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악전고투
콰-앙!
굉음과 함께 마신 아수라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뿐이다.
화운이 펼친 절대검력에 정통으로 격중 당하고도 고개가 살짝 돌아간 게 다다.
격중당한 자리에 혈선과 함께 핏물 몇 방울 흘리면서.
마신 아수라!
신은 몸뚱이조차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얼굴 하나쯤은 아작이 났어야 하는 거 아냐?”
멀쩡한 아수라의 모습에 백리명이 허탈하게 내뱉었다.
지켜보았던 모두가 같은 심정이 되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화운은 달랐다.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좋아! 생각보다 덜 하긴 하지만 피해를 줄 순 있다!”
애초 한두 번의 공격으로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은 화운이었다.
그러니 실망할 일이 아니었다.
“쥐새끼 같은 놈! 감히!”
마신 아수라의 고개가 돌아가며 분노에 찬 일격이 펼쳐졌다.
슈-욱!
묵빛의 기운이 섬광처럼 쏘아졌다.
하지만 화운은 금강부동을 펼쳐 그 자리를 벗어난 후였다.
“아수라! 꺼지라고······!”
기습적인 일격을 가하려던 화운이 깜짝 놀랐다.
부-악!
머리 위에서 거대한 방천극이 허공을 쪼개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천극은 장창의 창두에 초승달 모양의 날이 붙은 병기로 한 번 걸리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중병이었다.
게다가 지금 마신 아수라가 휘두르는 방천극은 인간의 육신에 비해 월등히 커다란 것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육신이 쩍쩍 쪼개지고 갈라질 것이 분명했다.
화운은 화급히 금강부동을 펼쳐 자리를 이동했다.
쓰-퍽!
금강부동을 펼쳤음에도 불로 지진 듯한 통증이 어깨를 가르고 지나갔다.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낸 화운은 피를 뿌리며 추락했다.
하지만 곧 미간에 오색찬란한 빛을 뿌리는 경천보패가 세 번째 눈알처럼 모습을 드러내자 쩍 갈라졌던 어깨가 원상태로 돌아갔다.
“젠장! 팔이 여섯 개다 이거지?”
신형을 뒤집은 화운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부-악!
화운이 사라진 빈 허공을 가른 방천극.
콰-앙!
메마른 대지가 거대한 협곡처럼 쩍 갈라졌다.
이때 금강부동을 펼쳐 피한 화운이 마신 아수라의 머리위에서 묵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수라의 세 번째 손이 등 뒤에서 기다란 장검을 뽑아 휘둘렀다.
쓰-악!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조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당장 금강부동을 펼치면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계속 피하기만 해야 해! 아수라를 쓰러트릴 수가 없어!’
화운은 절대검력을 끝까지 펼쳤다.
그런 후에야 금강부동을 펼쳐 자리를 피했다.
쾅!
절대검력이 아수라의 세 얼굴 중의 하나를 직격했다.
하지만 금강부동을 펼쳐 자리를 이동하는 화운의 팔이 싹둑 잘려버렸다.
“크하하하하! 해볼 만한 싸움이지 않은가!”
팔이 잘렸음에도 화운이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오색광휘에 휩싸인 그의 몸에 잘려버렸던 팔이 다시 생겨났다.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몸의 상태를 일각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마신 아수라의 얼굴에는 혈선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놈! 나 아수라의 권능을 내놓아라!”
아수라에게서 강렬한 기운이 몰아쳤다.
아수라가 자신의 권능을 발휘하여 경천보패를 자신에게로 귀속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늦었다.
지금 이 순간 경천보패는 완전히 화운에게 귀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화운은 언젠가 육조 혜능 선사가 보여준 신마대전에서 아수라가 경천보패를 사용하는 법을 봤다.
그동안 강해져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눈으로 보고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 년 전 마신 아수라를 상대할 비책에 몰두하던 중 비로소 그 광경을 떠올리고는 경천보패를 집중 연구하였다.
그 결과 경천보패의 올바른 쓰임을 알아냈다.
마신 아수라가 자신의 권능으로 귀속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 경천보패는 화운의 권능인 셈이었다.
“웃기지 마라! 이건 나 화운의 권능이다!”
마주 외친 화운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신 아수라의 뒤로 나타난 화운은 절대검력을 펼쳤다.
부-악! 쓰악!
방천극과 장검이 동시에 화운을 공격했다.
