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104화 (104/207)

#104.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항주 거리가 술렁였다.

선우세가의 가모가 오랜 병상을 떨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들이를 나왔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그것만이 아니다.

근래 천하를 들썩인 소문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선우세가의 소가주도 함께 보였다.

처음엔 분명 그렇게 소문이 퍼졌다.

그런데 반 시진이 지나기도 전에 또 다른 소문이 함께 퍼지면서 온 항주 거리가 들썩였다.

“소가주가 혼자 온 게 아니래. 신풍대 전체가 왔다는 거야.”

“그럼 신풍대주 신검룡도 왔대?”

“자네 백봉 알지?”

“백봉 백리연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던가? 백봉도 신풍대잖은가.”

“맞아. 천하제일미를 다툰다는 그 백봉이 한 남자 옆에 딱 붙어 있다는데 그가 신검룡이 아니면 누구겠나?”

“정말 왔구먼! 그럼 이럴 게 아니라 얼른 가보세.”

“그럴까?”

“그럴까라니? 그들을 직접 본 것만으로도 평생 술 얻어먹을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건데 놓쳐서는 안 되지. 어여 가세. 아! 근데 지금 어디에 있다던가?”

“천향객잔에 있다더군.”

“그래? 그럼 어여 가세.”

그렇게 천향객잔으로 향하는 항주거리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천향객잔.

화운과 선우세가 사람들은 이층에 자릴 잡고 있었다.

그래서 일층부터 이층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화운을 비롯한 신풍대, 이옥영과 시비 소추 그리고 선우세가 무인 다섯 명.

숫자는 열한 명에 불과했으나 지금 이 순간 항주의 온 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간만에 시선을 받으니 어색하구나.”

이옥영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여장부 같은 성격의 그녀였으나 하도 오랜만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니 어색한 모양이었다.

“조금 지나면 금방 적응될 거예요. 원래 씩씩하던 엄마였잖아요.”

선우유성이 싱글벙글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한 채 말했다.

자주 웃는 그였지만 이전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밝아 보였다.

제천마존의 비동에서 화운을 만났을 때도 화운 덕분에 강해졌을 때도 지금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병상에 있던 모친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보란 듯이 나들이 나와서 맛있는 요리를 함께 먹게 되었는데, 그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저, 무엇을 올릴까요?”

객잔주인이 직접 찾아와 주문을 받았다.

그러자 다들 선우유성을 보았는데, 정작 선우유성은 화운을 돌아봤다.

여기까지 오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수중에 돈이 없었던 것이다.

‘녀석.’

빙그레 웃은 화운은 이옥영에게 물었다.

“숙모님,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너희들과 함께 있으니 그저 좋구나. 간단한 걸로 때우도록 하자.”

이옥영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뭘 먹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선우유성이랑 화운이 맛있는 걸 먹는 모습을 본다면 틀림없이 더 기분이 좋아질 터였다.

그러나 돈이 없는 건 선우유성만이 아니다.

선우세가 자체가 돈이 없었다.

그만큼 자금사정이 열악했다.

화운도 선우세가의 사정에 대해 이옥영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다.

이옥영에게 처음으로 공청석유를 복용시켜 병을 낫게 해주던 삶일 때 양 총관에게 선우세가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들었었다.

다행히 지금 화운의 수중에 적지 않은 금전이 있었다.

대륙전장에서 장주가 고맙다며 전낭을 찔러 넣어주었었다. 하오문에서도 그렇고 지금껏 그 돈을 쓰지 않은 건 이옥영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숙모님께 드릴 거였으니 이 자리에서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화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선우가의 이 부인께서 병상을 털고 나오셨다더니 사실이었구려.”

비대한 몸집의 노인이 사람들을 헤치며 다가왔다.

화운은 그 노인을 한눈에 알아봤다.

선박을 서른셋 척이나 가지고 있어 어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노인이었다.

선우세가를 밀어내고 우문검가와 손을 잡는 일에 가장 적극 나서고 있다는 걸 이전 삶의 경험을 통해 화운은 잘 알고 있었다.

