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금강부동
신승 달마가 항마(降魔)와 파사(破邪)의 무학을 소림에 전한 이후 여섯 번째 제자들 시대에 이르러 소림 무학을 칠십이절예로 정리한 제자가 나오니, 후대는 육대조 혜능 혹은 육조 혜능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혜능은 천재였다.
하지만 그 뛰어난 머리로 인해 늘 괴로워했다.
무학을 정리했으니 불법에 매진하여 열반에 들어야 하거늘 머릿속에 꽉 찬 소림무학으로인해 번뇌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결국 혜능은 스스로 해탈하지 못하니, 달마께 방법을 묻겠다며 벽을 마주하고 앉아 면벽수련을 감행했다.
달마가 구 년 동안 면벽수련 했다는 바로 그 자리였다.
그렇게 면벽수련을 한 지 삼 년이 지나던 어느 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어렴풋한 상태일 때 달마가 혜능을 찾아왔다.
“무학이면 어떻고 불법이면 어떠하느냐! 모두가 항마의 길이거늘!”
그렇게 일갈한 달마는 혜능을 데리고 벽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혜능이 본 것은 자신의 전생이었다.
아수라왕이 천상도로 쳐들어가려고 수라도의 악귀들을 이끌고 나타났을 때 불문의 수호신인 금강신으로서 인간도에서 악귀들을 물리쳤다.
“어리석도다! 모든 집착에서 해탈하여 석가가 되려느냐! 하나를 버리고 부처께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게 윤회이거늘!”
달마의 일갈과 함께 정신을 차린 혜능은 큰 깨달음을 얻어 무학을 버려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난다.
뿐만 아니라 마주한 벽에 지공으로 자신의 마지막 유산을 남겨 놓는다.
금강부동(金剛不動)!
전생의 금강신이 악귀들을 물리치는 모습이었다.
“그 금강부동을 알고 있다는 겁니까?”
화운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긴 이야기를 꺼냈던 무영자는 잠시 호흡을 다스렸다.
그래도 긴 이야기를 했음에도 큰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몸이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무영자는 궁금하여 죽겠다는 화운의 표정을 보며 눈웃음을 살짝 지으며 말했다.
“마교의 조사라 칭해지는 첫 번째 천마는 육조 혜능에 대한 호승심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했다고 하네. 소림으로 쳐들어간 그는 소림의 금역에서 육조 혜능께서 남긴 금강부동이 새겨진 벽을 보게 되었지.”
“그래서요?”
“이것이 어찌 인간의 무학인가! 이건 천신들의 법력이다! 좋다! 그대가 천신의 법력을 가져왔으니 난 지옥 아수라의 마공을 가져와 그대와 겨루겠다!”
“천마가 그렇게 말했답니까?”
“그러네. 그리고는 금강부동이 새겨진 석벽을 통째로 뜯어가 버렸다고 하네.”
“저런 망할 놈 같으니!”
“여긴 마교네. 천마가 들으면 어쩌려고!”
무영자가 한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명옥이었고, 옥주와 옥지기들은 화운의 지시에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었기에 지금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자는 없었다.
“들으라죠, 뭐. 그 망할 인간 때문에 금강부동이 전해지지 않은 거였군요.”
“그렇지.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이기도 하고.”
“예?”
“난 소림에 빚이 있다네. 제자 놈을 위해서 소림의 무가지보인 대환단을 훔쳤거든.”
“예에? 대환단을 훔친 게 어르신이었다구요?”
무영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운이 무영투를 만났을 때로부터 십여 년 전이니까 지금의 시점에서는 십오 년 전의 일이었다.
이미 강호무림에서 은퇴했던 무영자는 제자인 무영투가 주화입마하여 전신불수가 되어버리는 날벼락 같은 상황과 마주한다.
은거를 깨고 나온 무영자는 천하에 이름 난 명의는 모조리 찾아가 보았으나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무영자는 다른 방도를 찾다가 소림의 대환단을 생각해내고 결국 훔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화운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라도 그리 했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게 있었다.
“몇 개나 훔쳤습니까?”
“······전부. 도둑놈은 남기는 법이 없거든.”
무영자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가 몇 개인데요? 무영투 영감님께 복용시킨 건 몇 개고요? 어르신께서도 복용하신 것 같던데 몇 개나 복용하셨습니까?”
“전부 열세 개였네. 제자놈한테 두 개를 복용시켰다네. 이곳으로 올 때 혹시나 싶어 한 개를 가져왔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제자놈의 상태는 어떻든가? 혹시 대환단을 무분별하게 복용하지는 않았던가?”