화운은 절대검력을 끝까지 발휘하고는 금강부동을 펼쳐 피했다.
그러나 마신 아수라의 측면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슈-욱!
묵빛의 기운이 섬전처럼 쏘아져 화운을 강타했다.
“컥!”
가슴이 뻥 뚫려버린 화운이 수십 장을 날아갔다.
하지만 곧 오색찬란한 광휘와 함께 화운이 금강부동을 펼치며 사라졌다.
“꺼져라!”
다시 모습을 드러내 절대검력을 펼치는 화운.
쾅!
마신 아수라의 목에 기다란 혈선을 남긴 화운은 아수라가 휘두른 장검에 옆구리가 갈라진 채 모습을 감췄다.
“한 번 더!”
쾅!
아수라의 세 번째 얼굴을 사선으로 가르는 혈선.
화운은 장검에 꼬치처럼 꿰뚫렸다.
“크하하하! 이제야 알겠다!”
수십 장 밖에서 화운의 앙천광소가 터졌다.
마신 아수라가 거대한 몸체를 돌려 화운을 바라봤다.
“난 지금의 이 싸움을 위해 골백번도 넘게 죽어야 했던 거다. 목이 잘리길 수백 번이었고, 때로는 머리통이 박살이 났고, 또 때로는 몸이 분리되고, 팔다리가 잘리기도 했다. 어떨 땐 이무기의 독에 녹아내리기도 했지. 그 모든 죽음이 지금 바로 이 싸움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던 거다. 팔이 잘리고 몸통이 꿰뚫리는 거? 얼마든지 당해주마! 간-다!”
화운이 다시 달려들었다.
금강부동은 확실히 대단했다.
마신이라는 아수라조차 금강부동을 완벽히 따라잡지 못했다.
그냥 피하려고만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절대검력을 끝까지 발휘하고 피하려고 하니 아수라의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건 절대검력이었다.
화운이 할 수 있는 한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수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라고 하기엔 너무나 미약한 생채기만 만드는 정도밖에 할 수가 없었다.
마신에게 도전하기엔 인간의 힘이 모자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화운은 실망하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절대검력을 끝까지 발휘하고 금강부동을 펼쳐 피하길 수십 차례, 그때마다 사지육신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화운이 당한 만큼 마신 아수라의 몸에도 생채기 숫자가 늘어났다.
여기저기서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천한 인간 놈! 죽어라!”
마신 아수라가 빙글 돌아서며 여섯 개의 팔을 동시에 휘둘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싸움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겪어본 화운이었다.
정면에서 싸우게 되면 여섯 개의 팔을 전부 다 상대해야 하지만 양쪽 측면과 후방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서 화운은 철저히 정면공격을 피했다.
“너나 죽어라!”
슈우우우우욱!
마신 아수라의 등 뒤에서 나타난 화운이 묵검을 길게 뻗으며 공공무영비 구단공 무영비천을 펼쳐 일섬처럼 달려들었다.
마신 아수라가 광분하여 공격하는 순간을 노려 그의 심장을 등 뒤에서부터 찔러버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쩌어어어엉!
묵검의 끝이 등짝을 찌른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가 길게 울렸다.
“뭐가 이렇게 단단해!”
마신 아수라가 상반신에 걸치고 있는 흉갑.
활동이 용이하도록 상반신의 일부만 보호하고 있었는데, 심장이 위치한 높이의 등 뒤에도 거무튀튀한 철갑이 둘러져 있었다.
부아아아아악!
‘이런!’
화운이 다급성을 지르며 금강부동을 펼쳤다.
마신 아수라가 팽이처럼 돌며 돌려차기를 한 것이다.
이제껏 보여주지 않았던 공격인데다 그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빨라서 금강부동을 펼쳤음에도 피하기엔 늦은 것 같았다.
화운은 다급히 팔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빠각!’ 하는 파골음과 함께 팔과 오른쪽 옆구리 쪽의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져버렸다.
마신 아수라의 노림수에 걸려든 것이다.
“크윽!”
신음과 함께 한쪽으로 튕겨져 날아가는 화운.
이때 벼락처럼 날아온 방천극이 화운의 가슴팍에 꽂혔다.
쾅!
방천극은 화운을 꽂은 채 지상으로 날아가 거대한 바위에 깊이 박혔다.
오색찬란한 광휘가 화운을 휘감았다.
