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159화 (159/207)

#159. 출도

이 년이 지났다.

화운의 나이 열두 살이 되었다.

무영투가 고기 종류 위주로 먹을 것을 부지런히 가져다준 덕분인지 제법 키가 자랐다.

육체가 성장하니 단전도 더욱 튼튼해졌고 무공들도 일취월장하였다.

하지만 아직 금강부동과 절대검력까지는 익히지 못했다.

화운의 판단으로는 짧으면 일 년, 길면 이삼 년 정도만 더 수련한다면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무위를 전부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천종천마교 강시당의 하수인들이 삼 년에 한 번씩 아이들을 납치하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운은 수련을 멈추고 비동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갈 것이냐?”

무영투가 물었다.

그는 화운의 말이라면 일단 믿고 봤다.

함께 수련하면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던 운해비룡과, 무영비천을 화운 덕분에 완숙의 경지로 익혀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뵌 후에 먼 길을 떠나야 합니다.”

“먼 길? 나도 함께 가는 거지?”

무영투가 묻자 화운이 그를 돌아봤다.

“영감님.”

“어. 왜?”

“도움에 늘 감사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싫다. 죄송이고 뭐고 싫어. 내가 내놓은 대환단이 몇 갠데!”

“죄송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도와주셨으면 하는데 싫으십니까?”

“염병할 놈, 이제는 필요 없다고 하는 줄 알았잖아!”

무영투가 안도하면서도 발끈하여 소리치자 화운이 빙그레 웃었다.

“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영감님과는 사제지연을 맺은 건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특별하고 귀한 인연이라고.”

“진짜냐?”

“영감님.”

“왜?”

“나중에 제게 화낼 일이 있더라도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수많은 일들을 겪다보니 때로는 불가항력을 인정해야할 때도 있더군요.”

“불가항력······?”

화운은 천종천마교에 갇혀 있을 무영자를 떠올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무영투가 눈을 끔벅이며 의아해 하자 화운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가시죠. 부모님께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강서성 남창.

화운과 무영투가 남창 거리에 나타난 건 태양이 한참 떠오른 시간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복장이 달라져 있었다.

큰일을 하고, 대단한 사람들과 맞닥트리려면 그에 걸맞게 의복도 갖춰 입을 줄 알아야 한다며 무영투가 거금을 내놓아 값비싼 무복을 사 입은 것이다.

그런데 화운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다보니 무영투 역시 비싸게 차려입었음에도 귀공자를 모시는 노복처럼 보였다.

이제 열두 살 임에도 한참 성장기의 소년처럼 훌쩍 성장한 화운의 외모는 이제 막 천상에서 내려온 귀공자처럼 대단했다.

여의주를 문 용이 힘차게 비상하고 있는 그림이 수놓아진 청의 무복을 차려입고 거리를 걸으니 뭇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화운이었지만, 정무맹 시절부터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기에 태연하게 굴 수 있었다.

반면 무영투는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양 사람들의 시선이 거북스러웠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처럼 대단한 사람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겠다는 일념으로 복장까지 바꾼 것인데, 은밀해야 할 도둑으로 오래 살다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거북스럽고 따갑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자꾸 움츠리다보니 더더욱 노복처럼 보였다.

“저기다. 얼른 가자.”

무영투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도망치듯 총총걸음으로 앞서갔다.

영락없이 노복이 앞서 달려가 모시는 분의 행차를 알리려는 모양새였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이 달려간 무영투가 멈춰선 곳은 백리세가의 현판이 걸려 있는 큼지막한 대문 앞이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복건성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백리세가가 있는 남창을 경유하게 되었다.

화운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치자니 아쉬워서 인사 차 들르기로 하였다.

물론 화운의 속셈은 백리연 그녀에게 있었지만.

‘열한 살······ 열한 살의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

백리세가 대청.

백리세가주는 딱딱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문검가가 무슨 사업을 하든 본가가 이래저래 끼어들 수는 없을 것이오. 다만 오대세가의 일원으로써 한 마디 하자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오대세가의 연대를 깨트리는 일은 삼가 주셨으면 하오.”

