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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07화 (107/207)

#107. 철봉황 북궁설

정무맹 신풍대 숙소.

화운이 급한 걸음으로 들어섰을 때 백리연과 선우유성 그리고 남궁현은 수련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들이군. 이젠 수련하라고 하면 잔소리가 되겠다.’

화운은 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세 사람이 좀 더 강해져서 자신과 맘껏 천하를 종횡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치듯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난 급한 임무가 있어 며칠 맹을 떠나야 합니다. 백리 소저께서 이 녀석들을 잘 데리고 계십시오.”

“예? 함께 가지 않구요?”

“시간을 다투는 임무라 함께 가면 늦습니다.”

무룡대가 천사련의 무리들과 부딪쳐 버렸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으나 아직은 모르는 상황이니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

신풍대에겐 정말 좋은 실전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무슨 임무인지 물으면 안 되겠지요?”

“예.”

“알겠어요. 잘 다녀오세요.”

“잘 다녀오십시오!”

“형, 절대 다치지 마.”

함께 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는 백리연과는 달리 남궁현과 선우유성은 수련하던 것에 빠져 있어서 그런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갔다 오마.”

백리연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후 두 사람에게 말한 화운은 빠른 걸음으로 숙소를 빠져나갔다.

***

삼 일 후 정무맹에 사신이 도착했다.

천사련으로부터 온 사신이었다.

군사 영호풍은 사신들을 귀빈각에 안내한 후 맹주를 찾아갔다.

“이 시국에 무슨 사신이란 말인가? 혹여 짐작 가는 바가 있는가?”

“죄송합니다.”

영호풍이 고개를 숙였다.

사신이 온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맹주 조극산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로 온 것인지 알아야 대비를 하고 만나볼 것인데 짐작조차 못하고 있으니 만나기도 전부터 주도권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누가 왔던가?”

“철봉황이 왔습니다.”

철봉황 북궁설!

구룡태자 북궁무결보다 먼저 태어난 구룡제 북궁도의 첫 번째 자식이다.

철의 심장을 가진 봉황처럼 아름다운 여인이라 하여 철봉황이라 불리며 따르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룡성이나 사파무림에서의 일이다.

“본맹의 군사이면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네.”

상대가 철봉황이라면 일차적으로 군사 선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된다는 뜻이다.

“그녀가 말하길, 중차대한 문제이니 맹주님께서 직접 들으시는 게 좋을 거라고 합니다.”

“흠, 일부러 그렇게까지 말했다고?”

“예. 우선 만나보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알았네. 여기서 만날 수는 없으니 내가 가야겠구먼.”

“죄송합니다.”

“아니야. 여기 계신 분들께 자리를 옮기라 할 순 없으니 도리가 없잖은가. 그만 가보세.”

조극산은 영호풍을 앞세우고 귀빈각으로 향했다.

맹주전은 오늘도 금강부동에 대한 열기로 뜨겁기만 했다.

정무맹 귀빈각.

붉은 혈전포를 걸친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 위엄찬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철봉황 북궁설.

구룡성 내에 소성주인 구룡태자보다 따르는 이가 더 많을 정도로 수하들을 휘어잡는 위엄이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는 철의 여인이다.

나이는 삼십 세.

꽃 같은 시절이 지나가고, 여인이기 보다는 무인이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살아왔기에 가꾸고 치장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본디 빼어난 미모가 어디 가는 건 아닌 모양인지 위엄찬 가운데에도 시선을 확 잡아끄는 미모가 대단했다.

“정무맹의 맹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수하의 보고에 북궁설의 두 눈에 의아함이 차올랐다.

‘뭐지? 날 부르지 않고 맹주가 직접 왔다고? 정말 맹주전에서 뭔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건가?’

정무맹의 맹주전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된 지 이미 오래다.

- 천사련을 상대할 기이한 대법을 준비하고 있을 거다.

- 오래전에 사라졌던 천고의 합격진을 연구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 정무맹의 고수들이 공동으로 전인을 키우는 것이다.

천사련 내에서는 의견들이 많았으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철봉황 북궁설이 사신으로 오게 된 두 가지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첫 번째 이유는 이제 맹주를 만나 담판을 지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두 번째 이유 따위는 알아볼 필요조차 없게 된다.

“안으로 모셔라.”

북궁설이 외치자 문이 열리더니 조극산이 들어왔다.

북궁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대적 관계라 하나 정무맹의 맹주는 강호무림의 한참 선배였고, 정무맹의 수장이었다.

북궁설은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한 번쯤은 꼭 뵙고 싶었던 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유감입니다.”

“자네가 유감을 표할 게 아니라 나와 같은 연배의 늙은이들이 미안할 일일 것이네. 우리 때문에 젊은 자네들이 강호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이건 진심이다.