부러진 팔과 갈비뼈가 원상태를 되찾았다.
하지만 방천극이 그의 가슴을 꿰뚫은 채 바위에 박혀 있는 것까지 없어지지는 않았다.
“안 돼!”
백리연이 목 놓아 부르짖으며 몸을 날렸다.
순간 백리명이 손을 뻗어 단숨에 팔을 낚아채 제지했다.
“이거 놔! 놓으라고!”
“아직이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 저렇게 끝날 매제가 아니다! 기다려!”
백리명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굳건한 믿음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하지만······!”
“모르겠니? 저 녀석은 처음부터 이런 싸움이 될 거라는 걸, 아니 이런 싸움을 할 작정으로 온 거란 말이다!”
“······!”
“마신이다! 마신을 상대로 저런 싸움이라도 가능한 게 어디냐! 기다리자. 저 녀석이 해낼 때까지 기다려 주자! 그게 도와주는 것이다!”
백리명의 말에 실린 굳건한 믿음.
신풍영웅대는 물론이고 정사연합의 삼만에 달하는 무인들은 일심이 되어 화운을 지켜봐 주었다.
자신들의 눈길이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끄으으윽!”
화운은 두 손으로 창대를 잡고 뽑아내려고 했지만 바위에 단단히 박힌 방천극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꼬치에 꿰인 쥐새끼 같구나!”
지상으로 내려선 아수라가 한 손으로 방천극의 창대를 잡아 눌렀다.
화운이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무료한 눈으로 내려다본 아수라는 주위를 쓸어보며 말했다.
“쥐새끼! 발악해 봐야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미천한 것들!”
차갑게 소리친 아수라가 장검을 휘둘렀다.
쑤-앙! 콰앙!
굉음에 가까운 파공음에 이어 가경할 폭음이 터지며 정사연합군의 일부가 속수무책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같은 광경을 목도한 화운의 눈에 핏발이 섰다.
“쥐새끼가 발악하면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악에 받친 듯 소리친 화운이 묵검을 역으로 쥐어 방천극에 바짝 붙여 자신의 가슴에 박았다.
그리고는 악을 쓰며 옆구리 쪽으로 힘껏 베어 버렸다.
“끄아아아아악!”
내장과 갈비뼈가 모조리 잘려나가는 고통에 전신이 다 덜덜 떨렸으나 방천극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뒤늦게 아수라가 도끼로 내리찍은 순간 황급히 금강부동을 펼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간신히 자리를 벗어난 화운.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아수라의 연환공격에 가슴팍을 정통으로 격중당하고 말았다.
쾅!
화운이 쪼개진 장작처럼 튕겨졌다.
하지만 십여 장을 날아가기도 전에 허공에서 사라졌다. 다시 한 번 금강부동을 펼친 것이다.
화운을 찾아 빙글 돌아서는 마신 아수라.
좌측에서 모습을 드러낸 멀쩡한 모습의 화운이 오색찬란한 광휘에 휩싸인 채 검을 뻗었다.
새파란 광채 일백여 개가 일제히 쏘아갔다.
검멸발휘!
강환을 능가하는 파괴력을 가진 검멸의 검환 일백 개가 일제히 쏟아져 날아가니 마신 아수라가 여섯 개의 팔을 들어 막았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천둥처럼 대기를 뒤흔드는 폭음들.
번-쩍!
새파란 광채가 폭음을 일으키는 충격의 사이를 번뜩이며 꿰뚫었다.
쓰-팟!
피가 튀었다.
마신 아수라의 목에서 이제까지와는 달리 핏줄기가 뿌려졌다.
그것을 확인한 화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수라! 이제부턴 더 많이 아플 거다!”
화운이 무섭게 노려보며 내뱉은 순간 아수라가 손을 들어 목을 매만졌다.
상당한 깊이로 갈라져 있었고 핏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수라는 잠깐 의아한 얼굴로 화운의 검을 바라봤다.
그러다 곧 어찌 된 노릇인지 깨닫고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제야 알아차렸군. 맞아. 상처 난 부위를 다시 공격한 거다. 지금 네 몸엔 수백 개의 상처가 나 있지. 지금부터 난 그 상처들만 집중 공략할 거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봐. 다시 간-다!”
화운이 금강부동을 펼쳐 허공에서 사라졌다.
화운과 마신 아수라의 격전은 반 시진(1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어찌나 처절한 싸움인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지루할 새도 없었다.
