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신의 그릇
이백여 개의 검환이 일제히 터져나가고, 곧바로 건곤무상의 막대한 기력이 구룡제의 머리 바로 위를 직격했음에도 화운은 결과를 확인도 않고 검을 휘둘렀다.
“절대검력! 가라!”
화운은 기세등등했다.
아직은 설익은 절대검력이지만 보는 눈이 있는 자라면 놀라기에 충분하리라.
실지로 구룡제는 코앞으로 밀려오는 검력을 보고는 안색을 굳혔다.
공간을 쪼개고 밀려오는 검력에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쾅!
절대검력이 막혔다.
화운은 실망하지 않고 다시 검멸을 발휘했다.
이백여 개의 검환을 무더기로 날리자마자 다시 검을 휘둘렀다.
새파란 강기를 머금은 검신이 공간속으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삼십여 장.
그런데 구룡제의 코앞에서 강기를 잔뜩 머금은 검이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구룡제는 새하얀 빛의 광검을 휘둘러 어렵지 않게 막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적잖게 놀랐다.
바로 이때 이백여 개의 검환이 날아들었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
천둥같은 폭발음이 끊이지 않고 터지는 중에 허공에서 막대한 기력이 유성처럼 떨어졌다.
콰앙!
광검을 발휘하여 막고 있는 구룡제의 모습은 태연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검멸과 건곤무상 그리고 절대검력.
거기에 공간을 건너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검강까지.
어느 하나라도 천하에 우뚝 서기에 모자라지 않거늘 그 모두를 놀라운 수준으로 발휘하고 있었다.
‘검성이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게다!’
실로 경악스런 일이다.
한 사람이 그것도 저 나이 대에.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가 아는 무학의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눈앞에 버젓이 있었고, 그 말도 안 되는 공격을 자신에게 퍼붓고 있었다.
놀란 건 구룡제만이 아니다.
적성대도황 역시 실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화운이 쏟아내고 있는 검학을 지켜보고 있었다.
절대의 반열에 오른 두 사람이 이러할 진데 천사련의 일반 무인들의 충격이야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공전절후! 전무후무!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검학이었다.
“그래, 가자 가! 끝까지 가보자!”
화운은 신이 났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게 얼마만이던가.
천하의 구룡제를 상대로 자신 안의 모든 힘을 뿜어내고 있는 희열에 푹 빠졌다.
그야말로 자신의 힘을 미친 듯이 쏟아냈다.
마음속의 뭔가가 폭발하고 만 것만 같았으나 멈추고 싶지가 않았다.
검멸을 발휘하여 이백여 개에 달하는 검환을 날리고, 건곤무상을 발휘하여 천기와 지기가 합쳐진 거력을 일시에 폭격하고, 혼신의 집중력을 발휘한 절대검력을 펼쳤다.
구룡제는 여전히 굳건했지만, 승부는 이미 화운의 관심 밖이었다.
검멸과 건곤무상을 발휘하여 구룡제의 반격을 차단하고, 곧바로 펼치는 절대검력에 혼신의 집중을 다했다.
‘모든 게 내 의지에 달렸다. 내 지력이, 내 정신력이 시공의 경계 너머까지 볼 수 있다면, 절대검력은 무한의 검력이 될 거야!’
구룡제를 향해 무차별적인 맹공을 퍼붓는 와중에도 절대검력의 위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점점 더 강력한 위력을 드러내고 있는 절대검력의 가능성에 비해 화운의 정신력이 모자라다는 것이었다.
화운은 극한의 집중 속에서도 길을 찾으려 궁리했다.
그가 받은 가르침이 빠르게 스쳐지나갔지만, 어느 것에서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무당검성의 가르침도, 검마의 가르침도 그리고 정무맹의 원로 고수들에게서도.
지금 화운이 간절히 원하는 길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에 화운의 궁리가 더욱 과거의 기억을 더듬거린 순간.
아이야, 잊지 말거라.
무극(武極)에 이르러서야 너의 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초월적인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
제천마존이 남긴 것이었다.
그리고 제천마존의 혼백이 한 말도 있다.
무극에 이르러 시공안을 깨친다면 수백 년의 시공 너머를 내다볼 수 있느니라.
‘······무극!’
무극이라는 경지가 화운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순간 화운은 구룡제를 향해 퍼붓던 맹공을 우뚝 멈추었다.
화운의 공세가 멈춰지자 구룡제의 광검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빛의 강기가 두 사람의 간격을 삽시에 꿰뚫고 화운의 코앞에 이르렀다.
“······!”
구룡제는 의아했다.
화운의 모습은 모든 것을 다 소진해 버린 자의 마지막이 아니라 뭔가 심득의 문 앞에 선 자의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구룡제는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화운을 죽여 천사련의 최고 걸림돌을 제거할 것인가, 이대로 살려놓아 천마와 사황에 대비할 것인가.
