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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40화 (140/207)

#140. 천마를 쳐부수러 가야죠

구룡제가 검을 뽑았다.

구룡성 성주의 신물인 구룡보검이다.

북두제왕검(北斗帝王劍)!

구룡제의 성명절학이다.

광검(光劍)!

빛의 검이다.

강기를 빛처럼 발휘하는 광검이야말로 북두제왕검의 궁극이다.

화운은 구룡제의 무공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었고, 직접 부딪쳐보기도 했다.

구룡제가 선공하여 광검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숨 돌릴 틈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구룡제가 선공을 하지 않았다.

화운은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화운의 강함을 알고 싶으니 화운의 공격을 받을 생각인 것이다.

이전의 삶일 땐 구룡제 자신이 화운을 죽일 수 없다는 걸 화운에게 증명하라고 했었다. 그래서 선공과 함께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던 것이고.

화운도 검을 뽑았다.

묵빛의 검신이 햇살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사이는 대략 백여 보다.

둘 다 상대를 공격하는 데에 제약이 없는 거리다.

뽑아든 검을 천천히 들어 올린 화운은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뇌력을 발휘하여 닿을 수 있는 모든 기운과 감응했다.

그리고는 일식일초의 절대검력을 펼쳤다.

화아아아아악!

바다조차 갈라버린 검력이 일시에 들이치자 구룡제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놀란 것이다.

그러나 놀란 와중에도 그의 검은 광검을 발휘하여 극강의 방어막을 펼쳤다.

콰-앙!

백만 근의 바위를 날려버리려면 얼마나 강한 힘이 필요할까?

인간의 능력으로는 측량불가다.

그러나 백만 근의 힘 보다 월등히 더 강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절대지경에 든 고수를 날려버리려면 얼마나 강한 힘이 필요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화운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

지금 막 구룡제를 날려버렸으니까.

자신이 해놓고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지 잠시 멍청히 서 있던 화운은 수십 장을 날아가 땅바닥에 나뒹굴어버린 구룡제를 향해 다가갔다.

구룡제는 처참하게 널브러진 몸으로 숨만 이어가고 있었다.

화운은 구룡제의 몸을 똑바로 눕혀주었다.

그러자 구룡제의 눈길이 화운에게로 향했다.

고통도, 분노도 아닌 그저 놀랍다는 눈길이었다.

화운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구룡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 정도면 사황과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천마에겐 아직 멀었구요.”

구룡제는 대꾸하지 않았다.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전신이 처참하게 망가져버린 상태였다. 혈도들이 터져버린 건 물론이고 모든 신경들조차 가닥가닥 끊어져버려 고통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 상태임에도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술을 씰룩거렸다.

화운은 기운을 일으켜 구룡제의 머리에 주입했다.

일순 구룡제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훌륭······하다.”

구룡제가 간신히 내뱉은 말이었다.

화운은 복잡한 얼굴로 구룡제를 바라봤고, 구룡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곁에 와 있던 검마는 숨을 거둔 구룡제를 향해 두 손 모아 읍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화운이 검마를 향해 말했다.

“스승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뭐가 말이냐?”

“제가 혼자 짊어질 짐이 아니라는 거요.”

“······!”

“제가 강해진만큼 사황도 더 강해졌겠지요.”

“어쩌려고?”

“전부요! 저랑 사황, 거기에 극강 이상의 고수들이 전부 달려든다면 천마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결단을 내린 화운의 심장이 그 자리에서 터졌다.

***

기암괴봉.

다시 시작한 화운은 기암괴봉 위로 올라갔다.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사황은 의외라는 얼굴로 쳐다봤다.

“함께 가시죠.”

“어딜?”

“천마한테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이로구나!”

“아뇨!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대로는 어차피 천마를 능가하진 못해요. 우리가 강해진 만큼 그도 강해질 것이라 결국은 그를 쫓아갈 뿐입니다. 그러니 천마가 더 강해지기 전에 천하무림에 존재하는 극강 이상인 고수들이 전부 달려들어 보자는 겁니다.”

“어림없다!”

“안 되면 다시 시작하면 되잖습니까!”

마지막 말에 사황이 흔들렸다.

화운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시도를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다시 시작하자는 겁니다.”

