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셋으로 무림지존-199화 (199/207)

#199. 너희 같으면 잊을 수 있겠느냐?

멍청이!

한심한 놈!

욕먹어도 싸다.

눈으로 보고도 이제껏 놓치고 있었다니!

마신 아수라를 상대할 방법.

내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 방법은 멀리 있지 않았다.

마신 아수라가 보여줬었다.

육조 혜능이 보여주었던 마신 아수라의 그 신마대전에서.

***

아침식사 후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은 무해의 중심에 위치한 커다란 전각으로 안내되었다.

“무영천주라는 자는 끝까지 앉아서 기다리겠다는 건가 봅니다.”

아미파의 장문인이 분노를 드러냈다.

무영천주가 무당검성에게 검을 배웠다고 들었다. 무당에서 그의 존재를 받아들여 무당파의 계보에 올린다하더라도 그건 무당에만 국한한 일.

다른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을 불렀으면 응당 마중을 나왔어야 했다.

헌데 대전으로 향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무영천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칠대문파를 무시하고 기만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미파 장문인은 그래서 분노했다.

“가서 보십시다. 칠대문파의 머리 위에 앉은 자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검성 어르신만 아니었으면 예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외다.”

종남과 점창의 장문인이 차례로 불만을 드러냈다.

“무량수불!”

무당파 장교진인은 할 말이 없어 도호만 중얼거렸다.

그들을 안내하는 사람은 무영투였다.

선두에서 길을 안내하던 무영투는 다 듣고 있었지만, 입가에 미소만 지은 채 돌아보지도 않았다.

‘바야흐로 칠대문파의 시대는 가고 무영천의 시대가 열리겠구나! 으흐흐흐흐!’

무영투는 간밤의 소란 때 화운을 보고는 확신했다.

화운이 한 단계 더 강해졌음을.

그렇잖아도 천하제일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화운이 한 단계 더 강해졌으니 누가 감히 비교가 되겠는가.

천마, 사황?

이젠 그들도 어림없으리라.

무영투는 그 생각에 빠져 길을 안내하는 동안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고, 양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여기가 무해의 중심인 무해각이오.”

커다란 월동문을 지나자마자 모두가 보라는 듯이 옆으로 비켜서는 무영투.

칠대문파 장문인들이 무해각의 앞마당으로 차례로 들어섰다.

연무장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널찍한 앞마당이었다.

칠대문파 장문인들은 주위를 둘러보다 앞마당 끝에 시선을 집중했다.

무해각의 출입문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은 담대후였고,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이는 화운이었다.

칠대문파 장문인들은 화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무영천의 천주이자 무당검성의 전인이라고 자처한 인물임을 직감한 것이다.

화운을 본 칠대문파 장문인들의 얼굴엔 노기가 사라지고 대신 호기심과 관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신태비범!

짝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빼어난 외양과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만물의 한가운데에 홀로 선 것처럼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감.

가까이 다가갈수록 천하정파를 아우르는 칠대문파 장문인들조차 경탄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가히 범접키 어려운 출중한 기도를 내비치고 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오는 내내 불만이었던 아미파의 장문인조차 두 눈을 치뜨기만 할 뿐이었다.

단순히 강해 보이기만 했다면 칠대문파 장문인들이 이토록 놀라진 않았을 터였다.

지금 화운에게선 경지에 오른 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 차원이 다른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신선들의 풍모가 이러할까.

아니면 신들의 권능이 이러할까.

그것도 아니면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궁극 너머의 또 다른 궁극이 이러할까.

절대의 경지조차 훌쩍 뛰어넘는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그 어떤 미증유의 경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아미타불!”

소림사 장문인의 경탄이 모두의 심경을 대변해 주었다.

그만큼 화운의 존재감은 오묘해 보였다.

이윽고 경탄에 경탄을 거듭한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이 걸음을 멈추자 담대후가 한 걸음 나섰다.

“날씨가 이토록 화창한 걸 보니 오늘의 회담이 아주 좋은 결과를 낳을 것 같습니다.”

“무량수불!”

“아미타불!”

담대후가 기분 좋게 말문을 열었으나 무당파의 장교진인과 소림사의 장문인만이 응답할 뿐 다른 장문인들은 화운에게서 눈조차 떼지 못했다.

그에 화운이 한 걸음 나서며 읍했다.

“화운이라고 합니다. 장문인들께서 먼 걸음 하시게 하여 송구합니다.”

원래 오만과 거리가 먼 화운이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칠대문파 장문인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그가 가식도 오만도 느껴지지 않는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여 보이니 다들 또 한번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칠대문파 장문인들은 경탄하는 중에도 화운과 시선이 마주치면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에는 용서를 구할 일이 있습니다. 다만 오늘의 회담이 그 일조차 뒤로 미뤄야할 정도로 중대하니 양해를 구합니다.”

