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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으로 무림지존-186화 (186/207)

#186. 경천보패가 왜 너한테 있어?

콰-앙!

명왕이 날린 권강이 터졌다.

절대검력은 소멸되지 않고 뻗어나가 명왕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끄윽!”

명왕이 신음을 터트리며 날아갔다.

그리고 금강부동을 펼친 화운이 날아가는 명왕의 바로 위쪽으로 나타나 다시 한번 절대검력을 휘둘렀다.

명왕의 육신은 두 쪽으로 분리되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자, 이 정도면 그때와 똑같을 테고, 이제 멸천부로 가볼까.’

화운은 지상으로 떨어져 혈편이 되어버리는 명왕의 죽음을 지켜본 후 몸을 날렸다.

멸천부.

‘이쯤이면 멸제가 모습을 드러내야하는데······!’

화운은 야천에서 멈추었다.

그때와는 달리 멸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역시 경천보패를 가진 자가 대비를 했다는 거겠지.’

화운은 검을 들어올렸다.

명왕을 제거할 때처럼 건물을 먼저 부수려는 것이다.

“설마 명왕을 죽인 것이냐?”

멸제가 나타났다.

멀리 어둠속에서 의아함 가득한 물음을 던지면서.

멸왕부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 후에 화운이 그쪽에서 날아온 것을 본 모양이다.

“당신들은 무적이라고 생각했나?”

명왕을 죽였다는 뜻이다.

멸제의 얼굴에 놀람과 경계심이 떠올랐다.

멸제는 다가오던 것을 멈추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불이 밝혀졌다.

수십 개의 횃불이 일제히 불을 밝힌 것이다.

얼핏 봐도 이삼백은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나름 함정을 판답시고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한 동원한 모양이었다.

횃불이 환하게 밝히고 있는 안쪽으로 수십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운은 그들을 쓱 둘러봤다.

구호법과 십이무상 그리고 마존과 처음 보는 얼굴들.

마존의 거처인 패마부의 고수들이었다.

마존은 위치를 이동하여 멸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화운을 경계했다.

화운이 명왕을 죽였다고 하자 멸제와 합공을 할 생각인 것이다.

멸제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명왕이 뒤를 쫓아오지 않는 걸 보면 당한 게 확실해 보이는 데다 그럼에도 화운의 몸은 멀쩡해 보였다.

자신들이 합공을 해야 할 정도의 고수라는 걸 의미했다.

얼굴을 보면 결코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멸제는 나이와 얼굴 따위는 믿지 않는 성격이었다.

이때 화운은 주위를 한차례 더 둘러봤다.

경천보패를 가진 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있다! 있어!’

꿈에서조차 잊을 수 없는 경천보패의 신력이 느껴졌다.

원래 미미한 기운인데다 거리가 멀어서 조금 집중해야 했지만, 경천보패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저기 저 어둠 속에.

그런데 바로 이때 경천보패를 가진 자도 화운을 알아봤다.

“마운! 이 씹어 먹을 놈아!”

날카롭게 울리는 표독스런 목소리.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화운을 향해 삿대질하며 포악한 살기를 쏟아낸 이는 다름 아닌 사연홍이었다.

‘경천보패가 왜 너한테 있어?’

화운이 의아하여 눈을 휘둥그레 뜬 순간.

“저놈이에요! 무상 마백과 혈삭마 그리고 강시당주를 죽인 놈이 바로 저자라고요! 반드시 죽여야 해요! 놈의 사지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세요!”

사연홍이 아득바득 소리쳐댔다.

악독한 심보가 여지없이 드러나 보였다.

그러나 이때 화운은 속으로 웃었다.

‘너라서 다행이다. 어쩌면 어렵지 않게 빼앗을 수 있겠어!’

화운은 웃었다.

조롱기 다분한 웃음을 일부러 지어 보였다.

“거기 숨어 있는 게 너였냐? 그때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것들이랑 여전히 함께 있구나.”

화운의 조롱에 사연홍의 뒤쪽 어둠 속에서 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마를 비롯한 광마종의 마인들이었다.

그들은 멸제와 마존이 나선 자리라 감히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화운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기만 했다.

“악독한 계집, 금방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라!”

화운은 일부러 사연홍의 성질을 자극한 후 멸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번쩍!

새파란 강기가 섬전처럼 쏘아가며 공간을 쪼갰다.

절대검력의 발휘였다.

화운이 선공을 가한 순간 멸제와 마존이 반사적으로 반격을 했다.

천마멸천장과 천마지존수!

멸제와 마존에게로 전해져 온 천마의 절학이었다.

쾅! 콰앙!

천종천마교의 밤하늘을 뒤흔드는 굉음.

멸제와 마존은 자신들의 합격을 동시에 상대할 자는 천하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건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착각에 불과했다.

“······!”

“······?”

