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만류귀종 무해일연
어둠이 찾아왔다.
일찍 저녁식사를 마친 화운은 백리연을 비롯한 신풍대원들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한 후 검마를 찾아갔다.
백리연을 비롯한 세 사람은 화운이 앞서 달려온 그날 어둑어둑해질 때쯤 대륙전장에 도착했었다.
“좀 어떠십니까?”
“내일이면 움직일 수 있겠다.”
“확실히 대환단이 대단하긴 하군요.”
“생색이라도 내고 싶은 게냐?”
“안 됩니까?”
“뭘 바라고?”
“딱 하나 있습니다.”
“뭐냐?”
“제가 무공 하나를 얻었는데 도통 모르겠습니다. 살펴보시고 이해하게 되시면 저 좀 가르쳐 주십시오.”
무공이라는 말에 검마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화운이 말할 정도면 보통의 무공이 아닐 것이기에 궁금한 것이다.
“말해 보거라.”
화운은 조용히 구결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검마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화운의 말이 끝나자 검마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눈을 떴다.
“불가와 도가의 공부를 섞어놓았다만 틀림없이 불가의 관점에서 만든 것이로구나. 소림의 절학이더냐?”
“예. 소림의 금강부동입니다.”
“······!”
화운의 말에 검마가 크게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놀라긴 화운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대단한 분이셔. 그걸 어떻게 알아차리셨을까?’
맹에 있는 사람들 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을 사람이 검마였다. 하여 검마에게도 금강부동을 분석해 달라고 청한 것인데, 아무래도 잘한 일인 것 같다.
“천종천마교까지 다녀왔다더니 거기서 얻은 것이냐?”
“예.”
“금강부동으로 사황과 천마를 상대할 생각이구나?”
“예. 지금으로썬 금강부동만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흠······.”
화운의 말에 검마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번엔 제법 시간이 길었다.
한참만에 다시 눈을 뜬 검마가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강부동, 참으로 욕심이 나는 절학이다. 지금은 네가 바라는 대로 연구해 보겠다만, 언제고 네가 익히고 난 후에 시간을 되돌리게 되거든 나에겐 가르쳐 주지 마라.”
“진심이십니까?”
“내겐 연혼팔검만으로도 벅차다.”
“아! 알겠습니다.”
검마라고 어찌 욕심이 나지 않을까.
소림 천년의 전설인 금강부동이거늘.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다. 과한 건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인 법이다.
세상엔 많은 것보다 적당할수록 더 좋은 것도 있다.
무공이 특히 그렇다.
연혼팔검도 끝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금강부동까지 익히려 들다간 필히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검마의 생각이었다.
“소림 육조가 그토록 뛰어난 분이셨다면 금강부동은 나 정도로는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화운은 검마의 우려를 이해했다.
그만큼 금강부동은 난해한 신공절학이었다.
화운도 익히려고 연구하고 궁리해 보았기에 잘 알고 있다.
“실은······.”
화운은 정무맹의 인사들한테 공개한 일을 설명했다.
시간을 되돌릴 것이기에 그들은 결코 얻지도 익히지도 못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영악하구나.”
“살아남으려고 바동거리다 보니 잔꾀만 늘었습니다.”
“잘했다.”
그렇게 짧은 한 마디로 화운이 벌인 일이 옳고 그름을 논할 필요도 없음을 드러낸 검마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이름 하나를 꺼내놓았다.
“무해곡(武海谷)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무해곡이요? 엇! 들어본 것 같은데요. 무해곡, 무해곡, 무해······ 아! 천하무공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는 무해노인! 만류귀종 무해일연! 맞지요?”
“맞다.”
수백 년 전 천하무림계에 파문을 일으킨 노인이 나타났다.
불가의 사자성어인 만류귀종을 들먹이며 천하에 산재하는 무공도 결국은 그와 같이 하나로 귀결된다고 주장하는 노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흔들 수도 있는 새로운 것을 거부하기 마련이라 노인의 주장을 가당치도 않은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일축했다.
허나 노인은 코웃음 치던 그들의 무공을 꿰뚫어보았다.
그들 개개의 무공이 지향하는 바와 문제 그리고 발전 가능성까지 마치 그 무공을 창안한 사람처럼 술술 풀어놓으니 모두가 크게 놀랐다.
노인은 십 년 만에 사라졌다.
그러나 노인이 사라지고 난 후 천하판세의 일부에 큰 변화가 생겼다.
노인의 주장을 인정하고 가르침을 청했던 이들이 자신들의 무공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여 천하를 뒤흔들 정도로 유명세를 떨친 것이다.
