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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64화 (64/207)

#064. 넌 뭘 보여줄 거냐

천종천마교 강시당.

강시당은 지상 삼층 지하 오층으로 만들어진 상당한 규모의 전각이었다.

고루마군은 화운을 지하로 데려갔다.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지하 일층에 기다란 통로가 나왔고, 그 끝에 커다란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나선형의 계단은 지하로 계속 내려가게 만들어져 있었으나 고루마군은 철문이 활짝 열려 있는 곳으로 화운을 데리고 갔다.

기다란 통로를 지나고 활짝 열려 있는 철문을 넘어서자 널찍한 대전이 나왔다.

양쪽으로 육중한 세 개씩의 무쇠기둥이 전각을 받치고 있어 제법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화운은 철문 앞에 서서는 대전 안에 가득한 무리들을 쓱 훑어봤다.

철립을 깊이 눌러쓴 자들 수십 명이 대전을 따라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흉측한 기운이 느껴지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대전 안쪽에는 십여 명이 각기 편한 자세로 있었는데, 모두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역시 흑지 때문이 아니야. 다른 이유가 있어.’

화운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누가 자신을 이리로 불렀는지도.

“사람을 불렀으면 얼굴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화운이 내력을 실어 온 대전이 울리도록 말한 순간 안쪽에서 새하얀 천으로 만들어진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대전 안쪽에 위치한 커다란 의자로 가서 앉았다.

화운은 그녀가 자신을 이리로 오게끔 부른 당사자라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이고, 정체가 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잠자코 기다렸다.

여인은 화운을 똑바로 바라봤다.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어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대전을 쩌렁 울리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감히 본녀의 몸에 손을 대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여인의 말에 화운은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몸에 손을 대? 내가? 여인이랑은 손도 잡아본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오. 난 그쪽을 만난 적도 없고, 손을 대고 어쩌고 한 일은 더더욱 없소.”

화운은 차분히 말했다.

“닥쳐라! 니놈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거늘! 당주님! 저놈의 사진근맥을 잘라 본녀 발아래 엎드리도록 만들어 주세요!”

면사녀가 소리쳤다.

살의가 넘치고 있다.

화운이 오해인 것 같다고 다시 말하려는 순간 고루마군의 쌍장이 급작스럽게 날아왔다.

펏!

충분히 빨랐고,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화운이 더 빨라 장력이 닿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그쪽을 처음 본다. 잘 생각해 봐라.”

고루마군에게서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화운이 단호한 투로 말했다.

“당주님! 뭐하세요! 저놈 사지근맥을 잘라버리고 이리 끌고 오지 않고요!”

강시당주가 다시 공격하기도 전에 화운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쿠그그그그긍!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잡아!”

여인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하지만 화운은 밖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쿵!

철문을 완전히 닫은 다음 빗장까지 걸어버린 후 대전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대전 건너편의 면사 여인을 응시하며 검을 뽑았다.

“보아하니, 피를 보기 전에는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못 있겠다.”

화운의 모습은 당당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누가 봐도 잘못을 저질렀거나 위기에 처한 태도가 아니었다.

그 태도가 면사녀로 하여금 더욱 화가 나게 만들었다.

“주둥이부터 찢어버리세요!”

면사녀가 앙칼지게 소리치자 고루마군이 신형을 날리며 쌍장을 연거푸 뿌렸다.

하지만 화운이 파리 쫓듯 대충 휘두른 검에 장력이 간단히 소멸했다.

화운의 강함에 깜짝 놀란 고루마군은 저만큼 물러나서 새하얀 뼈로 만든 골적(骨笛 피리)을 꺼내 불었다.

머릿속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음파에 화운이 인상을 쓴 순간 철립을 눌러쓴 자들 중 핏빛의 무복을 입은 이십여 명이 화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운은 그들이 내뿜는 혼탁한 기세가 거슬렸다.

하여 그들이 코앞으로 달려들자 목부터 쳐버렸다.

쩌엉!

날카로운 쇳소리가 터졌다.

놀랍게도 묵검에 맞고도 목이 멀쩡했다.

“흥! 네놈을 괜히 이곳으로 부른 줄 아느냐!”

면사녀가 코웃음 쳤다.

핏빛의 무복을 입은 이십여 명이 화운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번쩍! 번-쩍!

새파란 섬광이 순간의 간극을 가르고 찬란하게 피어올랐다.

투둑! 데구르르! 털썩! 털썩!

이십여 개의 머리통과 그에 딱 맞는 숫자의 몸통이 따로 분리되어 나뒹굴었다.

화운은 자신이 베어버린 자들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시커먼 피를 쏟아냈다.

‘강시당이라고 하더니 강시였던 건가?’

화운이 이맛살을 찌푸린 순간 고루마군이 다시 골적을 불었다.

그러자 철립을 쓴 나머지 십여 명이 화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운이 베어버린 혈의인들과 달리 시커먼 흑의를 입고 있었는데, 다른 건 비단 복장만이 아니었다.

