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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18화 (118/207)

#118. 사황이 그리 무섭냐고요?

“말해봐라. 너도 늙은 육신을 던져버리고 젊은 육체로 갈아입은 것이냐?”

적성대도황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그러나 화운을 응시하는 눈빛과 기도는 매우 강렬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화운의 속을 들여다보려 했고, 태산 같은 기도로 화운을 찍어 눌렀다.

바로 옆에서 구룡제마저 합류하여 절대자의 기도로 화운을 압박했다.

절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자라면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러나 화운은 그 속에서 태연하게 서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까지 했다.

“반로환동한 것이냐고 물은 거라면 아니라고 대답해드리겠습니다. 한데 누가 반로환동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지요?”

‘너도’라고 물었으니 누군가는 있다는 뜻일 터, 화운이 놓치지 않고 물었다.

“백 년 전의 천마가 젊은 몸뚱이로 나타났다며?”

“아! 천마를 가리킨 것이었습니까, 다행입니다. 사황과 천마 같은 고수가 또 나타난 것인 줄 알고 살짝 긴장했습니다.”

“그들이 그리 무섭더냐?”

적성대도황의 물음에 화운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을 번갈아 본 후 천천히 말했다.

“사황이 그리 무섭냐고요? 두 분 같은 고수 열 명은 있어야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말로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마치 우리 두 사람의 무위를 안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사실 알지 못한다.

어찌 속속들이 알겠는가.

하지만 한 가지 잘 알고 있는 바가 있다.

이들 두 절대자들은 화운이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삶일 때 사황에게 철저히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하니 이들의 무위는 자신과 비슷한 정도임에 틀림없다.

그건 곧 자신이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결코 자신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경신공부에 관한한 그만한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금강부동까지 어느 정도 익히고 있어 눈에 닿는 모든 공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황 정도가 아니면 옷자락도 건들지 못한다.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에게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 한 건 예우하느라 한 말일 뿐이었다.

허나 그 같은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

“제가 두 분의 무위를 어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본맹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화운은 태연히 거짓말을 했고,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은 그런 화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 눈빛엔 사황에 대한 경계심 보다는 화운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황의 존재는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화운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천사련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존재가.

“아직 사황의 무서움이 피부로 와 닿지 않은 모양이군요.”

“맞다. 사황과 천마 보다는 우리 눈앞에 있는 널 어떻게 하는 게 좋을 지 그게 더 고민거리다. 말해봐라. 우리가 널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적성대도황이 말했다.

여전히 말투는 온화했다.

하지만 그 말투에 실려 있는 뜻은 허투루 넘길 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널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래서 화운은 살짝 부아가 치밀었다.

“고민 할 거 있습니까? 제가 눈앞에 있고 여기는 천사련이거늘.”

화운의 기도가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묵묵히 자신을 짓누르는 기운을 막고만 있었는데, 그 기운들을 밀어내고 두 사람을 향해 밀어붙였다.

적성대도황의 눈빛이 달라졌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구룡제는 눈에 띄는 반응을 보이진 않았으나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중단전을 열었구나!”

구룡제의 말에 적성대도황이 미처 몰랐다는 표정을 보였다.

대전에 잔뜩 도열하고 있던 천사련의 고수들도 깜짝 놀란 얼굴로 화운을 바라봤다.

“그뿐이겠습니까. 무당검성 어르신께 천지간의 도리를 배웠습니다. 하여 써도 써도 마르지 않은 공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건방지게 말하면 두 분을 상대로 죽지 않을 자신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 천사련을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쓸어버릴 자신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인지 대전에 도열하고 있는 천사련의 고수들이 살기를 드높였다.

허나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은 다른 이유로 놀랐다.

“검성께 검을 사사했단 말이냐? 검마가 스승이 아니고?”

적성대도황이 빠르게 물었다.

무당검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모양인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검성 어르신에 관한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화운이 자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적성대도황이 버럭 소리쳤다.

“어쭙잖은 연기로 우릴 능멸할 참이냐?”

“표 났습니까?”

화운이 헤벌쭉 웃었다.