그의 고민은 잠깐 사이에 끝났다.
한 사람이 화운의 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로 북궁설이었다.
철봉황 북궁설이 나타나 화운의 옆에서 구룡제를 똑바로 응시했다.
구룡제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자신의 딸 북궁설을 바라보다 결국 검을 거둬들였다.
바로 이때 화운이 입을 열었다.
“무극이 뭡니까?”
구룡제는 처음으로 표정이라는 걸 얼굴에 드러냈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허무맹랑한 놈을 봤나!’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곧 화운의 옆에 서 있는 북궁설을 한 번 더 보고는 입을 열었다.
“정신력이 궁극에 달하는 경지다. 신명도라고 한다.”
“어떻게 수련 합니까?”
“방법 따위는 없다.”
“예?”
“신명도라 명명한 건 정신을 신의 그릇으로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신력이 신에 근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금을 통틀어 누구도 가보지 못한 경지이거늘 누가 감히 이렇게 저렇게 수련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구룡제의 설명이 끝났다.
화운은 절대검력이 무한의 검력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신력이 신명도 즉 신에 근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무학의 깊이는 끝도 없어 바다와 같다고 한다.
화운은 그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정파는 정신수양을 더 중시한다더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군.”
적성대도황이 주위를 둘러보며 한 마디 했다.
화운은 그를 따라 주위를 둘러봤다.
반경 삼십 장 이내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건물들이 모조리 부서지고 그야말로 폐허로 변해 버렸다.
“죄송합니다.”
화운은 자신이 폭주했음을 사과했다.
구룡제는 들은 체도 않고 북궁설을 향해 말했다.
“백운각으로 데려가거라.”
“예.”
공손히 대답한 북궁설이 화운을 잡아끌었다.
“가자.”
화운은 구룡제와 적성대도황을 향해 정중히 포권한 후 북궁설을 따라 백운각으로 물러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자 적성대도황이 구룡제 곁으로 다가왔다.
“어떻던가?”
“천마와 사황을 막아낸다 하더라도 저 놈을 지금 죽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것 같네.”
“역시 그렇군.”
두 사람은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흐를수록 화운을 죽일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화운을 죽일 명분이 없었다.
사파라 하더라도 절대의 반열에서 수만의 사파인들을 거느린 존재이기에 반드시 위엄이 지켜져야 했다.
그리고 위엄은 위에서 내리누르는 힘이 아니라 아래에서 따를 수밖에 없는 절대적 신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
“미안하다.”
백운각으로 향하는 길에 북궁설이 사과했다.
그녀는 낭왕을 공격한 죄로 연공실에서 꼼짝 말라는 구룡제의 근신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사신단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심복 적충을 통해 들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화운과 구룡제의 충돌로 전각들이 마구 터지고 부서지는 변고가 벌어지자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정과 사는 물과 기름이라는데, 이렇게라도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다면 뭐, 잘 된 거지요.”
“그래, 이 정도에서 끝난 것도 다행이다.”
화운이 개의치 않아하자 북궁설은 미안한 중에도 안도할 수 있었다.
“사신단은 어디에 있습니까?”
“누구랑 갔는데?”
“마라뇌불이랑 회담을 하기 위해 갔습니다.”
“그럼 사밀각에 있겠다. 그리로 가게?”
“아뇨. 전 좀 생각할게 있어서 혼자 있고 싶습니다.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루를 쫄쫄 굶었습니다. 마라뇌불 그 인간 하는 짓을 보니 아무것도 챙겨주지 않았을 게 뻔하니 지금도 굶고 있을 겁니다.”
“알겠다. 내가 직접 가서 챙겨주겠다. 또 필요한 게 있어?”
“그거면 됐습니다.”
“좋아. 그럼 나중에 찾아갈게. 적충!”
“예.”
“이 녀석 백운각으로 안내하고, 먹을 것 좀 넣어준 다음 아무도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해.”
“존명.”
“난 사밀각으로 갈 테니까, 적충을 따라가.”
“감사합니다.”
북궁설은 사밀각으로 달려갔고, 화운은 적충의 안내를 받아 백운각으로 향했다.
적충은 화운이 정무맹에서 북궁설이 무아지경에 들었을 때 배려해준 것을 고마워하고 있었다.
하여 백운각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제법 고급스런 요리와 술로 한 상 차려주었다.
화운은 하루만에 식사를 한 후 혼자 사색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는 무극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정신력이 궁극에 달한 경지.
누구도 올라서지 못하여 수련하는 방법조차 알려지지 않은 전인미답의 경지.