당시에 그렇게 크게 일어섰던 곳 중 대표적인 곳들이 바로 남궁검가와 황보세가였다.
당시엔 십여 개의 무문이 더 있었으나 지금까지 명문으로 버텨온 곳은 그 둘뿐이었다.
“무해노인이 지인들과 함께 은거했다고 전해지지만, 수백 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아 무해곡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잠정 결론이 난 걸로 아는데, 그 이름을 꺼내시는 걸 보니 진짜 존재하는 모양이네요?”
“무해곡을 찾으니 찾지 못할 수밖에.”
“예?”
“악인촌이라고 들어보았겠지?”
“그 말씀은 설마?”
“무해곡은 늘 존재했었다. 다만 악인촌이라는 흉명으로 감추어져 있었을 뿐이지만.”
검마의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 사실이 두루 퍼진다면 악인촌으로 천하가 몰려갈 일이었다.
화운은 놀란 눈을 끔벅거렸다.
그러다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곳에 가서 금강부동을 이야기 해보라는 말씀이시군요?”
“손해 볼 일은 없잖느냐.”
어떤 문제가 일어나든 시간을 되돌리면 되지 않느냐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무해노인의 후예들이 존재하고 그들 역시 무학에 대해 뛰어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금강부동을 빠른 시일 안에 분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보겠습니다. 악인촌은 어디에 있습니까?”
“악인촌은 운남에 있다.”
***
호남성 장사 정도무림연합맹으로 복귀하는 길.
화운을 비롯한 신풍대는 몸도 마음도 편안하게 복귀하고 있었다.
“그래서 검마대협께서는 언제까지 머문답니까?”
“오랫동안.”
“오랫동안 얼마나요?”
“천하를 떠돈 지 십 년이야. 그만큼 돌아다니셨으면 그분께서도 아실 거야.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는 걸로는 찾을 수 없다는 걸. 그러니 찾을 때까지 혹은 이 땅을 떠나실 때까지 그곳에 머무는 게 좋아. 그러셨으면 해.”
남궁현의 물음에 화운이 자신의 뜻까지 보태서 이야기 했다.
“형.”
“왜?”
선우유성이 부르자 화운이 쳐다봤다.
그랬더니 선우유성이 안도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분이 스승이셔서 참 다행이야. 기뻐.”
“하여간, 니 걱정이나 해.”
“난 다 좋은데 뭘.”
천진한 아이처럼 웃는 선우유성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화운.
그의 얼굴도 웃고 있었다.
‘그래, 나도 기쁘고 참 좋아. 사황과 천마만 없다면 이보다 좋을 순 없을 텐데.’
두 괴물들을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답답해져 타고 있는 마차의 창밖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오늘도 평화로웠다.
둥실 떠다니는 몇 점의 흰 구름 아래 네 사람이 탄 마차만 여유롭게 굴러가고 있었다.
대륙전장에서 준비해 준 마차였다.
그 덕분에 몸마저 무척 편안하게 복귀하고 있었다.
장강 선착장에는 화운과 세 사람을 태울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륙전장에서 미리 사람을 보내 준비해 둔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선장이 직접 마차에까지 마중 나왔다.
장강에서 잔뼈가 굵은 것인지 오십은 훌쩍 넘었을 것 같은 나이임에도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어 오랫동안 무공을 수련한 사람 못지않아 보였다.
화운과 세 사람은 선장의 안내를 받으며 선박으로 향했다.
대륙전장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배였다.
백 명은 충분히 탈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이층 누선이었다.
“우린 네 사람뿐인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모양새네.”
“보통 배꼽이 아니잖습니까.”
“응? 뭔가 들으신 게 있는 모양입니다?”
“혹여 함구해야 할 비밀 같은 겁니까?”
선장이 크게 놀라는 기미를 보이자 화운은 얼른 손 사레를 쳤다.
“아닙니다.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을 일도 아니거니와 여기저기 부풀려지고 미화될까 봐 해본 말입니다.”
“수련 아가씨를 구해주셨다면서요?”
“저보다 스승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아! 스승님과 함께 하셨던 것이군요.”
선장의 반응을 보니 화수련을 구한 분들이니 알아서 극진이 모시라는 말 정도를 들은 것처럼 보인다.
“예. 전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스승님께서 하셨다 하더라도 그분의 제자시니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합니다. 우리 아가씨가 어디 보통 분이셔야지요.”
“그렇습니까?”
“우리 아가씨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요?”
“예. 한 하늘 아래 살아도 상계와 무림은 조금 따로인 면도 있잖습니까.”
