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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화 (4/424)

00004  지랄이 풍년이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최종현 주임.(보통 3년차가 되면 주임, 5년차가 되면 대리가 된다)

나이 26. 입사 4년차. 특이사항 군 면제.

최종현 이 자식은 모기 같은 놈이다. 자려고 누웠는데 앵앵 거리는 모기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적 있는가? 짜증이 나 잡으려고 일어나 불을 켜면 보이지 않고, 다시 불을 끄고 누우면 앵앵 거리는 망할 놈의 모기. 최종현이 바로 그런 놈이다. 딱히 위협적이진 않지만 그놈 특유의 깐죽거림이 가끔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팀원들에게 신입에 대한 신상명세를 공개한다. 생년월일, 학력, 병역사항 정도만 공개하기 때문에 딱히 사생활 침해라고 항의할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같은 팀원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소한 사항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사소한 신상명세서를 가지고도 사람의 속을 박박 긁는 재주가 있다.

“어라. 해병대 나왔네. 난 면젠데. 어라. 99학번이네. 난 01학번인데.”

최 주임 자식이 제일 처음 내게 했던 말이다. 이런 종류의 인간은 군대에서도 많이 겪어봤다. 대학을 2년까지 마치고 입대했기 때문에 자대에는 나보다 어린 고참들도 몇 명 있었다. 그 중에는 최 주임처럼 꼭 나이가지고 약 올리는 놈들이 있었다.

별일 아닌 일로 막 갈구고 나서는 꼭 한마디 한다.

“꼽냐? 나이도 어린놈이 갈구니까 꼽지?”

“아닙니다.”

“에이 열 받으면서? 그러기에 군대 일찍 오지.”

저딴 식으로 말하고 나서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혼자 킬킬 웃는다.

그런 지랄 같은 고참 덕분에 충분히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면제라고 하니깐 괜히 욱한다. 겉으로 봤을 때는 멀쩡해 보인다. 부서 체육대회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지만 딱히 어디가 아파보이진 않았다. 혼자 킬킬거리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 걸로 봐서는 정신 이상으로 면제를 받지 않았을까? 그냥 그렇게 납득하고 말았다. 또라이는 더러워서라도 피하는 것이 상책인 법이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가 자기 밥값까지 계산을 대신 하게 한다든가, 식사 후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실 때 만 원짜리밖에 없다면서 얌체같이 얻어먹는 정도의 일은 그냥 웃으면서 넘길 정도의 일이다. 꽤 잘사는 집 아들 같아 보이는데, 뭐가 그렇게 돈 쓰는 것이 아까운지 별의 별 낯 뜨거운 짓을 벌이며 사람을 열받게 만든다.

우리 팀원은 총 7명이다. 여직원이 3명 남자직원이 4명이다. 팀 회식도 하지만 가끔 남자직원끼리 어울릴 때도 있다. 남자직원끼리 회식을 하면 술집 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이 혹시 어딘지 아는가? 여자 나오는 노래방? 아니면 좀 더 비싼 단란주점이나 룸살롱? 아니다.

바로 당구장이다.

과장님만 250을 치고 나머지 세 명은 200이 수지다. 큰 차이는 아니라 별 무리 없이 무작위로 2:2 편을 갈라, 내기 당구(일명 겐뻬이라고 한다.)를 친다. 이 때 이 대리와 같은 팀이 되면 지랄 같은 상황이 되고, 최 주임과 다른 팀이 되면 아주 개지랄 같은 상황이 된다. 그리고 이 대리가 같은 팀이고 최 주임이 다른 팀이면, 그날은 아주 지랄이 풍년이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 대리는 당구를 칠 때 온갖 짜증을 다 부린다. 자기가 실수하면 ‘씨발, 씨발’거리기 일쑤고, 같은 팀이 실수하면 순간 ‘개새끼, 소새끼’가 된다. 심지어 과장님이 실수를 해도 구박을 한다. ‘아! 과장님 그렇게 쉬운 다마를 놓치면 어떡해요.’정도의 말은 예사로 한다. 솔직히 과장님과 이 대리가 연차로 2년 차이다 보니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유대감이 있긴 하겠지만, 지켜보고 있으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랬다가는 바로 ‘죽일 놈, 살릴 놈.’ 그러면서 버럭버럭 화부터 냈을 놈이다.