“오대세가의 위신이 깎이고 있습니다. 뜨내기 마적들조차 선우가를 우습게 볼 정도라는 걸 가주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흥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도 있는 법이오. 오대세가 중 어느 곳이 순탄하게만 이어져 왔소이까?”

“벌써 몇 세대쨉니까. 게다가 가문의 성명절학이 유실된 상태인데 어찌 일어설 수 있겠습니까? 선우세가의 존재 자체가 오대세가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적당히 하시오.”

우문검가주 우문위가 선을 넘어서자 백리세가주가 크게 한 소리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지나쳤습니다. 허나 틀린 말은 아니질 않습니까.”

“우문가주!”

“예. 말씀하십시오.”

“내 분명히 말하지만 본가는 귀가가 무슨 사업을 하든 관심이 없소. 설사 선우세가와 전쟁을 벌인다 하더라도 대의와 명분이 귀가에 있는 것이라면 관여치 않을 것이오. 허나 오대세가의 위신이 어쩌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선우세가를 핍박하려 든다면 오대세가의 회합을 열어서라도 선후와 시시비비를 분명히 따질 것이니 그리 아시오.”

백리세가주가 엄포를 하듯 단호히 말한 순간이었다.

대청 밖에서 백리세가 총관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가주님, 무영천에서 우호법과 천주님께서 내방하셨습니다!”

“어디로 모셨느냐?”

백리세가주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쳐 물었다.

그 모습에 우문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영천? 백리세가주가 이토록 놀랄 정도로 대단한 방파가 있었나?’

암만 머리를 굴려봐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당연한 일이다. 무영투가 만들어낸 이름일 뿐이니 우문위가 아무리 머리를 굴린다한들 어찌 알겠는가.

“별채로 모셨습니다.”

밖에서 총관의 대답이 들렸다.

“내 당장 그리로 갈 것이니, 명이랑 연이한테도 일러 그리로 오라고 하게. 서두르게.”

“예.”

총관이 대답하자 백리세가주가 부리나케 우문위를 돌아봤다.

“들으셨다시피 귀한 손님이 오셔서 급히 가봐야 할 것 같소. 예의가 아닌 줄은 압니다만, 이만 돌아가 주셨으면 하오.”

“무영천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기에 그러십니까?”

“응? 귀가엔 찾아가지 않은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세가에도 찾아간 것입니까?”

“아, 아니오. 내가 정신이 없어서 말이 헛나왔소. 이만 나갑시다.”

백리세가주는 바쁜 걸음을 옮겨 대청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다시 한번 작별을 고한 다음 부리나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우문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무영천이 다른 세가에도 찾아갔다고? 본가만 빼고?”

별채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백리세가주는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무영투와 화운이었다.

무영투는 이미 만난 적이 있었고, 화운은 시간을 되돌린 이번 삶에서는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오셨습니까!”

“그간 잘 지내셨소이까!”

“예. 선배님을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니 무척 반갑습니다.”

“여기 더 반가울 분이 오셨소. 본천의 천주님이시오.”

무영투의 소개에 백리세가주는 화운을 바라봤다.

‘허어! 절세미장부가 되겠구나!’

백리세가주는 이 년 전에 무영투가 천상의 신동이 어쩌고 할 만했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무영천의 화운이라 합니다.”

화운이 무영천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건 최근의 일이었다.

백리세가를 방문할 거라고 하자 무영투가 그제야 이실직고를 한 것이다.

꼼짝없이 무영천의 천주 노릇을 하게 되었지만, 큰일을 하려면 그럴 듯한 간판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는 무영투의 말도 일리가 있어 그렇게 하자고 했다.

화운이 포권하자 백리세가주가 다시 한번 탄복했다.

포권하는 태도만으로도 거인이 될 풍모를 내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백리세가의 가주인 백리종도라고 하오. 이 년 전에 그토록 귀한 선물을 받았음에도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었구려.”

백리세가주는 대환단을 받은 걸 선물이라고 말했다.

무영천의 의중이 확실치 않은 상황이라 일종의 선을 그은 것이다.

