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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72화 (172/207)

#172. 우린 믿을 수 있다는 건가요?

“푸하하하하!”

황보장이 허리를 젖혀가며 웃어댔다.

다분히 과장된 웃음이니 분명 비웃음이다.

우문산도 황보장의 장단에 맞춰 웃고 있다.

황보장처럼 크게 웃어대진 않았으나 입가에 비웃음이 명백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는 애군. 여태 골목대장놀이에 빠져있다니 말이야.”

한참 만에 웃음을 거둔 황보장이 한 말이다.

조롱이다.

비웃음도 과했지만, 이건 더 심하다.

마지막 선을 넘어서 버리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이다.

백리명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는 ‘야단났네!’를 외쳤다.

그런데 웬걸 화운과 담명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처음 그대로 담담해 보이는 화운과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실실 쪼개듯 웃고만 있는 담명.

“귀한 시간에 이런 이야기나 듣게 되다니, 정말 한심하군.”

황보장이 가만히 있는 화운의 반응에 더욱 자극적으로 나왔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은 모습이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에 화운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무시하고 비웃는 모습이 아주 자신감 넘치는군.”

“누구처럼 골목대장놀이에나 빠져 있지 않으니까. 진짜 칼을 맞대고 피를 흘릴 준비가 되었으니 당당할 수밖에.”

“칼을 맞대고 피를 흘릴 준비가 되었다고?”

“맞아. 말로만 천종천마교와 싸우네 어쩌네 하는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지.”

노골적인 비웃음과 당당한 자신감을 동시에 드러내는 황보장.

화운은 그런 황보장을 날카로운 눈길로 응시했다.

“천장신공과 천왕권 그리고 천왕태보는 황보세가의 명성을 만들어준 대단한 신공절학들이지. 특히 천왕권은 워낙 파괴적이어서 오 성의 성취만 이뤄도 아름드리나무를 한 주먹에 부숴버릴 만큼 대단하지.”

화운이 황보세가의 무공들을 추켜세웠다.

황보장은 등을 기대고 앉은 채 계속 해보라는 듯 비웃음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똑바로 보며 화운이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 성에서 오 성으로 올라서는 일이 워낙 까다로워서 스물 이전에 이룬 사람이 없다더군. 그건 곧 아무리 근골이 좋아도 십오 년은 매진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한편으로는 천왕권이 그만큼 대단한 절학이라는 방증일 테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천왕권이 오 성의 경지에 올라섰나?”

“······!”

화운이 대놓고 물을지 몰랐던 황보장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으나 일부러 피식 웃으며 순간의 당황을 씻어낸 듯 걷어냈다.

“역시 그렇군.”

“뭐가 그렇다는 것이냐?”

“그 당당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알겠다는 뜻이야.”

“뭐?”

북궁무결의 천하에 피바람을 일으킬 계획에 동참하여 제 아비조차 내놓은 자가 황보장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황보장이 익히고 있던 금단의 마공이 바로 아수라파천권이었다.

마도십대절학이라는 아수라파천권.

화운은 지금 황보장의 당당함이 그 아수라파천권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 고민을 덜어주는군.”

중얼거리는 화운.

황보장이 무슨 말이냐며 얼굴에 의문을 떠올릴 때 화운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바람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중년인이 나타나 화운 앞에 허리를 조아렸다.

“명을 기다립니다.”

“태상호법께 말씀드리세요. 황보세가는 이미 늦었다고.”

“존명.”

중년인이 사라졌다.

나타날 때처럼 바람처럼 사라지는 모습에 백리명 등은 꽤 놀란 눈치였다.

“무슨 뜻이냐! 본가가 늦었다니!”

황보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요란하게 쿵쿵 소리를 내며 객잔 안을 가로질러 오는 자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냐?”

우문산이 인상을 쓰며 소리쳐 물었다.

시끄럽게 달려온 자들이 우문검가의 무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화운의 수하로 여겨지는 중년인이 바람처럼 등장하던 모습과 비교가 되는 것 같아서 우문산은 낯을 붉혔다.