문제는 최 주임이다. 이 인간은 당구를 이기기 위해 온갖 추잡한 짓을 다한다. 길을 정하고 공을 치려고 하면, 노리고 있는 빨간 공 근처 다이에 머리를 올리고 ‘빡킹, 빡킹’을 외친다. 그 정도는 애교다. 큐대(큣대?)를 엉덩이로 툭 밀기도 하고, 은근슬쩍 큐대 끝에 침을 발라놓기도 한다. 가끔은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는다. 아주, 아주 가끔은 엉덩이 근처에 손을 집어넣기도 하는데, 그 때는 정말 큐대로 머리를 찍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당구 인생 7년 동안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별 괴상하고 치사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 이기려고 버럭버럭 애를 쓴다. 당구 수지는 200일지 몰라도, 겐세이(당구 칠 때 방해하는 행위)를 당구실력으로 평가한다면 프로 당구선수 저리가라 할 정도다. 또라이가 괜히 또라이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정말 혐오스러워 하는, 우리 팀의 가장 대빵인 팀장!

이름 양지선 팀장.

나이 38살, 입사 16년차, 직급 상으로는 과장이지만, 팀장이기도 하다. 특이사항 미혼.

팀장은 나를 무척 예뻐(?)한다. 그런데 남들 눈에는 팀장이 나를 예뻐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심히 불쾌하다. 엉덩이를 손으로 쓱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예사다. 스스럼없이 안겨오거나, ‘어머 우리 동수씨 허벅지 좀 봐’ 라고 하면서 종종 내 허벅지를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세상에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자 직장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게는 까마득히 높은 팀장. 직급 하나만 봐도 내게는 대적불가의 최종병기나 다름없다.

아주 애인이라도 된 것처럼 팔짱을 끼기도 하는데, 그때는 정말 난감하다. 사람들 앞에서 왜 이러시냐면서 화를 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둘 사이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 난 어떻게든 실력을 인정받아 다른 직장상사들의 갈굼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내 의도와는 달리 노처녀 팀장에게 알랑방귀나 끼는 한심한 인간으로 비춰질까봐 노심초사하다보니 매일 매일이 살얼음판이다. 열심히 피해 다닌다고 피해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해서 기겁을 하고 놀랄 때가 많다. 그러니 이제는 아주 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회사에서만 그러면 다행이다. 가끔은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불러내기도 하고, 술이 취해 집에 못 간다고 쉬고 있는 사람을 불러내서는 집에 데려다 달라고 뻔뻔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게 인사불성이 된 팀장을 집에 데려다 주면, 언제 술에서 깼는지 잠깐 기다리게 해놓고는 젖무덤까지 보이는 야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나를 배웅한다며 따라 나온다. 그러면서도 절대 일정 선을 넘지는 않는다. 가만히 앉아 유혹만 하면서, 마치 내가 먼저 달려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동수씨, 어제 밤에 데리러 와줘서 고마웠어.”

그런 일이 있었던 다음날은 꼭 고맙다는 표현을 하는데, 꼭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 팀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마치 나와 팀장이 무슨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그녀를 보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 그 상황에서 아무리 아무사이도 아니라고 열심히 변명을 해봤자 내 꼴만 우스워진다. 괜히 변명을 해서 오해를 키우느니 그냥 입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나를 위로할 뿐이었다.