적성대도황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검성께 배워서 그 나이에 그리 강해진 것이었군.”

“잠깐 인연이 있어 등선하시기 전에 뵐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지금 보다 더 강해져서 두 분을 뵈러 올 일도 없었을 텐데, 그게 참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등선하셨다고?”

“예. 그래서 사황과 천마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 뿐입니다. 그런데도 절 죽일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리고 구룡제께서는 제가 아드님을 두들긴 게 못 마땅하신가 본데, 죽이지 않은 걸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철봉황의 무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도록 도움까지 주었는데, 대체 뭐가 그리 못마땅하신 겁니까?”

화운이 기분 나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적성대도황이 불쑥 찌르듯 말했다.

“태양존자를 죽인 건 어째서 빼먹는 것이냐? 태양존자는 여기 구룡제의 지기였다.”

“제가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소림이 피에 잠겼겠지요.”

화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소림사뿐이겠는가, 그대로 북상해서 화산까지 칠 계획이었다.

소림이 피바다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태양존자가 섬서로 향한다는 게 알려지면 정무맹에서는 화산이라도 지키기 위해 지원군을 보내려 할 터, 그걸 중간에 차단해서 각개격파해 버릴 계획이었다.

그래서 적성대도황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여튼 그 일로 그렇게 졸렬하게 하셨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이제 어쩌실 겁니까?”

화운이 구룡제를 쳐다봤다.

자못 도전적인 자세였다.

그래서일까.

구룡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자 거대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와 대전을 짓눌렀다.

“본좌가 널 죽이지 못한다는 걸 증명해라. 그리하면 태양존자도 이해할 것이다.”

구룡제는 화운을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건 지기의 죽음을 그냥 방치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스릉!

검을 뽑았다.

구룡보검이라 일컬어지는 신검으로 구룡성 성주의 신물이다.

용의 머리 모양인 손잡이와 아홉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는 검집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고, 보통의 검보다 한 자(30cm)는 더 길어 보이는 검신은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새하얀 날이었다.

스응!

화운 역시 검을 뽑았다.

이무기의 비늘로 만들어진 묵빛의 날이 요사스런 기세를 뽐냈다.

두 사람은 이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서로를 응시하는 얼굴엔 긴장도 분노도 그리고 살기도 없었다.

그런 감정으로 무학을 펼치기에는 두 사람의 무경이 너무 높았다.

구룡제가 검을 뻗었다.

그의 검신에서 새하얀 순백의 강기가 빛처럼 폭사했다.

광검(光劍)!

빛의 검이다.

구룡제가 익힌 북두제왕검(北斗帝王劍)의 궁극이다.

강기를 빛처럼 발휘하는 것!

화운은 광검을 상대한 적이 있다.

구룡태자 북궁무결.

설익은 광검이었으나 당시엔 화운을 수십 번 죽이기에 충분했다.

콰앙!

일직선으로 폭사한 새하얀 빛의 강기가 화운의 바로 앞에서 막혔다.

새파란 강기를 잔뜩 머금은 화운의 묵검.

구룡제의 광검은 화운이 발휘한 검멸에 막혔다.

강기와 강기의 격돌엔 필연적으로 폭발이 일어난다.

강기 자체가 모든 걸 부숴버리는 내력의 집약체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절대지경의 두 고수가 격돌했다.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졌다.

두 사람이 격돌하고 있는 대전의 사방 벽이 바깥으로 터져나갔고, 도열하고 있던 천사련의 고수들은 그 충격파에 휩쓸리지 않고자 놀란 송사리 떼처럼 사방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적성대도황 만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화운이 자신의 일검을 막아냈음에도 구룡제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쭉 뻗었던 검을 거둬들인 다음 수평으로 휘둘렀다.

결코 빠르다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으나 화운에게로 날아드는 새하얀 강기는 빛, 그 자체였다.

화운은 검멸의 강기를 잔뜩 일으킨 검을 들어 막았다.

콰앙!

구룡제의 광검은 다시 막혔다.

하지만 이때부터였다.

빛의 강기가 마치 채찍처럼 천지사방을 회오리치며 그 중심의 화운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화운은 정신이 없었다.