“탈태환골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대환단은 아무리 많이 복용해도 탈태환골하지는 않을 거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젊은 육체라면 또 모를까 당시의 제자놈처럼 늙은 육신으로는 어림도 없네.”
“아, 그러면 더 복용했는지는 알 수가 없겠군요.”
“더 복용해 봐야 도움이 안 될 것이니 낭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해두었네.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복용하지 않았겠지.”
“흠······.”
“말이 샜네. 금강부동 이야기를 마저 하지.”
“성공 못하셔서 이곳에 갇히신 거잖습니까.”
화운은 대충 대꾸하며 속으로는 대환단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무영투 영감님이 두 개, 여기 어르신이 한 개 그렇다면 열 개가 남잖아······!’
무영투가 더 이상 복용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대환단의 남은 숫자를 파악하고 있을 때였다.
“완전히 실패했다고 보긴 어렵지. 석벽을 보았고, 전부 외워버렸으니까.”
“외우셨으면 그렇겠네요······ 예에?”
화운이 화들짝 놀라 무영자를 쳐다봤다.
무영자가 히죽 웃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무영투가 가끔 보이던 얍삽한 웃음과 무척 닮아 있었다.
***
이틀 후.
꾸그그그긍!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명옥의 철문이 열렸다.
“마운, 면회다.”
북명사자의 말과 함께 한 사람이 명옥 안으로 들어섰다.
마경이었다.
“한 식경이오. 그 전에라도 나오고 싶으면 옥주에게 말하면 되오.”
북명사자는 철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마경은 명옥 안을 쓱 둘러봤다.
명옥주와 옥지기들이 엉거주춤 서서 쳐다보았다.
“그쪽이 옥주요?”
마경이 다가가며 물었다.
그러다 명옥주가 대답하기도 전에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 있었냐?”
화운은 쇠창살로 막힌 철창 안에 있었다.
마경은 쇠창살 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의 인기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화운이 눈을 떴다.
“그래, 날 빼낼 방법을 찾았냐?”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을 것 같더군.”
마경이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화운은 말없이 응시하다 물었다.
“그럼 왜 왔냐?”
“널 보려고 왔다.”
“내가 여기 갇힌 모습을 보면서 희열이라도 느끼게?”
“그 비슷해. 내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이 필요했거든.”
“무슨 선택을 했다는 거냐?”
“난 말이야······ 맹수로 남고 싶었다. 굶어죽을지언정 사냥개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널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그 대단한 무공을 가지고도 결국엔 개만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잖아.”
마경이 쇠창살을 두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이빨, 발톱 다 뽑히고, 거기 그렇게 손바닥만 한 공간에 갇힌 맹수보다는 이렇게 자유로운 사냥개가 더 나은 거 아닌가? 어떠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
마경이 물었다.
화운은 물끄러미 응시하다 가부좌를 풀고 일어났다.
순간 마경이 움찔 하며 쇠창살을 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마경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었다.
마경은 수치심이 들었으나 다가가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화운을 보자마자 기도부터 살펴보았는데, 분명 내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는 게 꺼려졌다.
그러던 차에 화운이 갑자기 일어나자 자신도 모르게 물러나고 만 것이었다.
이는 화운이 하단전이 다시 열린 것을 감추고자 일부러 억눌러 놓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네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냐?”
화운이 물었다.
“뭐?”
“사냥개 주제에 무슨 자유냐? 주인이 가라면 가고, 짖으라면 짖는 게 사냥개다. 사냥개는 주인의 땅에 속박된 노예일 뿐이다. 다시 말해 넌 그 넓은 곳에 갇힌 거고, 난 이 좁은 곳에서 자유롭다.”
“궤변이다!”
“궤변이면 증명해 봐.”
“무슨 증명을 하라는 것이냐!”
“오 년 전처럼 교 밖으로 나가서 한바탕 피 좀 보고 와봐.”
“······!”
“못 가지? 못 갈 거다. 왜냐하면 네가 고개를 숙인 자의 명령 없인 어디도 가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닥쳐!”
쾅!
마경이 쇠창살을 후려쳤다.
명옥 안이 큰 소리로 울렸다.
하지만 화운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가라. 너한테 기대할 게 없다는 걸 알았으니 명부전의 선택이나 기다려야겠다.”
“흥! 그들이 널 꺼내줄 거라고 생각하냐?”
“그래.”
“멍청아! 북명전의 주인이 멸제랑 손잡은 지 오래다. 명왕이라면 모를까 명부전의 무상들 전체가 몰려와도 우사께서 꿈쩍도 하지 않으실 거다. 율법에 관한 한 북명우사의 권력은 교주님 아래로는 절대적이다.”