단 한 번의 격돌로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분명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격을 준비하는 순간 가경할 검격이 그들의 가슴팍을 강타한 것이다.

주르르륵!

피와 내장이 와르르 쏟아진 순간 화운이 곧장 신형을 날려 사연홍을 덮쳐갔다.

“막아라!”

“합공하라!”

구호법들과 십이무상을 비롯한 수십 명의 고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그들의 성명절학들이 화운 한 사람을 향해 빗발치듯 쏟아졌다.

꽈과과과과과과광!

수십 명의 공격들이 한 곳에서 폭격처럼 마구 터졌다.

하지만 화운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금강부동을 펼쳐 사연홍의 앞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

“잡았······?”

화운의 얼굴이 놀람으로 일그러졌다.

사연홍이 비수로 자신의 심장을 찔러버린 것이다.

화운이 스스로 심장을 터트리곤 했던 것처럼.

사연홍은 화운의 얼굴을 보자 극도로 분노하면서도 만반의 대비를 했다.

화운의 경신술이 무척 뛰어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 지랄이냐!”

화운이 소리쳤다.

경천보패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일부러 황당하다는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사연홍은 그런 화운을 향해 악독한 눈으로 쏘아보며 죽었다.

그리고 곧 시간이 되돌아갔다.

***

하오문 총단.

화운과 사황이 다시 만났다.

“또 실패한 것이냐?”

사황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또 가려고?”

“어르신이 계시니 제가 바쁠 일은 없으니까요.”

화운이 히죽 웃었다.

사황은 지금 한 말이 무슨 의미냐는 표정을 지었다.

화운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낭왕이랑 장강수로왕 그리고 태양존자까지 어르신께서 맡아주실 수 있잖습니까. 아, 남궁검가주님 팔도 지켜주시고요.”

사황은 표정 없는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화운은 그가 해줄 것이라 믿겠다는 듯 계속 웃어보였다.

한참 만에 사황이 말했다.

“좋다. 맡아주마. 남궁가 놈 팔도 지켜주고, 낭왕이라는 놈과 장강에 있는 놈 그리고 태양까지 모조리 죽여주마. 그 정도가 뭐 대단한 일이라고. 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죽여 달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내가 네놈처럼 무위를 뽐내며 돌아가라고 타이르란 말이냐?”

사황이 살의를 터트리며 말했다.

화운은 사황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다시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남궁 숙부님이나 좀 챙겨주십시오.”

화운이 머쓱해진 얼굴로 말하자 사황의 살의가 차츰 가라앉았다.

그 광경을 천옥당과 풍백 그리고 사미희가 눈만 끔벅거리며 지켜봤다.

***

천종천마교 성곽 위.

화운이 다시 찾아왔다.

이전에 찾아왔던 것보다 며칠 빨리 왔다.

어떤 대비를 할지는 모르지만 사연홍이 더 단단히 준비할 것 같아서다.

“오늘은 반드시 성공해야 해. 실패하면 내가 경천보패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 거라고 의심하게 될 테니까.”

이전과 달라진 행동을 한다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뭔가를 알기에 혹은 뭔가를 기억하기에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일 테니까.

‘그런데 천마는 왜 하필이면 사연홍에게 주었을까? 걔한테 특별한 뭔가가 있나?’

특별한 구석이 있긴 했다.

악마의 딸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잔혹했으니까.

‘정말 마신 아수라의 딸 아니야? 아님 천마의 딸이던가?’

화운은 스스로 의심해놓고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이유보다는 경천보패를 확보하는 게 더 중요했다.

화운은 기감을 퍼트려 사연홍을 찾았다.

그녀는 강렬한 기도를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천종천마교는 하나의 도시를 이룰 정도로 드넓었다.

또한 건물들을 일일이 뒤져야 했다.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있었어?”

화운이 황당함을 드러냈다.

한 식경이 지나기도 전에 사연홍의 위치를 찾아냈는데 다소 의외인 곳에 있었다.

허물어진 강시당.

화운이 무영자를 구해갈 때 일부러 찾아와 무너트린 곳에 사연홍이 있었다.

화운이 처음으로 사연홍을 만나고 광마종의 마인들과 싸움을 벌였던 대전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아서 꽤 넓은 공간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혼자 있지 않았다.

광마를 비롯한 광마종의 마인들과 함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강시당주인 고루마군이 만들어 놓았던 귀물들도 함께 있었다.

십여 구의 혈라강시들과 세 구의 금강마인 그리고 귀혼마수라 불리는 붉은 살덩이 맹수 일곱 마리였다.

천종천마교의 수뇌부는 고루마군이 죽자 평소 가장 가깝게 지내던 사연홍에게 강시당을 복구하는 일을 맡겼다.

절반 이상이 무너져 버린 강시당 근처에 소리 없이 나타난 화운은 안쪽의 동정을 살폈다.

조용했다.