“하기사 그런 면도 있지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선장이 그때부터 선박 가까이에 다가갈 때까지 화수련에 대한 칭찬 일색을 쏟아냈다.
궁핍하고 불우한 자들을 돕거나 고아 혹은 거리의 아이들을 모아 먹이고 재우고 글을 가르쳐주는 등 충분히 미담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화운이 짐작하기로 이제 열넷에서 열다섯 살 정도 된 것 같았으니까 어린 나이에 그만한 인품을 가지려면 대륙전장의 가풍이 그만큼 남달라야 할 것이다.
그러니 화수련에 대한 칭찬이 대륙전장 일족에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냥 돈 많은 거부가 아니라 존경받을 만한 대단한 사람들이었군.’
화운은 검마가 그런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어 참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시간을 돌리기 전의 삶에서는 대륙전장에 갇혀 있는 무영투를 구하러 갔을 때 화수련 일족들은 사황의 수하들에게 모조리 죽임을 당한 후라 얼굴조차 보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면 사황이랑 그 수하들은 진짜 흉악해. 너무 무차별적으로 죽였었어.’
화운은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선장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는 겁니까?”
선우유성이 갑자기 끼어들어 선착장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엔 짐들을 줄지어 늘어놓고 그늘을 찾아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장이 서는 곳도 아닌 것 같은데, 혹시 강을 건널 배를 기다리는 겁니까?”
“그렇지요. 삯이 저렴한 선박은 속도도 느리니 앞으로도 한 시진(2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겁니다.”
“혹시 태워줄 수 있습니까?”
“저희야 상관없습니다만, 귀하신 분들께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선장이 백리연을 힐끔 돌아보며 물었다.
다른 세 사람도 그렇지만 백리연의 미모가 워낙 아름답다보니 곱게 자란 것이 역력하여 혹시나 더럽고 난잡한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은 아닌지 염려하는 눈치다.
“전 괜찮아요.”
백리연이 말했다.
그러자 이번엔 화운이 선우유성을 보며 한 마디 했다.
“우리가 저들을 태워주면 한 시진 후에 삯을 벌어야 할 사람들이 공치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을까?”
“어? 그 생각을 못했네. 그치만 좀······.”
“우리만 타고 가려니 신경 쓰여?”
“어. 저기 애들도 보이는데 이 누선에 태우면 그늘에서 쉬면서 건널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해본 말이야.”
선우유성이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도강선 녀석들, 지들끼리 연합해서 삯을 작년보다 배나 올렸습니다. 쉬는 날이면 기루에서 기녀들 끼고 술 처먹을 정도로 넉넉한 놈들이니 저 사람들 싹 다 태워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어떠신지요?”
선장이 화운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요.”
화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선장이 선원을 불러 도강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로 보냈다.
한달음에 달려간 선원이 상황을 설명하자 모두들 부리나케 짐들을 챙겨들고 우르르 몰려왔다.
“전부 탈 수 있으니까 천천히들 와. 그러다 다쳐! 어허! 거기 애도 있잖은가. 천천히 오래두! 달리는 놈은 안 태워준다!”
선장의 마지막 말에야 앞다퉈 달려오던 이들이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래, 짐들도 있으니까 천천히들 와. 여기 계신 귀한 분들께서 전부 태우자고 하신 거니까 타면서 인사하는 거 잊지 말고.”
삼십여 명 가까이 되는 숫자였는데, 대부분이 보부상들로 보였다.
사람들은 배에 오르면서 선장이 한 말을 잊지 않고 화운을 비롯한 네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몇 살이냐?”
선우유성이 한 아이 앞에서 물었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으면서 다른 손으로 손가락 네 개를 펼쳐보였다.
“네 살? 다 컸네. 엄마가 동생을 업고 너까지 손잡고 배에 오르려면 무척 힘드실 건데. 어떠냐? 씩씩하게 형이랑 손잡고 타볼래?”
아이는 대답을 못했고 아이 엄마가 허리를 조아렸다.
“어이쿠, 더럽습니다. 저희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어렸을 때 흙바닥에서 뒹굴며 놀았습니다. 배에 오르는 판교가 보기보다 가팔라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선우유성은 다시 아이를 향해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형이랑 손잡고 엄마랑 동생이 보는 앞에서 씩씩하게 타볼까?”
잠시 망설이던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선우유성의 손을 잡았다.
“좋아, 씩씩하게 가는 거다.”
선우유성은 아이의 보폭을 맞추면서도 힘차게 이끌었다.
두 사람 뒤를 아이의 엄마가 아기를 업은 채 따라갔다.
“햐! 여튼 착한 쪽으로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남궁현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화운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요?”
화운이 한쪽을 턱짓했다.