철봉황뿐만 아니라 천하의 젊은이들에게 미안했다.

정사대전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천하를 맘껏 누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철봉황 같은 이들은 몸 둔 곳은 달라도 진짜 무인이다.

사파답게 손속이 과할지는 몰라도 교활하지도 잔악무도하지도 않다.

“그럴 날이 또 오겠지요.”

“그래야겠지.”

북궁설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쪽으로 자리를 권하자 조극산 역시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조극산이 자리에 앉자 북궁설도 앉았다.

“말로만 듣던 철봉황의 미모와 위엄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기쁘기 한량없네만, 내가 직접 들어야 할 일이란 게 뭔지부터 들어보도록 하세.”

“급하시군요. 맹주전에 마시다 두고 온 명주라도 있습니까?”

북궁설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런 게 있다면 이리 가져왔겠지. 젊은 친구들과 마시는 술이 훨씬 더 즐거우니 말이네. 허나 맹주 자리가 한가하지가 않다네. 자네에게 들어야 할 말을 듣고 어서 돌아가 봐야 하니 본론부터 들었으면 싶네.”

“알겠습니다. 바로 본론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실은 본련에서 일백 가량의 젊은 무인들을 사로잡았지 뭡니까.”

“······.”

“그런데 사로잡고 나서 물어보니 자신들은 정무맹의 무룡대라고 하는군요.”

“······!”

조극산이 이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자 북궁설이 더욱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다 죽이려고 했는데 자꾸만 정무맹의 무룡대라고 주장하여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것이랍니다. 하여 묻겠습니다. 맹주님, 귀맹에 무룡대가 있는지요? 혹여 이곳에서 멀리 정찰을 나가진 않았는지요?”

철봉황은 여전히 매력적인 미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조극산의 눈엔 차갑게만 보였다.

“군사.”

“예.”

조극산이 부르자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영호풍이 다가와 허리를 조아렸다.

“무룡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형산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한가?”

“정확한 위치는 비천각에서 파악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서 비천각주를, 아니 부각주를 데려오게.”

“존명.”

영호풍이 빠르게 물러갔다.

“정말 무룡대가 있었군요.”

“얼마나 죽었는가?”

조극산이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낭왕께서 연락해 오길 워낙 형편없어서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모조리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정무맹의 무룡대가 맞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위엄찬 모습 그대로 앉아 입으로는 다감하게 말하고 있으니 심리가 냉철하고 노회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구룡제께선 뭐라던가?”

“맹주님의 뜻대로 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조극산이 천하를 다 잃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군사 영호풍이 우문위를 데리고 돌아왔다.

“무룡대는 지금 어디에 있나?”

우문위는 오면서 영호풍에게 대충 들었던지라 이것저것 따지고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형산을 벗어난 지 오래입니다.”

“그들을 사로잡았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나?”

“양측의 경로를 보면 만났을 공산이 큽니다. 허나 아직 그 결과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 삼 일 전에 본맹에서도 지원군이 출발했습니다.”

“지원군?”

“예.”

“누굴 보냈는가?”

“화산파의 화영객께서 다른 칠대문파와 공조하여 팔십여 명을 구성했습니다.”

“흠······.”

조극산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화산파의 화영객이라면 낙화추영장을 익힌 상당한 실력자다.

하지만 모자란 느낌이다.

“어찌 본 맹주에게 보고하지 않은 겐가?”

“천사련의 이동이 무룡대를 노리고 있는지 확실치가 않았고, 지원군보다 한 식경 앞서 신풍대주가 출발했습니다.”

우문위는 그간의 상황을 세심히 분석해 본 결과 신풍대주가 맹의 최고수라는 판단을 내린 상태였다.

그가 구하지 못한다면 맹주가 나서도 힘들다.

게다가 이번 일은 전력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더 중요했다.

“신풍대주가 갔다고? 정말인가?”

“예.”

우문위가 대답한 순간 잔뜩 굳었던 조극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거 일이 재밌게 되었구먼. 이보게 철봉황.”

“예?”

“우리 내기 한번 하세나.”

“······?”

북궁설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조극산을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본 맹주는 그 아이들이 무사히 복귀할 거라는 데에 걸 테니, 자넨 그 반대에 걸게. 어떤가? 아주 재밌는 내기가 될 것 같은데 말이야. 껄껄껄!”

급기야 조극산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북궁설은 그런 조극산을 빤히 바라봤다.

‘진심인 건가?’

신풍대주가 태양존자를 죽였다고 들었다.

강한 자다.

그냥 싸우는 거라면 자신이 이길 수 없는 내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질들을 무사히 구해오는 내기다.