흑의인들이 빨랫줄처럼 쏘아져왔다.

혈의인들보다 배는 더 빨랐다.

화운은 강기를 발휘한 채 다시 사혼구검을 펼쳤다.

쩌엉! 쩡! 쩌엉!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지며 흑의인들이 모조리 날아가 혈의인들이 무참히 죽어나간 바닥 위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옷자락만 터져나갔을 뿐, 피 한 방울 터트리지 않고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금 쏘아져왔다.

“흥! 혈라강시를 죽였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검강 따위로는 금강마인을 결코 죽일 수 없으니까! 마경조차 쩔쩔 매는 니놈을 죽이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다!”

면사녀가 통쾌하다는 듯 외친 순간.

콰앙!

화운이 다시 달려드는 흑의인들을 향해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달려드는 족족 흑의인들의 육신이 터져버렸다.

“무슨······!”

면사녀는 물론이고 고루마군도 당황하여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처음 혈라강시들이 당할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혈라강시들은 강기를 발휘하지 못하는 자들을 죽일 때나 쓸모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혈라강시를 동원한 건 놈의 무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금강마인조차 같은 꼴을 당하고 말았다.

고루마군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화운을 살펴봤다.

새파란 기운이 넘실거리는 검이 보였다.

“검강! 금강마인은 검강으로 죽일 수 없는데······!”

고루마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보통의 검환은 검끝에 구체 모양의 강환을 형성한다.

화운처럼 자신만의 검환으로 발전시켜 고리 모양의 강환을 검신에 잔뜩 일으켜 언뜻 보기에 검강처럼 보이게 하진 않는다.

다시 말해, 지금 화운이 발휘한 건 검강이 아니라 검환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검환보다 훨씬 더 강한 검멸을 펼친 것이다.

“너! 뭐하는 년인지는 몰라도 거기서 딱 기다려라! 금방 그리로 갈 테니까!”

성난 화운이 검을 치켜든 채 다가갔다.

“죽여! 뭐하는 거야! 저놈 죽여 버리지 않고!”

면사녀가 아득바득 소리쳤다.

그에 퍼뜩 정신을 차린 고루마군이 훌쩍 뒤로 물러났고, 그와 동시에 안쪽에 대기 중이던 십여 명이 화운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라락!

가장 먼저 쇠사슬이 허공을 때렸다.

광마종의 혈쇄가 쇠사슬을 휘두른 것이다.

그는 광마종의 대형인 광마가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할 정도로 화운이 고수라는 걸 알게 되자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금세 뜨겁게 타올랐다.

허공을 때리고 훑어버리는 쇠사슬의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대전 안의 공기가 웅웅거렸다.

꽈다다다다당!

쇠사슬은 요란한 굉음만 터트렸지 화운의 옷자락 하나 건들지 못했다.

화운이 강기의 막을 펼쳐 막은 것이었다.

화아아악!

돌연 쇠사슬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흡사 불길이 붙은 것처럼 보였다.

꽈과과과과광!

화운이 펼친 강기의 막은 견고했다.

금성철벽 같았다.

이때 혈접이 둥실 날아올랐다.

나풀거리듯 허공을 유영하는 그녀의 손에서 붉은 채대(요대, 허리띠)가 물결치듯 튀어나왔다.

따앙!

화운이 혈쇄의 붉은 쇠사슬을 막는 사이에 사각을 노린 것인데, 화운이 발휘한 강기의 막이 불쑥 커져 간단히 막아버렸다.

혈쇄의 쇠사슬은 요동치는 이무기처럼 사나운 공격을 퍼부 었고, 혈접의 채대는 흡사 살아 있는 독사처럼 끝부분을 꼿꼿이 세웠다가 불쑥 찔러대는 등 날카로운 공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화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두 사람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검조차 휘두르지 않았다.

스-앙!

검이 뽑히는 소리였다.

한 번 검을 뽑으면 피의 비를 뿌린다는 혈우가 가세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쓰-핫!

사령이 바람처럼 쇄도하다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는 화운의 머리 위에서 흑색의 장력을 폭포수처럼 발출했다.

바로 이때 화운이 검을 휘둘렀다.

사혼망.

사혼구검의 유일한 방어검초.

방어검초라 하여 방어만 하는 게 아니다.

사방팔방을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그리는 검적을 따라 새파란 강기가 사납게 너울거렸다.

강기라고 하여 다 같은 강기가 아니다.

콰과과과광!

혈쇄의 붉은 쇠사슬이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비산했고, 혈접의 채대는 갈가리 찢겨 버렸다.

혈우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저만큼 튕겨 버렸고, 화운의 머리 위에서 공격했던 사령은 가장 가까이서 상대한 대가를 치렀다.

상반신이 난도질당한 것도 모자라 오른팔의 신경과 근육이 가닥가닥 잘려 버려 축 늘어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광마종의 네 마인들의 합격이 워낙 파상적이라 불을 보듯 뻔한 결과가 예상되었었는데, 단 한 번의 검초로 모조리 끝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화운이 합격에 참여하지 않은 광마를 향해 돌아설 때였다.