“시주, 아니라고 잡아떼도 될 텐데 굳이 인정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가친께서 늘 하신 말씀이, 스스로 바르지 못하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결코 당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천하를 위한다는 핑계로 금강부동을 익혔습니다만, 그 자체까지 거짓으로 삼을 순 없습니다.”

“아미타불! 시주의 뜻은 알겠소. 허나 소림의 율법은 무척 엄하다는 것만 알아두셨으면 하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 화운은 무당파의 장교진인을 바라봤다.

무당파 장교진인은 소림사의 일 때문에 얼굴 표정이 무척이나 복잡해보였다.

화운은 그 표정만으로도 무당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장교진인께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화운입니다. 검성께서는 무당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하셨으나 제 마음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무당은 태사백조를 품을 만큼 넉넉하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자유롭게 사시되 무당이 있음을 잊지는 말아주십시오.”

무당은 화운을 품되 자유롭게 놓아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화운이 무당을 찾는다면 언제나 품어줄 것이고, 천하를 활보하고자 한다면 그저 지켜봐 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무당에 누가 되지 않도록 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화운이 공손히 읍했다.

무당 내에서 누구도 화운보다 배분이 앞서지 못하지만, 장교진인의 자리는 배분으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지엄한 자리였다.

그래서 서로가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아니어도 함부로 굴 화운이 아니었지만.

무당파의 장교진인이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화운과 대화를 나누어보니 소림의 일조차 근심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놓인 것이다.

화운은 마주 웃어준 후 화산파 장문인을 바라봤다.

“이 먼 곳에서 뵈어도 화산의 위엄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보고 놀란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오늘 이곳에서 또 한번 놀라게 하는군요. 오늘의 회담에서 얼마나 또 놀라게 할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화산파 장문인은 무당파가 화운을 태사백조로 받아들였다는 걸 알게 되자 그 배분에 맞게 대했다.

“장문인들께서 한 번 더 생각해 주시고, 천하의 안위를 위해 각파의 자존심을 한 번만 내려놓으신다면 분명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거라 믿습니다.”

“화산은 무영천에 큰 빚을 졌습니다. 그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니 천주의 바람대로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산파 장문인은 만면에 온화한 기운이 가득했다.

화운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청성파 장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성 역시 무영천에 빚을 졌소. 청성과 사천 사람을 대신하여 이제라도 감사를 드리는 바이오.”

천종천마교가 아이들을 납치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수많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인사였다.

화산파 장문인이 큰 빚을 졌다고 한 것도 바로 그 일을 말함이었다.

“사천과 섬서 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건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만 하는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화운이 고개를 숙였다.

청성파 장문인은 크게 감복한 얼굴로 화운을 향해 읍했다.

“어른으로서의 의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구려. 잊지 않겠소이다.”

청성파 장문인과도 인사를 나눈 화운은 다른 장문인들도 둘러봤다.

그러나 나머지 장문인들과는 대화를 나눌 만한 접점이 없었기에 고개만 숙여주었다.

“자, 이제 안으로 드시지요. 구룡제와 적성대도황 그리고 태양존자께서는 좀 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사파 삼천의 지존들에 관한 말이 나오자 칠대문파 장문인들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정파인들을 답답하게 만들 정도로 대단 고수들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광경이었다.

“들어가십시다. 무영천주께서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 것인지 심히 궁금하외다.”

소림사 장문인을 필두로 하여 담대후와 화운의 안내를 받은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은 무해각으로 입성하였다.

커다란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는 무해각.

그 안으로 발을 들인 순간 공기부터가 확 달라졌다.

극도로 억눌린 공기.

누구라도 침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경직된 공기가 널찍한 대전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전을 가로지른 앞쪽 전방에는 커다란 태사의가 놓여 있었고, 거기엔 붉은 머리의 노인이 위엄 가득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쪽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세 사람.

뒷모습만으로도 구룡제를 위시한 삼천의 지존들임을 알 수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사파 삼천의 지존들이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태사의의 노인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칠대문파 장문인들은 이 같은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나 태사의에 앉아 있는 핏빛 머리의 노인이 사황이라는 걸 알게 된 구룡제와 적성대도황 그리고 태양존자로서는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은 심상치 않은 광경에 잔뜩 경계하는 마음으로 태사의에 앉아 일어날 생각조차 않고 있는 사황을 응시하며 다가갔다.

이윽고 칠대문파 장문인들은 구룡제 등이 앉아 있는 위치까지 다가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야 할지 인사부터 나누어야 할지 망설이다 화운과 담대후를 돌아봤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기까지가 자신들의 몫이라는 듯 한쪽으로 물러나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아미타불! 시주께서 무해곡의 곡주이시오?”