이옥영도 모를 리가 없어 노인이 등장하자마자 인상부터 썼다.

“오랜만의 나들이인데 간단히 드셔서야 되겠소? 선우가의 살림이 어렵다는 거야 항주 땅이 다 아는 사실이니 괜찮다면 이 늙은이가 한 끼 대접하고 싶소이다.”

잔뜩 나온 배를 쓸면서 웃고 있었다.

딴에는 풍어제에서 선우세가를 밀어낸 일로 신풍대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선우세가의 소가주가 앙심을 품을까봐 한 끼 대접하는 걸로 적당히 무마해 보려고 나선 것인데 평소의 거만한 태도 그대로 말이 나오고 말았다.

물론 노인은 자신이 한 말이 선우세가 사람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 노야가 돈이 많은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안하무인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옥영이 사납게 말했다.

“이 부인?”

“미친년한테 뺨 맞기 전에 썩 물러가세요.”

“아니 한 끼 대접하겠다는 호의를 이렇게 거절하는 건 무슨 경우요? 내가 없는 말 한 것도 아니고, 선우세가가 모든 사업을 다 말아먹고 세가 무인들 월봉도 제대로 못주고 있다는 걸 온 항주 사람들이 다 아는 처지거늘, 그게 뭐 새삼스럽다고!”

천 노가 주위를 둘러보며 큰 소리를 쳤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대접을 받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하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화운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보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불한당처럼 무력을 쓸 수는 없었다.

자신이야 거리낄 게 없지만 선우세가에 누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 노를 어떻게 혼내줄까 고심하고 있었는데 일층에서 올라오는 계단을 통해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특유의 기운으로 보아 우문검가의 장천검 우문낙성이 틀림없었다.

화운은 우문검가 하니까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숙모님, 해적도를 털면 돈 좀 나올까요?”

화운이 큰 소리로 말했다.

순간 계단을 올라오던 장천검 우문낙성이 걸음을 멈췄다.

이층의 사람들은 화운의 뜬금없는 말에 모두들 의아하여 쳐다봤다.

이옥영은 원래 영민한 데가 있어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오랜 병상 탓에 상황 판단이 조금 늦어지고 있었지만 화운이 이유 없이 헛소리를 할 성격이 아니라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여기저기서 약탈한 것이 있으니까 제법 많이 모아두었을 게다. 헌데 어찌 묻는 것이냐?”

“이렇게 하죠. 세가에 돈도 없고 하니 일다경 정도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해적도로 가서 탈탈 털어오겠습니다. 그 돈으로 여기에 계신 분들과 함께 객잔에 있는 모든 술과 고기를 모조리 먹어치워 버리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일다경?”

“예. 일다경이면 충분합니다.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화운의 물음에 이옥영은 잠시 주춤 했고, 객잔 안은 황당함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해적도까지는 배로 한 시진 이상 걸리는 데다 온통 암초 천지라 바닷길을 모르고서는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이옥영 역시 그러한 걸 모르지 않았다.

하여 적잖이 염려가 되었다.

화운이 돌아오지 못하면 선우세가는 물론이고 화운 역시 두고두고 비웃음을 살 것이었다.

이옥영은 염려가 되었으나 고민하지는 않았다.

곧이어 화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무나.”

화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화운이 고개를 조아린 순간 그의 모습이 허깨비처럼 그 자리에서 펏! 하고 꺼지듯 사라졌다.

사람들이 화운의 경신술에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려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화운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흥! 해적도가 포구에 있는 돌섬이라도 돼? 그렇게 큰 소리 쳐놓고 해적들이 다 도망가고 없네 그러는 건 아니겠지?”

천 노가 비웃음을 터트리며 빈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화운의 헛짓을 두고 보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였다.

이때였다.

남궁현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점소이!”

점소이도 일 손 놓고 있었기에 금세 대답하며 사람들을 비집고 다가왔다.

“향! 얼른 향 하나만 가져와.”