“크크크큭!”

듣기 싫은 괴소가 들렸다.

화운이 다시 돌아보니 사령이 축 늘어진 자신의 오른팔을 왼손으로 붙잡아 단숨에 뽑아버렸다.

팔이 뽑혀나간 어깨에서 피가 튀었지만 지혈조차 않은 채 고개를 옆으로 눕히더니 화운을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혈쇄가 절반밖에 남지 않은 쇠사슬을 손으로 휘감은 다음 주먹을 움켜쥐었다.

화악!

지독한 불길 같은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일어났다.

두 눈에서조차 붉은 혈광이 번뜩이고 있어 신화 속의 축융이 강림한 것 같았다.

채대가 쓸모없게 된 혈접에게선 아홉 가닥의 피처럼 붉은 강기가 채대처럼 길게 튀어나왔다.

구혈미공의 발휘였다.

“끄음!”

갑자기 신음이 터졌다.

혈우의 피부가 스스로 쩍쩍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혈인!

피 웅덩이 속에서 기어 나온 혈인 같은 모습이 된 혈우는 쥐고 있던 검을 던져 버리더니 자신의 몸 속으로 손을 푹 찔러 넣었다. 그리고 뭔가를 끄집어냈다.

놀랍게도 핏물이 뭉친 것 같은 구슬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혈우가 손에 쥐고 공력을 일으키자 길쭉하게 늘어나 검의 형태가 되었다.

전륜파신혈전공의 원천이자 궁극이었다.

“멋지다! 멋져! 진짜 마귀들답다!”

화운이 비릿하게 말했다.

마인들의 진면목을 본 것 같아 이제는 맘껏 죽여도 될 것은 기분이 든 화운은 검을 더욱 힘껏 움켜쥐었다.

바로 이때.

아홉 가닥의 강기가 빛살처럼 뻗어왔다.

혈접의 구혈미공이었다.

화운은 사혼구검을 펼쳐 막았다.

이전의 채대와는 달리 손아귀가 찌르르 할 정도로 강맹한 힘이 느껴졌다.

“피떡을 만들어 주마!”

혈접의 공격을 막는 사이에 혈쇄가 달려들었다.

숨통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강렬한 열기와 함께 벌겋게 달아오른 권격을 뻗었다.

후아아아악!

그뿐이 아니다.

스스로 팔을 뽑아버린 사령이 죽음의 기운 같은 시커먼 기운을 뭉클뭉클 피워 올리며 다가왔고, 혈우는 십여 장의 간격을 일시에 없애버리는 굉장한 속도로 쏘아져왔다.

이때 화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번-쩍!

화운의 검이 섬전이 되었다.

검멸을 발휘한 채.

쾅!

가장 먼저 혈쇄의 권격이 박살이 났다.

이어서 혈접의 구혈미공이 모조리 터져 버렸고, 일직선으로 쏘아져 온 혈우는 전륜파신혈전공의 궁극을 발휘하고도 피를 쏟으며 날아갔다.

마지막으로 죽음 그 자체가 된 것처럼 다가온 사령은 천지간을 좌우로 갈라버린 일검에 우뚝 멈추었다.

쫘-악!

사령의 몸뚱이가 좌우로 쪼개진 순간 화운이 공공무영비를 펼쳤다.

퍽!

주먹이 박살이 나 버린 혈쇄의 머리통을 밟아 터트린 화운이 벼락같이 솟구쳐 혈접의 목을 그어버린 후 저 멀리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혈우를 향해 낙뢰가 되었다.

번쩍!

전륜파신혈전공이 뭐고 소용없었다.

압도적인 패력에 혈우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화운의 검이 혈우의 몸을 갈라버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전광처럼 들이닥친 이가 있었다.

쾅!

굉음이 터졌다.

그리고 화운이 천천히 돌아봤다.

“······!”

이제껏 싸움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구경만 하던 혈검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화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노려 급습한 것인데, 그 짧은 순간에 화운이 일으킨 강기의 막에 막혔다.

“잔인한 놈은 간사하기도 한 법이지.”

쾅!

화운이 강기의 막에 폭자결을 운용해 버리자 강기가 폭발하며 혈검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곧 강한 흡인력에 끌려 되돌아왔다.

화운이 발휘한 허공섭물에 붙잡힌 것이다.

“컥?”

혈검의 목을 틀어쥔 화운은 뒤로 강하게 던져 버렸다.

쿠-웅!

혈검은 철문에 처박혀 피떡이 되어 축 늘어졌다.

화운은 정면을 응시했다.

광마가 보였다.

화운은 천천히 다가갔다. 두 눈은 광마에게 꽂은 채.

“이제 네 차례다. 해봐. 넌 뭘 보여줄 거냐.”

꿈틀!

광마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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