‘뭐지? 극양의 신공인가?’

공기가 후텁지근하게 변했다.

녹포노인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기분 나쁜 기운 탓이다.

“놈! 어디서 한눈을 파는 것이냐!”

장강수로왕의 일갈과 함께 척혈묵린편이 거세게 요동쳤다.

묵빛의 강기를 잔뜩 머금고 있어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화운은 사혼구검 사 초식 사혼망을 다시 펼쳐 막으면서 녹포노인을 경계했다.

뚜다다다당!

척혈묵린편과 검이 쉴 새 없이 부딪치는 순간.

녹포노인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진한 녹빛의 강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흥! 이럴 줄 알았다!”

화운이 코웃음 치면서 자신만만하게 외친 순간 그를 향해 날아오던 녹빛의 강기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어디론가 쏘아갔다.

“엇?”

화운이 다급성을 터트렸다.

녹빛의 강기가 날아간 방향은 선우유성 등이 한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선박이었다.

“이 썅!”

화운은 검을 크게 휘둘러 장강수로왕의 척혈묵린편을 쳐내고는 부리나케 신형을 날렸다.

“이놈! 어딜 도망치느냐!”

장강수로왕이 뒤를 쫓았다.

‘늦어!’

다급해진 화운은 날아가는 도중에 검을 휘둘렀다.

선명한 푸른빛의 검환이 빛살처럼 쏘아갔다.

콰앙!

늦지 않게 가까스로 녹빛의 강기를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어 재앙을 불렀다.

녹빛 강기의 파편이 갑판 위로 불똥처럼 쏟아진 것이다.

“독강이다! 피해라!”

선우유성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무하채주가 기겁하여 신형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거의 반사적이라 할 만큼 재빠른 동작으로 남궁현을 밀쳐낸 흑사채주와 백리연에게서 번개같이 떨어져나간 교룡채주가 선박 후미로 전광처럼 물러났다.

콰과과과과광!

불똥처럼 쏟아진 독강의 파편이 갑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녹연이 자욱하게 깔렸다.

“……!”

갑판 위로 내려선 화운은 망연자실했다.

백리연이 당한 것이다.

오른쪽 다리와 등에 독강의 파편이 작렬하여 녹연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선우유성과 남궁현보다 한 발 늦게 움직이던 백리연은 떨어지는 독강의 파편을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둘을 냅다 밀어버렸다.

그 덕분에 선우유성과 남궁현은 화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화운이 보았다.

“누나!”

“만지지 마!”

선우유성이 소리치며 달려들자 남궁현이 막았다.

이때 화운이 뒤돌아 검을 휘둘렀다.

쾅쾅쾅!

새파란 검환이 날아들자 반사적으로 척혈묵린편을 휘둘러 막으려던 장강수로왕이 왔던 곳으로 튕겼다.

“으음…….”

화운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있는 백리연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독강의 파편에 격중당한 다리 부분의 옷을 찢었다.

얼마나 지독한 독인지 벌써 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손을 뻗어 등 부분도 찢어보았다.

새하얀 살결이 보였다.

그리고 붉게 녹아내리고 있는 살점도.

심각했다.

독강은 강기의 파편만으로도 이토록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해약을 구해오겠소!”

화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독왕을 잡아 고문을 해서라도 해독약을 내놓게 할 생각인 것이다.

“독강을 발휘할 고수라면 독왕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극독이라면 해약이 없을 겁니다.”

“그럼 어쩌라고?”

남궁현의 말에 화운이 소리쳤다.

스스로에게 화가 난 것이다.

“영약이 필요합니다.”

“무슨 영약?”

“우리가 복용했던 공청석유 같은 영약이나 소림의 대환단, 무당의 자소단 같은 거요!”

더 이상 영약은 없다.

이미 복용해 버렸으니까.

하지만 대환단하니까 퍼뜩 생각난 게 있다.

“돌아간다!”

소리친 화운은 남궁현과 선우유성을 붙잡아 강가로 던졌다.

그리고 백리연을 안아들고는 갑판을 박찼다.

화운이 물러가는 광경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장강수로왕과 사천독왕이었다.

“어찌 쫓지 않는 것이오?”

장강수로왕이 불만으로 토로했다.

놈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지만 함께 쫓는다면 능히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장강수로왕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천독왕은 달리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시오. 저놈은 틀림없이 다시 올 테니까. 우린 저놈을 잡을 완벽한 덫이나 준비합시다.”