우리 과장님은 연륜이 어느 정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내 입장을 정확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 대리의 눈빛은 더더욱 차가워진다. 그런 날은 더욱더 나를 괴롭힌다. 내가 볼 땐 이 대리가 팀장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심한 새끼. 좋으면 좋다고 고백을 할 것이지, 왜 아무 죄 없는 나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김 대리 이 독사 같은 년은 아주 그냥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사람 기를 죽인다. 나를 무슨 노처녀 뒤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는 제비로 아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최 주임은 무척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또라이 자식은 혹시라도 내가 팀장의 신임을 받아 자기를 추월할까봐 걱정이 되는 걸까? 그렇게 부러우면 네가 좀 팀장이랑 붙어먹어라. 제발, 부탁이다. 그렇게만 해주면 앞으로 식사 후에 마시는 음료수 값은 평생 대신 내줄 용의가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결국 회사에서 내가 개 고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팀장이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나랑 자자, 아니면 불이익을 주겠어.’라고 말한다면, 성희롱이라고 고소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항상 마치 내가 먼저 덮치길 기다리는 것처럼 은근하게 또는 조금 노골적으로 유혹할 뿐이다. 나처럼 덩치 큰 남자가 여자 직장상사에게 은근한 성희롱을 당한다고 하소연 해봤자 제대로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병신, 줘도 못 먹어.’라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계속 그렇게 살길 바란다. 나 사나이 마동수, 그만두면 그만뒀지 절대 그럴 수 없다.

차라리 회사 밖에서만 조용히 나를 유혹했다면, 팀장 또한 도발적인 매력이 있는 여성이라 혹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여자는 질색이다. 팀장은 거미줄로 꽁꽁 묶어 꼼짝달싹 못하게 만든 다음 교미하는 독거미 같은 여자다. 내가 만약 유혹에 굴복하고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간다면, 그 굴욕감은 평생 나를 괴롭힐 것을 안다. 회사 생활이 힘들더라도 비굴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노골적인 유혹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아! 정말 내 회사 생활은 제대로 꼬였다. 참고 또 참고 있지만 서서히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요즘은 항상 사표를 가지고 다닌다. 품속에는 아니고 자동차 글러브 박스 속 깊숙이 숨겨두었다. 하지만 딱히 방법은 없다. 지금 회사를 그만 둔다고 해도 경력을 인정받기 힘들다. 대기업이라고는 하지만 2년차 직원을 경력 인정해가며 데려가줄 회사는 없다. 결국은 다시 신입으로 시작해야 한다. 내 나이에 다른 대기업은 들어가기 힘들다 보니, 월급도 많이 줄어 들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지금보다 좋은 직장 상사들을 만난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다.

대학생부터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 꽤 되지만 서울에서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장가갈 때 전세금 정도는 해주시겠다는 부모님께 미리 융통이라도 해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내가 나를 잘 아는데 사업에 큰 소질이 없다. 열의 아홉은 말아먹고 말지 않을까?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며 월급쟁이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몇 달 있으면 신입사원을 받는다고 하니 내게 향해 있는 팀원들의 악의가 희석되길 바라보아야겠다.

아! 한 명의 소개가 빠졌다. 계속 나쁜 사람들만 소개하다보니 어색하다.

마지막으로 나의 희망.

조기훈 과장님.

나이 36세. 입사 10년차.

그래도 이 양반이 있어서, 내가 참고 회사를 다닌다.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반적으로 봐도 좋은 사람이다. 서로 취미가 비슷해서 함께 낚시를 가기도 하고, 겨울이 되면 주말에 가끔 스키장에 가서 회사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고 온다. 그리고 직장 경력 10년 차답게 수많은 맛집을 알고 있어서, 나를 종종 그런 곳으로 데리고 다니신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웬만한 맛집은 거의가 다 과장님이 데리고 다녀주신 덕분이다.

내가 겪는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서 방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나 또한 과장님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 불만은 없다. 그런 방관적인 입장인 자세를 취하는 만큼,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는 스타일이다. 그 덕분에 고생스러워도 회사일이 많이 늘어 업무평가는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가끔은 둘이서 술을 마시며 조용히 위로해주는 것도 내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다. 많은 말 보다는 그냥 ‘힘내’라고 가볍게 한마디 하시며 술 한 잔 사주신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겪는 고통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정말 과장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회사를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 작품 후기 ============================

조금 짜증나시지요? 시트콤 느낌으로 글을 쓰다 보니 캐릭터들이 좀 과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후에는 이 사람들에 대한 주인공의 소박하면서도 시원한 복수가 시작되니 짜증났던 마음이 풀리시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얼마전 기사를 보니 젊은 정규직 직원이 삼촌뻘 비졍규직 직원에게 '이놈, 저놈'한다는 글이었습니다. 제 글이 아주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아니니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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