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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57화 (57/207)

#057. 그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검멸의 검환이 혈존 등을 향해 무더기로 날아갔다.

혈존은 물론이고 북궁무결을 비롯한 세 사람도 깜짝 놀라 화운이 날린 검환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화운의 검멸은 일반적인 검환보다 월등이 더 강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혈존조차 십여 개가 연달아 날아오자 힘에 부쳤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무상의 기운이 흐르니!”

화운이 중얼거리며 검을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순간 대지의 기운이 벼락처럼 솟구쳐 검멸을 간신히 막아낸 혈존과 북궁무결을 비롯한 세 사람까지 한꺼번에 사선으로 그었다.

꽈앙!

혈존이 혈천멸살강기를 발휘하여 간신히 막았지만, 그의 신형이 크게 휘청였다.

북궁무결을 비롯한 세 사람은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피를 쏟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허공으로 솟구쳤던 화운의 검이 지상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자 천지간의 기운이 거대한 파괴력으로 뭉쳐 혈존과 북궁무결 등의 머리 위를 직격했다.

“크음!”

혈존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순간 바람처럼 들이닥친 화운의 검이 그의 목을 잘라 버렸다.

이후 화운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북궁무결을 내려다보았다.

“적이지만 그래도 나름 줏대는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겉만 번지르르했지 완전 박쥐같은 놈이었구나! 혼자 잘난 체는 다 하다 안 되겠다 싶으니까 사황의 개나 되고 말이야. 쯧쯧쯧!”

화운은 신랄하게 비웃어주었다.

“사황은······ 인간의 범주를······.”

“그래서 뭐. 만만한 인간한테는 잘난 체를 하고, 반신 같은 무위를 지닌 자들한테는 살살 기어도 된다는 거냐? 너 스스로도 참 낯부끄러운 핑계라는 건 알지? 그것도 모른다면 네 안에 개새끼의 본능이 숨어 있는 거다.”

“난······!”

또다시 변명하려는 북궁무결의 목을 가차 없이 베어버린 화운은 신음하는 사도강과 환사의 목도 베어버렸다.

그리고 무영투를 향해 돌아갔다.

“너······ 너 진짜 강하구나! 오 년 동안 더 강해졌구나!”

“그러니까 사황을 상대하겠다고 영감님을 찾아왔죠. 뭐, 결국은 괜히 구한 셈이 되었지만.”

“니미랄 개잡놈아! 같은 공공문이라며? 네놈 입으로 그래놓고 그따위 소릴 지껄여?”

“죄송합니다. 그냥 허탈하다는 뜻이니 그렇게 역정 내지 마십시오.”

화운은 자신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사과를 했다.

“니미럴 놈아! 내가 누구냐? 무영투다, 무영투! 천하가 좁다고 싸돌아다닌 무영투님이란 말이다! 너 오 년 동안 수련만 했지? 그래도 방법을 못 찾았지? 그치만 이 어르신한테는 방법이 있다. 있어!”

“방법이 있다고요?”

성질을 터트리는 무영투의 말에 화운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 니미럴 놈아!”

“아깐 방법이 없다고 했잖아요!”

“네놈이 경신술만 물었잖아! 그리고 강해진 네놈을 보니까 지금 막 생각이 났다.”

“그게 뭡니까?”

“아이고! 삭신이야!”

무영투는 대답대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일단 가시죠. 객잔에라도 가서 간만에 목 좀 축이고 마저 이야기 하죠.”

화운이 무영투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개봉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산.

화운은 큰 객잔을 찾아가 제법 알려진 명주 한 병을 구입한 후 무영투 등을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사방팔방에 사황천의 눈들이 깔려 있을 것이기에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아온 것이다.

“목 좀 축이셨으면 이제 말씀 좀 해 보십시오.”

엉덩이를 깔고 앉아 개봉 일대를 내려다보며 술병을 들이키던 무영투가 술병을 뒤로 휙 던져 버렸다.

“쳐다보기 목 아프다. 앉아봐라.”

화운이 곁으로 앉았다.

백리연을 비롯한 세 사람은 두 사람 바로 뒤에 앉았다.

“절대지경의 고수를 상대하려면 같은 절대경의 고수이어야 하지. 절대지경 아래라는 초월의 고수 수십 명이 있다면 모를까, 한두 명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거다. 너 초월의 경지 맞지?”

“예. 그 정도일 겁니다.”

“절정, 극강, 초월, 절대. 혈존을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니 넌 극강과 초월 사이의 어디쯤일 거다. 아니면 초월의 경지에 막 올라섰거나.”

“사황은 절대의 영역이겠지요?”

“흠······ 잘 아네. 그런데도 사황을 치겠다는 거냐?”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참 피곤한 운명도 다 있다.”

“제 운명이니까 염려 놓으시고요. 사황을 상대할 방법이나 알려주십시오.”

화운이 보채자 무영투가 힐끔 쳐다보았다.