남궁현이 워낙 다급하게 소리치자 점소이가 잽싸게 튀어가 향 하나를 가져왔다.

향을 건네받은 남궁현은 절반으로 부러트리더니 반쪽을 선우유성에게 건넸다.

“대주님이 돌아오는 시간 맞추기다. 진 사람이 오늘 하루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다.”

남궁현이 그렇게 말하며 검지 손가락 길이로 자르더니 향에 불을 붙였다.

보통 향 하나가 반시진을 타니 남궁현이 남긴 길이로 보면 일다경 보다 조금 더 짧은 시간이었다.

그에 선우유성은 검지보다 조금 더 긴 중지 길이로 자르더니 불을 붙였다.

“좋아! 형이 아무리 빨라도 일다경 보다는 조금 더 걸릴 거야.”

“우후후! 이 형님의 명석한 판단력을 알게 될 거다.”

“두고 보자고.”

남궁현이 자신 있게 말하자 선우유성이 씩 웃으며 받았다.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객잔 안의 모두가 황망히 지켜보았다.

시간은 삽시에 흘렀다.

거의 다 타고 있는 향을 손톱 끝으로 간신히 잡고 있던 남궁현은 얼굴이 점점 초조해졌다.

“인정하시지?”

선우유성이 여유 있게 말했다.

“아직 충분히 남았어.”

남궁현이 창문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초조함과 패배감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원! 쯧쯧!”

천 노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래저래 그는 선우세가가 비웃음을 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무부들은 무식쟁이라고 하는 것이지, 쯧쯧쯧!’

천 노가 속으로도 세차게 혀를 차는 동안 잠깐의 시간이 더 지났다.

“앗 뜨거!”

남궁현이 마지막 티끌만큼 남은 향을 허공으로 튕겼다.

‘아차!’

다급해진 남궁현은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냅다 소릴 질렀다.

“대주님! 빨리요!”

남궁현의 외침이 터지고 허공으로 튀어 올랐던 향의 마지막 남은 불씨가 꺼진 순간.

갑작스런 돌풍이 창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쿠웅!

뭔가가 객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소리에 사람들은 객잔 바닥을 보았다가 돌풍처럼 나타난 화운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겼다!”

남궁현이 환호하고 선우유성의 얼굴이 일그러진 순간이었다.

“쯧쯧! 일다경 안에 돌아오면 어이쿠! 벌써 갔다 오신 겁니까! 할 줄 알았소? 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 선우세가가 이젠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이오? 대체 우리 항주 사람들을 뭘로 보고 이러는 것이오!”

천 노의 비웃음이 이옥영에게로 향한 순간.

화운이 수중에 들고 있던 것을 식탁 위로 던지듯 올려놓았다.

철그럭!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식탁 위로 향했다.

뭔가가 잔뜩 들어 있는 보자기였다.

“이게 뭘까나?”

남궁현이 잽싸게 손을 뻗어 보자기를 풀었다.

그러자 보자기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들이 사람들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은전이다!”

“금전도 있다!”

그랬다.

보자기 안에는 금전과 은전이 잔뜩 들어 있었다.

금 서른 냥에 은 백 냥은 충분히 되어보였다.

“이렇게나 많았습니까?”

남궁현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화운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만큼 피해자가 많았다는 거겠지.”

화운의 시선이 바닥에 있는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화운을 따라 움직였다.

“자기 소개부터 하지.”

화운이 말했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곤죽처럼 짓이겨진 중년인이 신음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는 잔뜩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자는 누군데 이토록 행패를 부려 상하게 한 것이냐!”

천 노가 큰 소리로 꾸짖듯 외칠 때였다.

“해, 해적도주다!”

“억? 맞다! 해적도주 마종산이다!”

“진짜? 진짜 해적도주라고?”

“맞아! 틀림없어! 작년에 본 적이 있어!”

누군가가 해적도주를 알아보고 소리치자 천 노가 더욱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허튼 소리! 그렇게 짜고 사기를 치다니! 아주 작정을 했구나! 작정을 했어!”