소림사 장문인이 경직된 분위기를 깨트리며 물었다.

사황은 칠대문파 장문인들을 거만한 모습으로 쓱 둘러본 후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해곡의 당대 곡주가 바로 본좌다.”

“듣기로 무해곡은 과거의 원한을 잊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너희 같으면 잊을 수 있겠느냐?”

“허면 세상으로 나온 연유가 무엇이오?”

“니들이 우습게 보여서다.”

“······!”

칠대문파 장문인들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이 떠올랐다.

앞에서 대놓고 멸시하고 있으니 어찌 냉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구룡제를 비롯한 삼천의 지존들이 사황을 인정하는 태도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서 화를 참았다.

“화 시주, 어찌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인지 노납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구려.”

소림의 장문인이 화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때 화운은 안쓰러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음모를 꾸미거나 뭔가 사달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자의 표정이 결코 아니었다. 그에 점창파 장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일양신수가 보여주었던 선대의 일기를 떠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점창엔······!”

점창파 장문인이 갑자기 큰 소리로 나서자 모두들 그를 바라봤다.

사황조차 점창 장문인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돌렸다.

점창 장문인은 사황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본파의 선대께서 남기신 일기가 있소. 거기엔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 무해노괴의 흉심이었을까, 아니면 우리들의 시기심이었을까? 심란한 마음을 가누질 못하겠다고 적혀 있었소.”

“그나마 양심이 남아 있는 놈이 있었군.”

사황이 빈정거렸다.

점창 장문인은 그런 사황을 직시하며 말했다.

“점창은 선대의 일을 잊을 생각이 없소. 그것이 은이든 원이든 말이오. 그래서 묻고 싶소. 무해곡은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소?”

양쪽의 기록을 비교해서라도 당시의 일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뜻이 엿보였다.

하지만 사황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원래 기억이라는 건 당한 이들의 것이 더 정확한 법이니까.

사황은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순간 태산이 움직이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기운이 장내를 짓눌렀다.

“본좌는 무해곡주로서 과거의 혈채를 지금 이 자리에서 받아내겠다.”

사황이 선언했다.

그건 화운에게 향하는 경고이기도 했다.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였다.

화운은 끼어들지 않겠다는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흥!”

코웃음을 친 사황은 칠대문파 장문인들을 쓸어봤다.

“누가 먼저 나설 테냐? 전부 나서도 상관없다!”

“아미타불! 꼭 피를 보겠다면 노납이 먼저 응해드리리다.”

소림사 장문인이 반장을 하며 나섰다.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며 민간에서 흔히 말하는 칠대문파의 대형 노릇을 하는 곳이 소림사였다.

그러니 강적 앞에서는 늘 앞장을 서야했다.

당대 소림사 장문인은 소림칠십이절예 중 나한공과 철우장을 익혔다. 그리고 장문인이 되어서는 반야대능력과 항마장법을 새로 익히게 되었다.

반야대능력과 항마장법은 장문인만 익힐 수 있는 소림의 대표적인 신공절학이었다.

“아미타불!”

사황과 마주 선 소림 장문인이 반장하고 있던 손을 뻗었다.

반야대능력의 공력이 황금빛의 장력을 뿜었다.

“흥! 금강부동 외에는 모조리 쓸모없다!”

오만하게 코웃음 친 사황에게서 전륜멸천의 강기가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콰앙!

대전을 뒤흔드는 굉음.

소림사 장문인은 쪼개진 장작처럼 날아갔다.

“무량수불!”

무당파의 장교진인이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반대편 벽에 처박히기 직전의 소림사 장문인을 받아냈다.

일격조차 감당하지 못한 소림사 장문인은 시뻘건 피를 쏟아냈다.

위중한 중상을 입은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무당파 장교진인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너무······ 강하외다.”

소림사 장문인이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간신히 말했다.

이때 무당 장교진인의 뒤를 따라 발 빠르게 달려와 사황을 경계하고 서 있던 다른 장문인들이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을 더욱 굳혔다.

“검성이 죽은 이상 네놈들 목숨은 손안에 든 갈대와 같다. 어찌해줄까? 단숨에 뽑아줄까, 아니면 모조리 꺾어버릴까?”

사황이 서슬 푸른 얼굴로 외쳐 물었다.

칠대문파 장문인들은 물러나지는 않았으나 감히 달려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자리만 지켰다.

“흥!”

그 모습에 사황은 다시 한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였다.

구룡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수를 하고 싶거든 그냥 죽이시고, 원하는 게 있으면 설명을 하시오. 자존심이 밟힌 무인은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는 법이오, 그 상대가 설사 사황 선배라 해도 말이오.”

사황이라는 말에 또 한 번의 충격이 칠대문파 장문인들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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