***

화운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선우유성과 남궁현은 뒤에서 알아서 따라오도록 하고 백리연을 안은 채 그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렸다.

그리하여 삼 일 걸릴 거리를 반나절만에 주파하는 놀라운 속도를 보여주었다.

“영감님! 무영투 영감님!”

화운은 천병가의 앞마당에 내려서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천병가의 철장들과 무영투가 깜짝 놀라 달려 나왔다.

“무슨 일이냐!”

“위중한 환자입니다. 가주님, 깨끗한 방 좀 내주십시오.”

“이쪽으로 오시게.”

천병가의 가주가 앞서가고 화운이 뒤를 따랐다.

“영감님 빨리 따라 오십시오!”

“난 왜? 의원도 아닌데!”

“빨리요!”

“알았으니까 소리치지 마라! 누가 들으면 내가 네놈 노복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무영투가 투덜거리며 뒤를 쫓아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상에 백리연을 내려놓은 화운은 무영투를 향해 불쑥 손을 뻗었다.

“사천독왕의 극독에 당했습니다. 대환단이 필요합니다.”

“없어.”

화운은 백리연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이대로 두면 죽습니다. 빨리 주십시오.”

“없다고!”

“공공(空空)은 곧 무영(無影)이다. 빈 곳을 가려니 먼저 채워야 한다.”

화운은 공공무영비의 구결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에 크게 놀란 무영투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만! 그만! 너 뭐냐! 대체 뭐하는 놈이야!”

“우린 한 식구입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대환단부터 주십시오.”

“너, 너 이놈……!”

“빨리요!”

눈을 부라리며 쏘아붙이는 화운에게서 태산 같은 기운이 휘몰아치자 가슴이 덜컥해진 무영투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품속으로 넣었다.

‘이런 망할!’

무영투는 재빨리 손을 뺐다.

“시간이 없다고요!”

화운이 버럭 소리쳤다.

무영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손을 넣어 전낭 비슷하게 생긴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진짜 시간 없다니까!”

화운은 손을 뻗어 주머니를 낚아챘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서 금박으로 씌워져 있는 환약을 꺼냈다.

두 손가락으로 으깬 화운은 이미 의식을 잃어버린 백리연의 입에 넣은 다음 물주전자를 격공섭물로 끌어당겨 백리연의 상체를 조금 일으킨 다음 물을 부어주었다.

“그래 가지고 넘어가냐.”

한심하다는 듯 말한 무영투가 손을 뻗어 백리연의 목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입안에 한가득이던 물과 대환단이 울컥 넘어갔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뭘, 우린 한 배를 탄 가족인데…….”

겸양의 말을 하면서도 뭔가 이상한 것 같은 무영투다.

하지만 화운은 백리연에게서 눈길 한 번 떼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인지라 무영투는 잠시 서성이다 밖으로 나갔다.

“하! 진짜 어떻게 알았을까? 분명히 훔친 적 없다고 말했는데…….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공무영비를 어떻게 알지?”

무영투는 문 밖에서 서성이며 온갖 생각을 다 해보았으나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반시진(1시간)이 지나자 화운이 나왔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대환단으로도 소용이 없더냐?”

“독은 중화된 것 같은데……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헐…….”

백봉이 다리 한쪽을 못 쓴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할 만하다.

무영투는 공공무영비에 관해 물어보아야 하는데, 어째 지금은 아닌 것 같아 화운의 눈치만 살폈다.

“영감님, 아무래도 우린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진짜 가족 같은 운명인가 봅니다.”

“그, 그래? 근데 누군지 알아야…….”

“다녀올 데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부탁드립니다.”

“아니 부탁이야 뭐 들어주는데, 어딜 간다고……?”

무영투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화운은 저만큼 성큼성큼 가고 있었다.

“저, 저저 싸가지 없는……!”

“대환단은 몇 개나 있습니까?”

저만큼 가던 화운이 갑자기 물었다.

“없어!”

“그렇게 정색하면서 없다고 하시는 것 보니까 더 있군요. 알겠습니다.”

“없다고! 하나도 없어! 진짜 없다고!”

무영투가 소리쳤으나 화운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가버렸다.

“없는데……. 진짜…… 싸가지 없는 새끼.”

무영투는 품속으로 손을 넣으며 투덜거렸다.

천병가주를 찾아간 화운은 삼두독각망의 비늘 하나를 달라고 했다.

“여기 안쪽에 손잡이를 달아줄 수 있습니까?”

“방패로 쓰시게?”

“예.”

“잠시만 기다려 보게.”