남궁현이 그쪽을 살펴보니 사람들 맨 뒤에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남궁현이 잽싸게 달려갔다.
“아이고, 우리 할머니 허리 더 휘시겠네요.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얼른 이리 주세요.”
“괜찮습니다. 공자님!”
“아이고, 제가 안 괜찮습니다. 이거 안 도와드리면 저기 있는 큰 공자님한테 밤 새 두들겨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저 좀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할머니의 짐을 냉큼 짊어졌다.
“으쌰! 정말 무겁네요. 어서 가시지요.”
“어이쿠,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큰일이니까 천천히 오르십시오.”
누선에 오를 때까지 남궁현이 할머니 곁에 착 달라붙어 이동했다.
화운과 백리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가장 나중에 승선했다.
그렇게 모두가 빠짐없이 오르자 누선이 천천히 미끄러지듯 선착장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은 커다란 누선을 타고 빠르게 강을 건너게 되어 얼굴에 기쁨의 빛이 가득했다.
화운과 세 사람은 누선 이층 난간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뿌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
선우유성이 헤벌쭉 웃었다.
“넌 무인이 아니라 돈 많은 부자가 되어야 해. 그러면 하도 많이 베풀어서 성인이란 소릴 들을 거다.”
남궁현이 칭찬 같지 않은 느낌이 묻어나는 칭찬을 했다.
“그거 좋긴 한데 돈이나 벌겠다고 하면 다리가 부러질 거다.”
“하긴 숙부님 성격에 가만 두시지 않겠다. 세가를 일으키는 데에 모든 걸 거시고 계시니까.”
선우유성과 남궁현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화운은 청력을 집중하여 일층 갑판에서 두런거리는 보부상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래, 그 소패룡 황보장 말이야.”
“소패룡이 왜?”
“이 사람 이거, 소패룡이 아수라파천권이라는 희대의 마공을 익힌 것 때문에 패가망신한 것도 모르는 거 아냐?”
“그런 일이 있었나?”
“허어!”
“그러지 말게. 내가 이번엔 북방 멀리까지 다녀오느라 귀동냥이 부족하네. 거 나중에 탁주 한 사발 살 테니까 어여 더 말해보게.”
“약속했네?”
“약속함세. 얼른 다음 이야기나 해보게.”
“세상 이치가 말이야 별이 하나 지면 새로운 별이 뜨기 마련인 법이거든. 그래서 소패룡을 박살을 내버린 신검룡이 정무맹의 신성으로 뜨지 않았겠나.”
“신성이 다 뭔가. 내 듣기론 장강에서 수적들의 왕이랑 사천의 독왕까지 꼼짝 못했다던데. 그 정도면 신성 그 이상이지, 뭐.”
“맞네. 그래서 그 일로 정무맹의 말단 무사들한테는 아주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더군.”
“허! 대단한 신성의 등장이로군. 여튼 그건 그거고 아까 하던 말이나 해보게. 소패룡이 사라졌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아, 그거. 신검룡한테 잔뜩 두들겨 맞은 소패룡은 그 길로 세가로 압송되어 감옥에 갇혔는데 며칠 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지 뭔가.”
“사라져? 도망쳤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뭐겠는가? 그대로 있어봐야 폐인처럼 갇혀 있다가 인생 종치게 생겼는데 달아나고 봐야지.”
“소가주인데 설마 폐인으로 만들려고?”
“허, 이 사람 세가가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무가, 특히 세가 정도 되는 무가라면 말이야······.”
화운은 거기까지 듣다가 고개를 돌렸다.
황보장이 도망쳤다면 어디서든 몸을 회복하고 아수라파천권을 완성하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 분명했다. 복수를 하고 싶을 테니까.
이 전의 삶일 때는 지금의 시점에서 오 년 후까지 흘러갔다.
하지만 그때까지 황보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 년 후까지는 무공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화운은 흘러가는 강물로 시선을 돌렸다.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모두들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부딪쳐 깨지고, 누군가는 부수고 넘어간다.
‘황보장, 넌 아수라파천권을 완성한다 해도 또다시 깨질 거다. 하필 상대가 나라서 말이야.’
황보장에 관한 생각을 그렇게 단호하게 정리한 화운은 흘러가는 강물을 들여다보며 한 가지 검결을 떠올렸다.
생과 사의 간극을 무수히 넘나들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연혼팔검.
초식조차 존재하지 않는 검.
감각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리고 검에 충만한 살의로 의식이 인식하기도 전에 죽음을 찾아 움직이는 검.
화운은 그 초감각의 검결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검끝 너머를 꿰뚫어보는······ 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