천 노는 눈곱만큼도 믿으려하지 않았다,

화운이 놀라운 경신술을 보여주어도 그저 눈속임이라고만 여겼다.

이때 보다 못한 남궁현이 탁자를 소리 나게 쳤다.

그러자 웅성거리던 소란이 일시에 가라앉으며 그에게로 이목이 집중 되었다.

“영감님! 자꾸 사기라고 하는 걸 보니 목이 여러 개인가 봅니다.”

“옳거니! 결국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본색? 좋아, 우리들의 본색을 까먹은 모양인데, 내가 다시 확인시켜드리지요. 영감님이 사기꾼의 수괴로 몰고 있는 여기 이분은 정파무림연합맹의 맹주님께서 직접 대주로 임명하신 신풍대 대주님이십니다. 이화태양종의 종주인 태양존자의 목을 직접 날려버린 분인데,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 봉황처럼 아름다운 분은 백리세가의 백봉이시고, 난 대남궁검가의 소가주인 남궁현입니다.”

천 노의 얼굴이 귀신을 본 것처럼 굳었다.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신분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영감님께서는 선우세가는 물론이고 대정맹, 백리세가 그리고 남궁검가까지 싸그리 모욕하고 있다는 걸 알고나 계십니까?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겁니까? 속으로 무식한 무부들이라고 욕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무부들이 자존심 하나만큼은 칼같이 지킨다는 걸 아십니까? 하물며 가문의 이름에 누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참아? 목숨을 걸고 죽여 버려야지.”

남궁현은 진짜 화가 났다.

마지막 말을 할 때는 남궁현에게서 차가운 살의가 성난 파도처럼 뿜어졌다.

무공을 익히지 않아 자신을 지킬 수 없었던 천 노는 남궁현의 살기에 전신을 다 떨 수밖에 없었다.

“현아.”

“예, 대주님. 명만 내리십시오. 목을 잘라 버릴 테니까.”

“우물 안의 두꺼비는 자기가 사는 세상이 천하인 줄 안다. 그렇게 어리석은 두꺼비를 베어봤자 남궁검가의 검만 더러워지니 참아라.”

“형님으로서 하는 말이라면 별로 따르고 싶지 않고, 대주님으로써 하는 명령이라면 뭐 따르겠습니다.”

“형으로써 하는 부탁이다.”

“젠장! 그렇게 나오시면 더 따를 수밖에 없잖습니까.”

투덜거린 남궁현이 자리에 앉으며 천 노를 쳐다봤다.

“영감님,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사람들 앞에서는 말조심 하십시다.”

남궁현의 경고에 천 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이때 화운이 아래층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계신 줄 압니다. 올라오십시오.”

화운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계단으로 향했다.

그러자 잠시 후 아래층에 자릴 잡고 있던 장천검 우문낙성이 계단으로 올라왔다.

“우문대협이시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길을 열어주었다.

그 길을 통해 장천검 우문낙성의 모습이 보이자 천 노가 크게 기뻐하며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한 걸음에 마중을 나갔다.

“아이고! 우문대협! 어서 오십시오! 정말 잘 오셨습니다! 내 우문 대협이 안 계시니 정말 험한 꼴을 다 당했지 뭡니까!”

장천검 우문낙성을 본 순간 남궁현의 경고 따위는 싹 잊어버린 천 노였다.

그의 눈엔 향을 가지고 장난질이나 하는 젊은이들보다 장천검 우문낙성이 훨씬 더 대단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문낙성은 천 노가 반기는 것이 껄끄러웠다.

화운이 의도한 대로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다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천 노를 매몰차게 모르는 척 할 수도 없어 고개만 끄덕여주며 화운 등을 향해 다가갔다.

“이 부인께서 쾌차하셔서 다행이오.”

우문낙성이 이옥영을 향해 인사를 했다.

이옥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습니다. 헌데 동천로에 우문검가의 현판을 달으셨다지요? 축하합니다. 덕분에 본가는 항주를 떠야 할 모양입니다.”

이옥영의 말이 냉랭하게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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