‘제천마존이 무극을 언급했다는 건 무극에 도달했거나 근접했다는 걸 거야.’
화운은 무극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신력의 궁극.
정신력의 극대화.
‘정신력의 한계를 초월해야······, 인지의 감각을 초월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
연혼팔검에서 말하는 인지의 감각을 초월하는 눈.
그것 역시 인간의 정신력을 초월하는 것이다.
큰 의미로 보면 정신력의 극대화인 셈이다.
제천마존이 그랬다.
무극에 이르러 시공안을 깨친다면 수백 년의 시공 너머를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시공안과 인지의 감각을 초월하는 눈.
지향하는 바가 매우 닮은 느낌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잇던 화운은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연혼팔검도 그렇고, 금강부동, 건곤무상 그리고 구룡제의 빛의 검도 그래. 다들······ 신을 향하고 있어.”
정확히는 신들의 신력을 따르려 한다.
“인간의 무학은 궁극에 이르면 결국 신들의 신력을 향한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럴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의 무학 자체가 신들에게서 전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의아한 게 있다.
왜 신들은 천마를 내버려두는 것인가?
천마가 마신 아수라의 힘을······!
‘맞아! 천마는 천마지 아수라가 아냐. 그럼 천마는 아수라의 힘을 얻으려는 걸까, 아니면 아수라를 인간들의 세상으로 현신시키려는 걸까? 그리고 신들이 천마를 그냥 두고 있는 이유는······ 혹시?’
그러고 보니 신은 인간의 몸을 통해 자신의 힘을 행사하지 직접 강림하지는 않는다.
신내림 받은 무당들이 그렇고, 악신을 모시는 술사들이 그렇다.
모두들 신력의 일부를 얻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몸이 신력을 완전히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럼 직접 강림하면 될 건데, 직접 인간들의 세상으로 강림해서······ 엇!”
- 죽은 자들을 지배하는 염왕도 이승엔 입김조차 불어넣지 못하거늘 이미 죽은 자에 불과한 노부가 무슨 해를 끼칠 수 있겠느냐!
제천마존의 혼백이 했던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신은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자신들의 힘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신력 일부만을 인간들의 몸을 빌어 발휘하는 것이고, 그 정도의 힘으로는 천마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어서 내버려두고 있는 거라고? 천마는 그걸 알기에 마신 아수라의 힘을 얻어 자신의 힘과 융합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천마가 하고 싶은 건?”
의문도 남아 있지만 뭔가 아귀가 맞아가는 느낌이다.
결국 천마든 마신 아수라든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인간들이 막아야 한다.
“나네. 결국 나야. 절대검력을 무한의 검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서 빨리 무극, 즉 정신력의 궁극을 이뤄야 한다는 거네. 하! 진짜 지금까지 뭔 고민을 한 거냐. 결국은 더 미친 듯이 강해져서 천마를 막아야 하는 것이었구만.”
화운은 인상을 쓰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제천마존의 비동에 들어간 이후로 정말 정신없이 달려 여기까지 왔다.
경천보패의 시간을 돌리는 힘을 빌어 정말 엄청나게 강해졌는데, 아직도 많이 남은 모양이다.
사황과 천마.
그 두 괴물들을 막는 게 어찌 이리도 힘들단 말인가.
“이백 년 가까이 산 괴물들이다 이건가?”
한 차례 투덜거린 화운은 의자에서 일어나 침상으로 갔다.
침상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고 깊은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 시진 후.
남궁검가주 등이 돌아왔다.
“무사한 것이냐?”
“예.”
선우세가주가 화운을 보자마자 물었고, 모두들 화운의 위아래를 훑어보기에 바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모습에 다들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 보십시오. 상처 하나 없을 거라고 했죠? 대주 형님은 지는 싸움은 시작도 안 할 거라니까요.”
남궁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막 들어설 때만 해도 염려 가득한 얼굴이더니, 지금은 살짝 으쓱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다들 웃음을 지었다.
사밀각에서도 화운과 구룡제의 격돌을 볼 수 있었다.
구룡제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금방이라도 화운이 피를 뿌리고 쓰러질 것 같아 모두들 긴장하면서 지켜봤다.
다행히 화운과 구룡제 둘 다 무사한 가운데 끝이 났지만, 화운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조차 마냥 기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격돌이었다.
“회담은 잘 되었습니까?”
화운이 물었다.
남궁검가주가 의자를 끌어 당겨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준비해 놓았더구나. 우리가 생각했던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아 세부적인 부분만 조율하면 되었다. 다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문제요?”
“그래.”
“그게 뭐기에 그리 무거운 얼굴을 하시는 겁니까?”
“천사련은 천마와 천종천마교를 먼저 쳐버리자고 한다.”
“예에?”
화운의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지금껏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