“멸제? 넌 멸제 밑으로 들어간 거구나.”
“그래.”
“용하다. 멸제의 양녀를 죽여 놓고도 그 밑으로 들어가다니.”
“닥쳐! 네가 죽여 놓고 누구한테 씌우는 것이냐!”
마경이 명옥주와 옥지기들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소리쳤다.
화운은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죽였다고 해라. 너 아니었어도 결국 죽였을 테니까.”
“닥치고 들어! 판결은 없다. 공개처형이 있을 뿐이다.”
“공개처형?”
“그래, 네놈을 공개처형 할 거다. 멸제께선 본교의 천하출도를 바라신다. 하여 정파인인 네놈이 교로 잠입하여 강시당과 광마종 그리고 멸제의 양녀까지 죽인 죄를 물어 널 모든 교도들이 보는 곳에서 공개처형함은 물론이고, 그 자리를 빌어 마도천하의 기치를 교에 공표할 참이시다.”
상상도 못한 상황에 화운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날 공개처형하겠다고? 아무리 북명우사가 멸제와 손잡았다고 해도 그렇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명왕도 있고, 마존도 있다던데, 그런데도 그가 마도천하를 공표하겠다고? 멸제한테 그럴 권한이 있어?’
화운은 납득이 가지 않아 고개만 갸웃했다.
화운이 말을 못하고 있자 마경이 득의양양했다.
“이제야 니 처지를 알겠냐?”
“가라.”
“뭐?”
“꺼지라고. 죽기 전에 마음이라도 정리하게.”
“누가 그런 시간이라도 준대?”
“빨리 죽여주면 더 좋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큼 지겨운 것도 없을 테니까.”
화운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흥! 태연한 척은.”
“하나 부탁 좀 하자.”
“뭐냐?”
“공개처형할 때 네가 해라.”
“······!”
“죽는 순간 네 귓가에 욕이라도 해주게. 개새끼라고.”
“이 새끼가 진짜!”
“왜? 내 가까이 오는 게 겁나냐? 사람들 앞에서 내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꼴을 보여줄까 봐 걱정되냐? 하긴 한 번 꼬리 내린 개새낀 다신 대들지 못한다더라. 그렇게 보면 넌 진짜 개새끼가 맞나보다. 아, 이참에 마경이 아니라 마견이라고 바꾸는 게 더 낫겠다. 마견. 너한테 딱이다.”
“닥쳐!”
“개새끼가 잘도 짖네.”
“이 썅!”
“주인도 없는데 으르렁 대긴, 확 그냥 주둥일 찢어버릴까 보다.”
“죽여 버리겠다! 내가 죽여주마!”
마경이 다가가 쇠창살을 잡아 흔들며 소리쳤다.
화운은 그 모습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한때 잠깐 동안은 너나 구룡태자나 그래도 사내다운 면은 있다고 여겼다. 내가 틀렸다. 잘못 봤다. 니들은 그저 약자 앞에서 잘난 체 거들먹거리고 강자 앞에서는 꼬리부터 마는 개새끼들일 뿐이다.”
“넌 다를 것 같으냐!”
“지금까진 어땠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앞으로는 니들처럼 추한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거다.”
“흥!”
추하다는 말에 마경은 코웃음만 칠 뿐 반박을 못했다.
“닷새다. 닷새 후에 다시 볼 거다. 공개처형장에서. 그때도 그렇게 태평하게 구는지 보겠다.”
“그래, 그날 두고 보자. 내가 벌벌 떨며 꼬리를 마는지 아님 당당하게 구는지.”
“흥!”
마경은 괜한 쇠창살만 후려치고는 명옥주에게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잘 가라, 개새끼야.”
“썅!”
마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소리였다.
이윽고 철문이 열렸고 마경은 밖으로 사라졌다.
꾸그그그긍!
철문이 다시 닫혔다.
“어르신! 닷새랍니다, 닷새 밖에 안 남었어요!”
화운이 철창 안에서 소리치며 움직였다.
순간 막대한 기의 파동이 휘몰아치더니 화운이 철창 밖으로 이동해 있었다.
세 걸음 정도 되는 위치이동이었으나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철창의 출입문을 열고 나온 것이 아니라 쇠창살을 건너 이동해버렸기 때문이다.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
공간을 넘나든다는 소림 천 년의 전설이 화운의 몸을 빌어 발휘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놀라기엔 이르다.
마교의 조사인 첫 번째 천마를 좌절케 했던 육조혜능의 금강부동(金剛不動)은 공간을 넘나드는 경신이 그 시작일 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