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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46화 (46/207)

#046. 한바탕 엎어놓아야겠습니다

“제가 시간을 제대로 맞췄군요.”

머리 위쪽에서 들려온 말에 무영투는 깜짝 놀랐다.

비늘들이 몽땅 사라진 이무기의 사체를 둘러보고 있는데 바람소리와 함께 난데없는 놈이 나타나니 귀신이라도 본 듯 깜짝 놀랄 수밖에.

“누, 누구냐!”

“비늘들은 제가 다 가져가서 없을 겁니다.”

“저 이무기를 잡은 게 너라고?”

“맞습니다.”

“내단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저 정자 안에는 뭐가 있었느냐!”

무영투가 물으며 공력을 일으켰다.

강한 자 앞에선 없는 사람처럼 굴고, 약한 자에겐 강자 행세를 하는 무영투다웠다.

화운은 피식 웃으며 검을 뽑았다.

내력을 끌어올리던 무영투가 두 눈을 있는 대로 치떴다.

화운이 뽑아든 검 끝에 선명하게 맺힌 건 틀림없는 검환이었다.

“도, 도도대체! 누구냐 넌?”

“화운이고요. 대화 좀 하죠.”

“무슨 대화?”

화운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무영투.

그는 곧 퍼뜩 생각난 것이 있었다.

“너였구나! 비동을 무너트리고 혼자 들어간 놈이!”

“아닌데요!”

“거짓말! 너다! 틀림없이 너였어!”

“그럼 저였나 보죠.”

“이, 이익!”

무영투는 분했다.

하지만 검환의 경지에 올라선 고수를 상대할 재간이 없는 그로서는 그저 분함을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무영투 영감님, 우린 한 식구입니다.”

“억?”

화운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자 깜짝 놀라는 무영투.

그러나 놀랄 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영감님, 공공무영비의 연원에 대해서 아십니까?”

“……?”

“아무래도 모르는 모양이군요. 공공무영비는 공공문의 성명절학입니다. 그리고 제가 공공문의 당대문주이구요.”

거짓말이다.

화운이 그럴싸하게 만든 이야기다.

“어? 아닌데…… 내가 공공문의 팔대문주인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뭐야, 공공문이라는 곳이 진짜 있었다고? 혹시 있다면 무영문일 것 같아 공공문이라고 한건데……!’

화운은 시치미를 뚝 뗐다.

“알고 있습니다. 삼대 공공문주께서 마도의 땅으로 가셨다가 횡액을 당하셨습니다. 그분께선 죽기 직전에 공공문의 맥을 이어달라며 공공무영비를 남기셨는데 그걸 제가 이었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무영투 영감님이 존재하는 걸 보고는 공공문의 문도 중 누군가가 맥을 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후 화운이 공공무영비를 펼쳤다.

무영투는 설마 했던 것이 사실로 보이자 크게 놀랐다.

미심쩍은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공공무영비를 완벽하게 펼치고 있거늘 어찌 믿지 않을까.

“제가 공공문주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토록 훌륭하게 맥이 이어져 오고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게다가 전 따로 하고 싶은 것도 있고요.”

무영투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살짝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든 의문.

“그래서 내게 바라는 건 뭔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양해를 구한 화운은 머리를 쳐들고 외쳤다.

“내려와라!”

“너무 높아요!”

한참 위에서 남궁현의 음성이 들렸다.

“받아줄 테니까 염려 말고 뛰어내려!”

화운이 외친 순간이었다.

위쪽에서 육중한 무언가가 뚝 떨어졌다.

선우유성이다.

화운이 염려 말라고 하자마자 그가 먼저 몸을 날린 것이다.

화-악!

선우유성의 눈에 바닥이 눈앞으로 다가온 순간 아래쪽에서 돌풍이 일어나 그의 몸을 밀어 올렸다.

화운이 경풍을 일으킨 것이다.

“난 괜찮아!”

선우유성이 외치자 또 한 사람이 내려왔다.

남궁현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백리연이 내려왔다.

“인사들 해. 여기 계긴 분은 무영투 영감님. 나완 엄청 가까운 분이셔.”

“선우세가의 선우유성이 인사드립니다.”

“남궁검가의 남궁현입니다.”

“백리세가의 백리연이에요.”

무영투는 남궁현과 백리연의 신분에 깜짝 놀라 화운을 돌아봤다.

“다시 인사드리죠. 전 정도무림연합맹의 신풍대 대주 화운입니다. 그리고 여기 세 사람은 신풍대 대원들입니다.”

무영투는 어안이 벙벙했다.

정도무림연합맹을 처음 들어봐서다.

화운은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설마 모르고 계셨습니까? 천사련이 백리세가와 황보세가를 급습하여 정파에서는 맹을 만들었습니다.”

제천마존의 비동으로 들어갈 또 다른 출구를 찾느라 이곳을 떠나지 않았던 무영투로선 금시초문인 일이었다.