사황의 눈길이 화운의 몸을 살폈다.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 살피려는 것이다.

그건 곧 화운의 말에 어느 정도 넘어갔다는 뜻이었다.

“눈으로 본다고 파악되겠습니까. 예전에 천종천마교에서 천마랑 함께 싸웠을 때 있지요. 그때의 영감님만큼 강해졌습니다.”

과거의 자신만큼 강해졌다는 말에 사황은 적잖이 놀랐다.

어째 자신에게 더 위험한 놈이 되는 거 아니냐는 불길한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그래도 이놈은 인간이니까.’

놀람을 그렇게 떨쳐낸 사황은 가만히 생각해 봤다.

과거의 자신만큼 강해진 화운과 그 때보다 조금은 더 강해진 자신이 전력으로 합격을 한다면, 그렇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천마가 자신의 무공과 마신 아수라의 권능을 융합했다고는 하지만, 마신 아수라가 된 건 아니니까.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황은 화운을 바라봤다.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자신처럼 불운한 놈이다.

자신은 무해곡의 비사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했고, 이놈은 천마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사황이 물었다.

무척 누그러진 음성이었다.

“천사련으로 가 주십시오. 전 정무맹으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섬서 화산에서 만나는 겁니다.”

“그런 다음엔?”

“천마를 쳐부수러 가야죠.”

“좋다. 거기까진 해주마. 대신 두 가지 약속을 하거라.”

“첫 번짼 유사시 시간을 되돌리라는 것일 테고, 두 번짼 뭡니까?”

“당돌한 놈 같으니! 오냐, 오냐 하니까 함부로 까부는 구나!”

“그럼 시간을 되돌리지 말라는 겁니까?”

“닥치고, 누굴 구하려 들지 말고 천마를 없애는 데에 집중하라는 거다. 혹여 잔정에 얽매여 아는 누군가를 구한답시고 한눈을 판다면 니놈 머리통부터 부숴버리겠다.”

“약속드립니다.”

사황의 말이 끝나자마자 더 이상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하는 화운.

사황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알아들었으면 꺼져라! 꼴도 보기 싫다!”

“보기 싫어도 섬서에서는 뵙죠.”

“그래도!”

“물러갑니다.”

사황이 호통을 치자 잽싸게 몸을 날리는 화운.

순식간에 멀어지는 화운에게서 당부의 말이 날아왔다.

“한 사람의 힘이라도 모아야하니 천사려에서 함부로 죽이지 마십시오!”

화운의 말이 들려온 순간 사황에게서 분노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몰아쳐갔다.

내력의 결정체인 강기를 강환 이상의 힘으로 중첩하고 중첩하여 거대한 강기의 파도를 만들어낸 것이 전륜멸천파였다.

하지만 예전의 그 시뻘건 빛이었던 전륜멸천파와는 다르게 검붉은 빛을 발했다.

전륜멸천파의 근간이 되는 전륜멸천대공을 순수함에 가깝도록 정제한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파괴력을 일으켰다.

허나 화운은 순식간에 사라져 눈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꼴같잖은 놈 같으니!”

***

정무맹.

쉬지 않고 달려와 정무맹 상공에 도착한 화운은 전신의 기운을 개방함과 동시에 그가 닿을 수 있는 천지간의 기운을 모조리 움직였다.

그 거대한 기의 유동에 정무맹 전체가 소란스러워지며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밖으로 튀어나와 화운을 쳐다봤다.

“신풍대주잖아!”

“신풍대주가 저렇게 강하다고?”

“맞아! 틀림없어. 신풍대주를 본 적이 있어!”

“아니야, 말도 안 돼. 저 정도면 절대지경 이상일 것 같아!”

“맙소사! 저런 강함이라니!”

정무맹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시선을 잡아끈 화운은 보라는 듯이 절대검력을 펼쳤다.

콰-웅!

멀리 야산 하나가 박살이 나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이 놀라운 신위에 정무맹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화운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갔다.

정무맹 맹주전 앞마당이었다.

맹주와 군사 영호풍이 기함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그, 그렇구나.”

맹주 조극산 조차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사방에서 맹의 원로들을 비롯한 고수들이 크게 놀란 얼굴로 경신술을 발휘해가며 달려왔다.