“소가주님, 가주님께서 서둘러 오시랍니다. 한 걸음도 지체 말고 바로요.”

“알았다.”

더욱 얼굴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우문산.

이때 화운의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가거든 부친께 전해라. 다 포기하면 우문가의 명맥이 이어지겠지만, 잔머리 굴리면 모조리 사라지게 될 거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

우문산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따지지도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화운에게서 쏘아져온 한 가닥 기운이 그의 심장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

두 눈을 있는 대로 부릅뜬 우문산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우문산이 그렇게 사라지자 화운이 황보장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저 녀석처럼 불려가는 것보다는 스스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

“그게 무슨 말이냐?”

“황보세가의 가주님께서 널 찾으실 거라는 뜻이다.”

“무슨 일로? 너 이 새끼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

황보장이 의자를 밀치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골목대장놀이나 하는 내가 무슨 짓을 하면 그 정도에 당할 황보세가냐? 황보세가주께서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이시냐?”

화운의 말에 황보장은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순식간에 지우고는 동생 황보혜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자.”

“예.”

황보혜가 힘없이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자 객잔 바닥을 소리나게 쿵쿵거리며 나서는 황보장.

황보혜는 그 뒤를 따라가려다 말고 잠깐 고개를 돌려 선우유성을 돌아봤다.

“아, 내가 바래다줄게.”

“넌 앉아 있어.”

선우유성이 일어나는 것을 화운이 막았다.

그리고 화운은 황보혜를 향해 말했다.

“황보소저. 황보세가와 소저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가보세요.”

“네에.”

황보혜는 울상을 지으며 오라버니인 황보장의 뒤를 따라 갔다.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눈만 멀뚱거렸다.

“이게 다 뭔 일인지.”

백리명이 화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설명을 바란다는 뜻이었다.

“우문가는 해적도의 해적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선우세가의 사업들을 사들였던 막대한 자금의 출처지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백리명이 실로 놀랍기 짝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적도의 우두머리를 잡아놓았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문검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화운이 우문산에게 말한 대로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

하나라도 지키려고 잔꾀를 부리다간 도리어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다.

“황보세가는?”

백리명이 물었다.

“황보세가주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밝힐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거기도 심각한 거냐?”

“예.”

“하아······! 대체 뭐가 뭔지······.”

백리명이 당황스럽다는 기색을 드러낼 때였다.

지금껏 조용히 앉아 화운만 빤히 바라보고 있던 백리연이 불쑥 물었다.

“그들에게는 무영단을 주지 않은 이유가 이번 일과 관련이 있나요?”

다들 화운을 쳐다봤다.

황보세가와 우문가에는 무영단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이유가 뭔지 다들 의문이었었는데, 지금 백리연의 물음에 화운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맞아. 믿을 수가 없어서 주지 않았어.”

“우린 믿을 수 있다는 건가요?”

백리연이 화운을 빤히 보며 물었다.

화운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다가 시선을 돌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쳤다.

백리명, 남궁현, 선우유성 그리고 담명까지.

일일이 눈을 마주친 화운은 마지막으로 백리연을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믿어.”

***

남궁검가.

우문검가에 이어 황보세가의 일까지 한꺼번에 터지자 대청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오대세가의 한 곳이 해적들과 결탁했고, 또 한 곳은 금단의 마공을 익혔다.

오대세가의 협명을 스스로 시궁창에 처박는 일이었다.

남은 세 가문의 가주들은 한숨만 쉴 뿐이었고, 담대후와 무영투는 침묵으로 기다려 주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한참 만에 남궁검가주가 물었다.

“꽤 되었네.”

담대후가 대답했다.

“막을 방도는 없었습니까?”

담대후는 남궁검가주를 똑바로 응시했다.

화운에게 듣기로 자신이 검마로 흉명을 떨칠 때도 자신을 믿고 선배로 깍듯이 대해 주었다고 했다.

사리판단이 빠르고 사람의 속을 들여다볼 줄 아는 현명함을 갖추었다는 게 화운의 평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현명하지 못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급작스러워서 일수도 있고, 또 어쩌면 현명함을 갖추기에는 아직 세월이 모자란 것일 수도 있다.