수십 개의 빛줄기가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채찍이 되어 사방에서 몰아치니 사혼구검의 방어초식인 사혼망을 펼쳐 막는 수밖에 없었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두 사람의 격돌로 인한 충격파에 지붕이 박살이 나서 날아가고 전각을 받치던 기둥들이 가루가 되었다.

화운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몰아치는 새하얀 빛줄기가 갈수록 사나워졌다.

거대한 기운이 사방에서 옥죄어와 운신하지 못하도록 압박도 했다.

‘이런 씨이!’

화운은 화가 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가 아닌데 구룡제의 광검을 미친 듯이 받아내야 하기에 다른 것은 아예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검환을 날리기는커녕 공공무영비를 발휘할 수도 없었고, 금강부동 역시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구룡제의 광검이 워낙 강력하고 빨라서 찰나의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얍삽한 노인네 같으니! 구룡제는 개뿔! 무게는 혼자 다 잡더니!’

화운은 구룡제를 욕했다.

선공을 가한 구룡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공격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걸.

화운이 선공을 하여 검멸을 끊임없이 날려댄다면 구룡제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화운이 날리는 검환만 막아야 했을 것이다.

‘방법이 없는 게 아냐!’

화운은 사혼망을 반복적으로 발휘하여 구룡제의 광검을 막아내는 한편 왼손으로는 중단전의 기운을 운행했다.

무당검성에게 배운 건곤무상을 발휘한 것이다.

구룡제의 거대한 기운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으나 그 속애도 결은 존재하는 법, 화운은 그 결을 찾아 더 바깥의 기운을 끌어당겼다.

숨 돌릴 틈 없는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천지사방의 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화운의 건곤무상에 이끌려온 대자연의 기운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여유 있게 광검을 발휘하던 구룡제의 얼굴에 살짝 경계심이 떠오른 찰나.

천지사방의 기운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압축되었다.

“······!”

구룡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천지사방의 기운이 광검의 속도를 늦춰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화운은 하단전의 기운을 잔뜩 끌어올려 일시에 내뿜었다.

콰-앙!

새하얀 빛의 광검이, 화운을 옥죄고 있던 구룡제의 거대한 기운이 그리고 그 바깥에서 일시에 압축된 대자연의 기운까지 한꺼번에 터졌다.

시종일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지켜보던 적성대도황이 깜짝 놀라 강기의 막을 펼쳐 막아야 할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때.

화운이 공간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모습을 감추더니 십여 장 뒤에서 나타났다.

광검의 간격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제 내 차례입니다.”

이를 가는 화운의 검에 이백여 개에 달하는 검환이 빽빽하게 발현되었다.

화운이 발휘할 수 있는 검멸의 극한이었다.

화운은 이백여 개에 달하는 검환을 모조리 날릴 심산이었다.

용케 구룡제가 막아낸다면 곧바로 이격, 삼격, 사격····· 쉬지 않고 퍼부을 것이다.

그가 피를 토하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쓰러질 때까지 융단폭격을 가해버릴 심산이었다.

구룡제의 검에 다시 새하얀 빛의 강기가 불쑥 솟구친 것을 본 화운은 이백여 개에 달하는 검환을 한꺼번에 날렸다.

지금 화운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파괴력이 강한 것이었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

구룡제의 바로 앞에서 무수한 폭발이 일어났다.

화운이 날린 검멸의 검환 이백여 개가 터진 것이다.

하지만 구룡제를 어쩌지는 못했다.

새하얀 광검이 사막의 거대한 용권풍 같은 빛의 회오리를 일으켜 그의 전신을 완벽히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래, 막았지? 막아야 정상이지!’

화운은 멈추지 않고 검멸의 검환을 다시 날렸다.

이백여 개의 검환이 또다시 날아간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검멸을 발휘하자마자 화운이 좌수를 뻗었다.

건곤무상의 발휘였다.

주위의 천기와 지기가 하나로 뭉쳐 막대한 기력을 만들어 하늘로 솟구치더니 거대한 유성처럼 구룡제의 머리위를 직격했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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