화운은 그런 속마음을 빤히 알아차렸으나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다고 자신을 경계하는 걸 계속 놔둘 수는 없었다.

“가주님.”

“말씀하시오.”

“선우세가가 제겐 외가가 됩니다. 어머님께서 지금 선우세가주님의 동생이십니다.”

“······!”

백리세가주는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선우세가주의 조카란 말이오?”

“예. 제가 무영단을 드린 건 백리명 형님이랑 연 매가 뛰어나다는 걸 알아서이기도 하지만, 백리세가가 선우세가와 가까워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너무 경계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선우세가주가 워낙 무뚝뚝하고 데면데면한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친했던 남궁검가주 외에는 가까이 지내질 못했다.

그렇다고 아주 동떨어진 사이도 아니어서 만나면 반가움을 표할 정도는 되었다.

“선우세가의 사정은 알고 있는가?”

“예.”

“우문검가는······.”

“알고 있습니다.”

“허! 그 사람 큰일 났구먼.”

백리세가주는 진심으로 우문검가를 걱정했다.

그가 보기에 무영천은 보통의 방파가 아니었다.

천마와 천종천마교를 상대하려는 곳이거늘 오대세가에 속한다고는 하나 어찌 일개 무가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무영천주 화운은 열두어 살에 불과해 보이는 데도 벌써부터 자신을 압박할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삼 년만 지나도 더욱 대단해질 것이 분명해 보이니 우문검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등골이 다 오싹할 일이었다.

“몇 년은 더 두고 볼 참입니다. 그래도 계속 선우세가를 넘본다면, 가주님껜 죄송하지만 오대세가가 사대세가가 될 것입니다.”

백리세가주의 머릿속이 복잡해진 순간이었다.

당대에 이르러 우문검가가 위험한 행보를 하려고 하지만, 오랫동안 오대세가의 일원으로써 강호무림을 함께 헤쳐 온 무가였다.

그런 우문검가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길을 가든지 그건 그들의 선택이고, 선택엔 반드시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자신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좀 전까지 우문가주와 함께 있었네.”

“그랬군요.”

“우문가주에게 그랬네. 무슨 사업을 하든지 알고 싶지도 않고, 선우세가와 다퉈도 명분만 있다면 관여할 생각이 없다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강호무림에 살면서 어찌 실랑이 한 번 없길 바라겠습니까. 뜻이 맞지 않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보면 언쟁도 벌어지고 다툼도 일어나는 법이지요. 다만 피까지 흘리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겠지요. 누구나가 납득할 만한 이유, 누구나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명분 말입니다. 그게 없다면 사사로운 이득만을 쫓은 것일 터, 응당 대가를 치러야지요.”

화운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백리세가주는 터럭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화운의 말속에 절대자의 위엄 같은 것이 느껴져서다.

염왕이 판결을 내리기위해 예의주시하겠다는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여튼 그건 나중의 일이고, 어떻습니까. 백리명 형님이랑 연 매는 좀 진전이 있었습니까?”

자식들 이야기가 나오자 백리세가주의 얼굴이 급속도로 펴졌다.

“아! 말도 말게 덕분에 명이 녀석은 그 나이 때의 나보다 배는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연이 녀석도 상당히 빠르다네. 이러다 두 녀석이 이 애비를 무시하고 그러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라네.”

백리세가주는 기분 좋게 흥분하여 말했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자신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가 이제 겨우 열두 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무영천의 천주라는 신분이 화운의 나이를 잊게 만든 것이다.

“아버님, 찾으셨습니까!”

밖에서 변성기를 맞이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자 백리세가주가 대뜸 소리쳤다.

“어서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화운보다 더 건장한 체격의 소년과 신이 빚은 인형처럼 아리따운 소녀였다.

백리명과 백리연, 바로 그들이었다.

‘백리 소저······!’

백리연을 단박에 알아본 화운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예뻤다.

열아홉이던 백리연도 정말 아름다웠지만, 지금 저대로 성장한다면 그때보다 훨씬 더 대단해질 것 같았다.

막 안으로 들어서던 백리연도 화운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미공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르신, 오셨군요!”