그렇게 모인 숫자가 오십이 넘었다.

맹주전 담장 밖에는 수백의 숫자가 모여들었고,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화운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원로들과 맹의 고수들을 둘러본 후 정중히 포권했다.

“제 나이에 이만큼 강해진다는 게 납득이 됩니까?”

화운이 물음을 던졌다.

힘이 느껴지면서도 조금은 담담한 목소리였다.

원로들과 고수들은 서로를 돌아본 후 화운을 다시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무슨 소란이냐, 뭔 일이냐며 호통을 치겠지만, 좀 전에 보여준 화운의 신위가 워낙 엄청나서 경악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화운은 그런 사람들을 둘러보며 더 놀랄 이야기를 던졌다.

“지금 전 중단전까지 연 상태입니다.”

잠잠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것 같은 파문이 일어났다.

중단전을 열었다는 건 단지 두 개의 단전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기공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단전을 열게 되면 기본적으로 써도써도 마르지 않는 공력을 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됩니다. 다시 말해 제가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정 싸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니놈을 맹주로 추대라도 해달라는 것이냐?”

화산 장로 이심환이 호통을 쳤다.

지금의 그는 화운이 금강부동을 개방하기 전이라 화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건방지게 말을 시작한 이유가 있으니 못마땅하시더라도 제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화운이 공손히 포권하자 이심환은 탐탁지 않은 것을 안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화운은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전 맹의 그 누구 보다 더 강합니다. 맹 전체보다도 강합니다. 맹 전체가 힘을 합쳐도 저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합니다.”

말이 끝난 순간 화운의 모습이 사라졌다.

“위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정말 화운은 허공에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곧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원로 고수들의 한복판이었다.

자신들 사이에서 공간이 열리며 화운이 나타나자 소스라치게 놀라 분분히 흩어졌다.

화운과 친분이 있던 남궁검가주와 선우세가주 그리고 백리세가주 정도가 제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런데 곧 화운의 모습이 또다시 사라졌다.

허공에서, 담벼락 위에서, 맹주전 지붕 위에서 천지사방 여기저기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화운.

사람들은 화운을 찾아 고개를 돌리기에 바빴다.

“그만 하거라. 무슨 뜻인지 알겠다.”

맹주 조극산이 고개까지 끄덕여 가며 말했다.

순간 화운이 조극산의 앞에 나타나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이러는 데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이제 그 이유를 말해보아라.”

맹주는 짧은 기간이지만 화운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있었다.

깨나 영리하여 얍삽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근본은 정파인들의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맹주님 명을 따라 제천마존의 비동 근처를 살폈습니다.”

화운의 말이 시작되자 이제 진짜 하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이목을 집중했다.

화운은 조극산을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계속 말했다.

“그곳에서 사황을 만났습니다.”

“사황? 설마!”

“예. 일백 년 전, 사황혈천의 그 사황입니다.”

지금까지 화운이 보여주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사람들을 강타했다.

“정말 사황이란 말이냐? 지금까지 살았다면 이백 살이 넘어갈 것인데도!”

이심환이 호통을 치듯 소리쳐 물었다.

화운은 그를 돌아보며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황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과 제가 이 나이에 이 만큼 강해진 것 중 어느 것이 더 놀라운 것입니까?”

이심환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화운이 지금껏 자신의 강함을 보여준 이유가 사황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는 걸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운의 의도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황혈천의 사황이 나타났습니다. 천마대겁의 천마는 어떨 것 같습니까?”

“그도 나타났단 말이냐?”

조극산이 놀라 소리쳐 물었다.

사람들도 더욱 경악한 얼굴로 화운을 쳐다봤다.

화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극산을 돌아보더니 공손히 청을 올렸다.

“맹주님, 맹주님을 위시하여 천하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분들을 한 자리로 모아주십시오. 적어도 검환을 발휘할 수 있는 고수들이어야 합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그 자리에서 마저 하겠습니다.”

심상치 않음이 물씬 느껴지는 요청이었다.

맹주 조극산은 물론이고 장내의 원로들과 고수들 그리고 담장 밖의 모든 무인들이 놀란 얼굴로 화운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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