담대후는 남궁검가주에게 오히려 물음을 던져주었다.

“막으면 오대세가에 도움이 되나?”

“······!”

남궁검가주는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담대후의 물음이 가진 속뜻을 간파한 것이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천려일실이라고 했네. 지혜로운 사람도 많은 생각을 하다보면 판단력이 흔들릴 때도 있는 법이네.”

“충고 감사합니다.”

남궁검가주가 고마움을 표하자 담대후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때 백리세가주가 머릿속의 혼란을 정리하고는 물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오?”

“운이 녀석이 올 때가 되었으니 직접 듣는 게 좋겠소.”

담대후는 그 후로 입을 다물었다.

화운이 백리명 등과 함께 도착한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응당 어른들을 먼저 뵈어야 하나 황보세가와 우문검가의 일이 먼저 일 것 같아서 인사를 뒤로 미뤘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에 화운이 한 말이다.

모두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두 세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를 드러냈다.

황보세가에는 안타까움이 컸고, 우문검가에는 분노의 감정이 앞섰다.

“숙모님은 건강하시죠?”

“그래, 네가 구해준 영약 덕분에 바로 병상에서 일어섰다. 고맙다.”

“아버지께서 구하신 거라고 말씀드리라고 했는데 그 정도거짓도 하지 못하신 모양이네요.”

“매제가 잘한 거다. 작은 거짓을 입에 담다 보면 언젠간 큰 거짓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긴 하지요.”

“내가 옹졸했다. 매제와 네 엄마한테는 이미 사과했고 다들 잘 지내고 있으니 염려 말거라. 그리고 너한테도 미안하구나.”

“숙부님은 제게 많이 미안해하셔야 해요.”

“······?”

화운은 궁금해 하는 선우세가주를 두고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궁금해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화운이 목소리를 높여 말하자 대청의 모두가 화운에게 집중했다.

“전 모든 걸 감추고자 했습니다. 안다고 하여 달라질 것도 없고, 믿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제가 스승님과 부모님 그리고 여기 계신 우호법을 믿는 만큼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믿어야 한다고. 그리고 또 믿는다면 감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화운은 살짝 미소를 띤 얼굴로 모두를 둘러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화운이 늘 믿었던 사람들이었고, 그 만한 믿음을 준 사람들이었다.

“긴 이야기입니다. 다들 편하게 앉으십시오.”

화운이 웃으며 말하자 다들 주위의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모자란 의자는 남궁현이 잽싸게 밖으로 나가더니 금세 가져왔다.

선우세가주와 선우유성.

백리세가주와 백리명, 백리연 남매.

남궁검가주와 남궁현.

담대후와 담명 그리고 무영투.

화운은 그 모두를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이야기는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제 부모님만이 알고 있고, 또 알게 될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화운은 대청 한가운데에 서서는 끔찍했던 순간들을 시작으로 때로는 가슴 철렁했고, 때로는 신이 나고, 또 때로는 절망적이기도 했던 시간들을 꾸밈없이 이야기했다.

제천마존의 비동에 들어가 끔찍한 죽음을 당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빛과 함께 되살아난 일.

당시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이 그저 살고자 미친 듯이 발악했던 처절한 순간들도 이젠 추억처럼 말하고 있었다.

선우유성의 죽음을 이야기할 땐 안쓰러운 시선으로 선우유성을 바라봤고, 검마와 함께 움직이게 된 과정을 이야길 할 땐 담명에게 안쓰러운 시선을 건넸다.

선우유성은 꽤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는데 담명은 담담하게 웃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담대후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유성아, 놀라지 마. 겁먹지도 말고. 그 이후로 너의 곁엔 늘 형이 있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지만.”

화운이 웃으며 말하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선우유성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굳었던 마음을 다스렸다.

화운은 계속 이야기했다.

제천마존의 비동엔 결국 아무것도 없었지만, 제천마존이 직접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영약들에 관한 이야기.

구룡태자 패거리가 백리세가와 남궁세가 그리고 선우세가를 몰살한 이야기.

워낙 충격적인 이야기의 연속인지라 모두들 숨죽인 채 듣고만 있었다.