“여튼 제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여기만큼 은밀한 곳이 없어서인데 영감님을 만나게 되다니 정말 하늘의 도우심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날 만난 게 하늘의 도우심이라니?”

무영투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말을 꺼낸 화운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돌로 지어진 정자의 난간에 올렸다.

“이건 공청석유고, 이건 인형설삼 그리고 이건 저 삼두독각망의 내단입니다.”

“으엑?”

“혀엉?”

“……!”

남궁현과 선우유성 그리고 백리연의 눈이 퉁방울처럼 커졌다.

무영투의 얼굴엔 놀람과 탐욕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것들을 저 세 사람에게 나눠 복용시킬 생각이었는데, 공공문하면 배포 아닙니까. 그래서 이것들은 제일 약한 유성이한테 복용시키고 나머지 두 사람에겐 대환단을 복용시킬까 합니다.”

화운의 말을 듣고 있던 무영투가 불에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났다.

극도로 경계심을 발휘하는 무영투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무영투에게서 무언가를 강탈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화운이 대환단 두 알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

천하제일공방 천병가.

화운은 신풍대 세 사람과 무영투를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한데 선우유성과 남궁현 그리고 백리연이 달라져 보였다.

영약들을 복용해서다.

남궁현과 백리연은 자신감이 넘쳐보였고, 선우유성은 외양마저 크게 변했다.

원래는 덩치 큰 곱상한 외모였는데, 얼굴과 몸에서 불필요한 살이 빠져 탄탄한 체구의 건장한 사내로 변해 있었다.

환골탈태를 한 것이다.

“아! 오셨는가. 주문한 것들은 완성되었네.”

천병가주가 반갑게 맞아주며 직접 안내했다.

신풍대 세 사람과 무영투는 그저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따라갔다.

잠시 후 천병가주가 안내한 곳은 병기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것들이네.”

커다란 탁자 위에 네 자루의 검과 보호갑 세 개 그리고 방패 세 개가 놓여있었다.

하나같이 동일한 재질의 금속으로 만든 것인지 거무튀튀한 묵빛이었는데 검푸른 빛으로 그럴싸한 무늬를 음각해 놓아 제법 멋들어졌다.

“이게 다 뭡니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남궁현이 잽싸게 다가가 살펴보며 물었다.

“우리 신풍대 무기다.”

화운이 대답했다.

이전의 삶에서 세 사람에게 맞는 크기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삼두독각망의 비늘들을 사전에 가져와 맡기면서 무기들도 제작을 의뢰해 두었다.

다만 팔뚝에 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방패만이 이번에 추가로 제작되었다.

방패는 사람 머리 두 개를 합친 것 정도의 크기라서 착용해도 크게 불편할 일은 없었다.

“뭐해, 다들 하나씩 챙기지 않고.”

화운의 말에 세 사람은 들뜬 마음으로 하나씩 살펴본 후 각자에게 맞는 것들을 하나씩 챙겼다.

화운도 자신이 특별히 주문한 검을 집어 들었다.

검신 즉 검날의 길이만 사 척(1.3m)에 달하는 장검이었다.

화운은 검을 뽑아 허공에 한번 휘둘러보았다.

약간 묵직한 느낌이라 아주 맘에 들었다.

“기대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천하제일 공방이라는 명성답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네.”

화운이 만족감을 표시하자 천병가주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삼두독각망 비늘로 만든 것이라 검기 정도의 내력만 주입해도 어지간한 강기는 거뜬히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갑주들도 착용하도록 해. 백리소저는 따로 탈의실이 필요하겠군요.”

화운이 돌아보자 천병가주가 나섰다.

“날 따라오시오.”

“네.”

백리연이 밖으로 나가자 남궁현이 그 자리에서 상의를 훌러덩 벗어던지며 갑주를 착용했다.

그러자 선우유성 역시 재빨리 옷을 벗었다.

갑주라고 해서 크고 무거운 게 아니었다.

상반신의 전면만 간신히 가릴 정도라 몸을 움직이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다.

“와우! 이거 진짜 좋은데요. 상대가 더 강해서 위험하다 싶을 땐 그냥 몸을 내주고 급소를 노릴 수도 있겠는데요.”

남궁현의 말이다.

“그러라고 만든 거다.”

남궁현과 선우유성이 갑주를 착용한 모습을 지켜보며 화운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남궁현과 선우유성이 갑주위로 옷을 입고 나자 백리연이 돌아왔다.

그녀 역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상의 안에 갑주를 착용했는데도 표시가 나지 않았다.

“불편한 데는 없습니까?”

화운이 물었다.

“예.”

백리연이 대답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갑주가 여인의 것이라 가슴 쪽의 모양이 조금 달랐다. 그런데 백리연이 불편하지 않도록 가슴에 꼭 맞았다. 마치 가슴의 크기를 미리 살펴보고 만든 것처럼.

그래서 살짝 부끄러운 생각이 든 것이다.