다들 운기조식이라도 하는 모양인지 공력이 육신을 차분히 휘돌고 있었다.

부풍무영을 펼친 화운은 부유하는 티끌처럼 조용히 진입해 들어갔다.

크르르르륵!

뜻밖의 일이었다.

귀혼마수들이 화운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강시들은 별도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는 건 사전에 귀혼마수들에게 침입자를 경계하는 임무를 맡겨 놓았다는 뜻이리라.

“누구냐?”

“거기 나와라!”

사연홍과 광마종의 마인들이 벌떡 일어나 경계했다.

화운은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운?”

사연홍이 화들짝 놀라 품에서 비수부터 꺼내들었다.

이전과 다른 상황이 벌어진 것에 놀라고, 침입자가 화운이라는 사실에 더 놀랐음에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화운이 검을 뽑아 휘둘렀다.

가장 앞쪽에서 경계하던 광마가 반사적으로 열혼수라조를 펼쳐 막고자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악!”

찢어지는 비명은 사연홍이 지른 것이었다.

부리나케 돌아본 광마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놀랍게도 비수를 쥔 사연홍의 팔이 피를 뿌리며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대, 대형, 검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연홍의 가까이에 있던 혈쇄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는 보았던 것이다.

화운이 검을 휘두른 순간 사연홍의 근처에서 툭 튀어나온 검기가 팔을 싹둑 잘라버리는 광경을.

광마종의 마인들이 황망해하는 순간.

비명을 지르던 사연홍이 잘린 팔을 주워들었다.

잘려나간 손이 쥐고 있는 비수로 자신의 심장을 찌르려던 것이었다.

서컥!

다시 한번 공간 속에서 검기가 튀어나와 사연홍의 팔을 잘라놓았다.

“아아악!”

사연홍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 광경을 본 광마가 황급히 환신대법을 펼쳐 육신을 변모시켰다.

“죽여! 날 죽여! 날 죽이라고! 빨리! 빨리 날 죽여!”

사연홍이 고통 속에서 악착같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에 혈쇄를 비롯한 광마종의 마인들이 어찌할지 망설인 순간 화운이 빛살처럼 쇄도했다.

“어림없다!”

파괴적이고 잔혹한 덩치괴물처럼 변한 광마가 화운을 막아서며 반 자(15cm) 길이나 되는 날카로운 손톱을 사납게 할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종면으로 쏘아져오던 화운이 바로 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대경한 광마가 퍼뜩 떠오른 바가 있어 황급히 돌아보았다.

과연 화운은 뒤쪽에 있었다.

두 팔을 잃고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악을 써대는 사연홍을 뒤에서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오른손을 사연홍의 품속으로 집어넣더니 뭐가를 꺼냈다.

오색영롱한 빛을 은은하게 발하고 있는 구슬이었다.

광마종의 마인들이 저게 뭐냐는 표정을 짓는 순간 사연홍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화운을 돌아봤다.

“너, 너······!”

“경천보패를 어떻게 아냐고?”

“······?”

화운이 이름까지 알고 있자 더욱 굳어버린 사연홍.

“니들이 그토록 사모하는 천마나 아수라한테 물어봐.”

화운의 말에 아연실색한 사연홍은 죽을 힘을 다해 소리쳤다.

“빨리 죽여! 날 죽여도 되니까 빨리 공격해! 공격하라고!”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광마다.

“죽여라!”

구슬이 뭔지는 모르지만, 지금 화운이나 사연홍 둘 중 하나는 죽여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속도라면 화운이 이 자리의 누구보다 빨랐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새파란 청광이 동시다발적으로 번뜩였다.

쇠사슬을 풀어내던 혈쇄의 몸뚱이가 잘렸고, 혈접, 혈우, 혈검 역시 막 공세를 펼치려던 동작 그대로 쪼개져 버렸다.

“이놈!”

광마가 맹렬하게 돌진해 왔다.

번쩍!

절대검력이 수직으로 공간을 쪼개며 광마를 향해 뻗어갔다.

쩌컥!

돌진해 오던 광마는 좌우로 분리되어 화운과 사연홍을 지나쳐서 널브러졌다.

“아아아악!”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른 사연홍이 벽을 향해 머리를 박으려고 시도했다.

순간 화운이 손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잡아 뒤로 확 끌어당겼다.

“반각. 이제 반각 남았다.”

경천보패가 발휘되는 시간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자 사연홍이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진짜로 죽는다는 생각에 전신이 떠는 걸 주체하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살려줘······. 아니 지금 죽여줘. 지금 죽여주면 법보는 널 줄게. 원한다면 날 가져도 좋아. 너도 알잖아.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걸, 그러니까 제발······.”

공포에 짓눌린 사연홍이 애원했다.

하지만 화운에게는 마인들에게 줄 인정 따위는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반의 반각 쯤 남았으려나?”

화운이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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