자신이 질 수가 없는 내기인 것이다.

‘대체 신검룡이 어떤 자이기에 이토록 대단한 신임을 받는 것이지?’

북궁설은 내기와 상관없이 그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좋아요, 내기에 응하겠습니다. 대신 무르기 없기입니다. 그리고 내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당연하지. 군사.”

“예. 맹주님.”

“철봉황이 머물 곳을 마련해 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보게 철봉황.”

“예.”

“그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편히 쉬시게. 본 맹주는 공사가 다망하니 그때 보기로 함세. 이거 벌써 부터 그날이 기다려지는구먼. 허허허!”

태평하게 웃으며 물러가는 조극산을 북궁설은 멍청히 지켜봐야만 했다.

***

철봉황 북궁설이 정무맹에 도착하기 하루 전.

귀주성, 광서성 그리고 호남성.

세 개의 성이 맞닿은 곳.

정무맹 무룡대를 사로잡은 낭왕은 무리해서 이동하지 않고 가까운 도시로 가서 커다란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말이 빌린 것이지 대충 금 한 냥 던져주고 며칠 비우라고 했다.

인질로 잡은 무룡대는 객잔에 모아두었다.

총 백여 명 중 일곱 명인 소녀들은 이층 객방 두 곳에 나누어 가두고, 나머지 남자들은 객잔 일층에 모아놓고 철저히 감시했다.

이번에 동원된 숫자가 육백이 넘었던 지라 객잔 주위로 세 겹의 감시망을 펼쳐놓았다.

그 같은 광경을 두 개의 골목 너머 전각의 지붕 위에서 살펴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화운이다.

화운은 기감을 풀어 객잔 안의 상황을 눈으로 들여다보듯 파악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기습을 할까? 아니면 그냥 치고 들어갈까?”

살짝 고민이다.

금강부동을 절정 수준으로 익히고 있다면 아주 손쉬울 것이다.

금강부동은 공간을 여의하는 것이니 공간을 열고 이층 객방으로 들어가 여자들부터 빼내면 될 테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화운은 머릿속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그렸다.

그러다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걔들이 뭐가 이쁘다고 골머리를 앓아? 이번 싸움은 금강부동을 시험해 보기 위해선데!”

화운은 지붕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쿠웅!

객잔 앞 대로에 유성이 떨어진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신풍대주 화운의 강림을 알리는 굉음이었다.

객잔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천사련의 무인들은 갑자기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린 화운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유성처럼 떨어져 내린 모습만 봐도 자신들이 대적할 수 없는 고수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기에 객잔 안에서 수뇌부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뿐 정체조차 묻지 않고 화운의 눈치만 봤다.

“누구시오?”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낭왕이 육지의 수장들과 함께 객잔 밖으로 나왔다.

“신풍대 대주요.”

“······!”

화운이 정체를 밝히자 낭왕은 물론이고 육지의 수장들은 눈을 치뜨며 경계했다.

단신으로 태양존자를 쓰러트려버린 고수이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인질들을 구하려고 온 것이냐?”

낭왕이 소리쳐 물었다.

“맞는데, 그전에 내 볼일부터 봤으면 합니다.”

“어림없다.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나 인질들은 완벽하게 우리 수중에 있다. 네놈이 검만 뽑아도 목이 잘릴 것이다.”

낭왕이 윽박지른 순간이다.

스릉!

화운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태연하다 못해 진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몇 명이나 잘렸습니까?”

“이놈이!”

인질극은 기세싸움이다.

그렇게 생각한 낭왕은 객잔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낭왕이 소리치기 시작한 순간 화운에게서 강력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낭왕은 마저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황급히 구환도를 휘둘러 막았다.

콰앙!

낭왕의 육중한 체구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전신의 뼈마디가 일순간에 강타당한 느낌에 낭왕은 낭패스런 얼굴로 화운을 쳐다봤다.

순간 그의 두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화운의 앞에 수십 개의 강환이 둥실 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다 날리면 제대로 살아남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물론 인질들도 꽤 다칠 거고. 그건 나나 그쪽이나 둘 다 원하는 건 아닐 겁니다. 그치요?”

낭왕은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화운만 바라봤다.

화운은 검을 뻗었다.

그 행동에 낭왕 등이 깜짝 놀라 움찔 했다.

하지만 강환들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화운이 내민 검으로 회수되어 사라졌다.

화운은 검을 집어넣었다.

“당신들도 자꾸 보니까 없던 정도 생기려고 하네.”

히죽 웃은 화운은 낭왕의 어깨너머 객잔을 응시하며 크게 외쳤다.

“거기 객잔에 있는 십이흉들! 먼저 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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