화운은 그 같은 상황을 눈치챘으나 모른 척하며 천병가주에게 말했다.

“나머지 비늘들은 여기 계신 무영투 영감님께 일임했으니 이 병기들을 제작한 비용이랑 다 영감님께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겠네.”

천병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운은 무영투를 돌아봤다.

“이제 저희 신풍대가 제몫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이게 다 영감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무영투는 떨떠름한 기분이 아직 남아 있었으나 화운이 약속대로 비늘들을 넘겨주자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만 끄덕였다.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시다 신풍대가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는 말이 들리면 그때부턴 맹으로 당당히 찾아오십시오. 소림사가 귀찮게 굴면 제가 막아드리겠습니다.”

십여 년 전에 소림사의 대환단을 누가 훔쳐갔는지에 대한 증거도 단서도 없다.

하지만 소림사에 몰래 들어가 대환단을 훔칠 만한 솜씨 좋은 도둑은 천하에 무영투가 유일했다.

게다가 그가 평소에 한 말이 있어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

-소림사의 대환단과 사천당문의 극독 중 어느 것이 더 대단할까?

한때 소림과 당문이 동시에 무영투를 쫓았던 이유다.

“정말 막아줄 수 있단 말이냐?”

“말씀드렸다시피 지금은 안 됩니다. 하지만 제가 공을 세우고 나면 달라집니다. 신풍대가 맹주님 직속이라 영감님을 신풍대의 고문이라고 하면 소림사라 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겁니다.”

“알겠다.”

무영투는 진짜 정도무림연합맹으로 가볼 생각이다.

정사대전이 발발했으니 재밌는 일이 많이 벌어질 것 같고, 맹주 직속인 데다 나이에 맞지 않게 무지막지하게 강한 화운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리고 땡중들이 지랄하면 도망치지 뭐.’

무영투가 고개를 끄덕일 때다.

화운은 신풍대 세 사람을 돌아봤다.

“이제 가볼까?”

“옛! 준비됐습니다!”

“좋습니다.”

“네.”

화운은 힘차게 대답하는 세 사람과 함께 천병가를 떠나 정파무림연합맹으로 향했다.

첫 번째 임무를 부여받기 위해서였다.

***

정파무림연맹 맹주부.

열흘의 기한이 다 되어 갈 때쯤 화운이 찾아왔다.

이유가 있어 날짜를 이전과 정확히 맞춘 것이다.

“그래, 대원들을 전부 모집했다고?”

“예.”

“누군가?”

“백리세가의 백봉, 남궁검가의 남궁현 그리고 선우세가의 선우유성입니다.”

“흠. 좀 모자라지 않을까?”

“충분합니다. 거기에 고문으로 한 분 더 모셨으니 더는 필요치 않습니다.”

“고문? 누굴 말인가?”

“첫 번째 임무를 완수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두 단계는 더 강한 자네이니 믿어보지.”

“첫 임무는 어찌 되었습니까?”

“장강수로십팔채라고 아나?”

조극산은 장강수로십팔채의 선단이 당분간은 남하하지 못하도록 선박들을 최대한 많이 부숴버리라고 명했다.

“알겠습니다. 기대하시는 성과를 올려드리겠습니다.”

화운이 포권한 후 물러났다.

그런데 저만큼 가다 돌아서서 뜬금없이 물었다.

“맹주님.”

“말하게.”

“지금 장강수로십팔채에 대해서는 맹이 확실히 살피고 있겠지요?”

“그렇네. 장강수로십팔채의 선단이 집결하고 있다는 것도 맹의 정보부인 비천각이 주시하고 있었기에 보고된 것이네.”

“그런데 말입니다. 만일 신풍대가 갔을 때 장강수로십팔채의 선단에 예기치 않은 고수가 있으면 어떻게 된 걸까요? 예를 들어 사천당문의 독왕 같은 엄청난 고수 말입니다.”

“……무슨 뜻인가?”

“그런 고수가 있다는 걸 비천각이 여태 모르고 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보고 하지 않은 것이라면 누군가가 신풍대가 죽든지 말든지 맹주님을 물 먹이겠다는 수작이겠지요?”

“흐음…… 뭔가 아는 바가 있는가?”

“제 정보통에 의하면 당문이 합류했습니다.”

“독왕까지 말인가?”

“정확히는 사천독왕이 목격되었답니다. 그것도 보란 듯이 모습을 보이더랍니다.”

조극산이 침묵했다.

사천당문이 천사련에 붙은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맹의 분열이다.

권력다툼이야 있을 것으로 짐작했지만, 벌써부터 이 정도라면 정말 좋지 않다.

침묵 끝에 조극산이 화운을 응시했다.

“그래, 하고 싶은 것이 무어냐?”

맹주 조극산이 신풍대주 화운에게 처음으로 말을 놓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분노했다는 뜻이고, 그만큼 가까이 하겠다는 뜻이다.

“임무를 나서기 전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바탕 엎어놓아야겠습니다.”

화운이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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