백리명이 반갑게 소리치자 미몽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차린 화운과 백리연은 서로에게서 눈을 뗐다.

이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무영투가 히죽 웃었다.

‘그래, 그래. 둘 다 서로한테 눈이 꽂힐 줄 알았다! 둘 다 엔간히 생겼어야지!’

무영투는 실실 쪼개듯 웃으며 백리명에게 눈길을 돌렸다.

“넌 한 뼘은 더 큰 것 같구나!”

“그치요? 무영단이 진짜 영약인가 봅니다.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먹고 싶게 만들어서 보시다시피 아주 쑥쑥 크고 있습니다. 핫하하하!

백리명이 시원하게 웃자 실내의 공기가 기분 좋게 변했다.

“아, 이 친구가 무영천주인가요? 진짜 잘생겼네. 요즘은 나도 잘생겼다는 소리 좀 듣는 편인데, 이 친구는 너무 심하게 생겼습니다. 나 백리명이다. 비슷한 연배인 것 같으니까 천주니 뭐니 그런 것보다 친구하자. 어떠냐?”

백리명이 가까이 다가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에 화운은 포권하며 말했다.

“화운입니다. 제가 두 살 아래이니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

뜻밖의 말에 백리명이 이래도 되나 싶어 당황했다.

그에 화운이 포권했던 손을 풀며 웃었다.

“선우유성이 제겐 외사촌 동생입니다. 한 다리 건너긴 했으나 오대세가의 일원에 가까우니 싫지만 않으시다면 형님으로 모셨으면 합니다.”

“유성이 사촌형이라고?”

백리명이 놀란 얼굴로 묻다가 백리세가주를 돌아봤다.

“나도 지금 막 들었다.”

백리세가주의 대답이다.

백리명은 당황했던 얼굴을 금세 펴더니 화운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러면 내가 형님 맞네. 우하하하! 너 같은 동생이 생겨서 정말 기쁘다.”

백리명이 신이 나서 말하자 화운도 빙그레 웃었다.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였다.

백리명이 스물두 살의 그때처럼 밝은 성격이라 보기에도 좋았고 무척 반가웠다.

“야, 나한텐 그렇게 웃지 마라. 그러다 내 가슴까지 설레면 어쩌라고 그러냐!”

“탈태환골이 꼭 좋은 것만 아닌 것 같습니다. 얼굴에 검상을 만들 수도 없고······.”

“너도 환골탈태 했구나?”

“제가 무슨 성인군자라고 형님께만 드렸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저도 복용했지요.”

“그랬구나. 야, 늦었지만 이제라도 말할게. 진심으로 고맙다.”

“꼭 고마워할 일만은 아닐 겁니다.”

“마교 말이냐?”

“예. 형님이나 저나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녀야 할지도 모릅니다.”

“괜찮아. 까짓 거 하면 되지. 사실 어르신께서 무영단을 가지고 오셨을 때만 해도 그거 복용하고 나면 무영천의 요구에 따르라고 강요하면 어쩌나 하고 고민했었다만, 그럴 사이가 아닌 것 같아 진짜 다행이다.”

“제가 형님께 강요하고 싶은 건 딱 하나입니다.”

강요할 게 있다는 말에 백리명은 물론이고 백리세가주와 백리연까지 살짝 긴장하는 표정을 지었다.

“뭔데?”

“천종천마교와 싸우게 되더라도 목숨만은 반드시 지키라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지 천하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려는 게 아니니까요.”

“너어······.”

“예?”

“너 진짜 마음에 든다. 나도 같은 생각이거든. 내가 행복한 후에야 천하를 살피는 것이지, 나와 내 가족이 불행해지는데도 뭔 천하야, 안 그래?”

“맞습니다. 나와 내 가족이 있기에 천하가 있는 법이니까요.”

“맞아, 맞아. 나와 내 가족이 있어야 천하가 있는 법이야! 와! 이렇게 마음이 통하다니, 너 진짜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사람들처럼 구는 모습에 무영투와 백리세가주가 피식피식 웃었다.

다만 백리연 만이 입을 샐쭉 내민 채 화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한텐 왜······ 말을 안 걸어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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