화운의 가슴이 꿰뚫리고 팔다리가 떨어지길 수백 차례.
심지어 얼굴의 절반이 박살이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화운은 물러나지 않았다.
경천보패의 신력으로 원상태로 되돌리고, 금강부동을 펼쳐 아수라의 사각으로 움직인 다음 절대검력을 펼쳤다.
화운이 끔찍하게 당한 횟수만큼 아수라의 몸에 난 상처도 깊어졌다.
미세한 생채기에 절대검력을 강타하니 한눈에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가 되었고, 또다시 절대검력을 강타하니 손가락 굵기의 상처가 되어 붉은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런 상처가 온몸에 수십 개였다.
상반신의 급소를 가리고 있던 흉갑도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화운이 흉갑의 이음새 부분들을 집중 공략한 결과였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거리는 법이다! 신들의 싸움에 왜 인간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냐! 인간이라고 짓밟히기만 할 줄 아느냐!”
화운이 인간들의 세상을 대변하듯 소리쳤다.
“놈! 영혼까지 씹어 먹어 버리겠다!”
마신 아수라가 흉신악살처럼 분노했다.
순간 그의 육신에서 세 개의 팔이 더 튀어나왔다.
갖가지 병기들을 쥔 아홉 개의 팔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자 마치 팔이 수십 개로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뿐만 아니라 시커먼 마기를 잔뜩 집어먹은 병기들이 어둠의 집약처럼 빛조차 흡수해 버릴 것 같은 지독한 묵빛을 뿌리며 화운과 화운이 움직일 공간마저 일순간에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싸움의 결착을 낼 순간이 왔음을 직감한 화운은 금강부동을 펼치지 않고 아수라를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갔다.
꽈과과과과과과과광!
검멸의 검환 일백 개가 먼저 날아가 순차적으로 터져나간 사이에 십여 장 가까이 쏘아져간 화운.
꽈다다다다당!
화운의 눈앞에서 시퍼런 불꽃이 마구 튀었다.
검멸에 이어 전력을 다해 펼친 강기의 막이 아수라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터져 나온 불꽃이었다.
하지만 부딪칠수록 강기의 막에 균열이 갔고, 삼 장 가까이 쏘아져간 순간 강기의 막이 굉음과 함께 터져 버렸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이 화운이 노리고 노렸던 순간이었다.
펏!
강기의 막이 터지고 아수라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화운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진 순간 화운이 사라졌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금강부동이었다.
“······!”
아수라가 화운의 기척을 감지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바로 이때 허공에서 화운이 튀어나오며 거대한 유성 같은 일격이 아수라의 머리위로 뚝 떨어졌다.
건곤무상!
천기를 집약한 공격이었다.
콰-웅!
굉음이 터졌다.
마신 아수라의 육신은 그대로였다.
건재했다.
별 피해를 주지 못한 것 같았다.
헌데 아수라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신음을 토했다.
“끄으으으윽!”
그 같은 광경에 화운은 눈을 치떴다.
예전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마기를 익힌 자들에게는 건곤무상의 천기가 상극이다.
아수라의 몸을 지탱해 주는 마기에 균열이 간 게 틀림없다.
하찮게 여기던 인간에게 수많은 상처를 입고 급기야 피까지 흘린 것에 광분하여 금성철벽처럼 굳건해야 할 마기가 흔들린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천기에 직격을 맞았으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역시!”
시기적절한 때가 될 때까지 건곤무상을 아끼고 아껴둔 것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빛을 빛내는 화운.
화운은 건곤무상을 계속해서 펼쳤다.
콰-웅!
아수라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지며 또다시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콰-웅!
“한 번 더!”
콰-웅!
건곤무상이 작렬할 때마다 아수라의 육신이 점차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무릎이 굽혀졌다.
조금씩, 조금씩!
“다시!”
콰웅!
화운은 멈추지 않고 수십 번을 더 펼쳤다.
아수라는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땅에 꿇고 말았다.
“이, 이럴 수는······!”
마신 아수라는 정신마저 무너지고 있었다.
마신의 반열에 오른 아수라의 육신이 무너진다는 건 그 육신을 담금질 한 정신 또한 무너지고 있다는 것!
화운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번-쩍!
절대검력이 공간을 갈랐다.
퍽!