밥 한 끼 먹을 시간 쯤 지나자 천병가주가 돌아왔다.

“급한 것 같아보여서 그저 단단하게만 붙여놓았네.”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움을 표한 화운은 방패가 된 비늘을 들고는 하늘로 솟구쳐 금세 사라졌다.

장강 장강수로십팔채 선단.

다시 돌아온 화운은 중형선단의 갑판 위를 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소형선박에 있던 수적들까지 전부 올라가 손마다 나무방패를 쥐고는 밀집대형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화운은 검환을 날렸다.

콰-앙!

수십 명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방패들이 터지고 그 뒤의 수적들까지 터져 날아갔다.

화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검환을 연달아 날렸다.

쾅쾅쾅쾅쾅!

선박들이 마구 터졌다.

나무로 제작된 선박은 제아무리 커도 검환을 버틸 수가 없었다.

화운은 보이는 족족 선박들을 박살을 내며 대형선박으로 날아갔다.

장강수로왕과 사천독왕이 보였다.

장강십팔채의 모든 채주들과 아홉 명의 장강구염라 그리고 사천당문의 고수들까지 갑판에 한가득이었다.

“날 잡으려고 기다린 건가?”

화운이 갑판위로 내려서며 말했다.

“역시 자신감 넘치는 놈들은 자신으로 인해 문제가 터지는 걸 참지 못하는 법이지.”

사천독왕이 뒷짐을 진 채 말했다.

입가엔 비웃음이 보였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자 기고만장하고 있었다.

“어린놈이 어찌하여 그렇게 고강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장강이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장강수로왕이 살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화운으로 인해 이십여 척의 선박들이 운항 불가가 된 것에 극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나 하나 잡자고 그만큼이나 동원했으니 자신만만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이것까지 감안한 건지 모르겠군.”

화운의 말이 끝난 순간이다.

새파란 기운이 넘실거리는 화운의 검신에서 같은 빛의 고리가 빠져나왔다.

하나씩 차례대로 빠져나와 화운의 앞에 둥실 떴다.

마치 눈앞의 적들을 겨누듯이.

처음엔 장강수로왕과 사천독왕의 얼굴에 ‘검환인가?’ 하는 정도의 경계심이 떠올랐다.

그러다 검환의 숫자가 다섯 개가 되고 열 개가 되니 심각하게 굳었다.

검환이 아니라 검강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면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검신에 차곡차곡 겹쳐 있던 검멸의 검환이 멈추지 않고 빠져나왔다.

사천독왕이 뒷짐을 풀었다.

금세 오십 개가 넘어갔다.

장강수로왕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검신에 겹쳐 있는 검멸의 검환은 이제야 겨우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죽어라!”

사천독왕이 기습적으로 독강을 날렸다.

이심전심!

장강수로왕 역시 척혈묵린편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번개 같고 무시무시한 공세가 펼쳐지자 장강구염라, 장강십팔채의 채주들이 일제히 달려들었고, 그보다 먼저 당문의 고수들이 날린 무수한 암기들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그래, 해 보자! 여기가 누구의 무덤이 되는지!”

화운의 외침이 터진 순간 고리모양의 검환들이 일제히 쏘아갔다.

콰콰콰쾅콰콰쾅쾅쾅!

아홉 명의 장강구염라.

열여덟 명의 장강십팔채 채주들.

십여 명의 독과 암기의 당문 고수들.

그리고 당문의 고수들이 날린 무수한 암기들

예외는 없었다.

모조리 육신이 쪼개지고, 갈라지고, 피떡이 되어 장강으로 날아갔다.

암기들조차 모조리 휩쓸려 날아갔다.

콰다다다당!

사혼검의 절초 사혼망을 펼쳐 장강수로왕의 척혈묵린편을 막은 화운은 사천독왕이 날린 독강을 삼두독강망의 비늘로 막았다.

쾅!

육중한 충격파가 느껴졌지만, 비늘은 건재했다.

검기 수준의 내력을 주입한 것만으로도 사천독왕의 독강을 막아낸 것이다.

“이 정도면 훌륭하군!”

만족한 화운은 이무기 비늘을 사천독왕을 향해 날려 보낸 후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검멸의 검환을 다시 한번 잔뜩 일으킨 후 발아래 장강의 수적선단을 향해 일제히 날렸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검멸의 맹폭에 장강수로왕이 자부하던 선단이 무참하게 박살이 났다.

단 한 척의 예외 없이!

선박의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철저히 부서져 장강 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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