반 시진에 걸친 이야기는 정무맹이 창설된 부분까지 진행 되었다.

화운은 백리세가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 번 도움을 드렸다는 인연으로 백리숙부님께서는 정무맹 내에서 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늘 신뢰를 보여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허, 거참······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백리세가주의 당황을 이해한 화운은 그저 웃으며 시선을 돌리다가 백리명을 봤다.

순간 떠 오른 게 있어 물었다.

“형님께서 다섯 살 때 직접 심은 적송이 있는데 가주님께서 검을 수련하시다가 베어버렸다고 하던데, 그 일은 아직 벌어지기 전입니까?”

“······!”

“······!”

백리세가주와 백리명이 동시에 눈을 치떴다.

“이번에 본가를 떠나기 전날에 벌어진 일이고 연무장에서 있었던 거라 외부인은 알지 못할 텐데. 그리고 오라버니가 다섯 살 때 심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나요?”

백리연이 불쑥 물었다.

“그 이야기를 나한테 해준 사람이 있으니까.”

“감춰야 할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세가의 일을 함부로 발설한 사람을 그냥 둘 수는 없어요. 누구죠? 그 사람이?”

화운은 대답대신 빙그레 웃기만 했다.

“설마 저라고요?”

“형님이 내게 그러더군. 구명지은의 답례로 의천검을 달라고 말해보라고. 친구인 적송을 베어버린 것에 대한 형님 나름의 복수였던 거지.”

화운의 말에 백리연과 백리세가주 부자는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시간을 반복하면서 느낀 게 뭐냐면 근본이 되는 게 없어지지 않으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거야. 적송이 베어졌다면 두 분께선 그것 때문에 티격태격 하실 거야.”

“뭐라면서 티격태격 하는 데요?”

“음? 벌써 그렇게 다투셨어?”

“뭐라고 그랬는지나 말해보세요.”

“세상천지에 나무랑 친구 먹는 썩을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아버님께서도 의천검이 마음이 통한다 어쩐다 그러셨잖습니까. 의천검이랑 그깟 소나무가 같으냐! 다르죠! 죽은 쇳덩이랑 살아있는 적송이 같을 수가 없지요. 이놈, 죽은 쇳덩이라고? 그럼 의천검 걔가 살아 있습니까? 대충 이런 식으로 다투셨다.”

화운의 말에 백리세가주와 백리명 그리고 백리연까지 크게 놀랐다.

그 반응을 본 화운이 빙그레 웃었다.

“벌써 다투셨군요. 다투시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이 얼마나 친밀한지요. 남궁검가도 그렇지만 백리세가 역시 쓸모없는 격식보다는 자유로움을 지향하시는 것 같더군요.”

화운의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검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두 세가가 추구하는 건 자유로움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본가가 백리세가의 자유로움을 따라 한 것이지만, 여튼 세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얽매는 격식을 벗어던져야 하지.”

“얽매이지 않는 사고와 자유로운 행동이야말로 아이를 성장시키는 가장 훌륭한 조건이거든.”

백리세가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던 마음을 훌훌 털어낸 것으로 보아 화운이 한 이야기를 완전히 믿기로 한 모양이었다.

화운은 마주 웃어주며 모두를 둘러봤다.

대청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화운이 정무맹이 창설된 이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걸 알고는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화운은 정무맹과 신풍대 그리고 장강에서 벌어졌던 싸움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신풍대 이야기를 할 때 기분 좋게 듣다가 사황의 등장에 천둥벼락이라도 맞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천마와 마신 아수라까지.

그리고 모든 걸 잃고 수라도에 처박힌 일까지.

누군가가 들었다면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이야기라면서 일축해 버릴 그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더 지나자 화운의 이야기가 끝을 맺었다.

모두들 굳게 침묵함으로써 자신들이 받은 놀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듯 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그렇지 않은 이가 있었다.

바로 백리연이었다.

그녀는 화운에게 다가가 소매를 잡고는 한쪽으로 끌었다.

그리고는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짓고 있는 화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제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저랑 어떤 사이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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