아수라의 세 얼굴 중의 하나가 사선으로 깊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번-쩍! 번쩍! 번-쩍!
화운은 아수라가 일어설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절대검력을 거푸 펼쳤다.
아수라의 얼굴에 난 상처가 점점 더 깊어졌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더니 급기야 뼈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아수라다!”
아수라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이거나 처먹어!”
건곤무상을 펼쳤다.
콰웅!
한 번 균열이 간 마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건곤무상이 작렬할 때마다 더욱 흔들렸고 심지어 마기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콰웅! 콰-웅! 콰웅!
또다시 무릎을 꿇고 마는 아수라.
분노와 혼란으로 잔뜩 일그러지는 아수라의 얼굴.
‘지금이다!’
화운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내 모든 걸 일검에 담는다!’
화운은 곧게 뻗은 묵검과 신검일체가 되어 빛살처럼 쏘아갔다.
퍽!
새파란 광채를 잔뜩 뿜어내고 있는 묵검의 검끝이 아수라의 얼굴에 사선으로 길게 갈라진 상처의 한복판을 뚫고 들어갔다.
“죽어라!”
화운은 오른손을 놓았다가 검의 손잡이 뒷부분을 있는 힘껏 쳤다.
묵검이 반 치 쯤 더 파고들었다.
“죽으라고!”
몸을 띄워 빙글 돌며 오른발로 검의 손잡이를 냅다 후려 차는 화운.
푸욱!
묵검이 한 치 쯤 더 파고들었다.
“아수라! 마지막이다!”
화운은 오른손에 방패처럼 강기의 막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심전력으로 휘둘러 검의 손잡이를 후려쳤다.
쾅!
굉음과 함께 묵검이 아수라의 뒤통수로 삐죽 튀어나왔다.
“······!”
거대한 육신이 돌처럼 굳어버리는 아수라.
그의 흔들리는 동공이 화운을 노려봤다.
“운명이었는지 아니면 하늘의 뜻이었는지, 그딴 건 난 몰라. 이 땅에 침범한 건 너고, 인간들을 짓밟으려고 한 것도 너야. 그러니까 그 대가 역시 네가 치러야 해.”
화운은 오른손을 들었다.
새파란 강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거대한 용의 형상을 만들었다.
의형강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강기무공의 궁극.
이윽고 화운의 손짓을 따라 청룡 형상의 강기가 아수라의 육신을 강타했다.
쾅!
마기가 잔뜩 흩어지고 있던 아수라의 육신은 의형강기를 버티지 못했다.
굉음과 함께 아수라의 육신을 파고들어간 의형강기가 심장을 물고 등 뒤로 튀어나왔다.
퍽! 털썩!
육신 밖에서 심장이 터져버린 아수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분노 어린 눈빛으로 화운을 쏘아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죽은 것이다.
마신 아수라가 죽었다.
수라도의 지배자인 마신 아수라가 한낱 인간에게 죽은 것이다.
이 믿기지 않은 광경에 정사연합의 무인들은 숨조차 멈춘 채 넋을 놓고 말았다.
화운은 빙글 돌아섰다.
그리고 검멸의 검환들을 사방으로 날려댔다.
쾅쾅쾅쾅쾅쾅쾅쾅!
아수라의 죽음으로 결속이 끊어진 마귀들이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대신에 화운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려야 했다.
마귀들은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그냥 보내줄 화운이 아니었다.
“한 마리도 놓치면 안 됩니다!”
화운의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린 무인들이 달아나는 마귀들의 앞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화운은 멀리 달아나는 마귀들과 날개가 달린 마귀들을 우선적으로 처치하며 무인들이 마귀들을 물리치도록 도와주었다.
명왕을 비롯한 천종천마교의 고수들은 전의를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마신 아수라조차 죽여 버린 화운이 건재한 데다 그가 보여준 신위에 싸울 엄두조차 사라져 버린 것이다.
“끝났군.”
구룡제가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버렸어.”
적성대도황이 말을 받았다.
“이제 천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태양존자가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
“뭐가 어떻게 돼? 저놈 천하인 거지. 못마땅하면 가서 싸워보든가.”
적성대도황이 툭 내뱉었다.
태양존자는 화운을 쓱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다 포기해야지.”
이때 화운은 마귀들을 처치하는 무인들을 둘러본 후 마신 아수라의 주검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사황과 천마가 들어간 수라도로 향했다.
아직 싸움이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