“지금 승질 낸 거냐?”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승질 낸 것 같은데?”

“그런 거 아니니까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승질 내지 마라. 콱 입을 다물어버리는 수가 있다.”

“승질 난 거 맞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승질이 나기 시작하고 있으니까, 쫌! 더 답답하게 만들지 마시고요. 쫌 빨리요!”

“니미랄 승질머리 하고는! 사황 같은 절대경의 고수를 잡으려면 같은 절대경의 고수이어야 한다. 너도 알지? 근데 말이야 절대경의 힘을 상대하는 데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같은 말 같은데 미묘하게 다른 뜻이다.

화운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뭡니까?”

“기관진식. 정확히는 진법이다.”

“······!”

진법.

막대기 몇 개로 풍운조화를 일으키고, 기관과 결합하여 죽음의 기문진을 만들고, 한 번 빠지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진을 만드는 등 무학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천지간의 기운을 이용하는 것이 바로 진법이다.

화운은 머릿속에 불이 번쩍할 정도로 관심이 생겼다.

“자세히 말해보십시오.”

“나보단 무불통(無不通) 사마공에게 직접 듣는 게 나을 거다.”

“무불통?”

“그래, 천하에 모르는 게 없다는 무불통 사마공. 그가 말하길, 인간의 무공에 절대는 없다고 했다더라. 초월의 고수만 있다면 절대경의 고수라 하더라도 잡을 진법이 있다나.”

“그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화운의 물음에 무영투가 고개를 돌려 멀리 북서쪽을 응시했다.

“······!”

***

화운은 생각했다.

자신의 힘으로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사황과 직면하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사황을 쓰러트리거나 사황에게서 살아남을 힘이 필요한 것이지 지금은 존재하고 그때는 사라져 버릴 힘이라면 소용없다.

시간과 장소의 한계가 있는 힘은 무용지물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백날 사황을 죽여 봤자 자신이 시간을 되돌려 버리면 사황 역시 다시 살아날 테니까.

‘그래도······ 그래도 한 번 죽여 보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약점이라든가······.’

화운은 사황을 죽일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

사황은 제천마존처럼 경천보패의 신력을 막아낸 자다. 시간의 반복에서 벗어난 자다.

그런 자가 죽은 후에 시간을 되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제천마존은 죽은 후에, 정확히는 혼백마저 소멸된 후에는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혹시 사황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그야말로 만사형통이다.

더는 바랄 게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가 다시 살아난다면 말이다.

그와 다시 직면하게 되면 필시 죽을 것이고, 경천보패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예측만으로 사황과 싸우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그렇다고 오십 년, 백 년 동안 사황을 피해 다닐 수도 없다.

아니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힘들게, 미치도록 힘든 과정을 반복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과실을 따먹어야 할 때인데 또다시 그 같은 힘든 여정을 반복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해서 사황을 넘어서고 난 후에 더 강할지도 모를 천마가 나타나면 또 그 같은 여정을 반복할 것인가?

싫다. 이젠 더는 싫다.

부딪쳐야 한다면 부딪칠 것이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 그 과정에서 찾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부딪치는 건 무모하다.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일 수 있다면 높이고 부딪치는 게 현명한 것이다.

“무불통을 만나야겠어.”

화운이 자신의 결정을 말했다.

그러자 남궁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검이 뽑기 편한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고 손목에 찬 방패는 더 단단히 부착했다.

그 모습에 선우유성과 백리연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현을 따라했다.

싸울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만.”

화운이 세 사람의 행동을 제지했다.

세 사람이 쳐다보자 화운은 한참 운기조식 중인 무영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 사람은 여기 영감님을 보살피면서 기다리도록 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늦는다고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계속 기다려.”

“아뇨, 함께 가겠어요.”

“나도.”

“형, 기다리는 건 싫어.”

세 사람이 반대했다.

화운은 세 사람을 슥 쳐다봤다.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럴 순 없다. 함께 가기엔 너무 위험한 여정일 공산이 크다.

잠시 세 사람을 설득할 말을 고민한 화운은 먼저 백리연을 향해 말했다.

“그 어떤 시비가 붙어도 고개만 숙이고 있어야 하는데, 백리소저, 음흉한 놈들이 치근덕거려도 그럴 수 있습니까?”

“참으라면 참을게요.”

“참을 겁니다.”

“형, 나도 참을게.”

세 사람이 같은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화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못 참습니다. 그런 놈들이 있으면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머리통을 부숴 버릴 겁니다.”

“저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아뇨! 그래야 합니다. 백리 소저가 희롱을 당하는데 어찌 참고만 있습니까! 그건 사내새끼가 아닙니다.”

“······!”

“너희들도 참지 마. 백리소저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박살을 내버려야 하는 거야.”

“모조리 목을 쳐버리겠습니다.”

“그럼 주둥이는 내가 찢을 게.”

“그래,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사내고 무인이다.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지겠지만, 뭐 어떠냐, 다 날려 버리지 뭐. 오는 족족 모조리, 전부 다!”

“······!”

“······?”

뭔가 이상한 것 같아 남궁현과 선우유성이 멀뚱히 쳐다본 순간 백리연이 말했다.

“저희가 짐이로군요.”

“짐이라고 생각했다면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냥 혼자 편하게 다니지 짐은 왜 찾습니까?”

“······.”

“나에게 세 사람은 늘 보고 싶고, 함께 지내고 싶은 가족 같은 존재입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죽고 그런 전우가 아니라 보호해 주고 지켜주고 싶은 존재, 돌아가면 언제나 반겨주는 존재. 힘들 땐 얼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존재입니다. 세 사람이 이곳에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 않는 한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화운의 말이 세 사람의 마음을 주저앉혀 놓았다.

“젠장!”

남궁현이 검을 뽑아 땅에 꽂아버리며 털썩 앉았다.

화가 난 것이다.

화운이 어떻게 생각을 하든지 결국은 짐밖에 안 된다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형, 난 형이 하는 말이라면 다 믿어. 하지만 검성께서 시간을 되돌리는 이능을 심었다는 말은 믿지 않아. 설사 그렇다고 해도 관심도 없고. 시간을 되돌린 나와 지금의 난 다를 테니까. 지금의 난 그저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거든. 하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야. 내 능력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 그러니까······ 형이 해줘. 여기서 기다려 줄 테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서 돌아와. 그리고 사황을 죽여줘.”

선우유성이 화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화운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선우유성이 도로 땅바닥에 앉자 화운은 백리연을 돌아봤다.

백리연은 쉽사리 말을 못하고 화운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았다.

“백리 소저······.”

“제가,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백리연은 그 말을 끝으로 주저앉았다.

화운은 백리연을 한동안 내려다보다 선우유성과 남궁현을 차례로 돌아봤다.

세 사람이 떠안고 있을 좌절과 복수심이 얼마나 큰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 가슴의 한을 풀어주고자 사지일 수도 있는 곳으로 세 사람을 데리고 갈 순 없었다.

“잊지 않을 겁니다. 우린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화운의 말에 백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오 년 동안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또다시 그런 기다림을 가져야 하겠지만, 이젠 웃으며 기다릴 수 있다.

‘잊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까.’

남궁현은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으로 화가 나지만 쫓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보여줬고, 선우유성은 화운을 쳐다보며 짧게 말했다.

“다녀와.”

“그래, 다녀올게.”

그렇게 화운은 혼자 떠나게 되었다.

무불통이 사라졌다는 마인들의 땅으로.

***

화운을 놓쳤던 기암괴봉.

사황은 그곳에 있었다.

뒷짐을 진 채 북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신에 흐르는 기도는 그저 서 있을 뿐임에도 절대지세 그 자체였다.

대기마저 범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하라!”

어느 순간 위엄서린 일갈을 내뿜는 사황.

언제 나타났는지 그의 뒤로 잿빛의 존재가 시립하고 있었다.

구혼사존(九魂邪尊)!

일백여 년 전, 사황혈천의 혈겁을 일으킬 때 사황에게는 두 명의 심복이 있었다.

혈사(血邪)와 사혼(邪魂).

혈존과 구혼사존은 바로 그들의 후예였다.

“그 아이가 북서쪽으로 출발했습니다.”

“해볼 수 있는 건 그것이 마지막이겠지.”

“사황이시여! 송구합니다. 그 아이를 절벽으로 내몰아 놓으시고 그저 지켜보시는 연유가 궁금하여 감히 여쭙니다.”

“궁금하구나. 검성마저 삼켜 버린 신물(神物)이 또 무엇을 삼켜 버리는지. 혹여 마(魔)로서 하늘에 닿고자 했던 그까지 삼켜 버리는 건 아닌지, 심히 궁금하다.”

사황의 말이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구혼사존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지존께선 그마저 안중에 두지 않으시는구나!’

구혼사존이 경외심을 내보일 때다.

“가라. 가서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지 알아보아라.”

“존명.”

구혼사존이 사라졌다.

나타났을 때처럼 인기척 하나 남기지 않았다.

“검성이 사라졌으니, 이제 그대뿐이군.”

북서쪽의 누군가를 향해 말하는 사황.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무당의 가르침은 결국 영육(靈肉)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검성이 시간의 뒤틀림을 버티지 못한 건 결국 그 때문일 것이오. 그런데 그대는 어떻소? 무던히도 탈마의 경지를 좇았잖소. 탈마지경(脫魔之竟). 말이 좋아 탈마지 결국은 마(魔)를 버리고 도가의 조화를 좇는 것이잖소. 그래서 궁금하오. 그대는 탈마경에 들었는지.”

사황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타오르듯 붉은 황혼.

사황이 바라보는 북서쪽은 완전한 서녘이 아님에도 그렇게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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